여름방학 Dear 그림책
강현선 지음 / 사계절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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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 없는 아우성, 글 없는 그림책을 역설적으로 더 시끄럽게 읽게 된다. 글 없는 그림책을 보면 작가가 해주지 않는 말을 대신하느라 되려 수다스러워진다. 면지에서부터 버스가 출발한다. 버스는 초록빛 고개를 유유히 넘는다. 차가 지나가는 풍경이 여러 빛과 모양으로 다가온다. 산이라고, 녹색이라고 뭉치기에는 다양한 지형과 빛깔이 펼쳐진다. 풍경을 보다 놓칠세라 빨간 버스를 쫓아가다 보면 속표지에 도착하고 비로소 버스 안 아이들이 당겨 보인다. 친구 사이로 보이는 네 명의 아이들은 낯선 피서지에 내려 길을 찾아간다. 그중 공을 가진 한 명은 일행과 좀 떨어져 걷고 있다. 멀찍이 이 아이들과 다른 갈색 피부색을 가진 아이가, 그 일행아이들이 이 살구색 아이들, 특히 공을 가진 아이를 지켜본다. 무리 아이들이 물놀이를 하고 나서 끼지 않던 아이와 같이 축구를 한다. 그러던 중 공이 튀어 저만치 갈색 아이에게 날아간다. 공을 맞은 아이가 넘어지고 아이들이 달려간다. 머리를 긁적이며 사과하고 손을 내밀어 일으킨다. 그렇게 말을 트고 살구색과 갈색 아이들이 함께 공놀이를 하게 된다.
단순한 형태로 구현하는 움직임 포착이 기막히다. 아이들의 심장 박동, 헉헉 숨을 헐떡이며 뛰는 소리, 공과 발이 부딪는 소리, 모래가 튀는 소리가 고막을 꽉 채운다. 소리뿐만이 아니다. 한낮 뜨거운 공기, 아이들의 땀도 느껴지고 아이들의 벌겋게 상기된 얼굴에 시시각각 변화하는 표정도 보인다. 부지런히 공을 쫓고 공수 흐름을 따라가며 지루할 틈 없이 긴박하게 진행되는 경기에 쑥 빨려 들어가 몰입하게 되는 힘이 있다. 축구 한판이 끝났다. 해가 지고, 그렇게 여름방학이 끝났다. 우와! (거의) 글 없는 그림책이고 (면은 선으로 이뤄진 것이나) 선 없는 그림책의 (호들갑스럽지만) 마법이다. 작가가 최대한 절제한 것들은 독자가 다층적 공감각으로 가득가득 채울 수 있다. 절제한 듯 보이지만 독자가 최대한 장면을 재현하고 자연스레 연결 가능하도록 작가는 적절히 세팅해두었다. 2D가 4D가 된다. 어마마한 책이다. 내가 작가라면 내가 만들고도 엄청 뿌듯해 하며 스스로가 대견했을 것 같다.

하얀 도시 아이들과 새까만 시골 아이들, 비흑인과 흑인, 관광객과 원주민 등 사는 곳, 생활 패턴, 인종, 입장 어떤 차이로든 구분되는 아이들이 공을 굴리고 뛰어다니며 하나가 된다. 해가 지고 여름방학이 끝나갈 때 서로 구분되지 않는 모습으로 원래 친구와 새 친구, 나와 너란 분별 없이 어우러진다. 뭉클하고 아름다운 책이다. 글이 없어도 오롯이 다 전해진다. “말하지 않아도 알아요~ ” 감동이 있다. 짧게는 반나절, 더 기나긴 시간의 이야기일 수도 있겠다. 울컥 소름이 돋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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