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밀리와 괴물이빨 알맹이 그림책 54
엠마뉴엘 우다 그림, 루도빅 플라망 글, 김시아 옮김 / 바람의아이들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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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붉은 머리 빛 범상치 않은 포스를 자아내는 아이, 에밀리는 첫인상부터 강렬하다.

아이 이름은 에밀리 파스텍, 파스텍은 수박이란다. 출판사 인스타 라방을 보고 알았다. 과연 주조를 이루는 색이 빨강, 초록이다. 어릴 적 에밀리는 수박씨나 과육이 박힌 듯한 옷을 입고 있다. 토마토처럼 겉과 속이 같이 붉은 것과 달리 수박은 초록 검정 겉 안에 빨강 검정을 품고 있다. 마치 우리가 겉으로 봐선 알 수 없는 속을 갖고 살 듯. 한 번에 빤히 읽히는 책이 아니라 처음 읽었을 땐 당혹스럽고 어려웠다. 그런데 번역자 라방을 보며 실마리가 풀렸다. 가장 큰 소득은 에 대한 주목이었다. 표지 에밀리 머리 위 알은 에밀리의 성장 변화를 알려주는 큰 상징 힌트다. “알은 세계다.” 무언가 채우고 비우며 탐색하다 스스로 다양한 것들을 표현해내더니 다섯 살 때 에밀리는 드디어 자기만의 세계를 구축한다. 아무도 에밀리 방에 들어갈 수 없다. 가족도, 친구도 등지고 숨는다. 더 깊이깊이 침잠하던 에밀리는 괴물을 만나며 알에 균열이 생긴다. 에밀리는 적을 물리칠 방법을 궁리한다. 생각하고 또 생각하다 스르르 잠이 든다. 꿈의 조언에 힘입어 적과 정면으로 맞서 싸울 준비가 다 되었을 때 이제 알은 깨어진다. 아프락사스, <데미안>과 정확히 겹친다. 에밀리는 싱클레어, 깊숙이 저 안에 선과 악이 맞부딪힌다.

 

태어나려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깨뜨려야만 한다. 새는 알을 깨고 하늘로 날아간다. 그 새의 이름은 아프락사스다." 헤르만 헤세, <데미안>

 

실제 괴물을 무찌르며 알이 깨어지고 새가 날아간다. 에밀리는 다시 태어난다. 지독한 싸움이 끝나고 마침내 고요해졌다. 타자를 들일 수 있는 공간도 생겼다. 곁을 내어줄 수 있을 만큼 성장한 것이다. 하지만 언젠가 필요할 수 있을 괴물 이빨은 간직하기로 한다.

이빨, 이빨은 무엇인가. 나를 만만히 보지 않게 하는, 적을 찌를 수 있는 무기 같은 것으로 여겨진다. 그 무기는 무엇일까. 자존심, 실력, 지조, 혹은 전쟁같이 치열했던 삶의 기억일지도 모르겠다. 무엇이든.

 

이 책은 한번 쓱 읽고 간단히 덮을 수 있는 책이 아니다. 그림도 구석구석 볼 게 많게 많아 볼 때마다 새로운 것들이 눈에 들어온다. 그리고 하나하나 특이해 단박에 알아채지 못하고 뭘까 유심히 보게 된다. 글도 여러 생각, 느낌, 경험을 불러일으킨다.

그림책을 사기 아깝다고 하는 사람들은 금세 보고 다 알겠는데 굳이 살 필요를 못 느낀다고 한다. 그런 생각을 아예 이해 못 하는 것은 아니나 좋은그림책은 어느 장르에 비할 바 없이 소장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갤러리에 걸어도 손색없는 멋진 그림, 가만히 두고 음미해야 우러나는 시와 같은 글, 내가 처한 시공에 따라 다른 감흥을 안기는 좋은 그림책은 계산해낼 수 없는 가치가 있다. 그런 면을 두루 만족시키는 이 책을 자신 있게 추천한다.

처음엔 뭐지? 분명 갸우뚱할 수 있다. 단박에 반할 만한 책은 아니다. 수수께끼 같은 매력이 있는 책이다. <데미안>을 사랑한다면 이 책도 좋아할 것이다. 십여 년 주기로 <데미안>을 읽을 때마다 다르게 읽히듯 이 수박색 그림책도 그러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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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와 바람이 하는 일이오니, 오래 기다려주소서.
- 이제 몸이 급하다. 별에 가서라도 듣고 싶구나.
......소리는 살아 있는 동안의 일이옵니다. 
쇠 또한 그러할 것입니다.
우륵은 그 말을 몸속으로 밀어넣었다. 
침을 삼키고 나서, 우륵은 말했다.
- 별의 적막이 금의 소리보다 아름다울 것이옵니다.
- 너의 말이 힘들다.
- 황공하옵니다.
-들어라. 
금이 갖추어지면, 여러 고을의 소리를 따로따로 만들어라. 
고을마다 말이 다르고 산천과 비바람이 다르다고 들었다.
그러니 어찌 세상의 소리를 하나로 가지런히 할 수 있겠느냐. 고을마다 고을의 소리로 살아가게 하여라.
.......고을은 이미 무너졌고, 쇠붙이가 무너진 고을들을 가지런히 하고 있사옵니다. .......
다시, 우륵은 말을 몸속으로 밀어넣었다.
- 소리는 본래 고을마다 제가끔인 것이어서, 
그것이 여러 고을의 복일 것입니다.
- P60

-사람이 그 덧없는 떨림에 마음을 의탁하기 때문이다. 사람의 떨림과 소리의 떨림이 서로 스며서 함께 떨리기 때문이다. 소리는 곱거나 추하지 않다.
- 소리가 곱지도 추하지도 않다면 금이란 대체 무엇입니까?
-그 덧없는 떨림을 엮어내는 틀이다. 
그래서 금은 사람의 몸과 같고 소리는 마음과 같은데, 소리를 빚어낼 때 몸과 마음은 같다. 몸이 아니면 소리를 끌어낼 수 없고 마음이 아니면 소리와 함께 떨릴 수가 없는데, 몸과 마음은 함께 떨리는 것이다.
- 그 떨림의 끝은 어디이옵니까?
-그 대답은 인간세(人間世) 안에 있지 않을 것이다. 
떨림의 끝은 알 수 없되, 떨림은 시간과 목숨이 어우러지는 흔들림이다. 그래서 목숨은 늘 새롭고 새로워서 부대끼는 것이며 시간도 그러하다. 소리는 물러설 자리가 없고 머뭇거릴 자리가 없다. - P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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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주일의 학교 사계절 중학년문고 37
김혜진 지음, 윤지 그림 / 사계절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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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들어가는 책, 별로 좋아하지는 않는다. 제목도, 살짝 유치한 표지도 처음에는 괜히 삐딱선을 타 심드렁했다. (다 보고난 후엔 생각이 바뀌었다. 제목도 더 신박한 제목이 떠오르지 않는 이상 수긍이 가고, 그림도 다양성을 자연스럽게 녹여내 좋았다.) 일주일의 학교.. 월화수목금 날마다 다른 학교라니, 왜 이런 상상을 못 해 봤지? 어릴 때 해봤을까? 아무튼 몇 장 읽으니 이내 흥미가 돋아 쑥 빨려든다.

읽다가 학교에 적응하지 못하는 아이들이 떠오른다. 교실 들어가기 싫다고 우는 아이는 부모도 두 손 두 발 들며 내팽개치듯 떠밀고 가 더 울고, 제 교실 들어가기 싫다고 고집부리는 아이는 여기저기 기웃대며 매일 복도를 돌아다닌다. 이런 아이들에게 날마다 다른 학교를 다니게는 못하더라도 유연한 사유로 날마다 다른 교실을 허락하면 어떨까. 학교 자체가 싫은 아이들이라 뾰족한 수가 못될까. 흠, 계속 읽어보자.

모두가 최면에 걸린 듯 다 열광하는 학교들은 없다. 현실의 학교보다 훨씬 흥미진진한 학교들이지만 아이들은 마냥 신나 하지 않는다. 불안하고 걱정하며 투덜대기도 한다. 아이들은 모두 다 다르다. 당연한 것 아닌가. 사람이 다 다르고 아이도 사람이니까. 그런데 약자인 아이들은 자주 뭉뚱거려지는 수가 많다. 아이들은 다 활동적인 것을 좋아할 거라고? 운동화와 편한 복장이 필수인 화요일의 학교를 누구는 제일 재미있다 하지만 누구는 전학 가고 싶을 정도로 질색한다. 이런 아이 저런 아이, 다양한 성향이 자연스럽게 반영되어 좋다.

멋진 책이다. 읽는 내내 '나는 이 학교가 마음에 들어', '복이처럼 이 학교는 나도 좀 힘들 것같아', '세상에! 정말 이런 학교가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맘 속 수다가 쏟아진다. 일주일학교의 제각각 매력포인트에 아이들도 흥분해 즐거운 감상을 저절로 말하게 될 것이다. 작가의 말 중 꼬마 아이는 장난 미로 학교를 상상했다. 학교란 곳이 그닥 신나는 곳은 아닌데 내 맘대로 지어 꾸리는 학교는 얼마쯤은 다녀도 좋은 곳일 것이다.

‘아이들에게 학교가 필요한 것이 아니라 학교에게 아이들이 필요한 것’이란 말이 계속 곱씹어진다. 코로나시대 학교의 위상은 흔들리고 있다. 왜 학교는 과거에 머물러 있을까. 내일의 학교는 확 바뀌어야 하지 않을까. 배워야 하는 것만 많은 학교 말고, 배우게 되는 게 더 많은 학교로! 한발 더 나아가 학교 자체가 없어도 된다는, 도발적인 전제를 둔 사고도 필요할 때다.

얼마 전 <가족입니다>도 재미있게 읽었는데, 이번 책도 기대 이상이다. 이제 '김혜진' 작가님 이름 잘 기억해둬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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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주일의 학교 사계절 중학년문고 37
김혜진 지음, 윤지 그림 / 사계절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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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학교도 있고 싫은 학교도 있어. 
좋은 학교도 싫을 때가 있고, 싫은 학교도 좋을 때가 있지. 
비가올 때, 싫어하는 과목을 해야 할 때, 문제를 풀어야할 때, 혼자 있고 싶을 때와 실수를 책임져야 할 때,
일주일의 학교를 생각해 봐. 조금은 기분이 나아질거야.
- P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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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 겉면을 자꾸 만지고 싶다. 안은 듣고 싶은 목소리로 가득하다. 권하고 싶은 빨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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