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적인 체험 을유세계문학전집 22
오에 겐자부로 지음, 서은혜 옮김 / 을유문화사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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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에! 겐자부로, 

누군가가 던진 그 말 장난이 마음에 들었다.

상을 준다는 천황에게 맞서 자신의 뜻을 밝힌 작가의 괄괄함도 좋았다.

일본 작가 오에 겐자부로의 책 <개인적인 체험>은 

근거 없는 믿음, 유쾌한 농담(?)처럼 

가뿐히 내 손 위에 놓이게 되었다.


버드, 첫 머리에 나오는 주인공을 만나고 있으려니 

어디선가 후두둑 담장이 무너지는 소리가 들린다.

존 업다이크의 <달려라, 토끼>가 왔다가 사라진 모양.

그때부터였나 

책 넘기는 속도가 더뎠다.


버드,라는 호칭 때문에 

책 속에 비일비재하게 등장하는 -소리나는 대로 쓰여진- 외국어 때문에

그리고 제대로 알아보지 못했던 문학작품들 때문에

나는 그가 어떤 나라의 어떤 사람인지 헷갈렸다.

그 틈을 비집고 들어와

우당탕탕 래빗이 넘나들고, 

'모래 사나이'가 잠깐 보였다가 허공 중에 쏟아져 내리고,

어디선가 애드가 앨런 포가 내 옆모습을 보다가 사라졌다.

나는 이 소설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겠구나- 그런 생각만 가득했다.



주인공 버드와 그의 꿈-아프리카와 술과,

아내와 아내와 너무 닮은 장모와 여자친구 히미코와 

버드가 버렸던 -기쿠히코, 

그리고 뇌 헤르니아의 장애를 안고 새로 태어난-또 다른- 기쿠히코.

무리를 지어 버드를 괴롭혔던 젊은이들과의 조우.


뭔가 끔찍한 느낌은 들었지만 불편하진 않았다.

좀 웃기는 구석이 있군-하는 생각으로 

멀리서 펼쳐지는 이야기를 바라보았는지도 모르겠다.

(그 '멀다'고 느끼고픈 마음이, 이 무거운 이야기를 피하가려는 내 발버둥이었을까.)


자신에게 중요한 의미로 다가왔던 '슬라브어 연구회'가 

어느 한 순간 아무런 관심도 끌지 못하는 가치로 변해버린다는 건,

아이를 쇠약사하게 하기 위해 차를 달리면서도 

혹여 감기에 걸리지 않을까 걱정하는 남자를 본다는 건,

묘하게 재미있었다.


분명 심각한 이야기 임을 알면서도,

그리고 이 이야기 속을 두서없이 헤매고 있는 나를 알면서도

아이러니한 게 

세상의 모습이랑 똑같아서 마음에 들었다(?).



버드는 봉투를 뜯어 안에 든 편지를 읽으려다가 확률을 둘러 싼 학생 시절의 이상한 미신, 무언가 내용을 알 수 없는 두 가지 일을 동시에 만났을 때 한족이 불행한 의미를 안고 있으면 다른 한쪽은 행복한 의미를 품고 있을 것이라는 미신이 떠올라 봉투를 그대로 주머니에 넣고 이사장실을 향해 갔다. 이사장과의 이야기가 최악이라고 한다면 버드는 주머니 속 편지에 최상의 기대를 둘 만한 정당한 이유를 얻게 되는 것이다.


"자넨 뭘 극리 초조하게 자기 아들의 죽음을 기다리고 있는 건가? 여긴 입원비도 그리 비싸지 않은데. 자넨 건강 보험증도 있잖은가? 어쨌든 자네 아이는 쇠약해지긴 했지만 떡 하니 살아 있다구. 아버지답게 느긋하게 기다리게나, 엉?"


"버드가 그날 밤 기쿠히코를 버리지 않았더라면 기쿠히코는 호모 섹슈얼도 되지 않았을까?"하고 히미코가 주제넘게 물었다.


버드는 아기의 눈동자에 자신의 얼굴을 비춰보려 했던 것이다. 아기 눈의 거울은 말갛게 개인 깊은 회색으로 버드를 비추어 냈지만 그것은 너무나도 미세하여 버드는 자신의 새 얼굴을 확인할 수는 없었다. 집으로 돌아가면 먼저 거울을 보아야지, 하고 버드는 생각했다.



이 소설의 가장 마지막에 힘주어 말한 '인내'라는 단어가
이유없는 '희망'보다 훨씬, 이 '개인적인 체험'과 맞아 떨어진다.

대부분의 독자들 역시 이 소설의 마지막의 문장을 깊게 음미하는 것 같다.  (다음 독자가 직접 읽어볼 기회로 남겨두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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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모른다
정이현 지음 / 문학동네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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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어떤 책을 찾고 있었다, 틱장애를 앓는 소녀가 나온다 했던가.

아는 것 하나 없는 상태에서 도서관을 헤매다

<너는 모른다>의 표지를 봤다.


붉은 치마와 붉은 구두, 단정하게 신은 타이즈가 드러난

-소녀의 치맛단 끝자락부터 발끝까지의 그림이 눈에 들어왔다.

이 소녀가 내가 알고 싶어하는 어떤 소녀가 아니라 해도

'너는 모른다'고 단정짓는 아이라면 

'모른 체' 하고 싶지 않았다.

그렇게 이 책을 만났다. 




#2.


책을 몹시 읽고 싶었고 궁금했다.

대책 없이 찾아온 이 책을 어떻게 생각해야 하지-하고 리뷰들을 들춰봤다.

안타깝게도 대다수의 리뷰들이 가족들의 특징을 나열해놓는 통에 

'나중에 알아도 될' 이야기들마저 기억하고 책을 접해야 했다. 

(이게 긴장감을 떨어뜨려놓긴 했다.)


너무 친절한 스포일러를 당한 덕에 줄거리는 길게 말하고 싶지 않다.

어느 날 강에 신원불명의 시체가 한 구 떠올랐다,고 첫 포문이 열리더니 

갑자기 '김혜성'이란 사람이 등장한다, 새엄마, 그의 아버지 김상호, 유지, 은성... 사람의 이름이 나열된다.

1장에서 불쑥 등장하기 시작하는 사람들은 한 가족이자 이 소설의 주인공들이다.




#3.


아쉬운 건, 인물들이 '너무' 많이 나와서 이야기 속으로 뛰어드는 바람에 산만해진다는 것이다.


특히나 하나도 매력적이지 않은, 

오직 '사건의 전개'만을 위해 등장하는 '영광'의 분량(?)이 쓸데없이 많아서 좀 싫었다. 게다가 정이 별로 가지 않는 '은성'의 -본연의 모습과 흡사할 것 같은- 산만한 삶이 영광이랑 같이 등장하는 부분들은 좀 별로였다. 

물론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감상이다. 

다르게 생각해보면 어땠을까 하는 캐릭터이거나 별로 공감이 가지 않은 캐릭터에 대한 괜한 투정. ^^;;;ㅋㅋ



#4.


나머지 인물들에 대해서는 -이상하리만큼- 연민이 일었다.

다른 독자들과는 다르게 나는 '김성호'가... 슬펐다.

짐승이고 싶어하는 소년이었다가 외로운 등짝을 내보이며 바짝 엎드리는 가장의 모습.

혜성도 옥영도 유지도... 

상처 입은 자잘한 부분들이 엿보여서 

너덜너덜한 마음은 '그들 스스로' 선택한 것이 아니란 걸 알기에 더더욱 슬픈 사람들로 보였다.




#5.


책 속에서.


누가 물어보는 말에만 짧게 답할 뿐 어른들의 대화에 끼어드는 법도, 먼저 입을 열어 종알대는 법도 없었다. 그런 태도가 은성을 편안하게도 불편하게도 했다. 아이는 비단 은성에게만이 아니라 누구한테나 골고루 무심했다. 혜성에게도, 아빠에게도, 심지어 제 엄마에게조차 우유를 넣은 딸기젤리처럼 말랑말랑하고 달콤한 미소를 지어 보인 적이 없을 것 같았다. 유지 앞에서 아빠와 새엄마는 각각 다른 방식으로 짝사랑에 빠진 얼간이처럼 굴었고, 그것은 은성에게 비밀스런 통쾌함을 안겨주었다.

동시에 그것은 그녀에게 돌이킬 수 없는 쓸쓸함을 맛보게도 했는데, 유지의 무관심한태도가 생래적인 것이라기보다는 환경에 기인한 것으로 느껴졌기 때문이다. 원하는 바를 얻기 위해 노력해야 하는 인생을 유지는 아예 몰랐다. 알 필요가 없게 태어났다. 날 때부터 그 아이는 부러 눈꺼풀을 깜빡여 어른의 주의를 끌 필요가 없었고, 작은 몸의 중심을 더욱 낮추며 부모의 애정을 간구할 필요가 없었다.  (p.35~36)


MRT 신뎬션 을 타고 공관역에 내리면 대만대학 정문이 나타난다. 길 건너에는 학생들을 겨냥한 상가 골목이 조성되어 있다. 완탕이나 계란부침, 돼지고기튀김 같은 음식을 파는 난전과, 편의점, 저가 캐주얼의류 체인점, 운동화 매장 들이 허술한 벽을 사이에 두고 다닥다닥 붙어 있다. 언제와도 이십 년 전에 비해 크게 달라졌다는 느낌이 들지 않는 곳이다. 아름답게 각인된 청춘의 한 시절을 그리워하며 이곳을 찾아든 중년 사내들은 추억의 실체가 이토록 소란스러운 남루였음을 깨닫고 피곤한 걸음을 조용히 돌리곤 했다. (p.46~47)


아이의 발표회 때 오빠는 오지 않았다. 아빠도 오지 않았다. 급한 출장이라고 했다. 늘 일어나는 일이었으므로 섭섭한 맘은 들지 않았다. 협주를 무사히 마친 뒤에도 피아노 치는 소녀와는 계속 단짝으로 지냈다. 아이는 여전히 말수가 적었지만 그렇게 아껴뒀던 말들을 친구에게만은 아끼지 않았다.

“나 말이야, 어젯밤에 하늘을 날다가 갑자기 아래로 뚝 떨어지는 꿈을 꿨어.”

“와…… 신기하다. 어젯밤에 나도 그 꿈 꿨는데.”

“와…… 정말 신기하다. 그런데 왜 우리 꿈에서 못 만났지?”

아이가 말하자 여자애가 배를 잡고 웃었다.

“바보야, 당연하지. 내 꿈은 내 꿈이고, 네 꿈은 네 꿈이잖아.”

공연히 멋쩍어서 아이는 시선을 떨어뜨렸다. 하얀 운동화 코에 언제 묻었는지 모를 잿빛 얼룩이 어른거렸다. 소녀가 아이를 슬슬 피하기 시작한 건 그로부터 오래 지나지 않아서였다.

“미안해. 나도 이러고 싶지 않은데 어쩔 수가 없어.”

여자애가 한숨을 폭 쉬며 속삭였다.

“난 지금도 네가 좋은데.”

여자애는 비밀을 발설하기로 결심한 것 같았다. 번민 끝에 내린 결정은 친구에게 베푸는 마지막 우정의 선물인지도 몰랐다.

“근데 우리 엄마가 너랑 친하게 지내지 말래.”

둘은 긴 복도의 끝에 서 있었다. 아이는 친구의 눈동자에 밴 가책 어린 슬픔과 은밀한 호기심의 기미를 알아차렸다. 등뒤 환하게 밝은 유리창 너머로 흰 구름들이 펄럭이며 지나갔다. 친구의 입에서 나올 말을 더 듣고 싶지 않다고 생각했다.

“너네 엄마, 세컨드라고.”   (p.161~162)





....특히 기억에 남은 부분...중에서도 일부다.

 뭐랄까, '우유를 넣은 딸기젤리처럼 말랑말랑하고 달콤한 미소'를

아무렇지 않게 꺼내 쓰는 작가가 어떤 사람인지 무척 궁금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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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두치킨 - 까칠한 아티스트의 황당 자살기
마르잔 사트라피 지음, 박언주 옮김 / 휴머니스트 / 201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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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대뜸,의 끝판왕


첫 페이지를 펼치자 마자

'1958년 테헤란'의 한 거리가 나온다.

모자를 쓴 마른 사내, 지나가는 한 여인과 아이를 보더니 움찔한다.

"부인! 실례합니다! 부인." 

지나가는 여인을 세워 묻는다, "혹시 성함이 이란느 아니신지?"

"네, 그런데요. 어떻게 아시죠?"

"나 모르시겠소?"

"전혀요."

그러자 다른 사람으로 착각했노라며 사과하는 남자.


처음 등장하는 이 남자가 주인공이다.

첫 페이지를 보면서 생각하기를, 실없는 남자라는 걸 보여주는 일화인가 갸우뚱했다.

(그러나 이 장면이 어떤 의미를 갖는지는 나~아중에, '잘' 알게 된다.)

대낮부터 아무 사람에게 말을 거는 괴상한 남자인 줄만 알았는데

악기상에 들어가자 주인은 그를 '나세르 알리 칸'이라 부른다.

칸Khan은 전하 또는 나리에 해당하는 호칭이란 친절한 안내를 읽고 나서 또 멈칫한다.

굉장한 사람이었어?


까칠한 아티스트, 나세르는 타르 악기를 다루는 뮤지션이다.

실력도 대단하고 그 실력 못지 않게 소리와 악기에 관한한 깐깐한 고집이 가득한 남자다.

악기를 사러 먼 길을 떠난다, 막내 모자파르는 어쩔 거냐는 마누라의 잔소리까지 견뎌내며.


그가 얼마나 자신의 일에 

경건한 태도를 취하느냐면,

새로 산 악기를 연주하기 위해 

이발을 하고 수염을 깎고 정장을 차려 입은 후,

모든 가족이 없는 조용한 집 안에서 담배 한 개비를 핀 다음

한 시간 가까이 새 타르를 바라보다가... 연주를 시작한다.

와, 이 사람 대단한데? 멋있다.

이런 생각을 하기도 잠시, 

소리가 마음에 들지 않자 그는 침대에 누웠다, 죽기를 결심하고.


뭐 이런 뜬금없는 남자가 다 있어, 하고 한 페이지를 넘기자

그로부터 7일 후....그가 죽었단다.



가엾은 한 남자


결말은 이미 정해져 있었지만,

처음 보는 이 남자가 죽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그 7일 간의 여정을 지켜보게 되었다.

그가 오해한 것들을 미세하게 발견하면서 먹먹해하며,

그를 위해 기도하는 사람이 누구인지도 모르는 현실에 짠해하며.


하루, 이틀, 사흘, 나흘...

점점 지날 수록 '죽지 말아요'하는 헛된 바람을 접고 

'죽을 수 밖에 없었구나, 나세르 알리'하는 공감을 할 수 밖에 없었다.

짠하고 가엾은 남자... 그래도 죽지 않을 자잘한 행복들도 있었을 텐데.




구성의 묘미


숨겨져 있는 이야기가 하나씩 등장한다.

과거와 미래, 현재를 오고가며 보여준다는 점에서 독특하고,

어느 샌가 등장한 화자가 알세르의 이야기를 하다말고 

불쑥 등장하기도 한다는 점에서 어수선해 보이기도 하다.

그래도, 그 '전체'가 이 책 구성의 포인트라고 느껴지는 걸. ^^






좋은 책 한 권이 여러 감동을 만든다?!

책을 읽고 나서는 좀 슬펐다.

심오한 이야기들도 다시 생각났고,

그래서 책을 다시 뒤적여 보기도 했고 

작가의 다른 책들(이미 읽은 '페르세폴리스'를 포함)을 되짚어 보기도 했다.

그러다가 발견했다, 이 그래픽 노블을 원작으로 한 영화가 있다는 걸.

동명의 타이틀-<Poulet aux Prunes(자두치킨)>,

우리나라에서의 제목은 <어느 예술가의 마지막 일주일>.

예고편 몇 편을 봤는데 아름다웠고 예쁜 영상이었다,

게다가 흐르는 음악들까지도 훌륭했다.


마르잔 사트라피만의 힘은 

작은 컨텐츠 안에서 수많은 감동을 뽑아낼 수 있게 만드는,

그런 작품을 그리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봤다.




p.s.

아직 영화 <자두치킨>은 보기 전이고,

마르잔의 또 다른 그래픽노블 <바느질 수다>는 그 사이 읽었다.

정말, 이 작가는.... 음.... 처음 알았던 것 보다 훨씬 멋진 여자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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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학 유전자
케이스 데블린 지음, 전대호 옮김 / 까치 / 200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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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번역의 껄끄러움은 좀 있더라도,

유쾌한 사고방식을 가진 저자에게서 좋은 느낌을 받을 수 있었다.

재독 삼독... 하고 싶은 -신나는?- 책.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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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그토록 많은 사람들이 자신은 수학을 못한다고 말하는가?


그렇다면 왜 그토록 많은 사람들이 자신은 수학을 할 능력이 없다고 말할까? 유일한 한 가지 대답은 없다. 다른 모든 분야와 마찬가지로 수학과 관련해서도 사람은 매우 다양하다. 내가 이 책에서 줄곧 강조해온 것은 모든 사람들이 기초적인 수학적 능력-“수학 유전자”-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들 자신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멀리 나아갈 수 있다. 수학은 마라톤과 다르지 않다. 1970년대 이전에는 오직 고도의 훈련을 받은 소수의 선수들만이 마라톤을 할 수 있었다. 42.195킬로미터를 쉬지 않고 달리렴 특별한 재능이 필요하다고 사람들은 생각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2킬로미터를 달리는 것도 어려워했으며, 운동으로 다져진 건강한 사람들도 대략 1970년대 이전에는 한 번에 8킬로미터 이상을 거의 달리지 않았다. 그 후 미국을 시작으로 해서 여러 나라에 달리기 붐이 일어TEk. 얼마 지나지 않아서 수천 명의 일반인들이 전 세계에서 마라톤에 참여하게 되었다. 그들은 세계 수준의 선수들보다 훨씬 더 오랜 시간을 달려 마라톤을 완주했다. 그러나 어쨌든 완주했다.

마라톤을 하기 위해서 특별한 재능이 필요한 것은 전혀 아니었다. 마라톤을 하기 위해서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필요한 것은 다만 마라톤을 하겠다는 충분한 의욕뿐이다. 재능이 문제가 되는 것은 오직 다른 사람보다 더 잘하기를 원할 때뿐이다.

수학에서도 사정은 비슷하다. 수학을 할 수 있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수학을 하기 원하는 것이다. 위대한 수학자가 되거나 고급수학의 첨단에 뛰어드는 것에 관한 이야기를 하는 것은 아니다. 내가 이야기하는 것은 단지 대부분의 고등학교 교과과정에 나오는 수학을 (뇌의 계산능력을 보충하기 위해서 계산기를 사용하면서) 다룰 능력을 가지는 것에 관해서이다.

두 자기 증거나 나의 주장이 옳음을 지지한다. 첫째, 사람들이 어떤 수학을 터득할 필요가 있다고 정말로 생각하면, 그들은 예외 없이 그렇게 한다.

다음과 같은 구체적인 예를 보라. ...중략...

그 아이는 시장에 있는 어린 아인슈타인이었을까? 아니다, 그 아이는 완전히 평범한 아이였다. 아이들은 학교에서 치르는 수학시험에서는 형편없는 결과를 보였지만, 시장에서 필요한 계산에서는 모두들 거침없이 뛰어났다. 검사원들의 표현을 빌리면, 아이들은 학교 수학에는 형편없었지만, 거리 수학에는 뛰어났다. 학교 수학과 거리 수학의 차이는 무엇일까? 2+2=4라는 수학 자체는 교실에서나 거리에서나 마찬가지이다. 차이가 있다면 그것은 시장에서 일할 때 아이들은 계산을 하려는 강한 의지를 가지며, 숫자가 아이들에게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는 점이다.

수학을 할 수 있으려면 특별한 뇌가 필요하다는 통념을 반작하는 이야기는 이만 줄이자. (p.306~309)


수학을 하기 위한 열쇠는 수학을 하겠다는 의욕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두 번째 증거로 나는 수학적 사고의 본성을 이야기할 수 있다. 구구단을 외우고 올바른 산수 계산값을 얻는 것과 관련된 문제를 제외한다면-이런 문제들과 관련해서는 수학자들이 일반인보다 더 나을 것이 없다- 수학은 일상생활에서 쓰이는 것과 거의 같은 오프-라인 사고로 이루어진다. 차이는 다만, 수학에서는 오프-라인 사고가 그 자체로 순수한 추상인 대상에 초점을 두는 반면에, 일상생활에서는 사고가 일반적으로 실제 대상이나 실제 대상의 허구적 변형에 초점을 둔다는 것이다 -수학은 4단계 추상이고 일상 생활에서의 사고는 2단계 혹은 3단계 추상이다.

그러므로 수학은 정신에게 세계 전체를 창조하고 기억 속에 유지시키는 일을 부가적인 과제로 부여한다. 누구나 이 일을 할 수 있다- 이 일에 필요한 정신적 능력은 우리의 언어를 가능케 하는 오프-라인의 상징적 사고능력과 완벽하게 일치한다. 그러나 이 능력을 어느 정도 발휘할 수 있는지는 사람에 따라서 다른 것 같다- 우리들 각각이 찬조하고 정신 속에 유지할 수 있는 추상적 세계의 크기와 복잡성에는 차이가 있다.

...중략...

이와는 달리 수학이라고 부르는 멜로 드라마를 이해하려면 적잖은 의식적인 노력으로 정신을 훈련시켜야 한다. 수학적 멜로 드라마에 등장하는 인물들(즉 수학자들이 연구하는 다양한 대상들)은 우리가 일상 생활에서 보는 사물들과 유사하지 않다. 수학적인 대상들간의 관계는 대개의 경우 일상 세계 속의 익숙한 관계와 사실상 매우 유사하다고 할지라도, 이상하고 낯설게 보인다. 수학자가 수학을 할 수 있는 것은 그가 충분히 많은 시간을 수학이라는 추상적 세계 속에서 보내는 동안 그 세계가 그에게 실재의 자위를 얻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텔레비전 멜로 드라마의 추상 세계가 실제 세계로부터 지속적으로 활력을 공급받는 것과는 달리, 수학적인 멜로 드라마를 위한 활력은 수학자 자신이 공급해야만 한다.  (p.309~310)



수학에 대한 관심이 어떻게 생겨나든 간에, 수학을 할 수 있는 사람과 수학을 할 수 없다고 주장하는 사람 사이의 차이점은 바로 그 관심이다.  (p.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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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머리를 기만하지 마라 - 방 원장의 56일 발모 클리닉
방기호 지음 / 은행나무 / 201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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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군도 나도 두피에 염증이 발견된다는 말을 자주 들었다.

미용실에서 해주는 그런 말도 마음에 걸렸다.

염증이 심해지면 어쩌면 탈모가 올지도 모른다고 했으니까.

(게다가 출산을 하고 나면 여자들은 머리숱이 한껏 준다고 하지 않던가.)


머릿결이 상하고 나서부턴 머리 감은 후에

툭툭 끊기거나 손가락에 걸려 나오는 머리카락이 한 줌이다.

나는 겁을 먹고 말았다.

이러다가 머리가 휑해지는 건 아닌지.


그러다가 이 책을 만났다. 

책 안쪽 표지에 있는 방기호 원장님의 사진을 보며 배신감을 느꼈다.

-'이런 사람(머리가 많은)이 탈모 치료하는 거야? 자기는 탈모인들의 아픔도 잘 모를거면서?'

책을 순서대로 보지 않고 끌리는 부분부터 읽었다.

사람들이 흔히 갖는 통념들에 대해 반박을 내고 있었다. 

-신기했다.

탈모엔 별 거 없단다, 채식하고 소식하란다. 

-이건 어디서든 의사들이 주장하는 거 아냐? 반신반의.




그.러.다.가.

다시 책을 처음부터 읽으면서 생각이 확 바뀌었다.


이 풍성한 머리의 방 원장이 실제는 20대에 가발을 쓰던, 대머리 총각이었단다.

환자를 치료한 사례와 사진들을 보여줬다. 거의 없던 머리가 제법 솟아 있었다.

책을 읽으면서 마음이 꽂히는 부분이 굉장히 많았다.

메모처럼 남겨놓은 몇 마디는...

티트리 오일 샴푸, 조조, 수수, 

어성초, 자소엽, 녹차엽,

특별한 샴푸는 매일 하면 X(일주일에 2회 넘지 않기),

녹황색 채소, 과일, 효소.

뭔가를 더 먹으려 하지 말고 덜 먹을 노력을 하라는 말도 꽤 신선한 처방이었다.


대머리는 유전일수도, 후천적인 이유로 발생할 수도 있다. 

게다가 유전이어도 잠재형일 수도 발현형일 수도 있다.

어느 날 갑자기 머리가 휑~한 걸 느끼고 난감해하지 말고 미리 알아보면 어떨까?

우리가 무턱대고 믿고 있는 '탈모/대머리'에 대한 생각들을 

한번쯤은 환기시키고 싶을 때 읽어도 좋을 책인 듯 하다.

(대머리 치료가 절실한 사람들에겐 이 방 원장의 존재나 책의 존재 자체가 기쁨일지도! ^^)




책 속에서:


1) 나를 가장 놀라게 했던, 

그래서 감히 우리집 밥에서 검은 콩을 줄이게 했던 

책 속의 한 구절을 소개하고 싶다.


블랙푸드를 많이 먹는다고 해서 흰머리가 검은 머리가 되지 않는다. 블랙푸드에는 안토시아닌(anthocyanin)이 다량 들어 있지만 정작 멜라닌을 만드는 티로신(tyrosine)은 들어 있지 않다. 흰머리가 되는 이유는 첫째, 멜라닌 형성 세포가 노화되었거나 둘째, 티로신을 멜라닌으로 변환시키는 티로시나제라는 효소가 부족하거나, 셋째, 티로신이라는 아미노산 자체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검은콩이 발모에도 좋다고 널리 알려져 있다. 그에 대한 의학적 근거는 콩 안에 들어 있는 이소플라본이 여성호르몬과 유사한 효능을 지녀, 남성 호르몬인 테스토스테론을 억제하고, 그래서 남성형 탈모증에 효과가 있다는 것이다. 콩이 탈모개선에 긍정적인 효과가 있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콩은 탈모치료에 있어서 필요조건은 될 수 있지만 충분조건은 될 수 없다. 콩을 한 가마니 먹어도 머리가 검어지지 않는 것은 물론이고 발모로 이어지기에도 턱없이 부족하다.


2) 다이어트로 식단을 과감히 변화시키고 있는 그대, 놓치고 있는 건 없는지 확인해보시길.


여기서 크게 잘못 생각하고 있는 것 중에 하나는 모발이 케라틴이나 시스틴으로 이루어졌다고 생각하여 단백질만 섭취하면 탄수화물을 섭취하지 않아도 모발 성장에는 아무 이상이 없을 것으로 생각한다는 점이다. 사실 그 결과는 정반대이다. 왜냐하면 모근에 공급되는 영양 성분의 대부분이 탄수화물이 분해된 당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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