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학 유전자
케이스 데블린 지음, 전대호 옮김 / 까치 / 2002년 2월
평점 :
품절





번역의 껄끄러움은 좀 있더라도,

유쾌한 사고방식을 가진 저자에게서 좋은 느낌을 받을 수 있었다.

재독 삼독... 하고 싶은 -신나는?- 책.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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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그토록 많은 사람들이 자신은 수학을 못한다고 말하는가?


그렇다면 왜 그토록 많은 사람들이 자신은 수학을 할 능력이 없다고 말할까? 유일한 한 가지 대답은 없다. 다른 모든 분야와 마찬가지로 수학과 관련해서도 사람은 매우 다양하다. 내가 이 책에서 줄곧 강조해온 것은 모든 사람들이 기초적인 수학적 능력-“수학 유전자”-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들 자신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멀리 나아갈 수 있다. 수학은 마라톤과 다르지 않다. 1970년대 이전에는 오직 고도의 훈련을 받은 소수의 선수들만이 마라톤을 할 수 있었다. 42.195킬로미터를 쉬지 않고 달리렴 특별한 재능이 필요하다고 사람들은 생각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2킬로미터를 달리는 것도 어려워했으며, 운동으로 다져진 건강한 사람들도 대략 1970년대 이전에는 한 번에 8킬로미터 이상을 거의 달리지 않았다. 그 후 미국을 시작으로 해서 여러 나라에 달리기 붐이 일어TEk. 얼마 지나지 않아서 수천 명의 일반인들이 전 세계에서 마라톤에 참여하게 되었다. 그들은 세계 수준의 선수들보다 훨씬 더 오랜 시간을 달려 마라톤을 완주했다. 그러나 어쨌든 완주했다.

마라톤을 하기 위해서 특별한 재능이 필요한 것은 전혀 아니었다. 마라톤을 하기 위해서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필요한 것은 다만 마라톤을 하겠다는 충분한 의욕뿐이다. 재능이 문제가 되는 것은 오직 다른 사람보다 더 잘하기를 원할 때뿐이다.

수학에서도 사정은 비슷하다. 수학을 할 수 있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수학을 하기 원하는 것이다. 위대한 수학자가 되거나 고급수학의 첨단에 뛰어드는 것에 관한 이야기를 하는 것은 아니다. 내가 이야기하는 것은 단지 대부분의 고등학교 교과과정에 나오는 수학을 (뇌의 계산능력을 보충하기 위해서 계산기를 사용하면서) 다룰 능력을 가지는 것에 관해서이다.

두 자기 증거나 나의 주장이 옳음을 지지한다. 첫째, 사람들이 어떤 수학을 터득할 필요가 있다고 정말로 생각하면, 그들은 예외 없이 그렇게 한다.

다음과 같은 구체적인 예를 보라. ...중략...

그 아이는 시장에 있는 어린 아인슈타인이었을까? 아니다, 그 아이는 완전히 평범한 아이였다. 아이들은 학교에서 치르는 수학시험에서는 형편없는 결과를 보였지만, 시장에서 필요한 계산에서는 모두들 거침없이 뛰어났다. 검사원들의 표현을 빌리면, 아이들은 학교 수학에는 형편없었지만, 거리 수학에는 뛰어났다. 학교 수학과 거리 수학의 차이는 무엇일까? 2+2=4라는 수학 자체는 교실에서나 거리에서나 마찬가지이다. 차이가 있다면 그것은 시장에서 일할 때 아이들은 계산을 하려는 강한 의지를 가지며, 숫자가 아이들에게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는 점이다.

수학을 할 수 있으려면 특별한 뇌가 필요하다는 통념을 반작하는 이야기는 이만 줄이자. (p.306~309)


수학을 하기 위한 열쇠는 수학을 하겠다는 의욕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두 번째 증거로 나는 수학적 사고의 본성을 이야기할 수 있다. 구구단을 외우고 올바른 산수 계산값을 얻는 것과 관련된 문제를 제외한다면-이런 문제들과 관련해서는 수학자들이 일반인보다 더 나을 것이 없다- 수학은 일상생활에서 쓰이는 것과 거의 같은 오프-라인 사고로 이루어진다. 차이는 다만, 수학에서는 오프-라인 사고가 그 자체로 순수한 추상인 대상에 초점을 두는 반면에, 일상생활에서는 사고가 일반적으로 실제 대상이나 실제 대상의 허구적 변형에 초점을 둔다는 것이다 -수학은 4단계 추상이고 일상 생활에서의 사고는 2단계 혹은 3단계 추상이다.

그러므로 수학은 정신에게 세계 전체를 창조하고 기억 속에 유지시키는 일을 부가적인 과제로 부여한다. 누구나 이 일을 할 수 있다- 이 일에 필요한 정신적 능력은 우리의 언어를 가능케 하는 오프-라인의 상징적 사고능력과 완벽하게 일치한다. 그러나 이 능력을 어느 정도 발휘할 수 있는지는 사람에 따라서 다른 것 같다- 우리들 각각이 찬조하고 정신 속에 유지할 수 있는 추상적 세계의 크기와 복잡성에는 차이가 있다.

...중략...

이와는 달리 수학이라고 부르는 멜로 드라마를 이해하려면 적잖은 의식적인 노력으로 정신을 훈련시켜야 한다. 수학적 멜로 드라마에 등장하는 인물들(즉 수학자들이 연구하는 다양한 대상들)은 우리가 일상 생활에서 보는 사물들과 유사하지 않다. 수학적인 대상들간의 관계는 대개의 경우 일상 세계 속의 익숙한 관계와 사실상 매우 유사하다고 할지라도, 이상하고 낯설게 보인다. 수학자가 수학을 할 수 있는 것은 그가 충분히 많은 시간을 수학이라는 추상적 세계 속에서 보내는 동안 그 세계가 그에게 실재의 자위를 얻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텔레비전 멜로 드라마의 추상 세계가 실제 세계로부터 지속적으로 활력을 공급받는 것과는 달리, 수학적인 멜로 드라마를 위한 활력은 수학자 자신이 공급해야만 한다.  (p.309~310)



수학에 대한 관심이 어떻게 생겨나든 간에, 수학을 할 수 있는 사람과 수학을 할 수 없다고 주장하는 사람 사이의 차이점은 바로 그 관심이다.  (p.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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