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적인 체험 을유세계문학전집 22
오에 겐자부로 지음, 서은혜 옮김 / 을유문화사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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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에! 겐자부로, 

누군가가 던진 그 말 장난이 마음에 들었다.

상을 준다는 천황에게 맞서 자신의 뜻을 밝힌 작가의 괄괄함도 좋았다.

일본 작가 오에 겐자부로의 책 <개인적인 체험>은 

근거 없는 믿음, 유쾌한 농담(?)처럼 

가뿐히 내 손 위에 놓이게 되었다.


버드, 첫 머리에 나오는 주인공을 만나고 있으려니 

어디선가 후두둑 담장이 무너지는 소리가 들린다.

존 업다이크의 <달려라, 토끼>가 왔다가 사라진 모양.

그때부터였나 

책 넘기는 속도가 더뎠다.


버드,라는 호칭 때문에 

책 속에 비일비재하게 등장하는 -소리나는 대로 쓰여진- 외국어 때문에

그리고 제대로 알아보지 못했던 문학작품들 때문에

나는 그가 어떤 나라의 어떤 사람인지 헷갈렸다.

그 틈을 비집고 들어와

우당탕탕 래빗이 넘나들고, 

'모래 사나이'가 잠깐 보였다가 허공 중에 쏟아져 내리고,

어디선가 애드가 앨런 포가 내 옆모습을 보다가 사라졌다.

나는 이 소설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겠구나- 그런 생각만 가득했다.



주인공 버드와 그의 꿈-아프리카와 술과,

아내와 아내와 너무 닮은 장모와 여자친구 히미코와 

버드가 버렸던 -기쿠히코, 

그리고 뇌 헤르니아의 장애를 안고 새로 태어난-또 다른- 기쿠히코.

무리를 지어 버드를 괴롭혔던 젊은이들과의 조우.


뭔가 끔찍한 느낌은 들었지만 불편하진 않았다.

좀 웃기는 구석이 있군-하는 생각으로 

멀리서 펼쳐지는 이야기를 바라보았는지도 모르겠다.

(그 '멀다'고 느끼고픈 마음이, 이 무거운 이야기를 피하가려는 내 발버둥이었을까.)


자신에게 중요한 의미로 다가왔던 '슬라브어 연구회'가 

어느 한 순간 아무런 관심도 끌지 못하는 가치로 변해버린다는 건,

아이를 쇠약사하게 하기 위해 차를 달리면서도 

혹여 감기에 걸리지 않을까 걱정하는 남자를 본다는 건,

묘하게 재미있었다.


분명 심각한 이야기 임을 알면서도,

그리고 이 이야기 속을 두서없이 헤매고 있는 나를 알면서도

아이러니한 게 

세상의 모습이랑 똑같아서 마음에 들었다(?).



버드는 봉투를 뜯어 안에 든 편지를 읽으려다가 확률을 둘러 싼 학생 시절의 이상한 미신, 무언가 내용을 알 수 없는 두 가지 일을 동시에 만났을 때 한족이 불행한 의미를 안고 있으면 다른 한쪽은 행복한 의미를 품고 있을 것이라는 미신이 떠올라 봉투를 그대로 주머니에 넣고 이사장실을 향해 갔다. 이사장과의 이야기가 최악이라고 한다면 버드는 주머니 속 편지에 최상의 기대를 둘 만한 정당한 이유를 얻게 되는 것이다.


"자넨 뭘 극리 초조하게 자기 아들의 죽음을 기다리고 있는 건가? 여긴 입원비도 그리 비싸지 않은데. 자넨 건강 보험증도 있잖은가? 어쨌든 자네 아이는 쇠약해지긴 했지만 떡 하니 살아 있다구. 아버지답게 느긋하게 기다리게나, 엉?"


"버드가 그날 밤 기쿠히코를 버리지 않았더라면 기쿠히코는 호모 섹슈얼도 되지 않았을까?"하고 히미코가 주제넘게 물었다.


버드는 아기의 눈동자에 자신의 얼굴을 비춰보려 했던 것이다. 아기 눈의 거울은 말갛게 개인 깊은 회색으로 버드를 비추어 냈지만 그것은 너무나도 미세하여 버드는 자신의 새 얼굴을 확인할 수는 없었다. 집으로 돌아가면 먼저 거울을 보아야지, 하고 버드는 생각했다.



이 소설의 가장 마지막에 힘주어 말한 '인내'라는 단어가
이유없는 '희망'보다 훨씬, 이 '개인적인 체험'과 맞아 떨어진다.

대부분의 독자들 역시 이 소설의 마지막의 문장을 깊게 음미하는 것 같다.  (다음 독자가 직접 읽어볼 기회로 남겨두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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