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두치킨 - 까칠한 아티스트의 황당 자살기
마르잔 사트라피 지음, 박언주 옮김 / 휴머니스트 / 2012년 2월
평점 :
절판


대뜸,의 끝판왕


첫 페이지를 펼치자 마자

'1958년 테헤란'의 한 거리가 나온다.

모자를 쓴 마른 사내, 지나가는 한 여인과 아이를 보더니 움찔한다.

"부인! 실례합니다! 부인." 

지나가는 여인을 세워 묻는다, "혹시 성함이 이란느 아니신지?"

"네, 그런데요. 어떻게 아시죠?"

"나 모르시겠소?"

"전혀요."

그러자 다른 사람으로 착각했노라며 사과하는 남자.


처음 등장하는 이 남자가 주인공이다.

첫 페이지를 보면서 생각하기를, 실없는 남자라는 걸 보여주는 일화인가 갸우뚱했다.

(그러나 이 장면이 어떤 의미를 갖는지는 나~아중에, '잘' 알게 된다.)

대낮부터 아무 사람에게 말을 거는 괴상한 남자인 줄만 알았는데

악기상에 들어가자 주인은 그를 '나세르 알리 칸'이라 부른다.

칸Khan은 전하 또는 나리에 해당하는 호칭이란 친절한 안내를 읽고 나서 또 멈칫한다.

굉장한 사람이었어?


까칠한 아티스트, 나세르는 타르 악기를 다루는 뮤지션이다.

실력도 대단하고 그 실력 못지 않게 소리와 악기에 관한한 깐깐한 고집이 가득한 남자다.

악기를 사러 먼 길을 떠난다, 막내 모자파르는 어쩔 거냐는 마누라의 잔소리까지 견뎌내며.


그가 얼마나 자신의 일에 

경건한 태도를 취하느냐면,

새로 산 악기를 연주하기 위해 

이발을 하고 수염을 깎고 정장을 차려 입은 후,

모든 가족이 없는 조용한 집 안에서 담배 한 개비를 핀 다음

한 시간 가까이 새 타르를 바라보다가... 연주를 시작한다.

와, 이 사람 대단한데? 멋있다.

이런 생각을 하기도 잠시, 

소리가 마음에 들지 않자 그는 침대에 누웠다, 죽기를 결심하고.


뭐 이런 뜬금없는 남자가 다 있어, 하고 한 페이지를 넘기자

그로부터 7일 후....그가 죽었단다.



가엾은 한 남자


결말은 이미 정해져 있었지만,

처음 보는 이 남자가 죽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그 7일 간의 여정을 지켜보게 되었다.

그가 오해한 것들을 미세하게 발견하면서 먹먹해하며,

그를 위해 기도하는 사람이 누구인지도 모르는 현실에 짠해하며.


하루, 이틀, 사흘, 나흘...

점점 지날 수록 '죽지 말아요'하는 헛된 바람을 접고 

'죽을 수 밖에 없었구나, 나세르 알리'하는 공감을 할 수 밖에 없었다.

짠하고 가엾은 남자... 그래도 죽지 않을 자잘한 행복들도 있었을 텐데.




구성의 묘미


숨겨져 있는 이야기가 하나씩 등장한다.

과거와 미래, 현재를 오고가며 보여준다는 점에서 독특하고,

어느 샌가 등장한 화자가 알세르의 이야기를 하다말고 

불쑥 등장하기도 한다는 점에서 어수선해 보이기도 하다.

그래도, 그 '전체'가 이 책 구성의 포인트라고 느껴지는 걸. ^^






좋은 책 한 권이 여러 감동을 만든다?!

책을 읽고 나서는 좀 슬펐다.

심오한 이야기들도 다시 생각났고,

그래서 책을 다시 뒤적여 보기도 했고 

작가의 다른 책들(이미 읽은 '페르세폴리스'를 포함)을 되짚어 보기도 했다.

그러다가 발견했다, 이 그래픽 노블을 원작으로 한 영화가 있다는 걸.

동명의 타이틀-<Poulet aux Prunes(자두치킨)>,

우리나라에서의 제목은 <어느 예술가의 마지막 일주일>.

예고편 몇 편을 봤는데 아름다웠고 예쁜 영상이었다,

게다가 흐르는 음악들까지도 훌륭했다.


마르잔 사트라피만의 힘은 

작은 컨텐츠 안에서 수많은 감동을 뽑아낼 수 있게 만드는,

그런 작품을 그리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봤다.




p.s.

아직 영화 <자두치킨>은 보기 전이고,

마르잔의 또 다른 그래픽노블 <바느질 수다>는 그 사이 읽었다.

정말, 이 작가는.... 음.... 처음 알았던 것 보다 훨씬 멋진 여자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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