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신주의 감정수업 - 스피노자와 함께 배우는 인간의 48가지 얼굴
강신주 지음 / 민음사 / 201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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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자 강신주, 책을 통해 인연이 닿은 동갑내기 친구가 무척이나 사랑하는 철학자다. ‘철학’이라면 좀 어렵게 느꼈던(왜 죽고 없는 철학자들만-철학자의 사상이나 말보다!- 내게 매력적이었던 걸까, 철학은 아직 살아있는데) 나는 차분히 강신주와 친근해지기로 마음 먹었다. 처음은 여러 명사들이 공동으로 지은 책에서 우연찮게 시작되었다. 과학을 철학의 관점에서 바라본 글이었던 것 같은데 느낌이 생각만큼 강렬하지 않았다. 그리고 잊었다, 강신주의 매력을 알기엔 글이 짧았다. 시를 통해 이야기를 풀어가는 그의 다른 저작물들도 보았지만 엄두를 내지 못했다. 시도 철학도 모두 어려운 장르였으므로 너무 일찍 지쳐버리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강신주의 감정수업』은 익숙한 소설들을 두고 철학자가 바라보는 감정에 대해 풀어쓴 책이다. 소설의 옷을 입고 있기에 이해가 쉽고 그 안에 드러난 감정들은 철학자의 이론을 끌어오기에 적절한 예인 것 같다. 때문에 즐겁게 읽힌다.

가령 내가 스피노자가 정의내린 감정 중에 하나- 사랑(amor)이란 외부의 원인에 대한 생각을 수반하는 기쁨이다(p.79)라고 말하는 철학서를 읽었다고 치자. ‘외부의 원인에 대한 생각을 수반하는’이라는 딱딱한 글투를 읽으면서 ‘아, 역시 스피노자가 말해주는 철학이 진짜지’하고 감탄하고 그 글귀를 몇 번이고 곱씹을까? 아니. ‘이 양반, 사과나 심느라 바빴나 말을 왜 이렇게 딱딱하고 짧게 썼데?’하고 불평하지 않을까. 죽은 자의 입에서 나온 말과 살아있는 내가 겪는 현실의 간극을 ‘지금’을 사는 철학자’ 강신주가 직접 메워주고 있다. 그가 적절한 소설을 챙겨 이야기를 풀어주는 것이다. 그렇다고 소설의 줄거리에만 치우쳐 ‘철학적인 접근’을 놓아버리지도 않는다. 소설의 형식과 철학의 알맹이가 잘 어울려 빚어진 책이다. 사이사이 들어간 미술작품이나 (소설)작가에 대한 짧은 정보도 유익한 편이라 책을 쥐고 있는 것만으로 제법 흐뭇하기까지 하다.

 

앞서 예를 든 사랑의 감정은 연민이나 박애 혹은 동경, 호의, 끌림과는 다르게 분류되어 있다. 다른 것과의 차이는 무얼까, 왜 사랑에 빠질까, 스피노자가 말한 ‘외부의 원인’은 사랑의 상대인가, 외부의 원인에 대한 생각은 그리움이란 말인가. 그 알쏭달쏭한 이야기는 누군가를 만나 과거보다 더 완전한 인간이 되었다는 기쁨을 누릴 때, 우리는 그와 사랑에 빠진 것이다(p.79)고 명쾌하게 해석되어 있다.(‘명쾌하게’라는 말은 강신주의 뒤를 밟으며(?) 만난 팟캐스트를 통해 그의 목소리와 웃음, 강연의 태도를 통해 느낌 감정이다.^^전부를 들은 건 아니지만, 그는 꽤 호탕하게 강연을 하는 듯 했다.) 이어 따라오는 펄벅의 소설 『동풍 서풍』 일부에서 드러나는 주인공 궤이란을 통해 우리는 그 ‘사랑’을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다.

 

소설을 인용한 부분을 읽지 않아도 이해가 되는 것도 강신주의 감정수업이 수강 만족도(?)가 높은 이유일 것이다. 그 중에서도 ‘후회’라는 감정은 미처 생각해 본 적 없는 새로운 문제를 만나는 경험이기도 했다. 후회가 많은 사람은 결국 자의식이 강한 사람이었다는 것, 그 후회 속에는 자신의 능력으로 모든 걸 조절할 수 있었을 것이란 착각이 숨어있다는 것. ‘후회’라는 단어는 알았어도 그 단어의 밀도는 하나도 모르고 썼던 건 아닌지, 내가 가졌던 후회라는 건 혹시 다른 감정을 잘못 이른 말은 아니었는지 한참을 생각했어야 했다.

‘후회’에 대한 스파노자의 정의에서 “정신의 자유로운 결단으로 했다고 믿는”이라는 표현에 방점을 찍어야만 한다. 자신이 모든 불행을 직접적으로 초래할 수 있는, 일종의 전지전능한 힘을 가지고 있다고 믿을 때에만, 우리는 후회의 감정에 사로잡히게 된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사실 모든 불운을 자기가 초래한 것이라고 믿는 것, 다시 말해 자신은 선택에서 절대적으로 자유로웠다고 믿는 것만큼 거대한 착각이 어디 있겠는가. 이보다 더 큰 오만이 또 있을까? 자의식이 강한 사람이라면 모든 불행을 객관적으로 보기 보다는, 다시 말해 있는 그대로 보기보다는 모두 자신의 탓으로 돌리기 쉽다. 이런 사람은 후회라는 감정으로부터 자유롭기가 힘들다. 결국 후회는 신과 같은 강한 자의식을 가진 사람에게 자주 찾아오는 감정이라고 할 수 있다.(p.393~p.395)

 

책을 읽기에 앞서 잠시라도 강신주의 목소리와 강연을 이끄는 태도를 알아본 것은 잘한 일이었던 것 같다. 때때로 ‘너무’ 명료하고 ‘너무’ 강단있게 소설을 해석하는 그를 만나면서 그의 목소리를 먼저 알지 못했더라면 그 ‘힘’에 지쳐서 책을 쉽게 넘기지 못했을지도 모를 일이므로. 한편으로는 그 명료한 시선과 태도는 어쩌면 철학자의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세상에 숨어있는 것들 속에 새로운 가치를 발견하거나 부여하거나 명명하는 것, 그것이 본디 철학의 일이므로. (철학은 배움 자체를 밝히는 것이라고, 학창시절 어느 교수는 철학 첫 시간에 그렇게 운을 뗐었다.)

 

책을 덮으면서 미처 읽지 못한 고전소설들과, 진득하게 만나지 못한 철학서들을 떠올렸다. 그 둘 모두에 대해 호기심이 일었다면 이것은 ‘끌림’이 옳을까.

끌림(propensio)란 우연에 의해 기쁨의 원인이 될 수도 있는 그 어떤 사물의 관념을 수반하는 기쁨이다.(p.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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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 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
요나스 요나손 지음, 임호경 옮김 / 열린책들 / 201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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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웨덴판 포레스트 검프-『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


100세 생일을 코앞에 둔 할아버지가 있다. 갑자기 창문을 넘어 요양원을 탈출한다, 실내화를 질질 끌면서. 어디론가 가고 싶었을까 요양원에서의 일상이 힘들었나 그리운 누군가와의 마지막 재회를 하고 싶었을까. 이 소설의 장르(?)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상황에서 창문을 가볍게 넘는 이 노인을 따라가면서 많은 생각을 했다.


알란 칼손은 평범한 노인일 수가 없었다. 폭발물 제조에 뛰어난 재주를 보였던 죄로 정신병원에 가야했을 때 알아챘어야 했다. (아니 그를 담당한 의사를 보고 알아챘어야 했을까?) 말은 많았지만 그만큼 겪은 일이 많아서 였고, 학력이라고는 평생을 두고 단 2년의 초등학교 생활이 전부이지만 직접 보고 듣고 느끼면서 깨달은 것이 많았기에 부족함이 없다(아빠의 ‘사상’ 변화를 보고 들으면서 조차 ‘정치’의 위험성을 간파했으니 똑똑한 아이었음에 틀림이 없다).


그가 왜 낯선 청년이 맡긴 트렁크를 들고 가게 되었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그가 가는 길에 트렁크가 따라왔고 그 트렁크 때문에 성난 청년들이 꽤나 폭력적으로 노인의 뒤를 따랐다는 것도 중요하지 않다. 세상만사는 그 자체일 뿐이고, 앞으로도 무슨 일이 일어나든 그 자체일 뿐(p.47)이므로 그냥 지금의 상황에서 옳은 판단을 -단숨에- 내리는 것이 그만이었다.


책을 읽다보면 우리가 몰랐던 세계사의 흐름을 알 수가 있다. 적어도 이 노인이 살아온 백여년의 시간에 대한 급박한 세계 정세는 단숨에 잘 읽힌다. 나라와 정치색 따위와 무관하게 알아갈 수 있다는 것도 장점이다! ^^


간간히 칼손의 주변인물, 특히나 정치나 종교에 대해 자신의 생각을 지나치게 장황하게 늘어놓는 인물들을 만나는 지점에선 좀 느리게 읽히긴 했지만 전반적으로 블랙코미디에 가까운 이 모든 상황이 읽는 이를 유쾌하게 만든다. 시간 가는 줄 모르게 자꾸 읽게 될지도 모른다.


알란 칼손이 어떤 나라에(행선지를 밝히지는 않겠다, 소설 속에 등장하는 것을 직접 찾아보길) 비행기를 착륙시켜야 할 때 아무렇지 않게 자신에게 맡기라고 말한다. 나는 이 노인의 입에서 조종사의 언어가 나왔다면, 지금까지 읽은 분량과 무관하게 이 모든 이야기는 지나치게 허구이며 이 뻥을 끝까지 읽어내려갈 수 없다며 소설을 집어 던졌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는 그러지 않았다. 알란은 영리한 노인이다. 반짝이는 눈동자를 가진 채 눈을 껌뻑 느리게 감았다 뜨며 “뭐 문제 있수?”하고 내게 반문할지도 모른다. “아니요, 없어요. 할아버지. 전 할아버지가 무척이나 마음에 들어요.”


영화화되었다는 소식을 뒤늦게 들었다. 수다스럽고 천역덕스러운 알란 칼손 역에 우디 알렌은 어떨까. 

어떤 영화가 만들어지건 소설 속의 상황을 잘 재현해 내기 위해선 꽤 많은 돈과 노력이 들어야 할 것 같다. 유쾌상쾌통쾌한 100세 노인의 기구한(?) 삶이 궁금하다면 이책을 읽어보길. 엔돌핀이 필요한 시점이라면 더더욱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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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 - 정유정 장편소설
정유정 지음 / 은행나무 / 201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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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에 타는 듯한 빨간눈 괴질이 화양을 뒤덮었다. 원인은 밝혀지지 않았다. 화양은 외부로 나가는 것도 들어오는 것도 허락할 수 없는 도시가 되어 버렸다. 그리고 아직 그곳에는 사람들이 살고 있다.


‘드림랜드’에서 개들을 돌보는 남자 재형, 서재형의 따스한 면 뒤에는 어떤 가면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의혹의 제기한 기자 윤주, 위험한 이들을 구하러 다니는 응급구조 소방대원 기준, 그리고 전혀 다른 이 인물들 뒤에 늘 존재하는 동해. 이들은 전염병 속에서도 아직 눈이 빨갛게 ‘변하지 않은’ 사람들이다. 그러나 변하지 않은 것은 그 외에는 없었다. 대통령과 시장의 대응은 총칼을 든 군인들을 앞세워 화양을 격리하기 시작했으니. 살아남아야 한다, 병이 그들을 덮치건 성난 누군가가 그들을 해치건. 살아남는 것이 이어야 했다.


 

정유정의 소설 속에선 ‘개’가 사람처럼 그려지기도 한다. 링고와 스타(둘의 사랑(?)을 떠올리면서 왜 비틀즈의 감미로운 노래가 떠오르는지 그대도 알까. 링고스타?!)의 만남이 그러하다. 마음의 소리를 따라 하울링하기도 하고 냄새를 (좇거나)쫓기도 하며 입술을 핥기도 한다. 링고와 스타의 애틋함 때문에 이야기는 더 씁쓸하게 전개되는지도 모른다. 누군가의 단순한 의구심-어쩌면 이 병은 사람에서 사람으로, 개에서 사람으로, 사람에서 개에게로 옮겨질지도 모른다-이 한 기자의 오지랖으로 세상에 까발려졌기 때문에. 

재형이 사랑하고 아끼는 스타와 어디선가 등장한 야생의 개 링고, 녀석들은 무사할 수 있을까. 개에 집착하게 된 기준과 동해가 살아있는데 이 두 마리들은 안전할 수 있을까. 아프고 힘든 이야기들이 펼쳐지지만 전혀 이상하게 느껴지진 않는다. 화양이라는 곳 안에 사람들이 갇혀서 죽어가는 마당에 개 따위(!)의 생명을 눈뜨고 볼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괴상한 병, 그리고 무참히 버려진 화양시, 사람들의 애정을 받다가 버려지는 무수한 유기견들... 죽어나가는 것이 무엇인지 변해가는 것은 무엇인지 소설은 긴박감 있게 설득력 있게 이야기를 풀어간다. 무섭고도 슬픈 소설, 28. 읽기는 쉽지 않았지만 꽤 오랜 시간 잔상이 남는 소설이다.

 

AI 때문에 가금류가 대량 살처분 되고 있다 한다. 하얀 방역복을 입은 사람들과 집단으로 처리되는 동물들을 보면서도 자꾸 화양시가 떠오른다. 화양 안에서 펼쳐지던 그 괴이한 그림들이 저 카메라 프레임 밖에서 이루어지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마저 꼬리를 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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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 없이 무척이나 소란한 하루 - 상실과 치유에 관한 아흔 네 가지 이야기
멜바 콜그로브 외 지음, 권혁 옮김 / 돋을새김 / 201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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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가 하나 있다. 나와는 좀 다른 삶을 살고 있는 고등학교 동창. 친구가 자꾸 떠나는 사랑에 대해 말하며 흘린 한 마디가 있었다. 그 사람이랑 D도시에 가자고 약속을 했었는데 지키지 못했다고. 몇 년이 흐른 지금까지도 D에는 못 가보겠더라고. 몇 년이 지나도 수없이 많은 사랑을 만나도 왜 ‘그’를 떠올릴까. 친구는 그를 준비없이 보냈기에 감정을 정리하지 못한 걸까.


사랑을 잃는다는 것–멀어진다는 것은 ‘결혼’으로 이어지는 인연보다 훨씬 높은 확률을 가진다. 차였건 찼건 ‘함께 한’ 시간과 추억들을 공중분해 시켜야하는 상황은 형벌처럼 느껴지는 게 자연스러운지도 모른다. 둘이 함께 만든 추억들이 주인을 잃고 사라져야 한다는 것이, 그 속에 있는 ‘나’마저도 지워질 위기에 놓인다는 것이 얼마나 고통스러운 일인지. 잃은 사람과의 추억에만 갇혀 지내면 한없이 가라앉는다. 그가 했던 말과 있었던 일들이 마음에, 머리에 들어차서 자꾸 물음만 자기비하만 되새김질 할 뿐이다. 그래, 나 역시도 그랬다. 이십대에 내가 겪은 모진 ‘이별 후유증’들은 대게 그랬다. 못다한 말, 못다한 마음...그 끝에서 가상의 그에게 나머지의 말과 마음을 전하느라 힘들었다. 그 모든 게 사라지고 난 후의 ‘나’, 오롯한 ‘나’를 만나러 가야하는데 그 발걸음을 쉽게 떼지 못했다. 작은 걸 보면 떠올랐고 상황 속의 우리가 처한 ‘지금’을 부인하는 무한 사이클을 돌았다.



이 책은 그런 이들에게 꼼꼼히 읽히도록 구성되어 있다. 헤어짐 후에 필요한 것들이 단계별로 조심조심 제시되어 있다. 담백한 일상을 찍어둔 사진은 글귀들과 어우러져 고운 ‘위로 편지’가 되어 준다.


무엇보다 이책의 내용 중 가장 마음에 와닿았던 말은 수년전 지리멸렬한 침체와 암흑의 끝에서 내가 깨달은 결론과도 같은 말이었다.


상실이 남긴 선물

당신은 근심에 싸여 있었다./그리고 문제를 풀기 위해 노력했지요./이제는 자신을 위해 노력하는 방법을 알게 되었습니다./사랑하고 보살필 줄도 알게 되었습니다./비록 사랑은 잃었지만,/사랑은 당신을 성숙시켰습니다. (p.169)


수렁에서 벗아날 수 있는 때가 되자 나는 더 괜찮은 사랑을 누릴 준비가 된 상태였다. (아무에게나 고백을 듣고 흔들리는 멍충이가 아니라, 정말 좋아하는 사람을 가려낼 수 있는 사람이 되었으므로.) 슬픈 음악과 더 절절한 암흑 속을 헤매는 소설에 기댈 필요가 없는 상태. 아픔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인정하고 이해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왜 지금 이렇게 힘들지,하는 물음 끝에 ‘누군가를 사랑하는 내 감정에 취한 나’ 때문이란 걸 알았으므로.


책 역시도 그렇게 이야기한다. 스스로를 용서하고 그 사람을 용서하고 지금의 상황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라고. 힘이 나면 나는대로 나지 않으면 또 그 나름대로 순간순간에 충실하라고. 그렇다. 이 책은 (그렇기 때문에) 순차적으로 읽어야 할지도 모른다. 점점 페이지를 넘어가며 당신도 나아질 것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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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아내에 대하여
라이오넬 슈라이버 지음, 박아람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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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0페이지가 넘는 두꺼운 책, 한 여자가 멍한 곳으로 시선을 둔 그림이 있는 표지. 책을 펼치기 전까지 나는 이 책이 무척 불편했다. 묘하게 암울했다. 그 ‘아내’가 가진 암이 표지 속 여자의 시선을 따라 내게 전해질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이 책에 대한 평가를 설핏 본 적이 있었기 때문에 기대치가 높았다. 막상 이 과도하게 빵빵하고 답답한—심지어는 목차가 1,2,.....19로 매겨진—소설을 직접 손으로 만지게 되자 당황했다, 내가 잘 읽어낼 수 있을까. “모두를 위한 복지를 위해 내가 냈던 세금을 왜 아내의 불치병 치료에는 쓸 수 없을까?”라는 심오한 물음에 답하기 위해서는 나는 군소리 없이 600페이지를 잘 읽어내려가야 한다는 사실이 조금은 버거웠다. 적어도 셰퍼드의 삶을 엿보기 전까지는.

 


셰퍼드는 ‘두 번째 삶’을 꿈꾸며 살아온 남자다. 벌어놓은 돈 없이 늙어가는 아버지와 무일푼의 예술가를 자처하는 여동생에게 생활비를 지불하면서도 ‘하루에 1달러도 안되는 돈으로 살아(p.18)’가는 사람들이 사는 곳에서 새로운 ‘두 번째 삶’을 시작하기 위해 집을 사지 않았고—덕분에 집값이 올라 엄청난 돈을 임대료로 내고 있는 사정이었지만—그가 시작한 작업장은 새로운 시대를 맞이하면서 일개 직원의 손아귀에 넘어가 한 순간에 사장의 직함에서 고객을 상대하는 서비스 직원으로 내려앉았지만 크게 불만은 표시하지 않는 남자다. 모든 게 ‘두 번째 삶’을 위한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는 드디어 글리니스와 아들 자크에게 그의 또 다른 시작에 대해 단호한 선택을 행동으로 옮기기 위해 몰래 가방을 꾸리고 있었다. 그의 결정이 카운트다운을 들어가려는 순간이 왔고, 그가 말했다.

“펨바까지 가는 표야. 내 거랑 당신 거랑 자크 거.”(p.33)

아내는 그가 가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는 순응했다. 


물 같은 이 남자를 어떻게 도와야 하나, 평생을 그려온 꿈이라 했는데. 그의 직장상사에게 멋지게 한마디(‘그동안 즐거웠다, 개자식(p.62~63)’를 하고 나온 상황인데. 비굴하게 다시 회사로 돌아와 사과를 한다,굽실굽실. 그에게 빌붙어 살던 여동생이 돈을 더 뜯어내기 위해 도착했을 때 올케의 상황을 발표한다. 그렇다고 베릴이 변할까 만은, 그녀의 반응을 지켜보는 건 꽤나 재미있었다. 셰퍼드도 나처럼 재미있어 했을 것 같다. 글리니스가 아픈 건 아픈 거고, 그는 이 새로운 상황에 적응하는 소소한 방법을 익혔으리라. 하나 둘 펼쳐지는 기이한 그림들은 묘하게 독자를 매료시킨다.



 

책 속에는 암환자 글리니스 말고도 ‘고기능’ 장애아 플리카가 등장한다. 병을 가진 사람들이 병에 직면하였을 때 어떻게 변해가는지 어떤 행동을 선택할 수도 있는지, 드라마나 영화보다 더 현실적이고 멋지게(!) 보여준다. 사랑하는 아내 글리니스를 돌보는 셰퍼드의 마음을 엿보는 것도 줄어가는 잔고를 보는 것도 꽤나 자연스럽다. 죽음을 선고받은 환자들에게 왜 ‘싸우고 있다’고 표현하는 건지, 크를 접시 왼쪽에 놓는 예절이 있어도 아내가 칼질을 당하는 동안 무엇을 해야 하는지에 대해 정해진 규칙이 없(p.192)는 건 왜인지 그는 당황스럽다. 소설 속의 인물들을 바라보면 우리가 상상하는 판에 박힌 인물이 아니어서—작가 김연수의 연재물에서 배운 것을 써먹자면 ‘핍진성’이 확실해서 무척이나 행복했다. 그들이 대화하고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들이 하나같이 유쾌했다.(아니, 암선고를 받은 여자와 혼자서는 제대로 몸도 못 가누는 소녀를 보며 유쾌할 수가 있다니!)

 

게다가 셰퍼드의 곁에는 잭슨이란 멋진 친구도 있다. 조금 수다스럽긴 하지만 그의 말은 하나같이 뼈가 있는 농담들이다. 가령 이런 말- "제기랄, 얼핏 생각하면 우리가 돈을 주겠다는데 좀 쉽게 만들어놓으면 안 되나 싶어. 그런데 내가 보기엔 일부러 그러는 것 같아. 엄청난 서류에 수많은 숫자와 코드. 그게 다 일종의 연막이라고. 그래놓으니 반창고 하나에 300달러나 주고 사면서도 눈치채지 못하는 거야.“(p.101)을 내뱉는 잭슨의 등장으로 이 책은 더욱 더 읽고 싶은 책이 되었다.(물론 그의 결말(?) 때문에 이 유쾌한 감정이 순도 100%로 남아있진 못했지만.(무척이나 아쉽다.))



 

물 같던 남자 셰퍼드와 금속 같던 여자 글리니스는 파산했다. 셰퍼드는 재산이, 글리니스는 몸이 축 나 버렸다는 말이다. 그렇지만 책을 읽는 동안 즐거웠다, 묘하게 통쾌했다. 아픈 사람이 어느 순간 순둥이가 되어서 찾아오는 사람들의 너스레를 들으며 ‘와줘서 고마워’하며 촉촉하고 반짝이는 눈초리를 보낼 거라는 환상을 철저하게 지워줘서. 사과를 해야 하는 상황에서나 친절하게 행동하는 게 맞지 않냐며 의사들의 친절을 묘하게 비판해주기도 해서. (잭슨의 표현을 빌자면, 내가 지나치게 ‘쪼다’스러움에 공감한 단 말인가.)

암 선고를 받고 그들이 파산하기까지 잃은 것만 있다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진실한 마음을 알아보는 것, 자신이 가치있게 여겨야 하는 것을 알아야 하는 것,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는 것, 그리고 때가 되면 과감하게 놓아버릴 수도 있어야 한다는 것 등등 —더 세부적으로 헤아리면 수백 수천가지의 것들—이 변해‘주었다’.

 

지나치게 현실적인 건 무얼까. 당신의 소중한 사람이 병에 걸렸고 시한부임은 분명하지만 돈을 쓰는 만큼 수명은 연장된다. 보험회사나 국가 기관은 자신의 이익에 반하지 않기 위해 얼마든지 당신을 괴롭힐 준비가 되어 있다. 환자와 환자 보호자인 당신은 이 이상한 그림 속에서 어떻게 행동하는 것이 현실적인 걸까. 드라마나 영화 같은 것이 아니라 진짜 당신의 삶에 드리워진 배경 그림이라면?




엄마는 몇 년 전에 유방암에 걸렸다. 약간의 수술—몸의 일부를 도려내는 수술—을 감내하셨고 그 외에 정기적인 많은 치료를 혼자 이겨내셨다. 그리고 보험회사에서는 엄마에게 ‘상피내암’은 암이 아니라며 치료비에 대한 보상금을 내놓지 않았다. 내가 이미 겪은 현실의 그림은 이랬다. 그래서 나는 『내 아내에 대하여』가 무척이나 재미있었고 진짜라고 믿어도 된다고 생각했다. 추천한다, 아직 ‘현실’을 겪어 보지 않은 당신에게. 좀 더 핍진성이 넘치는 현실은 이런 것일지도 모른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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