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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아내에 대하여
라이오넬 슈라이버 지음, 박아람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3년 12월
평점 :
절판
600페이지가 넘는 두꺼운 책, 한 여자가 멍한 곳으로 시선을 둔 그림이 있는 표지. 책을 펼치기 전까지 나는 이 책이 무척 불편했다. 묘하게 암울했다. 그 ‘아내’가 가진 암이 표지 속 여자의 시선을 따라 내게 전해질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이 책에 대한 평가를 설핏 본 적이 있었기 때문에 기대치가 높았다. 막상 이 과도하게 빵빵하고 답답한—심지어는 목차가 1,2,.....19로 매겨진—소설을 직접 손으로 만지게 되자 당황했다, 내가 잘 읽어낼 수 있을까. “모두를 위한 복지를 위해 내가 냈던 세금을 왜 아내의 불치병 치료에는 쓸 수 없을까?”라는 심오한 물음에 답하기 위해서는 나는 군소리 없이 600페이지를 잘 읽어내려가야 한다는 사실이 조금은 버거웠다. 적어도 셰퍼드의 삶을 엿보기 전까지는.
셰퍼드는 ‘두 번째 삶’을 꿈꾸며 살아온 남자다. 벌어놓은 돈 없이 늙어가는 아버지와 무일푼의 예술가를 자처하는 여동생에게 생활비를 지불하면서도 ‘하루에 1달러도 안되는 돈으로 살아(p.18)’가는 사람들이 사는 곳에서 새로운 ‘두 번째 삶’을 시작하기 위해 집을 사지 않았고—덕분에 집값이 올라 엄청난 돈을 임대료로 내고 있는 사정이었지만—그가 시작한 작업장은 새로운 시대를 맞이하면서 일개 직원의 손아귀에 넘어가 한 순간에 사장의 직함에서 고객을 상대하는 서비스 직원으로 내려앉았지만 크게 불만은 표시하지 않는 남자다. 모든 게 ‘두 번째 삶’을 위한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는 드디어 글리니스와 아들 자크에게 그의 또 다른 시작에 대해 단호한 선택을 행동으로 옮기기 위해 몰래 가방을 꾸리고 있었다. 그의 결정이 카운트다운을 들어가려는 순간이 왔고, 그가 말했다.
“펨바까지 가는 표야. 내 거랑 당신 거랑 자크 거.”(p.33)
아내는 그가 가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는 순응했다.
물 같은 이 남자를 어떻게 도와야 하나, 평생을 그려온 꿈이라 했는데. 그의 직장상사에게 멋지게 한마디(‘그동안 즐거웠다, 개자식(p.62~63)’를 하고 나온 상황인데. 비굴하게 다시 회사로 돌아와 사과를 한다,굽실굽실. 그에게 빌붙어 살던 여동생이 돈을 더 뜯어내기 위해 도착했을 때 올케의 상황을 발표한다. 그렇다고 베릴이 변할까 만은, 그녀의 반응을 지켜보는 건 꽤나 재미있었다. 셰퍼드도 나처럼 재미있어 했을 것 같다. 글리니스가 아픈 건 아픈 거고, 그는 이 새로운 상황에 적응하는 소소한 방법을 익혔으리라. 하나 둘 펼쳐지는 기이한 그림들은 묘하게 독자를 매료시킨다.
책 속에는 암환자 글리니스 말고도 ‘고기능’ 장애아 플리카가 등장한다. 병을 가진 사람들이 병에 직면하였을 때 어떻게 변해가는지 어떤 행동을 선택할 수도 있는지, 드라마나 영화보다 더 현실적이고 멋지게(!) 보여준다. 사랑하는 아내 글리니스를 돌보는 셰퍼드의 마음을 엿보는 것도 줄어가는 잔고를 보는 것도 꽤나 자연스럽다. 죽음을 선고받은 환자들에게 왜 ‘싸우고 있다’고 표현하는 건지, 포크를 접시 왼쪽에 놓는 예절이 있어도 아내가 칼질을 당하는 동안 무엇을 해야 하는지에 대해 정해진 규칙이 없(p.192)는 건 왜인지 그는 당황스럽다. 소설 속의 인물들을 바라보면 우리가 상상하는 판에 박힌 인물이 아니어서—작가 김연수의 연재물에서 배운 것을 써먹자면 ‘핍진성’이 확실해서 무척이나 행복했다. 그들이 대화하고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들이 하나같이 유쾌했다.(아니, 암선고를 받은 여자와 혼자서는 제대로 몸도 못 가누는 소녀를 보며 유쾌할 수가 있다니!)
게다가 셰퍼드의 곁에는 잭슨이란 멋진 친구도 있다. 조금 수다스럽긴 하지만 그의 말은 하나같이 뼈가 있는 농담들이다. 가령 이런 말- "제기랄, 얼핏 생각하면 우리가 돈을 주겠다는데 좀 쉽게 만들어놓으면 안 되나 싶어. 그런데 내가 보기엔 일부러 그러는 것 같아. 엄청난 서류에 수많은 숫자와 코드. 그게 다 일종의 연막이라고. 그래놓으니 반창고 하나에 300달러나 주고 사면서도 눈치채지 못하는 거야.“(p.101)을 내뱉는 잭슨의 등장으로 이 책은 더욱 더 읽고 싶은 책이 되었다.(물론 그의 결말(?) 때문에 이 유쾌한 감정이 순도 100%로 남아있진 못했지만.(무척이나 아쉽다.))
물 같던 남자 셰퍼드와 금속 같던 여자 글리니스는 파산했다. 셰퍼드는 재산이, 글리니스는 몸이 축 나 버렸다는 말이다. 그렇지만 책을 읽는 동안 즐거웠다, 묘하게 통쾌했다. 아픈 사람이 어느 순간 순둥이가 되어서 찾아오는 사람들의 너스레를 들으며 ‘와줘서 고마워’하며 촉촉하고 반짝이는 눈초리를 보낼 거라는 환상을 철저하게 지워줘서. 사과를 해야 하는 상황에서나 친절하게 행동하는 게 맞지 않냐며 의사들의 친절을 묘하게 비판해주기도 해서. (잭슨의 표현을 빌자면, 내가 지나치게 ‘쪼다’스러움에 공감한 단 말인가.)
암 선고를 받고 그들이 파산하기까지 잃은 것만 있다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진실한 마음을 알아보는 것, 자신이 가치있게 여겨야 하는 것을 알아야 하는 것,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는 것, 그리고 때가 되면 과감하게 놓아버릴 수도 있어야 한다는 것 등등 —더 세부적으로 헤아리면 수백 수천가지의 것들—이 변해‘주었다’.
지나치게 현실적인 건 무얼까. 당신의 소중한 사람이 병에 걸렸고 시한부임은 분명하지만 돈을 쓰는 만큼 수명은 연장된다. 보험회사나 국가 기관은 자신의 이익에 반하지 않기 위해 얼마든지 당신을 괴롭힐 준비가 되어 있다. 환자와 환자 보호자인 당신은 이 이상한 그림 속에서 어떻게 행동하는 것이 현실적인 걸까. 드라마나 영화 같은 것이 아니라 진짜 당신의 삶에 드리워진 배경 그림이라면?
엄마는 몇 년 전에 유방암에 걸렸다. 약간의 수술—몸의 일부를 도려내는 수술—을 감내하셨고 그 외에 정기적인 많은 치료를 혼자 이겨내셨다. 그리고 보험회사에서는 엄마에게 ‘상피내암’은 암이 아니라며 치료비에 대한 보상금을 내놓지 않았다. 내가 이미 겪은 현실의 그림은 이랬다. 그래서 나는 『내 아내에 대하여』가 무척이나 재미있었고 진짜라고 믿어도 된다고 생각했다. 추천한다, 아직 ‘현실’을 겪어 보지 않은 당신에게. 좀 더 핍진성이 넘치는 현실은 이런 것일지도 모른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