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 없이 무척이나 소란한 하루 - 상실과 치유에 관한 아흔 네 가지 이야기
멜바 콜그로브 외 지음, 권혁 옮김 / 돋을새김 / 2013년 12월
평점 :
절판





친구가 하나 있다. 나와는 좀 다른 삶을 살고 있는 고등학교 동창. 친구가 자꾸 떠나는 사랑에 대해 말하며 흘린 한 마디가 있었다. 그 사람이랑 D도시에 가자고 약속을 했었는데 지키지 못했다고. 몇 년이 흐른 지금까지도 D에는 못 가보겠더라고. 몇 년이 지나도 수없이 많은 사랑을 만나도 왜 ‘그’를 떠올릴까. 친구는 그를 준비없이 보냈기에 감정을 정리하지 못한 걸까.


사랑을 잃는다는 것–멀어진다는 것은 ‘결혼’으로 이어지는 인연보다 훨씬 높은 확률을 가진다. 차였건 찼건 ‘함께 한’ 시간과 추억들을 공중분해 시켜야하는 상황은 형벌처럼 느껴지는 게 자연스러운지도 모른다. 둘이 함께 만든 추억들이 주인을 잃고 사라져야 한다는 것이, 그 속에 있는 ‘나’마저도 지워질 위기에 놓인다는 것이 얼마나 고통스러운 일인지. 잃은 사람과의 추억에만 갇혀 지내면 한없이 가라앉는다. 그가 했던 말과 있었던 일들이 마음에, 머리에 들어차서 자꾸 물음만 자기비하만 되새김질 할 뿐이다. 그래, 나 역시도 그랬다. 이십대에 내가 겪은 모진 ‘이별 후유증’들은 대게 그랬다. 못다한 말, 못다한 마음...그 끝에서 가상의 그에게 나머지의 말과 마음을 전하느라 힘들었다. 그 모든 게 사라지고 난 후의 ‘나’, 오롯한 ‘나’를 만나러 가야하는데 그 발걸음을 쉽게 떼지 못했다. 작은 걸 보면 떠올랐고 상황 속의 우리가 처한 ‘지금’을 부인하는 무한 사이클을 돌았다.



이 책은 그런 이들에게 꼼꼼히 읽히도록 구성되어 있다. 헤어짐 후에 필요한 것들이 단계별로 조심조심 제시되어 있다. 담백한 일상을 찍어둔 사진은 글귀들과 어우러져 고운 ‘위로 편지’가 되어 준다.


무엇보다 이책의 내용 중 가장 마음에 와닿았던 말은 수년전 지리멸렬한 침체와 암흑의 끝에서 내가 깨달은 결론과도 같은 말이었다.


상실이 남긴 선물

당신은 근심에 싸여 있었다./그리고 문제를 풀기 위해 노력했지요./이제는 자신을 위해 노력하는 방법을 알게 되었습니다./사랑하고 보살필 줄도 알게 되었습니다./비록 사랑은 잃었지만,/사랑은 당신을 성숙시켰습니다. (p.169)


수렁에서 벗아날 수 있는 때가 되자 나는 더 괜찮은 사랑을 누릴 준비가 된 상태였다. (아무에게나 고백을 듣고 흔들리는 멍충이가 아니라, 정말 좋아하는 사람을 가려낼 수 있는 사람이 되었으므로.) 슬픈 음악과 더 절절한 암흑 속을 헤매는 소설에 기댈 필요가 없는 상태. 아픔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인정하고 이해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왜 지금 이렇게 힘들지,하는 물음 끝에 ‘누군가를 사랑하는 내 감정에 취한 나’ 때문이란 걸 알았으므로.


책 역시도 그렇게 이야기한다. 스스로를 용서하고 그 사람을 용서하고 지금의 상황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라고. 힘이 나면 나는대로 나지 않으면 또 그 나름대로 순간순간에 충실하라고. 그렇다. 이 책은 (그렇기 때문에) 순차적으로 읽어야 할지도 모른다. 점점 페이지를 넘어가며 당신도 나아질 것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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