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온한 죽음 - 마지막까지 인간다운 존엄함을 잃지 않는 품격이 있는 죽음을 위하여!
나가오 카즈히로 지음, 유은정 옮김 / 한문화 / 201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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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작년 8월 할아버지께서 돌아가셨다. 사망진단서가 말해주었다. 심장및호흡정지(의 원인:뇌출혈, 의 원인:혈관성치매, 의 원인:연하곤란)에 의한 사망이라고. 그러나 나는 믿을 수 없었다. 아침이면 맨손체조도 하셨고 운동 삼아 산책도 즐기셨던 건강한 89세의 어르신을 죽음으로 몰아간 것은, 너무도 갑작스러운 치매였다.

 

어느 날이었던가 경찰서에서 전화가 왔다, 할아버지 모셔가라고. 새집으로 이사를 간 후 계절이 두 번 정도 바뀌었던 시기였을 것이다. 우리 집이 기억이 나지 않으셨단다. 그때는 쉽게 흘려버렸던 것 같다, 건망증 같은 것이려니 하고. 수개월이 지난 후 친척의 결혼식장에서 할아버지는 졸고 계셨다. 손녀인 내가 아무리 불러도 깨지 않던 상태, 뻐끔뻐끔 하품은 하면서도 아무리 세차게 흔들어도 깨지 않던 상태로 줄곧 의식이 없으셨다. 처음 접하는 할아버지의 ‘나약한’ 모습에 나는 크게 놀랐다. 섬뜻한 느낌에 주변 친지분께 할아버지의 상태를 알렸는데 잔치는 아수라장이 되었고 그 날부터 할아버지는 병원 생활을 시작하셨다.

 

 

 

‘평온한’ 죽음이란 제목에 어울리게 이 책은 굉장히 침착한 어조로 쓰여져 있다. 죽음을 앞둔 당사자나 가족에게 어떤 방식으로 ‘죽음’을 맞이해야 할지 환자들의 마지막이 존엄할 수 있도록 ‘평온사’를 널리 알리기 위해 애쓰면서 ‘재택의료’ 문화를 실천해온 저자의 경험과 생각을 잘 풀어써놓았다. 하지만 내가 지나치게 고지식한 탓일까. 책을 접하자마자 ‘평온하게’ 마지막을 보낸다는 이미지를 떠올리면서 나도 모르게 ‘안락사’를 떠올렸다, 고통을 몰아내고 평온하게. 어쩌면 그것 때문에 첫 인상에서부터 이 책이 나를 옥죄는 것 같았는지도 모른다.

 

나의 할아버지께서는 노쇠와 치매 등 여러 복합증상을 보이면서 급속히 상태가 나빠지셨다. 병원에서는 머리 쪽의 큰 수술을 제외하고 할아버지를 위한 그 어떤 것도 할 수 없었다. 일반 종합 병원에서는 퇴원을 종용했다. 집에서 할아버지를 돌볼 사람이 아무도 없었기에 할아버지는 요양 병원에 들어가시게 되었다. 그 시점에서 우리는 할아버지께 무얼 해드릴 수 있었을까 그리고 의사는 할아버지를 위해 무엇을 했던 것일까 무엇보다 할아버지 본인의 뜻은 무엇이었을까.

 

마지막 순간을 눈앞에 둔 환자들에게 ‘연명’치료라는 것은 무슨 뜻일까. 치료라는 것은 병의 원인을 다스리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닌가 어찌 목숨을 이어가는 것이 ‘치료’라는 말인가. 저자는 나의 의문점을 풀어주듯 설명한다. ‘왜냐하면 병원에서 근무하는 의사들에게 연명은 무엇보다 가장 우선해야 하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의사들은 죽음을 패배라고 배운다. 가능한 한 모든 연명치료를 다 해야 한다는 생각이 본능처럼 뼛속까지 배어 있다.(p.42)

 

할아버지께선 일반 병원에 계시면서 큰 문제없이 일상의 생활을 계속 하려 애쓰셨다. 간간히 사람을 못 알아보셨을 뿐 스스로 양치도 하셨고 매일 드시던 건강제를 찾기도 하셨고 좋아하시던 사과도 꼬박꼬박 챙겨 드셨다. 단지 치료를 위해 팔과 몸통, 코에 꼽혀 있는 호스를 늦은 밤마다 주무시다 깨셔서 난리를 치며 떼어버리시곤 하셨을 뿐이다. 간밤에 문득 정신을 차리고 보니 ‘내가 왜 이런 호스 따위를 꼽고 있는가’하는 생각이 드셨을까. 새벽의 소란으로 엄마와 주변 환자와 간호사들은 할아버지의 강직한 성격에 놀라고 분노에 가까운 몸부림을 보면서 괄괄한 그 기운에 다시 한번 놀랐다고 한다. 할아버지께서는 본인에게 다가오는 죽음을 벗어나려 하셨을까, 아니면 이 어줍지 않은 치료로 생을 연명하는 자신의 처지에 화가 났을까.

“병원과 재택요양의 생각은 완전히 반대인 경우가 많습니다. 병원에서 상식으로 통하는 것이 재택요양에서는 비상식이기도 하니까요.” “삼킴 장애와 인공영양에 대해서는 의사에 따라 생각에 차이가 있는 게 현실입니다.”

 

환자가 얼마나 입으로 먹고 싶어 하는지 병원 의사들은 그 마음을 알고 있는 걸까? 입을 통해 먹는 행위에 대한 환자나 가족의 간절한 소망을 제대로 모로는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많은 의사들은 ‘입으로 먹으면 오연성 폐렴이 일어날 가능성이 높다⟶위루나 고칼로리 수액을 준비해야 한다’는 주문에 묶여 있어서 헤어날 방법이 없는 것처럼 보인다. ‘환자가 이렇게 원하는데 어떻게 해서든 뭔가 먹게 해주고 싶다. 먹는 기쯤을 빼앗고 싶지 않다’는 발상의 전환이 없는 한, 그런 시도를 할 리가 없으니까 말이다.(p.99)

실제로 할아버지의 담당 의사는 식사를 계속하시거나 침을 삼키다 보면 폐렴의 위험이 있을 지도 모른다고 설명했는데 저자가 책에서 말하는 ‘오연성 폐렴’을 뜻하는 것 같다. 책에 따르면 죽음에 이르른 많은 환자들에게 병원에서는 ‘위루’와 같은 방법으로 영양분을 공급한다고 한다. 할아버지의 몸에 연결된 그 많던 호스들도 아마도 ‘위루’를 위한 장치였을 것이다.

 

평온사라는 말을 쓸 때, 나는 노쇠나 치매 종말기, 혹은 암 말기와 장기부전(폐, 간, 심장, 신장 등 주요 장기가 제 기능을 못 하는 상태)으로 인한 죽음을 떠올린다. '자연사‘는 말 그대로 자연스러운 생의 과정 끝에 있는 죽음이라고 할 수 있다. 한편 ’존엄사‘는 교통사고 등으로 의식이 돌아오지 않는 혼수상태(천연성 의식장애)의 연명 중지까지 포함해서 좀 더 넓은 의미로 사용된다. (p.43)

할아버지의 몸뚱아리를 우리와 맞닿게 해준 작은 고무 호스, 그리고 할아버지의 장롱 한켠에 미리부터 마련해서 어떤 순서로 입혀야 하는지까지 하나하나 메모까지 남겨 놓은 수의(壽衣)의 차이는 무엇이었을까. 요양병원에 할아버지를 모시기 문제를 의논하기에 우선하여, 우리는 할아버지의 정신이 모든 것을 기억하실 수 있으실 때 ‘평온사’를 택할 수 있는 기회를 따로 드렸어야 했을까. 모르겠다, 어떤 선택이건 할아버지의 아들들과 며느리들은 평소의 뜻을 충분히 아셨으니까 좋은 선택을 하셨던 것이겠지.

 

눈을 감는 순간까지 서재에 틀어박혀 오로지 책만 읽었던 말기암환자도 있었다. 곧 죽을 텐데 이제 와서 독서가 다 무슨 소용이냐는 생각은 큰 잘못이다. 마지막까지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할 수 있는 자유야말로 진정한 존엄이 아닐까?(p.84)

할아버지께서 어느 날 아빠께 부탁하신 것이 있다 하셨다. 입원하시던 날에 쓰고 계셨던 모자가 보이지 않는다고 응급실에 있는 건 아닌지 확인해 보라고. 수술 때문에 대충 깎인 짧은 머리카락과 생기 없어 보이는 환자복이 얼마나 싫으셨을까. 늘 깔끔한 차림새의 멋쟁이셨던 할아버지는 친척 손주의 결혼식날을 쓰고 가셨던 모자를 기억해내셨던 것이다. 그런 당신께서, 자신의 손을 거친 것이면 무엇이건 따로 정리해두시고 이름표를 달아두시던 꼼꼼한 당신께서. 간혹 새벽에 정신을 차려 자신을 보았을 땐 얼마나 괴로우셨을까. 자신도 기억할 수 없는 사람들(여기엔 나도 포함되어 있다)의 얼굴을 떠올리느라, 알 수 없는 호스들의 정체를 밝히느라 얼마나 힘드셨을까. 새벽의 그 모든 몸부림은 어쩌면 덤덤하고도 당당하게 죽음을 맞이하고 싶으셨던 할아버지의 역정이 아니셨을까, 문득 생각해본다.

평온사는 죽는 순간의 일이 아니라, 삶에서 죽음에 이르는 일련의 과정을 가르킨다. 제대로 된 평온사를 거두기 위해서는 환자 자신도 가족도 사후 준비까지 해놓는 것이 중요하다. 준비를 해보면 당사자는 당사자대로 가족은 가족대로 지금 무엇을 해야 하는지가 명확하게 보인다. (p.119)

 

 

 

그 언젠가 대학생 시절에 교육학의 어떤 과목 시간에 유언장을 작성해 오라는 과제를 받은 일이 있었다. 내가 죽으면 힘들 사람들을 위한 안부와 위로의 말을 잔뜩 썼었다. 20대에게 갑자기 찾아온 죽음은 얼마나 아련하면서도 감성적이었는지 생각해보면 부끄럽다. 직접 보고 듣고 경험한 죽음은 냉정한 현실이었는 것을. 병마와 싸우는 환자들의 곁을 지키면서 죽음의 현실을 냉정하게 바라보는 저자의 진짜 뜻을 알 것 같다. 때문에 책의 부록으로 실린 ‘사전의료의향서’는 사뭇 중요해보이기까지 하다.

 

려운 책이었다, 죽음을 거론하는 책이었기에. 그리고 작년에 돌아가신 할아버지의 고독한 싸움을 떠올리게 해주는 책이었기에. 하지만 어쩌면 이 책 덕분에 나는 나의 부모님과 나의 죽음을, 차분히 침착하게 준비해볼 수 있지 않을까. 죽음은 언제 어떤 방식으로 우리에게 다가올지 모른다지만, 그때의 내 마지막은 인간다운 존엄함을 잃지 않는 순간으로 남겨지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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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물은 알고 있다
대니얼 샤모비츠 지음, 이지윤 옮김, 류충민 감수 / 다른 / 201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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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칼랑코에라는 식물을 키우고 있다.

아무것도 모르던 첫해에 꽃이 진 이후에 꽃대를 따주지 않고 방치시켜 놓았다가

올해, 3년차가 되도록 꽃구경을 못하고 있는, 얄미운 녀석.

꽃을 보기 위해서 지난 3~4주간 단일처리까지 해주었다.

칼랑코에라는 이 식물은 해가 짧아야(밤 시간이 일정 시간 이상이 되어야)

꽃을 피우는 단일 식물이기 때문에 시작한 실험이었다.

 

다른 화분보다 먼저 상자를 씌워서 밤시간으로 처리하고,

다시 남들보다 조금 늦게 해를 보게 했다. 이런 과정을 3주~4주간 해주면 꽃대를 빼어 문다고 하는데 영 소식이 없었다.

 

그러던 중에 『식물은 알고 있다』를 읽게 되었다.

책을 읽으면서 나의 얕은 지식을 한탄할 수 밖에 없었다.

어쩌면 나의 칼랑코에는 이렇게 단순한 조건으로(‘변인 통제’라는 말을 쓰고 싶지만, 너무 교과서적인가 싶어 뺀다)

꽃을 보여줄 녀석이 아닐지도 몰라, 지금의 심정이다.

그리고 지금은 상자를 치워 버렸다. ‘그래, 마음대로 자라라’ 하는 마음으로.

 

 

이 책 『식물은 알고 있다』는 무척 흥미로운 책이다.

우선, 제목부터 식물을 키우는 사람 모두가 수긍할 수 있게 지어졌다.

‘식물은 알고 있긴 하지...’하면서 펼치면 식물은 어떻게 보는지, 냄새를 맡는지, 느끼는지,

듣는지, 자신의 위치를 아는지, 기억하는지를 분류해가며 설명해두었다.

 

아마존 베스트셀러로 손꼽히는 책이라 적혀 있어 그 중압감에 시달리며

어렵게 책장을 펼치긴 했지만 사실 별거(?) 아니다, 꼭 고3 시절의 생물Ⅱ를 공부하는 기분이다.

굴지성, 굴광성, 광주기성, 살리실산, 에틸렌 가스, 로돕신... 그 시절에 자주 봤던 용어들이

그 시절의 기억을 되돌려주었다.(난 그 시절, 그 공부를 좀 즐거워 했던 편이다.^^)

흥미로운 점은 그 어려운 용어들이나 식물의 성향을 설명하기 위해 제시된 실험들이

딱딱하고 어려울 것이라는 선입견과는 다르게, 쉽게 잘 설명되어 있다는 것이다.

아마도 나처럼 생물Ⅱ를 이수한 사람이 아니더라도 실험이 어떻게 진행되는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가장 단순한 모델로 보면 파이토크롬은 빛으로 작동되는 스위치이다. 적색광은 파이토크롬을 활성화시켜 초적광을 수용하기에 적합한 형태로 바꾼다. 초적광은 파이토크롬을 비활성화하고, 적색광을 받아들이기에 적합한 형태로 바꾼다. 생태학적으로 보면 꽤나 이치에 맞다. 자연 속에서 모든 식물이 하루를 마치면서 노을을 보며 마지막으로 보는 빛이 초적광이면, 이것은 식물에게 ‘스위치를 꺼라’라는 명확한 신호를 보내는 것이다.(p.029)

파이토크롬이라는 낯선 ‘광수용체’를 설명해놓은 부분이다.

이 광수용체는 꽃을 피우게 하는 ‘적색광’과 꽃이 피지 않게 하는

‘초적광’을 알아볼 수 있는 부분인데 ‘스위치’라는 비유를 들어 놓았다. 얼마나 이해하기 쉬운가.

식물들은 마지막으로 적색광을 본 것이 언제인지를 알아보며 그것을 통해 자신의 성장을 조절한다고 한다.

그렇다면 내가 돌보는 칼랑코에에 해가 지기 전부터 상자를 씌워둔다고 꼭 꽃을 피우는 건 아닐 수도 있겠다고 첫 번째로 수긍한 부분이다.

 

특정 색의 빛을 보지 못하는 이 다수의 돌연변이들은 빛을 흡수하는 특정 광수용체에 결함이 있었다. 파이토크롬이 없는 식물은 적색광 속에서 마치 어둠 속에 있듯이 자랐다. 파이토크롬이 없는 식물은 적색광 속에서 마치 어둠 속에 있듯이 자랐다. 놀랍게도 둘이 한 쌍으로 작동되는 광수용체가 존재하는데, 그 광수용체 중 하나는 흐린 빛에, 다른 하나는 밝은 빛에 특화되어 있다. 길고 복잡한 얘기를 간단하게 말하면, 우리는 이제 애기장대가 적어도 11개의 광수용체를 가진다는 사실을 안다. 어떤 광수용체는 싹트는 시기를, 어떤 것은 빛을 향해 구부러지는 시점을, 어떤 것은 개화할 때를, 어떤 것은 밤 시간임을 애기장대에게 말해 준다. 또 어떤 광수용체는 비추는 빛이 많다는 것을, 어떤 것은 그 빛이 흐리다는 것을 알려주고, 또 어떤 광수용체는 시간을 지키는 것을 도와준다.(p.032, 034)

칼랑코에의 단일처리 실험을 살짝 주춤하게 했던 두 번째 부분,

‘흐린 빛에’ 또는 ‘밝은 빛에’ 특화된 광수용체라니. 새삼 내가 덮어씌워둔 상자를 의심하게 되어 버렸다.

상자의 틈으로 아주 흐린 빛이 흘러 들어가서

내 칼랑코에는 ‘눈 가리고 아웅’하는 격인 단일실험을 우습게 만든 건 아닌가 하는 마음.

덕분에 나는 칼랑코에에게 자유를 허락할 수 있던 것이겠지.

 

 

책을 읽으면서 또 하나의 충격이 있었다.

우리에게 너무 익숙한 ‘식물에게 클래식을 들려주면 식물이 잘 자란다’는 속설.

이 책에서는 그 풍문의 유래를 시원하게 밝혀준다.

자신을 “의사의 아내, 살림꾼이자 15명 손주들의 할머니”라고 소개하길 좋아했던 도로시 리탈렉은 자신의 마지막 자녀가 대학을 졸업한 1964년, 지금은 사라진 템플부엘대학Temple Buell College에 신입생으로 입학했다. 전문적인 메조소프라노 가수였던 리탈렉은 종종 유대교 회당, 교회, 장례식장에서 공연을 했고, 템플부엘에서 음악을 전공하기로 결심했다. 그녀는 과학 필수과목을 이수하기 위해 생물학 개론을 수강했고, 그녀의 선생님은 그녀가 관심 있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연구나 실험을 해보라며 격려했다. 리탈렉은 생물 필수과목과 음악에 대한 사랑을 병치하여, 주류 과학계에서는 인정하지 않지만 대중문화에서는 빠르게 받아들여진 책 한 권을 써냈다.

이렇게 탄생한 리탈렉의 『음악과 식물의 소리』는 1960년대의 문화 정치적 기후를 보여 주는 창구인 동시에 그녀의 관점을 담아냈다. 리탈렉은 시끄러운 록 음악이 대학생들 사이에서 유행하는 반사회적 행동과 연관되었다고 보는 사회적 부수주의자와, 음악과 물리와 모든 자연이 성스러운 조화를 이룬다고 여기는 뉴에이지를 믿는 영성주의자의 독특한 홉합물이라는 인상을 준다. (p.104)

리탈렉이라는 아주머니는 음악에 조예가 깊었고,

(전공을 이수하기 위한 필수과정으로서) 생물학 개론의 수업을 들으면서

식물과 음악 사이의 관계를 밝히고 싶어하는 실험을 했다고 한다.

리탈렉 여사는 바흐, 쇤베르크, 지미 헨드릭스, 레드 제플린을 비롯한 다양한 음악에 식물들을 노출시켰고

그 결과 부드러운 클래식 음악에 노출된 식물들은 번창했고 그 외의 음악들에는 성장을 멈추었다는 결과를 내놓았다.

이 결과는 대중적인 매체를 통해 퍼져 나갔고 사람들은 그녀의 주장에 모두 수긍하게 되었다. 심지어는 나마저도.

나를 비롯한 다른 제플린 팬들에게는 다행스럽게도 리탈렉의 연구는 과학적으로 결점투성이었다. 예를 들어, 각 실험에 사용한 식물의 수는 다섯 개 미만으로 아주 적었다. 그녀의 연구에 사용한 식물의 수도 너무 적어 통계적 분석에도 충분치 않았다. 실험 설계도 형편없었다. 어떤 연구는 그녀의 친구 집에서 진행됐다. 토양 습도와 같은 한도는 손가락으로 토양을 만져 보는 것으로 판단했다. 리탈렉은 자신의 책에 수많은 전문가들을 인용했지만 그들 대부분은 생물학자가 아니었다. 그들은 음악, 물리, 신학 전문가였고, 상당수의 인용구들이 과학적 자격이 없는 원천에서 나온 것들이었다. 그러나 가장 큰 문제점은 그녀의 연구가 믿을 만한 연구실에서 모사된 적이 없다는 점이었다.(p.107)

그러나, 믿음직한 실험이었을까? 우리는 그 결과만을 맹신한 것은 아니었나.

책에서는 리탈렉 여사의 실험의 허점을 짚어준다. (위에 인용해둔 107페이지 참고)

또 이 대중적인 실험에 영향을 받아 같은 실험이지만

‘엄격한 과학적 대조군을 적용’하여 실험을 다시 했다는 이야기도 실려 있다.

여기서 리탈렉 여사와는 다른 결론을 내놓았다는 대단한 사실을 알고 있었던 분?

(이 결과가 널리퍼지지 못한 이유는, ‘평판 높은 전문 과학 학술지에 게재되었지만,

일반 대중들은 보지 못했다’라고 설명해주었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생물Ⅱ의 모의고사에서 단 한번도 ‘음악’과 관련된 실험문제를 본 적이 없다.

'클래식 음악이 식물의 성장에 도움을 준다'가 확실한 명제였다면

문제집 그 어떤 곳에서라도 나왔어야 하지 않을까, 뒤늦게 반성해본다.

의심없이 믿고 싶어한 결과가 아니었을까를 생각하면서.

 

 

책 속에 나오는 실험들은 굉장히 재미있고 쉽게 설명되어 있다.

딱딱한 용어들이 나오는 것도 사실이지만, 그에 대한 비유도 적절한 편이고

실험의 모양이나 식물의 특징을 그림으로도 실어놓았기 때문에 어렵지만은 않다.

때문에 책의 얇은 두께에 비해 내용이 알차다.

 

넓은 오지랖으로 미리 걱정해보자면(?) 이 책 때문에 생물Ⅱ에 해당하는

실험 비교 문제, 변인 통제 문제, 결론 도출 문제 따위가 더 폭이 넓어지는 것은 아닐까?

지구 중력을 알아볼 수 있는지를 밝히기 위한 ‘나이트의 물레방아’ 실험이나

다윈이 했다고 하는 굴광성 연구의 ‘모종의 뿌리 처리’같은 경우는 정말 탐나는 문제가 될텐데.

 

 

 

식물과 친해지고 싶고, 식물이 가진 매력을 과학의 입장에서 알아보고 싶은 분들은 꼭 읽어보시기를 바란다.

식물은 분명 우리가 생각하지 못한 방식으로 보고, 듣고, 느끼고, 냄새 맡고, 자신의 위치를 알고, 기억을 하고 있다는 걸, 깨달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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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감상 초보자가 가장 알고 싶은 67가지
김소영 지음 / 소울메이트 / 201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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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이 도착한 날은 -하필이면- 뮤지컬을 보러 가는 날이었다.

중학생 때 뮤지컬을 보고 ‘내 스타일이야’란 운명의 종소리(?)를 들었던 나와,

예술이나 문화공연에 관심이 전혀 없던 남자친구가 처음으로 함께 공연장에 가는 날의 오전에 책이 도착했다.

뮤지컬이란 장르에 대해 잘 모르는 남자친구에게, 친절하고 멋진 비유를 해주고 싶었다.

막 도착한 책을 뒤적여 뮤지컬에 대한 부분만 슬쩍 읽어보았는데

‘뮤지컬은 날 즐겁게 해주려는 남자친구’라는 소제목,

‘모든 공연이 무대에서 실시간으로 벌어지는 일종의 생방송이지만 그 중에서도 뮤지컬은 뉴스와 가장 흡사하다.’이란 구절이 보였다.

‘아니, 이런 비유 밖에 실려 있지 않은 거야?’하는 실망감에 나는 한동안 이 책을 외면하고 말았다.

(돌이켜 생각해보니『오만과 편견』에 비할 법한, 잘못된 만남이었다.)

 

그리고 몇 주 후에 다시 맞이하게 된 책.

이미 실망 해버렸던 첫만남 후여서 그런가,

예술에 대한 관심이 많다고 자부하는 나를 도발하고 있는 듯한 제목도 달갑지 않았다.

굵게 박힌 제목 속에서 ‘초보자‘란 세글자가 나를 노려보고 있는 것 같았다.

우리의 문화 속에서 ‘초보’는 허겁지겁 신고 나온 ‘구멍난 양말’ 같은 것 아니었던가.

어디에서건 감추어야 할 것만 같고 괜히 누군가에게 들킬까봐 걱정되는 것.

괜히 ’난 너한테 초보라고 딱지 맞고 싶지 않은데?‘하는 신경전을 벌이면서 난 책장을 넘기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81페이지를 보는 순간, 나는 멈칫하고 말았다.

‘미술관, 갤러리, 대안공간의 차이점‘이라는 소제목을 만나면서부터다.

‘차이가 있....어?'

그때까지 ’다 아는 내용을 풀어서 말하고 있네‘하는 삐딱이였던 나는 다시 처음부터 책을 정독했다.

 

 

 

다시 읽으니 책은 차분하고 알기 쉽게, 친절할 정도로 열심히 예술에 대한 이야기들을 가득 담고 있었다.

이런 개념을 하나라도 적용해야 현대예술을 해석할 수 있다. 이것이 예술철학자였던 아서 단토가 앤디 워홀의 <브릴로 상자>를 본 후 ‘예술의 종말’을 고한 이유다. <브릴로 상자>는 실생활에서 쓰는 브릴로 상자와 시각적인 차이를 전혀 찾아볼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예술로 정의되었기 때문이다. 작품이 무엇인지 알고자 한다면 감각적 경험을 이성적 사유로 바꿔야 한다. 머리를 식히려고 보는 예술인데 머리는 더 복잡해졌다. p.56

미술관에 가면 난 호들갑스러워 지는 편이었다.

이리 갸웃 저리 갸웃, 멀리서 봤다가 가까이에서 봤다가 하면서 나름의 감상법을 가지고 있다.

그렇게 나만의 포인트를 찾은 후에 제목과 비교한다.

제목과 내가 받은 인상이 다르면 ‘비내리는 시험지를 받아든 학생’이 된 기분이어서 미술관이 싫어지기도 했었다.

내가 감상하는 대부분의 현대예술은 작가의 내면 상태를 나타내는 추상작품들이 대부분이 되어 버렸고

때문에 그 마음 속을 들여다 보기 위해서는 다른 학문의 도구가 필요했던 것이란다.

그런 것이 초보의 발길조차 미술관에서 끊어버리게 하는 점은 아닐까. 내 나름의 감상으로 미술을 보면 안되는 걸까?

김소영 기자님도 이런 면에서는 내 편만 같다.

임금의 성은을 입으면 후궁이 되는 것처럼 평론가의 선택에 ‘예술품’으로 거듭나곤 하는 지금의 현실과

백남준 선생의 “예술은 사기”라는 말을 슬쩍 빗대는 부분에선

나만 이상한 것은 아니었구나 하는 위로를 받는 기분이다.

작품도 못 만지고, 사진도 못 찍고, 뛰어서도 안 되고, 말도 크게 하지 못 하는데 호기심 많은 애들은 왜 데리고 오라는 것인지. 그게 어렵다면 아이들을 살살 달래면서 볼 수 있게 어린이용 도록도 나오고, 재미있는 포토존도 있고, 구경하다 잠시 쉴 수 있는 의자나, 바깥에 나오면 음료수와 빵을 먹을 수 있는 작은 쉼터라도 있었으면 좋겠다. 그래서 아이와 미술관에 가는 길이 조금 더 수월해지길 소망한다. p.130

어린 시절에는 미술도, 클래식도 오감(五感)을 다 이용하여 느꼈던 것 같은데,

어른이 되어가면서 그림은 ‘미술시간’에 책으로 배우고, 클래식은 ‘음악 듣기 평가’를 위해 익숙해졌던 것 같다.

가끔은 정말 아무런 이론 없이 편안하게 보고 듣고 표현하고 싶은데.

아이들에게 '예술감상'은 어떻게 다가가야 할까, 그걸 위해선 어떤 문화가 준비되어야 할까.

 

움베르트 에코는 『장미의 이름』을 쓰고 특이하게 작품을 쓰게 된 경위를 『창작 노트』란 제목의 에세이로 공개했다. 에코는 소설 앞부분에 수도원을 소개하는 100페이지가령의 장문의 글을 ‘일부러’ 썼다고 고백했다. 소설로 들어간다는 것은 산을 오르는 것이며, 산을 오르려면 호흡법을 배우고 행보를 익혀야 한다는 것이다. “배울 생각이 없으면 그 자리에 남아 있는 게 낫다.”는 에코의 주장은 비단 소설에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리라. 음악도 미술도 춤도 마찬가지다. 예술감상에는 분명 진입장벽이 존재한다. p.52~53

책 속에 들어 있는 사진 이야기, 그림 이야기, 그리고 발레와 우리 춤의 이야기 앞에서

나는 수없이 마음이 흔들렸다.

이름도 잘 알지 못했던 우리 화백이 주목받지 못했던 이야기나

퓰리쳐 상을 받은 이후 오히려 사람들에게 비난 받았던 어느 사진가의 이야기에

가슴이 뭉클해져 슬퍼지기도 했다. 

 

 

 

뮤지컬에 있어선 수시로 뮤지컬 넘버를 모으고 흥얼거리고

기회가 닿으면 직접 보러 가거나 무대 장치에 대한 정보를 공부하던 ‘우등생’이었지만,

‘예술 전반’에 있어서 나는 ‘초보자’가 맞았다.

책을 반쯤 읽으면서부터 날이 선 눈초리는 슬그머니 내리고,

‘김소영 선생님‘의 좋은 말씀을 전해 듣는 ’예술 감상학(?)‘ 학생으로 빙의되었다할까, 마음이 편안하고 즐거워졌다.

콕 짚어 지적한 그 ’초보자‘란 낮은 자리를 인정하니 우리의 만남은 아름다워졌다.

 

감상하기 편하게 많고 많은 그림이나

작가(작곡가,예술가)의 연대기가 실려 있는 책은 아니다.

유명한 이름 뒤에 숨은 뒷이야기나 사소한 팁들을 많이 많이 실어놓았을 뿐이다.

아는 만큼 관심이 가고 관심이 생기면 직접 만날 수 밖에 없는 ‘예술 애호가’로 나아가는 기회를 마련해주기 위해서일까.

 

이 책을 읽으면 발끝에 신경을 쓰느라 당당히 걷지도 못했던 ‘구멍난 양말’을 벗어던질 수 있다.

시원한 걸음 속에서 발이 아닌 다른 것에 온통 집중할 수 있는 것처럼,

그림 속 아름다움이 보이고 발레리나의 동작이나 의상 속에서 이야기를 보며, 뜨거움이 느껴지는 판소리를 열렬히 들을 수 있다.

책을 다 읽고 나니 책이 다시 보였다.

오래도록 간직해도 좋을, 깔끔한 예술 감상의 길잡이 책으로서 와닿는다. 

사진이나 그림 설명에서 부족한 이미지는 직접 감상하러 다니는 것으로 보답해볼까?

미술관이나 클래식 공연장에서, 혹은 외국인들이 가득찬 판소리 공연장 같은 곳에서 주눅들지 말자.

책을 읽은 후라면, -적어도- 우리는 더 이상 초보가 아니어도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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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렌치 시크 : 파리지엔 스타일
권희경 지음 / 북웨이 / 2011년 4월
평점 :
절판


화보들이 나를 끌어당기는 책 『프렌치시크』

 

한 마디로 말하면: 권희경의 『프렌치시크』는 ‘프랑스 여성’+‘옷’=프랑스의 패션에 관한 책이다.

내가 읽어 본 ‘프랑스 여성’에 관한 책들:

프랑스 여자는 살찌지 않는다/미레이유 쥴리아노

프렌치 스타일/미레이유 쥴리아노

여성, 그 기분 좋고 살아있는 느낌/데브라 올리비에

내가 읽어 본 ‘옷’에 관한 책들:

옷 이야기/김은정

 

 

『프렌치시크』이 책의 단점:

아름다운 단어 ‘프렌치 시크’란 이름 아래에 이 책을 기획할 때, 얼마나 힘들었을까.

추상적인 개념인 프렌치시크를 표현하기 위해 앞부분에서는 프랑스 여자들이 가진 매력을 따로 설명하였지만

다른 책에서 길게 할애되어 설명된 부분들이(특히나 미레이유 쥴리아노 책 속의 주장들과 흡사) 정말 짧.게. 정리되어 있다, 아쉬울 만큼.

그리고 나머지 부분은 대게 ‘의상 기초 상식’ 선에서 설명을 하고 있다,

굳이 이 책의 제목을 ‘프렌치 시크’라고 명명하지 않아도 되었지 않았나 하는 기분도 든다.

『프렌치시크』 이 책의 장점:

프랑스 여인들에게서 느껴지는 추상적인 이미지를 설명하고 싶어서 였을까, 정말 많은 이미지들이 쓰였다.

프랑스를 대표하는(혹은 잘나가는) 언니들의 간략한 소개와 사진들을 실어 두었다.

내가 사랑하는 배우들이 나와서 반갑기도 했지만, 이 이미지들의 판권은 어떻게 사왔을까 궁금하기도 하다.(돈이 꽤 들었을텐데?)

앞의 간단한 부분들이 지나면 책의 핵심인 ‘패션’, 이곳에서도 정말 많은 이미지가 쏟.아.진.다.

옷은 재질별로 아이템별로 실어두었으며, 프랑스 브랜드 소개 및 쇼핑 팁까지 실려 있다.

화보 같은 책이라서 글보다 이해가 더 빠르다.

프랑스 여자들의 화장법(?)이나 헤어 같은 테마도 부분적으로 짧게 실려 있어 보기엔 좋다.

(하지만 공통점을 발견하기 힘들다. 이것은 '프렌치시크'가 어려운 이유가 아닐까?

이 책이 커버할 수 없는 부분이므로 애교로 넘어갈 수 있다.ㅎㅎ)

 

『프렌치시크』의 총평:

이미지가 가득찬, 그리고 두꺼운 표지의 양장본으로 발간된 이책은

‘미용’ 부분에 눈을 뜨고 ‘패션’ 전반에 대한 상식이 필요한

아가씨들(혹은 소녀들)에게 소장 욕구를 불러일으키는 책이다.

예쁘고 발랄하며 아름다운 사진들이 가득하다.

간혹 곁에 두고 나의 패션은 어떻게 구성해볼까-하는 감(!)을 잡기에도 좋다.

하지만, ‘프렌치 시크’라는 말 속에 묻어나는

프랑스 여인들만의 이야기나 문화를 엿보기엔 조금 부족한 책이다.

(프랑스의 페미니즘 때문에 ‘프랑스 여자’에 대해 이책 저책 찾아보던 내게는 편안하게 쉬어가는 책이나 다름 없었다.)

 

즐거운 책이고 언제든 마음껏 펼쳐 취향을 업그레이드하고 싶은 책이기도 하다.

비유컨데 양장본 패션 잡지 같은 느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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퀘럼이랑 집에서 쉽게 허브 키우기 - 베란다 텃밭에서도 즐기는 홈 가드닝
오하나 지음 / 서교출판사 / 2013년 4월
평점 :
품절


“제일 흔하게 볼 수 있는 허브가 뭐게? 깻잎.”

‘허브‘라면 ’섬유유연제에 추출물로 들어간 식물’이라고 낯설게만 생각하는 사람이 있으면,

난 이렇게 자문자답하곤 한다.

 

허브의 매력을 처음 알게 된 것은, 약 십여년 전 ‘에센셜오일‘이라는 걸 통해서였다.

화학성분이나 특정 음식에 예민하게 반응하는 내 몸을 다스리고 싶어서

자연적인 것 알아보던 중에 알게 되었는데 시작은 아로마테라피(향기치료)였고, 그 다음은 허브차였다.

그 외에 허브를 활용한 다양한 제품들을 부러 찾아보기도 했다.

화장품과 방향제, 향신료에 이르기까지 ’선물용‘으로 따로 분류될 법한 좋은 제품엔 어김없이 ’허브 성분 함유‘라는 문구가 꼭 들어 있었다.

그러나 ’허브‘라고 뭉뚱그려 설명만 하고 그 허브의 이름이 뭔지 표시되지 않은 제품들이 많이 있었다.

특정한 허브마다 효과는 다른데 내가 찾는 허브 찾기가 쉽지 않았던 거였다.

문득 생각했다.

‘각자의 허브가 효과를 발휘하게 준비된 제품들은 많지 않구나. 정말 자연 그대로의 상태인 허브를 접하는 건 효과가 어떨까?’ 그렇게 나는 허브식물들을 키워보고 싶다는 마음을 먹게 되었다.

 

본격적으로 허브 종류의 식물을 키우게 된 것은 마음으로 허브를 사랑하기 시작한 후 꽤 시간이 흘러서였다.

정확히 말하면 1~2년 전, 당시에 살던 원룸이 오후 시간 동안 햇살이 잘 든다는 사실을 깨달은 후.

멋모르고 들이게 된 화분을 보면서 햇빛과 호흡하는 녀석을 몰래몰래 훔쳐보며 일상이 즐거워졌다.

그러나 몇 개월이 지나니 마냥 즐겁지만은 못했다. 가을이 되고 겨울이 되면서 화분의 상태가 변해가는 것을 보았으니까.

날씨나 습도에 따라, 혹은 다른 잎의 빛깔이나 줄기의 상태에 따라 많은 것을 배워야 했다.

하나부터 열까지 거의 모든 것을 ‘찾아 공부해야 하는’ 시기가 온 것이다.

삽목이나 물꽂이, 전정 같은 어려운 원예 용어들까지 하나씩 배워나갔다.

흙은 어떤 것을 써야 하는지, 화분은 아무거나 써도 될지 인터넷을 쥐잡듯이 뒤지고 다니면서 정보들을 모았다.

(사실 그 시절에 저자(=블로그 닉네임: 퀘럼)의 블로그를 처음 알게 되었다.)

 

아, 이 책이 그때의 내게 있었더라면!

『퀘럼이랑 집에서 쉽게 허브 키우기』는 허브를 직접 기르는 사람들을 위한 책이다.

58개의 허브들의 주요 특색이 보기 쉽게 정리되어 있다.

한 허브 당 두 페이지 혹은 그 이상을 할애하여 구성하였는데, 찾아보기도 쉽고 정리도 깔끔하다.

허브를 키우는 사람들이 꼭 알아야 할 정보를,

재미있는 소제목과 큰 사진을 함께 넣어 간략한 소개를 하고

그 다음 페이지에는 작은 ‘과정 사진들’이 하나하나 실려 있다.

씨앗으로 키웠는지 모종으로 키웠는지, 과정 중에 무얼 챙겨야 했는지

저자의 경험이 묻어나는 친절하고 꼼꼼한 조언들이 가득하다.

물주기는 어떻게 해야 할지, 화분은 어떻게 해야 할지가 한눈에 보이고,

원예 전반에 대한 간단한 메모, 짝꿍 허브나 기타 간단한 허브들의 소개까지 함께 있다.

책에서 거론된 허브들을 합치면 대략 100가지라고 한다. (책을 출간한 이후, 퀘럼 님의 댓글에서 확인했다.)

 

그 시절, 퀘럼 님의 블로그에서 제일 좋아했던 ‘수형 잡기’ 설명 그림이 책에도 실렸다. (왼쪽 위)

이 그림을 처음 봤을 때 이해가 잘 되었다. 그래서 캡쳐해서 저장해두고 허브들 가지치기 할 때마다 다시 보곤 했다.

 

그.러.나. 간과하지 말아야 한다, 뭘?

허브만을 위한 책은 아니라는 것을!

병충해에 대한 주의 사항이나 흙 종류에 대한 간략한 설명 등

원예 기초 상식도 앞 부분엔 언급되어 있다.

또 우리가 잊을 뻔한 사실은 양파나 고구마, 마늘, 고추나, 봉선화 해바라기, 커피나무 등등도 허브라는 것.

그러니 이 책 하나면 우리가 욕심내어 봄직한 초록이들을 키우는 노하우도 함께 배울 수 있다.

게다가 스페셜 페이지 같은 것이 들어 있어 '새싹채소나 콩나물 키우는 요령' 등도 들어 있다.

 

저자 오하나(퀘럼)님이 손꼽아 준, 일상 속의 허브들

:로즈마리, 라벤더, 레몬밤, 레몬버베나, 세이지 종류, 민트 종류, 바질, 캐모마일, 양파, 감자, 고추, 고구마, 참깨, 마늘, 옥수수, 미나리, 오이, 수세미, 포도, 레몬, 오렌지, 무화과, 석류, 대추, 구아바, 모과, 율무, 보리, 둥글레, 오미자, 생강, 결명자, 매화, 연꽃, 옥잠화, 봉선화, 해바라기, 나리꽃, 창포, 범부채, 질경이, 부레옥잠, 꽈리, 할미꽃, 복분자, 마, 인삼, 어성초, 은행나무, 소나무, 차나무, 측백나무, 커피나무 등 (p.21~22)

 

어디선가 허브 향기가 난다. 고개를 돌려보니 테이크 아웃 커피집이 보인다.

가게의 분위기를 살리려고 놓아둔 건것인지 선반에 어린 로즈마리가 놓여 있다.

‘허브의 대중화’가 반갑다. 그러나 난 말랑말랑한 갈색 포트를 보고 질겁을 하곤 한다.

‘아, 저 아이 금방 죽을 건데. 더 큰 곳으로 옮겨줘야 할텐데.’하면서.

어쩌면 『퀘럼이랑 집에서 쉽게 허브 키우기』가 필요한 곳이 아닐까.

며칠을 두고도 저 포트 그대로라면 참견쟁이 아가씨가 되어야겠다. 친해지면 또 모르지 이 책을 권할런지도.

^^흙과 식물은 몰라도 허브는 무턱대고 좋아하는 분들께 꼭 선물해드려야 할 책이다.

아니, 그 초록이들을 위해서 꼭 읽히자!

 

 

 

 

p.s.

참. 이 책을 읽고 새로 알게 된 허브 모종을 새로 질렀다는 건 비밀.

(책 속에 등장한 녀석들 중에 둘, 원래부터 키우고 싶었던 녀석 하나로 들였다. )

이번 지름의 목표는 오래도록 키우면서 예쁜 수형 잡기!!

새 허브들과 도란도란 사이가 좋아지면 모두 퀘럼 님과 이 책 덕분이리라. ^-^꼭 잘 키워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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