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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물은 알고 있다
대니얼 샤모비츠 지음, 이지윤 옮김, 류충민 감수 / 다른 / 2013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나는 칼랑코에라는 식물을 키우고 있다.
아무것도 모르던 첫해에 꽃이 진 이후에 꽃대를 따주지 않고 방치시켜 놓았다가
올해, 3년차가 되도록 꽃구경을 못하고 있는, 얄미운 녀석.
꽃을 보기 위해서 지난 3~4주간 단일처리까지 해주었다.
칼랑코에라는 이 식물은 해가 짧아야(밤 시간이 일정 시간 이상이 되어야)
꽃을 피우는 단일 식물이기 때문에 시작한 실험이었다.
다른 화분보다 먼저 상자를 씌워서 밤시간으로 처리하고,
다시 남들보다 조금 늦게 해를 보게 했다. 이런 과정을 3주~4주간 해주면 꽃대를 빼어 문다고 하는데 영 소식이 없었다.
그러던 중에 『식물은 알고 있다』를 읽게 되었다.
책을 읽으면서 나의 얕은 지식을 한탄할 수 밖에 없었다.
어쩌면 나의 칼랑코에는 이렇게 단순한 조건으로(‘변인 통제’라는 말을 쓰고 싶지만, 너무 교과서적인가 싶어 뺀다)
꽃을 보여줄 녀석이 아닐지도 몰라, 지금의 심정이다.
그리고 지금은 상자를 치워 버렸다. ‘그래, 마음대로 자라라’ 하는 마음으로.
이 책 『식물은 알고 있다』는 무척 흥미로운 책이다.
우선, 제목부터 식물을 키우는 사람 모두가 수긍할 수 있게 지어졌다.
‘식물은 알고 있긴 하지...’하면서 펼치면 식물은 어떻게 보는지, 냄새를 맡는지, 느끼는지,
듣는지, 자신의 위치를 아는지, 기억하는지를 분류해가며 설명해두었다.
아마존 베스트셀러로 손꼽히는 책이라 적혀 있어 그 중압감에 시달리며
어렵게 책장을 펼치긴 했지만 사실 별거(?) 아니다, 꼭 고3 시절의 생물Ⅱ를 공부하는 기분이다.
굴지성, 굴광성, 광주기성, 살리실산, 에틸렌 가스, 로돕신... 그 시절에 자주 봤던 용어들이
그 시절의 기억을 되돌려주었다.(난 그 시절, 그 공부를 좀 즐거워 했던 편이다.^^)
흥미로운 점은 그 어려운 용어들이나 식물의 성향을 설명하기 위해 제시된 실험들이
딱딱하고 어려울 것이라는 선입견과는 다르게, 쉽게 잘 설명되어 있다는 것이다.
아마도 나처럼 생물Ⅱ를 이수한 사람이 아니더라도 실험이 어떻게 진행되는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가장 단순한 모델로 보면 파이토크롬은 빛으로 작동되는 스위치이다. 적색광은 파이토크롬을 활성화시켜 초적광을 수용하기에 적합한 형태로 바꾼다. 초적광은 파이토크롬을 비활성화하고, 적색광을 받아들이기에 적합한 형태로 바꾼다. 생태학적으로 보면 꽤나 이치에 맞다. 자연 속에서 모든 식물이 하루를 마치면서 노을을 보며 마지막으로 보는 빛이 초적광이면, 이것은 식물에게 ‘스위치를 꺼라’라는 명확한 신호를 보내는 것이다.(p.029)
파이토크롬이라는 낯선 ‘광수용체’를 설명해놓은 부분이다.
이 광수용체는 꽃을 피우게 하는 ‘적색광’과 꽃이 피지 않게 하는
‘초적광’을 알아볼 수 있는 부분인데 ‘스위치’라는 비유를 들어 놓았다. 얼마나 이해하기 쉬운가.
식물들은 마지막으로 적색광을 본 것이 언제인지를 알아보며 그것을 통해 자신의 성장을 조절한다고 한다.
그렇다면 내가 돌보는 칼랑코에에 해가 지기 전부터 상자를 씌워둔다고 꼭 꽃을 피우는 건 아닐 수도 있겠다고 첫 번째로 수긍한 부분이다.
특정 색의 빛을 보지 못하는 이 다수의 돌연변이들은 빛을 흡수하는 특정 광수용체에 결함이 있었다. 파이토크롬이 없는 식물은 적색광 속에서 마치 어둠 속에 있듯이 자랐다. 파이토크롬이 없는 식물은 적색광 속에서 마치 어둠 속에 있듯이 자랐다. 놀랍게도 둘이 한 쌍으로 작동되는 광수용체가 존재하는데, 그 광수용체 중 하나는 흐린 빛에, 다른 하나는 밝은 빛에 특화되어 있다. 길고 복잡한 얘기를 간단하게 말하면, 우리는 이제 애기장대가 적어도 11개의 광수용체를 가진다는 사실을 안다. 어떤 광수용체는 싹트는 시기를, 어떤 것은 빛을 향해 구부러지는 시점을, 어떤 것은 개화할 때를, 어떤 것은 밤 시간임을 애기장대에게 말해 준다. 또 어떤 광수용체는 비추는 빛이 많다는 것을, 어떤 것은 그 빛이 흐리다는 것을 알려주고, 또 어떤 광수용체는 시간을 지키는 것을 도와준다.(p.032, 034)
칼랑코에의 단일처리 실험을 살짝 주춤하게 했던 두 번째 부분,
‘흐린 빛에’ 또는 ‘밝은 빛에’ 특화된 광수용체라니. 새삼 내가 덮어씌워둔 상자를 의심하게 되어 버렸다.
상자의 틈으로 아주 흐린 빛이 흘러 들어가서
내 칼랑코에는 ‘눈 가리고 아웅’하는 격인 단일실험을 우습게 만든 건 아닌가 하는 마음.
덕분에 나는 칼랑코에에게 자유를 허락할 수 있던 것이겠지.
책을 읽으면서 또 하나의 충격이 있었다.
우리에게 너무 익숙한 ‘식물에게 클래식을 들려주면 식물이 잘 자란다’는 속설.
이 책에서는 그 풍문의 유래를 시원하게 밝혀준다.
자신을 “의사의 아내, 살림꾼이자 15명 손주들의 할머니”라고 소개하길 좋아했던 도로시 리탈렉은 자신의 마지막 자녀가 대학을 졸업한 1964년, 지금은 사라진 템플부엘대학Temple Buell College에 신입생으로 입학했다. 전문적인 메조소프라노 가수였던 리탈렉은 종종 유대교 회당, 교회, 장례식장에서 공연을 했고, 템플부엘에서 음악을 전공하기로 결심했다. 그녀는 과학 필수과목을 이수하기 위해 생물학 개론을 수강했고, 그녀의 선생님은 그녀가 관심 있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연구나 실험을 해보라며 격려했다. 리탈렉은 생물 필수과목과 음악에 대한 사랑을 병치하여, 주류 과학계에서는 인정하지 않지만 대중문화에서는 빠르게 받아들여진 책 한 권을 써냈다.
이렇게 탄생한 리탈렉의 『음악과 식물의 소리』는 1960년대의 문화 정치적 기후를 보여 주는 창구인 동시에 그녀의 관점을 담아냈다. 리탈렉은 시끄러운 록 음악이 대학생들 사이에서 유행하는 반사회적 행동과 연관되었다고 보는 사회적 부수주의자와, 음악과 물리와 모든 자연이 성스러운 조화를 이룬다고 여기는 뉴에이지를 믿는 영성주의자의 독특한 홉합물이라는 인상을 준다. (p.104)
리탈렉이라는 아주머니는 음악에 조예가 깊었고,
(전공을 이수하기 위한 필수과정으로서) 생물학 개론의 수업을 들으면서
식물과 음악 사이의 관계를 밝히고 싶어하는 실험을 했다고 한다.
리탈렉 여사는 바흐, 쇤베르크, 지미 헨드릭스, 레드 제플린을 비롯한 다양한 음악에 식물들을 노출시켰고
그 결과 부드러운 클래식 음악에 노출된 식물들은 번창했고 그 외의 음악들에는 성장을 멈추었다는 결과를 내놓았다.
이 결과는 대중적인 매체를 통해 퍼져 나갔고 사람들은 그녀의 주장에 모두 수긍하게 되었다. 심지어는 나마저도.
나를 비롯한 다른 제플린 팬들에게는 다행스럽게도 리탈렉의 연구는 과학적으로 결점투성이었다. 예를 들어, 각 실험에 사용한 식물의 수는 다섯 개 미만으로 아주 적었다. 그녀의 연구에 사용한 식물의 수도 너무 적어 통계적 분석에도 충분치 않았다. 실험 설계도 형편없었다. 어떤 연구는 그녀의 친구 집에서 진행됐다. 토양 습도와 같은 한도는 손가락으로 토양을 만져 보는 것으로 판단했다. 리탈렉은 자신의 책에 수많은 전문가들을 인용했지만 그들 대부분은 생물학자가 아니었다. 그들은 음악, 물리, 신학 전문가였고, 상당수의 인용구들이 과학적 자격이 없는 원천에서 나온 것들이었다. 그러나 가장 큰 문제점은 그녀의 연구가 믿을 만한 연구실에서 모사된 적이 없다는 점이었다.(p.107)
그러나, 믿음직한 실험이었을까? 우리는 그 결과만을 맹신한 것은 아니었나.
책에서는 리탈렉 여사의 실험의 허점을 짚어준다. (위에 인용해둔 107페이지 참고)
또 이 대중적인 실험에 영향을 받아 같은 실험이지만
‘엄격한 과학적 대조군을 적용’하여 실험을 다시 했다는 이야기도 실려 있다.
여기서 리탈렉 여사와는 다른 결론을 내놓았다는 대단한 사실을 알고 있었던 분?
(이 결과가 널리퍼지지 못한 이유는, ‘평판 높은 전문 과학 학술지에 게재되었지만,
일반 대중들은 보지 못했다’라고 설명해주었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생물Ⅱ의 모의고사에서 단 한번도 ‘음악’과 관련된 실험문제를 본 적이 없다.
'클래식 음악이 식물의 성장에 도움을 준다'가 확실한 명제였다면
문제집 그 어떤 곳에서라도 나왔어야 하지 않을까, 뒤늦게 반성해본다.
의심없이 믿고 싶어한 결과가 아니었을까를 생각하면서.
책 속에 나오는 실험들은 굉장히 재미있고 쉽게 설명되어 있다.
딱딱한 용어들이 나오는 것도 사실이지만, 그에 대한 비유도 적절한 편이고
실험의 모양이나 식물의 특징을 그림으로도 실어놓았기 때문에 어렵지만은 않다.
때문에 책의 얇은 두께에 비해 내용이 알차다.
넓은 오지랖으로 미리 걱정해보자면(?) 이 책 때문에 생물Ⅱ에 해당하는
실험 비교 문제, 변인 통제 문제, 결론 도출 문제 따위가 더 폭이 넓어지는 것은 아닐까?
지구 중력을 알아볼 수 있는지를 밝히기 위한 ‘나이트의 물레방아’ 실험이나
다윈이 했다고 하는 굴광성 연구의 ‘모종의 뿌리 처리’같은 경우는 정말 탐나는 문제가 될텐데.
식물과 친해지고 싶고, 식물이 가진 매력을 과학의 입장에서 알아보고 싶은 분들은 꼭 읽어보시기를 바란다.
식물은 분명 우리가 생각하지 못한 방식으로 보고, 듣고, 느끼고, 냄새 맡고, 자신의 위치를 알고, 기억을 하고 있다는 걸, 깨달을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