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감상 초보자가 가장 알고 싶은 67가지
김소영 지음 / 소울메이트 / 2013년 2월
평점 :
절판


책이 도착한 날은 -하필이면- 뮤지컬을 보러 가는 날이었다.

중학생 때 뮤지컬을 보고 ‘내 스타일이야’란 운명의 종소리(?)를 들었던 나와,

예술이나 문화공연에 관심이 전혀 없던 남자친구가 처음으로 함께 공연장에 가는 날의 오전에 책이 도착했다.

뮤지컬이란 장르에 대해 잘 모르는 남자친구에게, 친절하고 멋진 비유를 해주고 싶었다.

막 도착한 책을 뒤적여 뮤지컬에 대한 부분만 슬쩍 읽어보았는데

‘뮤지컬은 날 즐겁게 해주려는 남자친구’라는 소제목,

‘모든 공연이 무대에서 실시간으로 벌어지는 일종의 생방송이지만 그 중에서도 뮤지컬은 뉴스와 가장 흡사하다.’이란 구절이 보였다.

‘아니, 이런 비유 밖에 실려 있지 않은 거야?’하는 실망감에 나는 한동안 이 책을 외면하고 말았다.

(돌이켜 생각해보니『오만과 편견』에 비할 법한, 잘못된 만남이었다.)

 

그리고 몇 주 후에 다시 맞이하게 된 책.

이미 실망 해버렸던 첫만남 후여서 그런가,

예술에 대한 관심이 많다고 자부하는 나를 도발하고 있는 듯한 제목도 달갑지 않았다.

굵게 박힌 제목 속에서 ‘초보자‘란 세글자가 나를 노려보고 있는 것 같았다.

우리의 문화 속에서 ‘초보’는 허겁지겁 신고 나온 ‘구멍난 양말’ 같은 것 아니었던가.

어디에서건 감추어야 할 것만 같고 괜히 누군가에게 들킬까봐 걱정되는 것.

괜히 ’난 너한테 초보라고 딱지 맞고 싶지 않은데?‘하는 신경전을 벌이면서 난 책장을 넘기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81페이지를 보는 순간, 나는 멈칫하고 말았다.

‘미술관, 갤러리, 대안공간의 차이점‘이라는 소제목을 만나면서부터다.

‘차이가 있....어?'

그때까지 ’다 아는 내용을 풀어서 말하고 있네‘하는 삐딱이였던 나는 다시 처음부터 책을 정독했다.

 

 

 

다시 읽으니 책은 차분하고 알기 쉽게, 친절할 정도로 열심히 예술에 대한 이야기들을 가득 담고 있었다.

이런 개념을 하나라도 적용해야 현대예술을 해석할 수 있다. 이것이 예술철학자였던 아서 단토가 앤디 워홀의 <브릴로 상자>를 본 후 ‘예술의 종말’을 고한 이유다. <브릴로 상자>는 실생활에서 쓰는 브릴로 상자와 시각적인 차이를 전혀 찾아볼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예술로 정의되었기 때문이다. 작품이 무엇인지 알고자 한다면 감각적 경험을 이성적 사유로 바꿔야 한다. 머리를 식히려고 보는 예술인데 머리는 더 복잡해졌다. p.56

미술관에 가면 난 호들갑스러워 지는 편이었다.

이리 갸웃 저리 갸웃, 멀리서 봤다가 가까이에서 봤다가 하면서 나름의 감상법을 가지고 있다.

그렇게 나만의 포인트를 찾은 후에 제목과 비교한다.

제목과 내가 받은 인상이 다르면 ‘비내리는 시험지를 받아든 학생’이 된 기분이어서 미술관이 싫어지기도 했었다.

내가 감상하는 대부분의 현대예술은 작가의 내면 상태를 나타내는 추상작품들이 대부분이 되어 버렸고

때문에 그 마음 속을 들여다 보기 위해서는 다른 학문의 도구가 필요했던 것이란다.

그런 것이 초보의 발길조차 미술관에서 끊어버리게 하는 점은 아닐까. 내 나름의 감상으로 미술을 보면 안되는 걸까?

김소영 기자님도 이런 면에서는 내 편만 같다.

임금의 성은을 입으면 후궁이 되는 것처럼 평론가의 선택에 ‘예술품’으로 거듭나곤 하는 지금의 현실과

백남준 선생의 “예술은 사기”라는 말을 슬쩍 빗대는 부분에선

나만 이상한 것은 아니었구나 하는 위로를 받는 기분이다.

작품도 못 만지고, 사진도 못 찍고, 뛰어서도 안 되고, 말도 크게 하지 못 하는데 호기심 많은 애들은 왜 데리고 오라는 것인지. 그게 어렵다면 아이들을 살살 달래면서 볼 수 있게 어린이용 도록도 나오고, 재미있는 포토존도 있고, 구경하다 잠시 쉴 수 있는 의자나, 바깥에 나오면 음료수와 빵을 먹을 수 있는 작은 쉼터라도 있었으면 좋겠다. 그래서 아이와 미술관에 가는 길이 조금 더 수월해지길 소망한다. p.130

어린 시절에는 미술도, 클래식도 오감(五感)을 다 이용하여 느꼈던 것 같은데,

어른이 되어가면서 그림은 ‘미술시간’에 책으로 배우고, 클래식은 ‘음악 듣기 평가’를 위해 익숙해졌던 것 같다.

가끔은 정말 아무런 이론 없이 편안하게 보고 듣고 표현하고 싶은데.

아이들에게 '예술감상'은 어떻게 다가가야 할까, 그걸 위해선 어떤 문화가 준비되어야 할까.

 

움베르트 에코는 『장미의 이름』을 쓰고 특이하게 작품을 쓰게 된 경위를 『창작 노트』란 제목의 에세이로 공개했다. 에코는 소설 앞부분에 수도원을 소개하는 100페이지가령의 장문의 글을 ‘일부러’ 썼다고 고백했다. 소설로 들어간다는 것은 산을 오르는 것이며, 산을 오르려면 호흡법을 배우고 행보를 익혀야 한다는 것이다. “배울 생각이 없으면 그 자리에 남아 있는 게 낫다.”는 에코의 주장은 비단 소설에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리라. 음악도 미술도 춤도 마찬가지다. 예술감상에는 분명 진입장벽이 존재한다. p.52~53

책 속에 들어 있는 사진 이야기, 그림 이야기, 그리고 발레와 우리 춤의 이야기 앞에서

나는 수없이 마음이 흔들렸다.

이름도 잘 알지 못했던 우리 화백이 주목받지 못했던 이야기나

퓰리쳐 상을 받은 이후 오히려 사람들에게 비난 받았던 어느 사진가의 이야기에

가슴이 뭉클해져 슬퍼지기도 했다. 

 

 

 

뮤지컬에 있어선 수시로 뮤지컬 넘버를 모으고 흥얼거리고

기회가 닿으면 직접 보러 가거나 무대 장치에 대한 정보를 공부하던 ‘우등생’이었지만,

‘예술 전반’에 있어서 나는 ‘초보자’가 맞았다.

책을 반쯤 읽으면서부터 날이 선 눈초리는 슬그머니 내리고,

‘김소영 선생님‘의 좋은 말씀을 전해 듣는 ’예술 감상학(?)‘ 학생으로 빙의되었다할까, 마음이 편안하고 즐거워졌다.

콕 짚어 지적한 그 ’초보자‘란 낮은 자리를 인정하니 우리의 만남은 아름다워졌다.

 

감상하기 편하게 많고 많은 그림이나

작가(작곡가,예술가)의 연대기가 실려 있는 책은 아니다.

유명한 이름 뒤에 숨은 뒷이야기나 사소한 팁들을 많이 많이 실어놓았을 뿐이다.

아는 만큼 관심이 가고 관심이 생기면 직접 만날 수 밖에 없는 ‘예술 애호가’로 나아가는 기회를 마련해주기 위해서일까.

 

이 책을 읽으면 발끝에 신경을 쓰느라 당당히 걷지도 못했던 ‘구멍난 양말’을 벗어던질 수 있다.

시원한 걸음 속에서 발이 아닌 다른 것에 온통 집중할 수 있는 것처럼,

그림 속 아름다움이 보이고 발레리나의 동작이나 의상 속에서 이야기를 보며, 뜨거움이 느껴지는 판소리를 열렬히 들을 수 있다.

책을 다 읽고 나니 책이 다시 보였다.

오래도록 간직해도 좋을, 깔끔한 예술 감상의 길잡이 책으로서 와닿는다. 

사진이나 그림 설명에서 부족한 이미지는 직접 감상하러 다니는 것으로 보답해볼까?

미술관이나 클래식 공연장에서, 혹은 외국인들이 가득찬 판소리 공연장 같은 곳에서 주눅들지 말자.

책을 읽은 후라면, -적어도- 우리는 더 이상 초보가 아니어도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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