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다 문학동네 시인선 47
이향 지음 / 문학동네 / 201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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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탁     _이향


어미라는 것은 빨릴 대로 다 빨린 빈 젖이어서, 저녁의 한 모서리가 축 늘어져 있기 마련이다 어디선가 국이 끓고 압력밥솥이 급하게 돌아가도 데워지지 않는 밥그릇, 귀퉁이마다 밥풀 붙이던 숟가락들, 어디선가 입 크게 벌리고 뜨거운 밥 밀어넣고 있을 때, 덩그렇게 놓인 식탁은 식은밥 한술 우물거리고 있다





밤의 그늘      _이향


나무는 나무에서 걸어나오고

돌은 돌에서 태어난다


뱀은 다시 허물을 껴입고

그늘은 그늘로 돌아온다


깊고 푸른 심연 속에서

흰 그늘을 뿜어올리는

검은

등불


낮에 펼쳐둔 두꺼운 책갈피로 밤이 쌓인다


달의 계단들이 아코디언처럼 접혔다가 다시 펄쳐지는

밤의

정원에서


멀리 걸어나와 다시는

돌아가지 않을 것처럼

저 혼자 앉아 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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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 음악이 아니면 죽음을 달라 외쳤으면서도

중고딩 시절 저 아이는 '문과 체질'이라는 대외적인 인정(?)을 받으면서도 (그 길을 가지 않았다, 순전히 오기와 도전이었다만)

전공 분야가 공학과 자연과학인지라(고 적지만 사실 공학의 영향을 깊이 받은 듯 하다)

평론가들이나 문학/예술을 업으로 하는 사람들의

프랑스어나 독어를 있는 그대로 쓰는 

예술적 표현들이나 단어들을 보면 머리가 어질어질해진다.

-단어를 많이 모르는 내 죄겠지만. ㅠㅠ


좋은 소설을 보고 시를 보면서 분석해먹던 노릇도 고등학생때나 했지,

이제는 그런 내 '해석'을 늘어놓아 볼까 하면 부끄럽다.

-내가 이렇게 봤다고 해서 그게 정답은 아니잖아, 굳이 말을 꺼낼 필요가.....

(라는 말 속에는 '정답'을 찾고 싶어하는 마음이 깃들어 있는 것이다.)ㅠㅠ


그러면서도 자꾸 돌아본다,

내가 가진 깜냥으로

할 수 있는 정도까지 다 품어내고 싶어서.





확실한 걸 좋아하는 사람에게

다양한 의미가 들어앉아 있는 무언가를 알아가는 작업은,

그리고 그걸 다시 자신이 가진 명확한 한 단어로 정리하려는 작업은 (불가능하다는 걸 알면서도 하고 있다) 어렵다.








그냥 읽고, 느끼고, 재워둔다.

언젠가는 곰삭겠지. 그때가 되면 맛은 부족해도 깊은 향은 나겠지.


그래서 읽는다.

잘 모르지만 우선 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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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학자의 아침 문학과지성 시인선 437
김소연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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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동자

                  -김소연


장미꽃이 투신했습니다


담벼락 아래 쪼그려 앉아

유리처럼 깨진 꽃잎 조각을 줍습니다

모든 피부에는 무늬처럼 유서가 씌여 있다던

태어나면서부터 그렇다던 어느 농부의 말을 떠올립니다


움직이지 않는 모든 것을 경멸합니다

나는 장미의 편입니다


장마전선 반대를 외치던

빗방울의 이중국적에 대해 생각합니다


그럴 수 없는 일이

모두 다 아는 일이 될 때까지

빗방울은 줄기차게 창문들 두드릴 뿐입니다

창문의 바깥쪽이 그들의 처지였음을

누가 모를 수 있습니까


빗방울의 절규를 밤새 듣고서

가시만 남아버린 장미나무

빗방울의 인해전술을 지지한 흔적입니다


나는 절규의 편입니다

유서 없는 피부를 경멸합니다


쪼그려 앉아 죽어가는 피부를 만집니다


손톱 밑에 가시처럼 박히는 이 통증을

선물로 알고 가져갑니다

선물이 배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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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인신고를 하고 훌쩍 이사를 왔고

제대로 적응하기도 전에 결혼을 했다.

결혼식이 끝나자마자 신혼여행이 있었고

그 다음주에는 시댁 선산이 있는 장흥으로,

친척을 만나러 서울로, 시부모님을 모시고 대전으로 마구 쏘다녔다.


시어머니가 오셔서 갑작스레 꺼내진 큰 냄비들과

먹다남은 킹크랩+대게의 흔적이 대충 정리가 되었다.

다시 두 사람의 살림을 정리하는 저녁이 되었고

천둥과 번개가 치는 밤 중에는 약국에 다녀왔다.




어제의 소나기 때문일까,

달팽이가 날 더운 줄 모르고

인도 위를 느릿느릿 지나고 있었다.

 

 

한 고비, 넘어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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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한 딸 콤플렉스 - 착해서 고달픈 딸들을 위한 위로의 심리학
하인즈 피터 로어 지음, 장혜경 옮김 / 레드박스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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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을 앞두고 날이 서 있었다.

분명 신부인 '나', 내가 주인공이 되어야 하는데

나를 둘러싼 거의 모든 사람들이 '자신이 주인공인 양' 행동하는 걸 보면서

천천히 흘러가는 시간과 공간 속에 나만 정지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게다가 눈치없이 끼어드는 오빠에 대한 불만을 말하면서

엄마에게 S.O.S.를 쳤는데 엄마는 되려 내게

'네가 누나라고 생각하고 넘어가줘라'하고 말씀하셨다.

이 말이 내도록 마음에 맺혀있던 어느 날, 나는 이 책을 도서관에서 만났다.

책 표지에 '엄마, 왜 항상 나만 양보해야 돼?'라고 적힌 문구가 마음에 박혔다.



책의 시작은 '거위치는 공주'라는 동화 이야기가 나온다.

왕비, 공주, 시집 보내는 왕비의 혼수와 딸려보낸 하녀, 시련, 그리고 해피엔딩..으로 이어지는 이야기였는데

잠시 후 저자는 이 이야기 속에 숨어 있는 무서운(!) 은유를 하나씩 들춰준다.


공주를 사랑하는 왕비는 정말 좋은 엄마였던 걸까.

왜 오해와 시련 앞에서 공주는 사실을 있는 그대로 말하지 못했던 걸까.

(어쩌면 이 책에서 가장 일깨워주고 싶었던 포인트가 아닐까. ^^어디까지나 내 생각.)



사실 책을 끝까지 읽지는 못했다.

뒷편 어딘가에 어떻게 이겨내야 하는지에 대한 글이 실려있다 했는데

앞부분을 한참 읽어나가면서 '응, 그래. 맞아. 내가 그랬어 ' 따위의 반응을 하는 내가,

그리고 너무도 익숙하게 떠오르는 엄마와 나의 관계가 무척이나 불편하다는 사실을 알게 되는 내가

조금 버거웠던 것이 사실이었다. (100% 일치하진 않아도, 엄마의 행동...그 이면엔 이런 것들이 무의식중에 퍼져 있을 거라는 생각이... 생각보다 힘들었다.)


하지만, 책은 유용했고 다시 읽을 의향이 충분하다.



'지금'의 나는, 그리고 내 자의식은

저 공주와는 다른 시도를 수백번 해왔고

그랬기에 지금의 상황까지 와 있다는 걸 안다.

지금 이 책을 내려놓은 것은 지금의 내가 처한,

'결혼'이라는 특별한 상황 안에서 스스로 양보를 하고 있는 상황이라서.


지금의 이 특수한 상황 안에서 

자꾸 이 책을 읽어내려 간다면

엄마나 시엄마, 오빠 등등의 주변 사람들에게

-'친절'혹은 '배려'이란 이름으로 '주인공 노릇을 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에게 -원치 않는 반감을 가지게 될까 두려워서다.

독립생활을 한지, 6년만이다. 내 주변 사람들도 '한 번은' 보호자로서 가족으로서 무언가를 해보고 싶어 하니까.


그것까지 내칠 수는 없다,

그게 나의-주변인을 대하는?- 입장이다.



이 책의 이론에서 보자면,

잘 알지만.... 잠시 묵인 중.

여전히 '착한 딸 컴플렉스'는 벗는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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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일락과 고래와 내 사람 문학동네 시인선 37
김충규 지음 / 문학동네 / 201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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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ulie ‏@ohho02  

실 요즘엔 혼자 뉴스를 못 보겠어. 낭군이 돌아온 후에야 뉴스를 틀어. 그나마도 정면으로 못 보고 자꾸 서성이며 다른 일을 해. 소식을 듣고만 있어도 먹먹해서. 나만 그런 건 아니겠지.

 

 

 


트위터에 끄적인 것처럼... 그러하다. 

이런 기분 겪는 사람, 설마 나뿐이겠냐만은.

여러 일들이 겹쳐 마음이 심란하다.

 

심란하여 시집을 펼쳤더니 마음 위로 훅 드리우는 감정은 또 무언지.

 

 

 

 

 

 

 

가는 것이다     - 김충규

 

어둠에 발목이 젖는 줄 모르고 당신은 먼 곳을 본다

저문 숲 쪽으로 시선이 출렁거리는 걸 보니 그 숲에

당신이 몰래 풀어놓은 새가 그리운가보다 나는 물어보지 않았다

우리는 이미 발목을 다친 새이므로

세상의 어떤 숲으로도 날아들지 못하는 새이믈

혀로 쓰디쓴 풍경이나 핥을 뿐

낙오가 우리의 풍요로움을 주저하게 만들었지만

당신도 나도 불행하다고 말한 적은 없다

어둠에 잠겨 각자의 몸속에 있는 어둠을 다 게워내면서

당신은 당신의 나는 나의

내일을 그려보는 것이다

우리는 아직 태양의 순결을 믿고 있으므로

새를 위하여 우리 곁에도 나무를 심어 숲을 키울 것이므로

그래, 가는 것이다 우리의 피는

아직 어둡지 않다

 

 

 

 

 

 

 

나는 물어보지 않았다.

그냥 가야 할 것 같아서.

아직... 아직은 가야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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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비처네 (반양장) - 목성균 수필전집
목성균 지음 / 연암서가 / 201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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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막연히 글을 쓰고 싶었다. 어떻게 해야할지도 모르지만 원칙을 만들어야 한다 생각했다. 각 글에 맞는 원칙이라며 세운 구호는 -‘시는 거짓됨없이, 소설은 치밀하게, 수필은 깊은 마음을 담아’다. 수필이라면 내 시선이 담기고, 그 시선에서는 분명 깊은 마음이 자연스레 묻어나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번에 접한 목성균의 수필집 『누비처네』는 지은이의 깊은 마음을 넘어선, ‘깊은 인생’이 고스란히 담긴 책이다.

 

처음엔 바쁜 시간을 쪼갤 자신이 없어 침대 맡에서 읽었다. ‘누비처네’의 뜻이 뭘까, 생각하다 스르륵 잠이 들면 꿈 속에선 자연스레 평안한 그림들이 그려지곤 했다. 감각을 곤두서게 하는 세련되고 산뜻한 느낌은 아니었지만 읽고 읽을수록 진한 맛이 우러나서 자꾸 더 읽게 되는 수필이었다.

 

오늘은 몇몇 편을 소리 내어 읽었다.

<누비처네>를 읽는데 드문드문 목이 잠기더니 결국 혼자 울어버렸다. 회사 일이 위태하여 첫째가 태어나도 얼굴 한번 비추지 못하는 아비가 있고, 그 아비에게 몰래 소액환을 부쳐 면을 세워주는 아비의 아비가 있다. 푸른 달빛을 흠뻑 받으며 걸어가는 길에 새 누비처네가 있고 누비처네에 쌓여 키득거리는 간난 아이가 있고 아이를 업은 어미가 있으며 단란한 그 행렬의 주인공이 될 수 있었던 아비가 있다. 한번도 본 적 없는 과거 언젠가, 꼭 내 할아버지가 그러셨을 것 같고 아빠와 엄마가 그런 길을 한번쯤은 걸어보셨을 것 같았다. 아니 이 따뜻하고 정겨운 ‘누비처네 행렬’을 보며 어쩌면 지금부터 내가 걸어가야 할 길이 떠올랐는지도 모르겠다.

 

한국인을 두고 백의민족이라 하였던가. 하얀 한복 차림의 사람들을 아무리 떠올려보려해도 형광물질이 가득 들어가 눈이 부시게 하얀 양복 특유의 색감은 아닌 것 같다. 목 선생은 내가 쉽게 찾아내지 못한 ‘우리네’의 흰빛을 억새꽃 속에서 찾아준다. 정성과 인내의 끝에서 만나게 되는 옷자락은 여인들의 마음이 보이고 그윽하게 빛이 나는 억새 마냥 따뜻하게 하얗다.

억새꽃의 흰빛은 냉담(冷淡)의 빛이 아니다. 내색은 않지만 견뎌 낸 자신을 고마워하는 조선 여인들의 마음이 깃들인, 메밀 짚을 태워서 내린 잿물에 바래고 또 바랜 무명 피륙 같은 흰빛이다. 가을 햇빛이 쏟아지는 강변 자갈밭에 길게 펼쳐 널은 흰 무명필을 본 사람은 생각했을 것이다. 거기에 무명필이 널리기까지의 길쌈 공정과 앞으로 홍두깨 다듬이질을 거쳐 옷이 기워지기까지 남은 침선 공정(針線工程)이 얼마나 여인네들의 노고를 필요로 하는 것인지를. 순전히 남정네들의 자긍심을 남루하게 둘 수 없는 여인의 마음, 억새꽃 빛깔에서는 그런 마음씨가 느껴진다. (p.52-억새의 이미지)

 

기억 속에 마음 떨리게 한 소녀가 있다. 순임, 그녀에게 쇠똥을 줍게 한 문경 양반이 밉다. 들꽃같은 아이에게 쇠똥이라니. 저도 모르게 정이 뚝 떨어졌다.

쇠똥을 줍던 순임의 몸에서는 무슨 냄새가 날까? 그게 늘 궁금했다. 순임에 대한 내 유년의 애틋한 마음을 상실한 것은 쇠똥 때문이었다. (p.188-꽃 냄새)

그러던 어느 날 열여덟 혹은 열아홉 아이 둘이 좁은 논둑길에서 스친다. 순임에게선 들깻잎 냄새와 여자의 냄새가 났다. 꽃 냄새 같은 은은한 방향(芳香). 이제 순임에게 따라붙던 쇠똥의 기억은 사라질 수 있을까. 저자는 뒤늦게 알게 된 사실 하나를 읊조리며 순임을 기억한다. 쇠똥이 미량일 때는 꽃 냄새 같은 향기가 나더라며. 논둑길에서의 그 향은 과연 무엇이었을까.

 

젊은 날, 골목 어귀에 도착하면 가슴에 안기는 안도감에 나는 턱없이 행복했다. 팔소매에 토시를 끼고 하루 종일 공문서를 작성하다 늦은 밤에 돌아오는 가난한 도청 서기의 처지에 개선장군처럼 마음이 격앙되어서 구멍가게에 들러 라면땅이라든지 새우깡 한 봉지를 사 들었다. 반드시 우리 애들을 주겠다는 마음도 아니다. 빈손이 부끄러워 서 든 전리품 대용이다. 뉘 집 애라도 만나면 주고 싶은 마음이었으나 밤이 늦어서 골목 안에는 애들이 없었다. 집에 들어와서 곤히 잠든 내 새끼 머리맡에 놓곤 했다. (p.443-동구)

마을 어귀에 들어서는 아버지의 마음은 그랬던 거구나. 누구이건 만나는 아이에게 모든 것을 떨쳐낸 기분 좋은 가뿐함을 나누고 싶었던 거구나. 내 아버지도 그랬던 걸까. 자꾸 마음이 두둑하게 불러온다. 긴 여행에서 돌아와 익숙한 거리-동구에 다다르면 나도 모르게 긴장이 풀렸던 이상한 기분도 실은 ‘마을 어귀’ 특유의 포근함 덕분이었구나.

 

산등성이 들판을 보면서 이젠 나도 소년을 떠올리고, 미처 지키지 못한 약속들을 떠올릴지도 모르겠다. 어린 소년이 자꾸 ‘나’를 기다렸듯이.

봄에 산나물을 뜯으로 육백마지기에 올라가면 소년이 멀리서 호각을 불면서 산토끼처럼 달려와서 “나는 산감 아저씬 줄 알았잖아”하고 시무룩해서 내가 일러준 대로 산불조심을 당부하더라는 것이다.(p.133-약속)

황사가 ‘바람꽃’으로 보이는 그 어린 소년에게 왜 그는 돌아가지 못하였나.

 

책을 읽다가 잘못 제본된 부분이 있는 것 같아 ‘연암서가’쪽으로 메일을 따로 보냈다. 바람꽃이 부는 들판을 쏘다니는 소년인양 이제나 저제나 답 메일을 기다렸는데. 마침 연락이 왔다. 인쇄가 되면서 아예 긴 부분이 잘못되었노라며 수정된 본문을 첨부해주었다. 하마터면 전혀 다른 내용으로 글을 읽을 뻔 하였는데, 돌아온 메일의 글을 붙여 읽어나가니 자연스럽게 이야기가 들어왔다. 오래 달인 곰국처럼 뿌우연 진국이 우러나왔다. ‘그래, 이것이 목성균 선생님의 수필답지!’ 목 선생의 수필을 알게 된지 얼마나 되었다고 벌써부터 그 맛을 알아본다.

 

수필에게서 날카롭고 참신한 맛만 느낀다면 한 사람의 작품을 오래 읽지는 못할 것이다. 참신함이 머릿 속의 쨍-하고 깨울 수는 있어도 여러번 만나다보면 지치게 될지 모르니까. 한 편 두 편 읽어나갈수록 쓴 사람의 일상이, 인생이 우러나와야지, 그 깊이가 한없이 깊어지는 걸 느껴야지 오래두고 곱씹을 수 있지 않을까. 목성균 선생님의 수필집이 소중한 것은 그 때문이다. 언제고 펼쳐 깊은 향기와 맛을 음미할 수 있을 테니까. 구질구질하게 낡은 ‘누비처네’에서도 따뜻한 아버지의 사랑을 느끼고, 행복한 달빛을 떠올리는 사람이...나, 될 수 있을까?

 




p.s. 연암서가의 답 메일을 받으면서 생각했다. 오래도록 기다린 끝에 마침내 만나야 할 ‘아저씨’를 만났다면 ‘소년’이 이 기분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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