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학자의 아침 문학과지성 시인선 437
김소연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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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동자

                  -김소연


장미꽃이 투신했습니다


담벼락 아래 쪼그려 앉아

유리처럼 깨진 꽃잎 조각을 줍습니다

모든 피부에는 무늬처럼 유서가 씌여 있다던

태어나면서부터 그렇다던 어느 농부의 말을 떠올립니다


움직이지 않는 모든 것을 경멸합니다

나는 장미의 편입니다


장마전선 반대를 외치던

빗방울의 이중국적에 대해 생각합니다


그럴 수 없는 일이

모두 다 아는 일이 될 때까지

빗방울은 줄기차게 창문들 두드릴 뿐입니다

창문의 바깥쪽이 그들의 처지였음을

누가 모를 수 있습니까


빗방울의 절규를 밤새 듣고서

가시만 남아버린 장미나무

빗방울의 인해전술을 지지한 흔적입니다


나는 절규의 편입니다

유서 없는 피부를 경멸합니다


쪼그려 앉아 죽어가는 피부를 만집니다


손톱 밑에 가시처럼 박히는 이 통증을

선물로 알고 가져갑니다

선물이 배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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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인신고를 하고 훌쩍 이사를 왔고

제대로 적응하기도 전에 결혼을 했다.

결혼식이 끝나자마자 신혼여행이 있었고

그 다음주에는 시댁 선산이 있는 장흥으로,

친척을 만나러 서울로, 시부모님을 모시고 대전으로 마구 쏘다녔다.


시어머니가 오셔서 갑작스레 꺼내진 큰 냄비들과

먹다남은 킹크랩+대게의 흔적이 대충 정리가 되었다.

다시 두 사람의 살림을 정리하는 저녁이 되었고

천둥과 번개가 치는 밤 중에는 약국에 다녀왔다.




어제의 소나기 때문일까,

달팽이가 날 더운 줄 모르고

인도 위를 느릿느릿 지나고 있었다.

 

 

한 고비, 넘어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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