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입 꿀떡 요술떡 초승달문고 26
오주영 지음, 오윤화 그림 / 문학동네 / 201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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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은 학교는 누구의 것이라고 생각하세요?

선생님의 것? 아이들의 것? 교장 선생님의 것?

<한입 꿀떡 요술떡> 속의 학교는 아이 고양이들이 다니는 학교랍니다.

그렇지만 주인공 달로는 학교에 가기 전과 다니게 된 지금이 너무 다르답니다.

쉽게 말해 달로는 학교에 가기 너무 싫어졌어요.

툭하면 교칙을 새로 만들어 내는 교장 선생님 때문이었죠.

한번은 교장선생님께서 벌로 “나는 쓰레기 같은 고양이입니다.”라는 말을 따라 외치라고까지 하셨습니다.

얼마나 충격적인 벌인가요.

어떤 매보다 어떤 기합보다 더 폭력적입니다.

제가 달로 부모님이었으면 그런 벌을 주는 학교는 가만히 두지 않을 텐데,

달로는 아직 어려서 그런지 모든 이야기들을 부모님께 다하지 못했나봅니다.

하긴, 부모님께서는 대부분 학교를 좋은 곳으로 여기기만 하시죠.

 

 

 

교장선생님의 괴팍함 때문에 학생들만 힘든 게 아닙니다.

선생님들도 얼마 안가 쫓겨나곤 하거든요.

그러던 어느 날, 토 선생이 학교에 부임합니다.

고양이 학교에 온 토끼 선생님이라.

저는 토 선생님이 무척 힘들 거라 생각했어요.

교장 선생님을 잘 모르는 것 같아서요.

아이들 모두 그런 걱정을 한 모양이예요.

하지만 곧, 조마조마해하면서도 토 선생님을 따르게 됩니다.

토 선생님은 예전 선생님은 물론 아이들도 생각지 못했던 ‘새로운 수업’을 이끌어가거든요.

달로와 주리, 세오, 점코 모두 친구들 앞에서 자기의 취미를 당당히 얘기하고

아이들은 친구의 장점을 발견하는 수업을 하기도 해요.

자습 시간과 수업 시간 모두가 새롭죠. 아이들에게 학교는 무척 즐거운 곳으로 바뀌어 갑니다.

 

토 선생님의 놀라운 수업들은 교장 선생님 눈 밖에 나는 것 같아요.

걸 토 선생님은 아시는지 모르시는지. 꿋꿋하기까지 합니다.

교장 선생님께서 협박을 하셔도 겁을 먹는 분은 아니더군요.

 

아이들은 토 선생님이 싸오곤 하시는 요술 떡들이 참 좋습니다.

오그르르 오그랑 떡, 날아라 바람떡, 그리고 왕꼬리 떡까지.

 

모든 것에 엄격하고 자신의 가치관을 벗어나는 것이면

서슴치 않고 벌점을 매기시고 함부로 대하기도 하시는 

교장 선생님께서는 과연 이 학교에 불어온 바람을 어떻게 생각하실까요?

고양이 아이들과 토 선생님을 가만히 두기만 하실까요?

 

 

이 책은 어른들을 위해 쓰여진 책은 아닙니다.

하지만 어른인 저도 이 책을 읽는 동안만큼은

발을 동동, 마음이 두근두근, 얼굴을 찡그렸다 웃었다 정신이 없었어요.

 

어쩌면 작가 오주영 선생님은 이렇게

부르기에도 맛있고 상상만 해도 신기한 떡을 만들어낼 생각을 하셨을까요?

몸이 작아지거나 하늘을 날거나 마음껏 방귀를 뿡뿡 뀌는 고양이 아이들은 또 얼마나 행복했을까요?

 

우리 아이들이 다니는 학교에서도 토 선생님 같은 분이 많으셨으면 좋겠어요.

그 나이에 맞게 뛰어놀 줄도 알고, 자신의 가치가 소중한 줄도 알고,

또 자기가 중요한 만큼 친구들도 귀한 줄 아는 아이들로 자랄 수 있게요.

요즘 우리 아이들은 너무 빨리 어른이 되어 버리는 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는 짧은 시간이 어색해서 옆에 서있던 꼬마에게 말을 걸었더니

처음 보는 아줌마가 묻는 질문에 별다른 의심없이 -마치 ‘발표하듯’ 거침없이

자신의 방과 후 학원 일정을 쏟아내더라는, 한 에세이에서 읽은 어떤 꼬마 이야기가 떠오릅니다.

아이들은 어떤 학교에서 어떤 것들을 배우며 어떻게 자라고 있을까요?

모쪼록 아이들에게 그 모든 순간들이 행복하고 의미 있는 시간들이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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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호적인 무관심 바깥바람 7
최윤정 지음 / 바람의아이들 / 201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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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친구가 물었다, “이런 책을 왜 읽어?”

평소에 내가 읽는 책에 별 다른 관심을 주지 않던 그가 책을 한참을 뒤적거리다가 하는 말이다.

무슨 말인가 싶어 되물었다, “왜?”, 돌아오는 대답은 그대로다. “이상해.”

 

그러면서 읽었던 글, 책의 한 부분을 설명한다.

요리를 했는데 아들이랑 아들 친구가 와서 먹고 갔단다.

애들한테 쓰레기 봉지를 내주고 한다는 말이 바람이 차서 나갈 엄두가 나지 않는다고는 내용이 끝나더란다.

끝을 알 수가 없어 앞뒤 페이지를 오락가락 했단다.

듣는 나도 어안이 벙벙했다. 이 무슨 괴상한 글인가.

<우호적인 무관심>은 자다가 봉창 두드리는 소리로 내 마음의 문을 두둥- 두드렸다.

 

 

열정적인 관심이 아니라,

우호적인 무관심이다.

차이를 존중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p.159)

 

간혹 나는 아이들 그림책이나 청소년 문학을 시간을 내어서 읽곤 한다.

읽다 보면 명확하고 깔끔한 즐거움을, 숨겨진 의미를 전해 받곤 한다. 이를 테면 마음이 깨끗하고 가벼워지는 기분.

‘바람의 아이들’ 역시 아동청소년을 위한 책들을 펴내는 곳이다.

그렇기에 <우호적인 무관심>을 두고 한참을 고민했다. 딱히 청소년을 타겟으로 두고 만들어진 책 같지 않아서였다.

(차라리 저자의 <뭐가 되려고 그러니?>란 책이 청소년에게 권할 만하다. 청소년들과 소통하듯이 쓰여진 책이니까.)

명확하게 안겨주는 즐거움이란 게 없다. 누구를 위한 책인 걸까?

책 한권을 읽고 나니 답을 한다.

뒤표지의 문구대로 ‘지도 없이 어딘가에 도착하고 떠나기를 반복하는 모든 이들에게’ 권한단다.

마음이 아직 덜 익은-어쩌면 나 같은- 그대에게 전하는 쪽지 같은 책이다.

 

 

 

저자는 덤덤하게 이야기들을 풀어낸다.

마치 부엌에서 따박따박 도마질을 하면서, 거들 일이 없는지 식탁에 대기 중인 내게

하루 중에 있었던 일을 찬찬히 늘어놓는 엄마같다.

(엄마라고 하기엔 실제 저자의 나이는 너무 젊다. 막내 이모쯤이라 생각하면 좋을까?ㅎㅎ)

혹은 방과후에 시간을 내어 두런두런 다과를 즐기며 오가는 수다같다.

 

집앞 슈펴 할머니들 얘기, 은행에서 들은 얘기, 딸아이 학교에서 봉사활동을 가서 느낀 얘기,

문학의 밤에서 만난 진짜 ‘프랑스 마초’ 얘기, 엘리베이터 앞에서 만난 꼬마아이 얘기까지.

듣고 있다 보면 ‘그렇네요? 전 이렇게 생각했으면 좋았을 것 같은데...’하고 깔깔거리면서 대화를 계속 해나가고 싶다.

읽다 보면 웃음이 삐죽삐죽 입가에 번지고 만다.

 

 

 

 

사이사이에 꼼꼼한 스케치와 메모도 들어 있다.

화려하진 않지만 펜으로 꼼꼼히 그려낸 그림이다.

그림 옆에 적힌 짧은 글귀들은 ‘**에게’라고 콕집어 내게 남겨놓은 메모 같다.

메모같은 느낌이라고 해서 한 부분만 뭉텅 잘라내면

또 그녀의 이야기는 아무것도 아닌 글이 되고 그림은 그냥 자랑삼아 그린 그림이 되어 버린다.

책은 그렇게 빼곡하게 그들의 언어로 집을 짓고, 엄마 같은 그녀의 자상함이 우리들을 맞이한다.

 

 

 

‘악착같이’라는 말을 싫어하고 ‘목적 없이’라는 말을 좋아한다는 저자의 소개글이 그이를 있는 그대로 보여준다.

흰 머리를 있는 그대로 고수하고, 비판과 해방에 대해서만 말하는 요즘 어린이 청소년 책을 걱정한다.

그녀의 고지식함이 고맙고, 감사하다. 이런 분이 꿋꿋하게 아이들의 미래를 위해 책을 엮어내고 계신다는 게 다행이다 싶다.

닮고 싶다.

아이들에게 줄 수 있는 것은 믿음과 사랑뿐임을 깨닫는 부모이고 싶고,

넋두리와 자기과시를 하지 않는 문학을 담고 싶고,

차이를 존중하기 위해 우호적인 무관심으로 모든 것을 보고 싶다.

아니 어쩌면 ‘너무 많은 것을 담아두면 두통이 떠나지 않는다’는 그녀와 내가 이미 닮아 있기도 한건가. ^^

 

 

참! 남자친구가 읽었다던 그 미스테리(?)한 글은 사실 ‘창의력은 날마다 필요하다’란 제목으로 쓰인 글이다.(p.403)

제대로 읽고 나면, 자다가 봉창 두드리는 글 같다는 감상평 대신

‘차가운 공기를 가르고 나갈 엄두가 나지 않는다’면서 빙긋 웃는 엄마의 미소를 엿볼 수 있다.

 

너무 꽉 죄어버린 일상의 빼곡함이 버거울 때, <우호적인 무관심> 안에 잠시 놀러와 보면 어떨까.

따끈한 차 한잔과 이 책 한 권이면, 없던 여유도 마음 안에 들어와 둥지를 틀 듯 하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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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텍스 - 관계에 대해 당신이 이해할 필요가 있는 모든 것!
에스더 힉스 & 제리 힉스 지음, 유영일 옮김 / 나비랑북스 / 201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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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무신론자입니다. 교회, 성당, 절 그 어떤 기관에도 소속되지 않은 사람이지요. 올케언니는 모태신앙으로 성당에 다니고 돌아가신 할머니는 절에 무척이나 열심히 다니셨습니다. 엄마는 결혼 전엔 성당에, 그리고 제가 국민학교 2학년생이 되던 해부터 절에 열심히 다니게 되셨죠. 덕분에 여러 종교의 테두리를 훑고 지나가며 살아왔습니다. 어떤 종교에도 치우쳐 있지 않지만 전 그와 동시에 어떤 종교로건 마음이 기울어져 있는 상태입니다. 무엇으로 불리우는 존재이건- ‘어떤 존재’가 전해주는 지혜의 가르침을 믿으니까요. 그 누구이건 내 안에서 나를 깨우치는 신성한 무언가가 있다는 건, 아이러니하게도 제가 믿는 유일한 맹신이지요. ^^;;

 

제가 의지하는 지혜 중에 ‘마음을 비우라’는 메시지가 있습니다. 기억하는 것들이 결국 내 감정의 때가 묻어 변형된 것들일 수 있으니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이되 그것에 얽매이지 말고 내려놓고 용서하고 감사하고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그런 면에서 <볼텍스>의 저자 힉스 부부는 다른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처럼 보입니다. 그들은 ‘끌어당김의 법칙’을 끝없이 주장했거든요. 내려놓기는커녕, 무언가를 얻기 위해 끊임없이 그것을 끌어당기라는 욕심을 부리다니요! 때문인지 <볼텍스>를 펼치면서 처음에는 진도가 잘 나가지 않았습니다. 게다가 저자인 에스더 힉스와 제리 힉스 부부가 대화를 나누는 ‘아브라함’이 누군지 혹은 무엇인지에 대한 고민도 꽤 오래갔습니다. 몇날 며칠을 고민을 하다가 ‘아브라함’을 제가 생각하는- 지혜의 가르침을 주는 ‘어떤 존재’ 혹은 ‘신성’으로 치환시켜 책을 읽기로 마음먹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책이 무척이나 잘 읽혔습니다. 하나의 어려움은 넘어섰지요. 그렇다면 나머지 하나의 편견은 어떻게 되었을까요?-이들은 ‘끌어당김의 법칙’을 주장하는 욕심쟁이 이론가들이었을까요? 제가 받은 느낌을 설명하기에 앞서 책의 초입 부분을 인용하고자 합니다.

 

물질 세상에 태어나기 이전, 이 최첨단의 시공간 현실에 의식을 집중하겠다고 결정하면서, 당신은 그 과정의 매 순간을 즐기겠노라는 강한 염원을 품고 있었습니다. 그때 당신은 당신의 비물질적인 관점에서, 당신이 바로 창조자이며, 기쁘고 만족스러운 창조의 경험을 할 수 있는 막대한 잠재력의 환경 속으로 들어가게 될 것임을 알고 있었습니다. 당신이 바로 창조자이며, 지구별에서의 체험이야말로 수없이 많은 기쁨에 넘치는 창조를 시작하게 될 완벽한 무대가 되어줄 것이었습니다. 당신은 그것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리하여 당신이 지금 여기에 있게 된 것입니다.

몸을 입고 태어나기 이전에, 당신은 이미 알고 있었습니다. 여기에 오게 되면 다른 사람들에게 에워싸이게 될 것이며,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가 당신 자신이 겪게 될 대조적인 체험의 근본 바탕이 될 것임을, 당신은 또 알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대조되는 관계가 당신 자신의 개인적인 확장은 물론 “영원한” 확장에도 엄청난 기여를 하게 될 것임을. 때문에 당신은 그들 모두와의 교류를 열렬히 환영했습니다. 그리하여 당신이 지금 여기에 있게 된 것입니다. (p.21~22)

 

책 속에 등장하는 ‘신성’은 이렇게 말합니다. 당신의 에너지 자체는 이미 대단한 창조자이기 때문에 자기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에 마음을 쓰면 그것은 -긍정적인- 진동의 일치를 일으켜 하나씩 그것들을 끌어당겨줄 것이라고요. (이 책에서는 창조의 3단계로 설명하지요.) 이 책의 제목이기도 한 ‘볼텍스’라는 것은 당신 내면이 불러일으키는 강력한 끌어당김의 소용돌이입니다. ‘끌어당김의 법칙’이란 사실 ‘억지로 만들어 낸 욕심‘의 끝이 아닌, ’있는 그대로의 내려놓음‘의 다른 표현이 아닐까요?

 

차례

시작에 앞서

제1장 볼텍스와 끌어당김의 법칙

제2장 짝찾기와 끌어당김의 법칙

제3장 섹스와 끌어당김의 법칙

제4장 부모자식 관계와 끌어당김의 법칙

제5장 감사와 끌어당김의 법칙

제6장 끌어당김의 법칙 워크숍 현장중계

 

이 책은 번역도 매끄럽지 못하고, 구성도 뒤죽박죽입니다. 2장과 3장의 제목이 확연하게 구분되어 있지 못하다는 느낌을 주기도 하고, 5장의 내용은 1장의 내용을 반복해서 설명하는 것 같기도 하지요. 저자가 깨달은 것들을 있는 그대로 담아내기 위해 -여백이 그리 많지만은 않은- 360 페이지를 할애해가며 이야기를 쏟아냅니다. 하지만 많은 이야기를 친절하지 않은 틀 안에 집어넣어 책을 만들어냈을지언정 그 안에 담긴 내용들은 곱씹으면서 생각해볼만합니다. 그리고 그 지혜들을 깨닫는 만큼 마음이 가벼워지고 편안해짐을 느낍니다.

 

‘볼텍스’라는 말을 들으면 소싯적에 배우던 유체역학의 악몽(?)이 떠오르기도 했는데 이젠 다른 의미로도 이해될 수 있을 겁니다. 불일치의 진동 에너지 대신, 긍정적인 진동이 일어나겠지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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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집을 두드리다
장은진 지음 / 문학동네 / 201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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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유치원 입학을 하기 한 해 전 겨울, 우리 가족은 대단지 아파트로 이사를 갔다. 두 동이 마주보고 있던 작은 맨션에서는 이웃 할머니며 옆집 언니 앞집 오빠 가릴 것 없이 맨션 앞 공터에서 늘 함께 지냈었는데, 새로 지어진 이 큰 아파트는 내게 손바닥만한 복도를 선사했다. 처음에는 입주민이 많지 않아 뛰어놀 친구도 사귀지 못했던 나는 우리 동의 경비실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곤 했다. 경비 아저씨 옆 자리에 앉아 아파트 입구를 바라보면서 하염없이 얘기를 나누고 그림을 그리고 옛날이야기도 들으며. 그마저도 아저씨가 교대근무로 출근하지 않으신 날은 심심하기 그지없었다.

 

나는 얼마 있지 않아 무료함을 깨트릴 놀이를 찾았다. 하나는, 복도로 소리가 나가는 인터폰 방송. 손님이 찾아와 초인종을 누르면 “누구세요?”를 전하는 것이 하는 일의 전부였던 인터폰은 나 못지않게 외로워 보였다. 나는 인터폰 송화기를 들고 방송을 시작했다. 노래도 했고 인터뷰도 했다. (물론, 인터뷰라는 건 내가 또 다른 목소리를 내어 대화를 나누는 형식이었다.) 그러나 이웃집이 하나둘 이사를 들어오면서 이웃에게 소음공해가 될 수도 있다는 이유로 엄마는 내 방송을 금지시켰다. 애청자가 생기길 바랐던 나는 크게 실망했다.

나는 또 하나의 놀이로 복도에서 소리지르기를 선택했다. 방법은 간단했다. 우리 층 복도에 아무도 나와있지 않을 때, 소리를 꺅-지르는 거였다. 목청이 좋아서였는지 바로 앞에 다른 동이 마주보고 있어서였는지 내 소리는 두 동 사이를 가로질러 멀리 퍼지곤 했다. 그런데 이 놀이는 5~6년이 다 되도록, 누구에게도 들키지 않았다. 나만이 아는 비밀같은 이 놀이에 나는 푹 빠졌지만 한편으론 ‘사고가 나서 구해달라고 소리를 지르게 되면 누가 오기는 할까?’하는 새로운 고민이 시작되었다.

 

문학동네작가상 수상작가 장은진이 보내는 지속 가능한 짝사랑에 대한 일곱 개의 안내서!

 

<빈집을 두드리다>는 내가 살던 그 아파트를 떠오르게 했다.

계단 청소는 잘 되어 있는지 입주민들이 쓰레기 분리수거는 잘 하고 있는지 옆집에 사는 할머니가 어떻게 지내는지 궁금한 아줌마(‘나쁜 이웃’)나 아무도 보지 않는 때 돌멩이를 던지는 여자('빈집을 두드리는 이유‘), 한 번도 쓰지 않은 화장지를 허공에서 뿌려대는 사람(’티슈, 지붕, 그리고 하얀 구두 신은 고양이‘), 혹은 아파트 어귀에서 책들을 늘어놓고 장사를 하는 여자(’나무 인형‘), 예쁜 그림 동화책들을 싣고 아파트로 찾아와주는 아저씨( ’찾아가는 도서관‘), 책의 중요 페이지만을 티나지 않게 찢어가는 사람(’페이지들‘)들이, 때로는 자신만의 꿈(夢)을 찾고 싶어 하며 잠드는 사람(’나는 나를 가둔다‘)들이 우리 아파트 단지를 들락날락 거렸을 것만 같다. 그래, 아파트의 꽉 짜여진 잔잔한 일상에 파란(波瀾)의 일렁임을 만들 줄 아는 사람들이 분명 살았다. 가만가만히 훔쳐보면서 천천히 다가가 의미있는 사람이 될 때를 노리는, 마음앓이의 소심한 주인공같은 우리가.

 

 

지붕에 앉아 아파트 높은 곳에서 떨어지는 휴지 조각을 바라보던 남자가 기억에 남는다. 무엇 때문에 지붕에 앉아 아래층으로 내려가지 않을까. 아버지에게서 태어나지 말았어야 할 놈으로 말로 쥐어박히면서 그는 뭘 생각할까. 부모님과 한 집에 살면서도 굳이 지붕에 외떨어진채 지내는 것이 궁금했다. 그러다가 검은 털을 가진 고양이가 눈에 들어왔다. 목덜미와 발 부분만 하얀 그 고양이를 보면서 남자가 그녀를 생각하는 것을 엿보았다. 고양이의 습성을 가진 그녀, 결혼은 했지만 ‘아내’나 ‘집사람’으로 불리기 싫어한 여자. 그녀 때문에 힘든걸까. 화장지에 립스틱 자국을 남기기도 하고 메모를 남기기도 하는, 십사층의 ‘새로운 그녀’를 사랑하게 된 걸까. 소설 속의 티슈와 고양이에 넋을 놓고 빠져 소설이 끝나가는 줄도 모를 때쯤, 소설 속의 장치를 부지런히 숨겨둔 작가의 손길을 발견했다. 그의 -누구를 향한? (읽으면서 파악해보세요) -짝사랑 속에서 머리를 콩 쥐어박는 작가의 장난을 발견한 순간, 나는 피식 웃고 말았다.

누군가 나를 생각하고 궁금해한다는 건 얼마나 매력적인 일인가. 그게 증오든 미움이든. 나는 나를 찾는 사람에게 언제든 달려갈 준비가 되어 있다. 그들이 내 페이지를 궁금해하듯 나 또한 그들이 궁금하기 때문이다. 난 나와 같은 책을 읽는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알고 싶다.

장은진 소설집 <빈집을 두드리다> 중 ‘페이지들’ 일부 p.179

‘페이지’ 속의 그처럼, 한 권의 책 안에서 몇장 정도를 찢어도 된다면 나는 <빈집을 두드리다>의 192쪽을 살짝 찢고는, 떠돌이 책장수-그녀가 늘어놓은 책들을 만지작거리며 P가 다가와 이야기를 늘어놓기를 기다리곤 할 것이다.

 

 

아파트 복도엔 가끔 비둘기가 놀러오곤 했다. 가끔이라도 꾸준히 찾아와주는 비둘기와 친해지려고 마음먹었다. 먹이가 있으면 더없이 좋았겠지만 아무것도 가지지 않은 나는 비둘기에게 다가가는 방법을 찾고 싶었다. 몇 권의 어린이 도서를 뒤척이던 나는 드디어 방법을 알아내었다. 어렵지 않다, 비둘기들이 구구거리면서 먹이를 찾고 있을 때 너무 성급하지 않게 그리고 그들의 주의를 흩트리지 않게 다가가면 된다. 내가 하던 동작이나 말, 그것의 리듬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조심조심. 네 평화로움을 깨트리지 않는다는 걸 인식시키면서 천천히. 그렇게 다가가면 비둘기는 푸드닥거리며 요란스레 날아가버리지 않는다. 거리는 그렇게 좁혀가는 것이다.

 

어쩌면 나와 비슷한 무료함을, 빈 마음을, 허전한 눈길을 가진 그들을 나는 짝사랑하게 되었는지도 모른다.

지속 가능한 짝사랑에 대한 여덟 번째 이야기는.... 나로부터 시작된다. ^-^

 

블로그 동시 게재: http://ohho02.blog.me/1001738549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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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한 고백
조두진 지음 / 예담 / 201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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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눈여겨보는 드라마가 있다. 드라마를 제작하는 과정을 둘러싸고 일어나는 해프닝들이 주된 이야기 줄기인데, 하나의 드라마를 바라보는 여러 사람들의 이해관계와 시선이 느껴지곤 한다. 이 드라마 안에는 대립되는 사람들 사이의 알력이 심한 편이다. 간혹 서로 ‘다른 입장‘이기에 이해가 되지 않아 그렇지, 이래서 맞고 저래서 맞게 해석이 되는 이야기가 불쑥불쑥 나오곤 한다. 쏠쏠한 재미가 툭툭 튀어나온다. 어느 하나 진실이 아닌 것은 없다, 확대/축소 해석되는 ’사실‘만 있을 뿐? 그런 면에서 이 책<진실한 고백>은 그 드라마와 통하는 면이 있다.

  

 

-끼끗한 여자/ 시인의 탄생/ 진실한 고백/ 장인정신/ 이정희 선생님/ 뻐꾸기를 보다

 

이 여섯 개의 단편 소설들은 모두 말 그대로 ‘진실한 고백’이다. 물론 잘 살펴보면 그 고백 안에 있는 것은 ‘진심어린Sincere' 고백이긴 하지만, 결코 ’사실Fact'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고백하듯 마음속에 묻어둔 이야기를 꺼내어 늘어놓는데, 묵은 양심의 먼지와 진실한 반성의 때가 없을 리가 있겠는가.

 

 

 

 

“끼끗한 여자” 속의 서현과 희주는 닮았다. 걸 그룹 ‘마녀’로 활동하면서도 늘 이해할 수 있었다. 그리고 진심으로 통하는 것은 그 둘만의 비밀로 남아 있다. 그대가 형사라고 해도 둘 사이에 있었던 이야기는 알아낼 수 없다. 둘 중 하나가 침묵을 깨지 않는 한.

 

웃음이 큭큭 미어터지는 블랙 코미디를 읽고 싶다면, “장인정신”을 보라. ‘친구는 그것이 도박판의 특징이라고 했다. 따도 따도 돈이 되지 않는 곳. 그러나 세상의 거래는 다르다고 했다. 잔인한 승부처이고, 개평조차 없는 곳이며 지면 모든 것을 잃는 곳이지만, 따는 한 그 돈이 모두 자신의 돈이며, 오늘 딴 돈은 내일 잃을 돈이 아니며, 영원히 내 주머니에 들어와 앉을 돈이라고 했다. 물론 그만큼 돈을 따기 힘든 곳이며, 노름판처럼 한쪽이 잃으면 다른 쪽이 반드시 따는 게 아니라, 양쪽 모두 잃기만 하는 경우도 수두룩하다고 했다.(p.174~175)' 이 말을 듣고 ’성자‘는 세상이라는 보이지 않는 도박판에 뛰어 든다. 좋은 길목에 좋은 재료에 좋은 식단에, 정성까지 모아 그녀는 칼국수 집을 열기로 마음 먹는다. ’성자‘는 노력했다 오죽하면 왼손으로 밀가루를 반죽하였으랴. (’할머니는 왼손잡이다. 할머니의 칼국수는 맛있다. 고로 나도 왼손에 힘을 더 주면 맛있는 칼국수를 만들 수 있다.(p.181)')

 

그리고 책의 제목과 같은 단편, “진실한 고백”은 사람 좋아 보이는 인상의 무기징역 수감자 ‘장세달’의 진실한 자기 고백을 들을 수 있다. ‘초등학교 시절 고아원 아이를 괴롭혔던 그 사건 이후로 더 이상 비겁한 짓을 할 수(p.160)’ 없었기에 저지를 수 밖에 없었던 그 사건에 대해 장세달은 늘 슬퍼하고 안타까워 하고 있다. 과연 그의 범행 동기는 뭐였을까? 얼마나 비겁하지 않은 행동을 보여, 최초의 비겁한 행동을 사죄하려 하였을까?

 

자기 고백적인 이야기를 시로 승화시키는 시인, 정경숙은 ‘나’와 어느 날 조우한다. ‘요즘도 곤충채집을 다니느냐?’며 ‘나’를 알아봐주더니 우리가 언제 어디서 어떻게 만났는지 자세하게 이야기했다. 시를 쓰면서 기억 속에 묻혀 있던 것들이 하나 둘 둥둥 떠오른다는 그녀의 기억력은 완벽에 가까운 걸까? 하지만, 간과하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세상에는 사실이 두 개일 수도 있다, 저장기록에 따라. (“시인의 탄생”)

 

두 서 없이 우리의 뒤통수에 꽂히는 진실한 고백들에 인상이 조금 찌뿌려진들 어떠하리. 이 책의 제일 마지막에 실린 “뻐꾸기를 보다”를 보면서 우린 즐거운 공상에 잠길 수 있다. ‘옛날 옛날에 호랑이 담배 먹던 시절에~‘로 시작하던 재미있던 이야기들 역시 진실한(!) 고백들이란 걸 깨닫게 되는 것은 얼마나 달콤하고 기분 좋은 일인가. 그 이야기들도 실은 우리가 겪어보지 못해 그렇지 진실이었다!

 

 

 

 

이야기는 이야기다, 진실이건 사실이건 중요하지 않다. 그것이 어떤 범죄를 저질러 우리의 인생에 커다란 흠집을 낸다거나 슬픈 멍울을 남기지 않는다면, 이야기는 기억되는 대로 사람들이 생각하는 대로 때로는 곱게 다듬어지기도 하고 때로는 좀 더 섬세하게 꾸며지는 것이 당연한 일이 아니던가.

 

세상 거의 모든 일은, 어느 시선에서 보는 지에 따라 사실이 두 개가 될 수도 있고 세 개가 될 수도 있다. 무슨 일이건 의심하여 봐도 좋다. 하지만, 사람의 기억에서 뿌리를 찾아야 하는 이야기들이라면 진실/사실 여부에 연연해하진 말자. 우린 결국 자기변명에 능한, ‘고백’자라는 걸 벗어날 수 없다. ^^;;

 

 

블로그 동시 게재: http://ohho02.blog.me/1001736375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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