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호적인 무관심 바깥바람 7
최윤정 지음 / 바람의아이들 / 201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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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친구가 물었다, “이런 책을 왜 읽어?”

평소에 내가 읽는 책에 별 다른 관심을 주지 않던 그가 책을 한참을 뒤적거리다가 하는 말이다.

무슨 말인가 싶어 되물었다, “왜?”, 돌아오는 대답은 그대로다. “이상해.”

 

그러면서 읽었던 글, 책의 한 부분을 설명한다.

요리를 했는데 아들이랑 아들 친구가 와서 먹고 갔단다.

애들한테 쓰레기 봉지를 내주고 한다는 말이 바람이 차서 나갈 엄두가 나지 않는다고는 내용이 끝나더란다.

끝을 알 수가 없어 앞뒤 페이지를 오락가락 했단다.

듣는 나도 어안이 벙벙했다. 이 무슨 괴상한 글인가.

<우호적인 무관심>은 자다가 봉창 두드리는 소리로 내 마음의 문을 두둥- 두드렸다.

 

 

열정적인 관심이 아니라,

우호적인 무관심이다.

차이를 존중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p.159)

 

간혹 나는 아이들 그림책이나 청소년 문학을 시간을 내어서 읽곤 한다.

읽다 보면 명확하고 깔끔한 즐거움을, 숨겨진 의미를 전해 받곤 한다. 이를 테면 마음이 깨끗하고 가벼워지는 기분.

‘바람의 아이들’ 역시 아동청소년을 위한 책들을 펴내는 곳이다.

그렇기에 <우호적인 무관심>을 두고 한참을 고민했다. 딱히 청소년을 타겟으로 두고 만들어진 책 같지 않아서였다.

(차라리 저자의 <뭐가 되려고 그러니?>란 책이 청소년에게 권할 만하다. 청소년들과 소통하듯이 쓰여진 책이니까.)

명확하게 안겨주는 즐거움이란 게 없다. 누구를 위한 책인 걸까?

책 한권을 읽고 나니 답을 한다.

뒤표지의 문구대로 ‘지도 없이 어딘가에 도착하고 떠나기를 반복하는 모든 이들에게’ 권한단다.

마음이 아직 덜 익은-어쩌면 나 같은- 그대에게 전하는 쪽지 같은 책이다.

 

 

 

저자는 덤덤하게 이야기들을 풀어낸다.

마치 부엌에서 따박따박 도마질을 하면서, 거들 일이 없는지 식탁에 대기 중인 내게

하루 중에 있었던 일을 찬찬히 늘어놓는 엄마같다.

(엄마라고 하기엔 실제 저자의 나이는 너무 젊다. 막내 이모쯤이라 생각하면 좋을까?ㅎㅎ)

혹은 방과후에 시간을 내어 두런두런 다과를 즐기며 오가는 수다같다.

 

집앞 슈펴 할머니들 얘기, 은행에서 들은 얘기, 딸아이 학교에서 봉사활동을 가서 느낀 얘기,

문학의 밤에서 만난 진짜 ‘프랑스 마초’ 얘기, 엘리베이터 앞에서 만난 꼬마아이 얘기까지.

듣고 있다 보면 ‘그렇네요? 전 이렇게 생각했으면 좋았을 것 같은데...’하고 깔깔거리면서 대화를 계속 해나가고 싶다.

읽다 보면 웃음이 삐죽삐죽 입가에 번지고 만다.

 

 

 

 

사이사이에 꼼꼼한 스케치와 메모도 들어 있다.

화려하진 않지만 펜으로 꼼꼼히 그려낸 그림이다.

그림 옆에 적힌 짧은 글귀들은 ‘**에게’라고 콕집어 내게 남겨놓은 메모 같다.

메모같은 느낌이라고 해서 한 부분만 뭉텅 잘라내면

또 그녀의 이야기는 아무것도 아닌 글이 되고 그림은 그냥 자랑삼아 그린 그림이 되어 버린다.

책은 그렇게 빼곡하게 그들의 언어로 집을 짓고, 엄마 같은 그녀의 자상함이 우리들을 맞이한다.

 

 

 

‘악착같이’라는 말을 싫어하고 ‘목적 없이’라는 말을 좋아한다는 저자의 소개글이 그이를 있는 그대로 보여준다.

흰 머리를 있는 그대로 고수하고, 비판과 해방에 대해서만 말하는 요즘 어린이 청소년 책을 걱정한다.

그녀의 고지식함이 고맙고, 감사하다. 이런 분이 꿋꿋하게 아이들의 미래를 위해 책을 엮어내고 계신다는 게 다행이다 싶다.

닮고 싶다.

아이들에게 줄 수 있는 것은 믿음과 사랑뿐임을 깨닫는 부모이고 싶고,

넋두리와 자기과시를 하지 않는 문학을 담고 싶고,

차이를 존중하기 위해 우호적인 무관심으로 모든 것을 보고 싶다.

아니 어쩌면 ‘너무 많은 것을 담아두면 두통이 떠나지 않는다’는 그녀와 내가 이미 닮아 있기도 한건가. ^^

 

 

참! 남자친구가 읽었다던 그 미스테리(?)한 글은 사실 ‘창의력은 날마다 필요하다’란 제목으로 쓰인 글이다.(p.403)

제대로 읽고 나면, 자다가 봉창 두드리는 글 같다는 감상평 대신

‘차가운 공기를 가르고 나갈 엄두가 나지 않는다’면서 빙긋 웃는 엄마의 미소를 엿볼 수 있다.

 

너무 꽉 죄어버린 일상의 빼곡함이 버거울 때, <우호적인 무관심> 안에 잠시 놀러와 보면 어떨까.

따끈한 차 한잔과 이 책 한 권이면, 없던 여유도 마음 안에 들어와 둥지를 틀 듯 하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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