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실한 고백
조두진 지음 / 예담 / 2012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요즘 눈여겨보는 드라마가 있다. 드라마를 제작하는 과정을 둘러싸고 일어나는 해프닝들이 주된 이야기 줄기인데, 하나의 드라마를 바라보는 여러 사람들의 이해관계와 시선이 느껴지곤 한다. 이 드라마 안에는 대립되는 사람들 사이의 알력이 심한 편이다. 간혹 서로 ‘다른 입장‘이기에 이해가 되지 않아 그렇지, 이래서 맞고 저래서 맞게 해석이 되는 이야기가 불쑥불쑥 나오곤 한다. 쏠쏠한 재미가 툭툭 튀어나온다. 어느 하나 진실이 아닌 것은 없다, 확대/축소 해석되는 ’사실‘만 있을 뿐? 그런 면에서 이 책<진실한 고백>은 그 드라마와 통하는 면이 있다.

  

 

-끼끗한 여자/ 시인의 탄생/ 진실한 고백/ 장인정신/ 이정희 선생님/ 뻐꾸기를 보다

 

이 여섯 개의 단편 소설들은 모두 말 그대로 ‘진실한 고백’이다. 물론 잘 살펴보면 그 고백 안에 있는 것은 ‘진심어린Sincere' 고백이긴 하지만, 결코 ’사실Fact'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고백하듯 마음속에 묻어둔 이야기를 꺼내어 늘어놓는데, 묵은 양심의 먼지와 진실한 반성의 때가 없을 리가 있겠는가.

 

 

 

 

“끼끗한 여자” 속의 서현과 희주는 닮았다. 걸 그룹 ‘마녀’로 활동하면서도 늘 이해할 수 있었다. 그리고 진심으로 통하는 것은 그 둘만의 비밀로 남아 있다. 그대가 형사라고 해도 둘 사이에 있었던 이야기는 알아낼 수 없다. 둘 중 하나가 침묵을 깨지 않는 한.

 

웃음이 큭큭 미어터지는 블랙 코미디를 읽고 싶다면, “장인정신”을 보라. ‘친구는 그것이 도박판의 특징이라고 했다. 따도 따도 돈이 되지 않는 곳. 그러나 세상의 거래는 다르다고 했다. 잔인한 승부처이고, 개평조차 없는 곳이며 지면 모든 것을 잃는 곳이지만, 따는 한 그 돈이 모두 자신의 돈이며, 오늘 딴 돈은 내일 잃을 돈이 아니며, 영원히 내 주머니에 들어와 앉을 돈이라고 했다. 물론 그만큼 돈을 따기 힘든 곳이며, 노름판처럼 한쪽이 잃으면 다른 쪽이 반드시 따는 게 아니라, 양쪽 모두 잃기만 하는 경우도 수두룩하다고 했다.(p.174~175)' 이 말을 듣고 ’성자‘는 세상이라는 보이지 않는 도박판에 뛰어 든다. 좋은 길목에 좋은 재료에 좋은 식단에, 정성까지 모아 그녀는 칼국수 집을 열기로 마음 먹는다. ’성자‘는 노력했다 오죽하면 왼손으로 밀가루를 반죽하였으랴. (’할머니는 왼손잡이다. 할머니의 칼국수는 맛있다. 고로 나도 왼손에 힘을 더 주면 맛있는 칼국수를 만들 수 있다.(p.181)')

 

그리고 책의 제목과 같은 단편, “진실한 고백”은 사람 좋아 보이는 인상의 무기징역 수감자 ‘장세달’의 진실한 자기 고백을 들을 수 있다. ‘초등학교 시절 고아원 아이를 괴롭혔던 그 사건 이후로 더 이상 비겁한 짓을 할 수(p.160)’ 없었기에 저지를 수 밖에 없었던 그 사건에 대해 장세달은 늘 슬퍼하고 안타까워 하고 있다. 과연 그의 범행 동기는 뭐였을까? 얼마나 비겁하지 않은 행동을 보여, 최초의 비겁한 행동을 사죄하려 하였을까?

 

자기 고백적인 이야기를 시로 승화시키는 시인, 정경숙은 ‘나’와 어느 날 조우한다. ‘요즘도 곤충채집을 다니느냐?’며 ‘나’를 알아봐주더니 우리가 언제 어디서 어떻게 만났는지 자세하게 이야기했다. 시를 쓰면서 기억 속에 묻혀 있던 것들이 하나 둘 둥둥 떠오른다는 그녀의 기억력은 완벽에 가까운 걸까? 하지만, 간과하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세상에는 사실이 두 개일 수도 있다, 저장기록에 따라. (“시인의 탄생”)

 

두 서 없이 우리의 뒤통수에 꽂히는 진실한 고백들에 인상이 조금 찌뿌려진들 어떠하리. 이 책의 제일 마지막에 실린 “뻐꾸기를 보다”를 보면서 우린 즐거운 공상에 잠길 수 있다. ‘옛날 옛날에 호랑이 담배 먹던 시절에~‘로 시작하던 재미있던 이야기들 역시 진실한(!) 고백들이란 걸 깨닫게 되는 것은 얼마나 달콤하고 기분 좋은 일인가. 그 이야기들도 실은 우리가 겪어보지 못해 그렇지 진실이었다!

 

 

 

 

이야기는 이야기다, 진실이건 사실이건 중요하지 않다. 그것이 어떤 범죄를 저질러 우리의 인생에 커다란 흠집을 낸다거나 슬픈 멍울을 남기지 않는다면, 이야기는 기억되는 대로 사람들이 생각하는 대로 때로는 곱게 다듬어지기도 하고 때로는 좀 더 섬세하게 꾸며지는 것이 당연한 일이 아니던가.

 

세상 거의 모든 일은, 어느 시선에서 보는 지에 따라 사실이 두 개가 될 수도 있고 세 개가 될 수도 있다. 무슨 일이건 의심하여 봐도 좋다. 하지만, 사람의 기억에서 뿌리를 찾아야 하는 이야기들이라면 진실/사실 여부에 연연해하진 말자. 우린 결국 자기변명에 능한, ‘고백’자라는 걸 벗어날 수 없다. ^^;;

 

 

블로그 동시 게재: http://ohho02.blog.me/100173637573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