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더들의 리더 시너지스트 - 팀을 예측 가능한 성공으로 인도하는 방법!!
레스 맥케온 지음, 공민희 옮김 / 21세기북스 / 201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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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나는 작은 병원에 다녔다. 진료를 받기 위해 대기실에 앉아 멀뚱히 벽을 바라보기가 심심해 관찰 아닌 관찰을 시작했는데 대기실에 앉아있는 환자들보다 적은 수의 병원 구성원이 제일 먼저 눈에 들어왔다. 환자를 맞이하는 것은 간호사 선생님 두 사람과 의사 선생님 한 사람 뿐이었기 때문이다. 일손이 부족하지 않을까, 별 탈 없이 잘 굴러갈까? 여러 날에 걸쳐 병원에 다녀보니 세 사람은 각각 다른 방식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어떤 사람은 조금 권위적으로 환자를 대하며 또 어떤 사람은 날래게 행동한다. 막상 환자를 맞이하는 의사는 지나치게 사근사근하다. 신기하게도 각기 다른 사람들이 삐그덕거리지 않고 잘 움직인다. (구성원의 손발이 맞지 않는 병원이었다면 내가 찾아갈 때까지 잘 운영이 되었을 리가 없겠지.^^;) ‘보이지 않는 손’이 있어서 세 사람을 조화롭게 조작하고 있는 걸까? 서로 다른 사람들을 어우러지게 하는 건 뭘까? 이 작은 관찰에서부터 나는 『시너지스트』에 대한 호기심이 생겼는지도 모른다.

 

 

여럿이 모여 일을 진행할 때 -하다 못해 어린 시절, 학교에서 ‘모둠 활동’에서 조차- 너무 비슷한 사람들끼리 모여서 힘든 경우를 혹은 너무 다른 사람들끼리 모여서 진전이 없는 경우를 겪어본 일이 있을 것이다. 나 역시도 그런 경험이 많은데, ‘함께’하는 일을 통해 또 다른 나를 발견하기도 한다. 비교적 얽매이는 것을 싫어하는 편이라 구성원들끼리의 의견 조율이 잘 안되거나 독불장군식으로 일을 진행하는 리더가 있으면 일의 효율이 떨어지다가도 타협이 잘 이루어져 단계별 목표가 명확할 경우(혹은 내게 특정 부분의 일을 일임할 경우)엔 또 다른 방식으로 일을 처리하기도 한다.

 

이렇듯 경우마다 구성원들끼리 삐그덕 거릴 수도 있고, 자신 개인의 일처리 방식이 때때로 달라질 수 있다. 어떻게 하면 이런 각기 다른 경우들을 잘 이끌어서 ‘성공’으로 가닿을 수 있을까. 이 책은 우리가 함께 일하는 사람들을 크게 셋으로 분류하며 시작한다. 비저너리는 창의적인 생각에 익숙한 사람이다, 흥미에 따라 일에 접근하고 때론 포기도 빠르다. 오퍼레이터는 실현가능한 ‘접근’을 시도하는 사람들이다. 자기만의 속도와 방식으로 일을 하는 것을 좋아하며 주어진 일을 ‘끝내는 것’에 의미를 둔다. 프로세서는 위험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다, ‘안정’을 위해 일의 과정을 때로는 그 절차 하나하나를 감시하고 기록하고 수정한다. 사람들이 이렇게 분류할 수도 있다는 게 신기한가, 그런데 이런 분류가 칼로 자르듯이 딱 맞아 떨어지지 않는다는 사실도 눈치챘는가. 사람은 누구나 여러 면을 갖추고 있어서 한 가지로 설명하기가 어렵다. 이 분류에 의하면 나는 비저너리와 프로세서가 서로 다른 비율로(시시때때로 변하기도 한다) 섞여 있다. 모두 하나같이 제각각인 사람들이 팀을 이루어 일을 진행한다면 얼마나 아수라장이 될까. 서로 다른 동기에 의해 움직이고 언어와 접근 방식 또한 다르다. 누군가는 회의를 피하고 싶어하고 누군가는 일을 마무리 짓고 싶어하며 누군가는 새로운 아이디어만 자꾸 쏟아낸다. 이런 혼돈에 휩싸이지 않기 위해서 ‘시너지스트’가 필요하다고 저자는 주장한다.

 

시너지스트는 새로운 ‘관리자의 투입’이라고 생각하면 이해하기 쉽다. 누구나 책에서 제시하는 아홉가지의 기술을 이해하고 적재적소에 다가가면(‘헌신’하면) 훌륭한 시너지스트가 될 수 있다. 책에서 제시하는 아홉가지의 기술은 다음과 같다.

[표 8-1] 시너지스트의 아홉 가지 기술

개인적 생산성

팀워크

시간 관리

갈등 관리

우선순위 관리

곤란한 대화

위기 관리

의사소통 기술

위임

포괄

 

책임

(p.248)

이런 자잘한 기술을 알되 “팀이나 그룹 환경에서 일할 때 개인적 관심사보다 기업의 관심사를 우위에 두어라.”(p.244)라는 말을 꼭 명심하고 행동하자. 이것이 시너지스트의 핵심이론이니까.

 

 

 

책의 내용들은 알차다. 팀 구성원 중에 있을 법한 사람들을 잘 분류해주었고 서로 다른 그 사람들이 서로 함께 나아가는 방향에 대해 굉장히 구체적인 모델을 제시했다. 이해하기 쉽게 항목별로 설명해 둔 줄글을 깔끔한 표로 정리해주는 것도 잊지 않았다. 비교적 다양한 조합/경우의 수에 대해 예시를 잘 들어주었다. 게다가 부분의 설명이 끝난 후에 ‘Chapter 요약’이 약 두 페이지 정도로 등장해준다.

그러나 단점이라면 -지극히 개인적인 소견이지만- 책의 내용이 아닌 편집에서 거슬리는 부분이 조금 있다. 첫째, 띄운 줄이 너무 많다. Part 2와 Part 3에서 본격적인 활용에 대한 설명이 나오는데 제목/소제목/항목 구분을 늘어놓으면서 지나치게 띄워쓴 줄이 많다. 물론 임의대로 내용을 첫째, 둘째로 손꼽는다거나 번호를 매겨 늘어주는 친절은 감사하나 한 부분을 펼쳤을 때, 한 눈에 파악하기가 쉽지 않아 아쉬웠다. 강조하기 위해 쓴 주황색 굵은 글씨와, 단락의 중요 내용을 표시해주는 굵은 글씨가 ‘너무’ 빈번히 등장해서 힘든 부분이 있었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띄워쓰기가 많다는 것은 다른 이에게는 장점으로 파악될 수 있다. 시간이 넉넉지 못한 독자에겐 편집자의 구분을 따라 뼈대를 파악해 가면 되니까 감사할 일이란 게 맞겠다.) 둘째, ‘용어’의 문제. 제목으로 쓰인 ‘시너지스트‘라는 말에서 알아챘겠지만 이 책은 영어에서 나온 용어들을 소리나는 그대로 한글로 표기했다. 나는 ’전문적인 단어‘를 마구잡이로 늘어 쓰는 사람을 싫어하는데 ’한글로 순화시키지 않은 단어‘들에 굉장한 거부감마저 있다. 이 책은 ’비저너리‘, ’프로세서‘, ’오퍼레이터‘ 그리고 ’시너지스트‘라는 단어를 비롯한 외국어가 날 것 그대로 너무 자주 등장한다. 딱딱한 한자어와 날것을 소리나는 대로 써놓은 외국어 표기- 데이터, 두뇌 배터리, 보디 랭귀지,캐스팅 보트 등등의 외국어가 의역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등장한다-를 만날 때마다 좀 어색했던 것이 사실이다. (이것은 저자의 ’단어 선택‘이 너무 탁월해서 번역가가 ’감히‘ 손댈 수 없었다면 어쩔 수 없는 일이지만!)

 

앞서 밝혔다시피 병원을 오고가면서 책을 읽었다. 전문적인 용어들에 집중하기에 부족해서 약간의 단점이 거슬렸을 수도 있다. 실제적인 상황을 관찰하면서 호기심이 일었고 과거에 내가 이끌어왔던 구성원들과의 작업을 생각해보니 어떤 사람이었는지 왜 그때는 이해를 못했는지 후회가 자꾸 밀려왔다. 더 큰 성공을 일구기 위해서라도 본문을 여러번 읽고 작은 기술들, 그리고 일을 하는 동안 예측할 수 있는 위기 상황을 미리 알고 준비해야겠다. 시너지스트로서의 지혜가 체득이 되면 ‘우리 팀’ 모두는 행복하게 협동할 수 있겠지?

 

역동적인 ‘팀’을 위해 살아숨쉬는 ‘우리들’을 위해 더 강력한 시너지스트가 되고 싶은 그대에게 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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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는 왜 내 편이 아닌가 - 우리의 습관을 좌우하는 뇌 길들이기
이케가야 유지 지음, 최려진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1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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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습 심리학을 파고들다가 늘 멈칫하는 부분이 있다. 인지주의 학습이론, 이 녀석이다. 우리는 ‘학습’을 어떻게 이해하는가에 대한 경쾌하고 가벼운 질문으로 사람을 홀리다가 끝도 없이 수렁으로 이끌곤 한다. 어려운 부분이지만 인간의 작동 원리(?)와 맞닿아 있기 때문에 또 재미있는 부분이기도 하다. 간혹 공부를 하다가 끌리듯 ‘뇌과학’ 분야의 책까지 찾아 보다가 저자, 이케가야 유지의 책들을 만난 적이 있다. 표지와 소재에 끌려 택한 이 책 『뇌는 왜 내 편이 아닌가』를 손에 쥐고서야 나는 ‘아, 또 얼마나 많은 것들을 공부해야 한단 말이야?’하고 후회를 했다. 해마, 학습세포, 선수학습의 간섭 효과, 단기기억, 장기기억, 에빙하우스 망각곡선... 저자가 늘 풀어놓는 썰을 생각하면서 긴장을 잔뜩 했다.

 

책에 들어가기에 앞서 ‘시작하며’에서 저자는 편안하고 친절하게 나를 맞이한다. 책의 핵심은 18, 19, 20장에 있다. 이 3개의 장에 뇌에 대한 나의 생각을 담았다. 마음 급한 독자라면 이 부분부터 읽으면 내가 책에 담고자 한 메시지를 파악할 수 있을 것이다.(p.5~6) 당연히 나는 일러준 세 개의 장부터 읽었다. 생각보다 딱딱한 용어가 덜 나왔고 예를 들어준 실험들은 이해하기 쉬웠다. 더불어 간단한 점과 선으로 그려진 일러스트를 보면서 나는 마음을 놓았다. 그리고 다시 처음부터 차근차근 즐겁게 책을 읽을 수 있었다. 무작정 깊은 수렁으로 빨려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쉬엄쉬엄 징검다리를 건너듯이 한 부분씩 끊어읽기가 가능했다.

 

본문은 크게 스물 여섯 개의 주제를 1~3부로 구성해 두었다. 하나하나의 이슈들이 제각각의 이야기를 간결하게 담고 있어 어느 부분부터 읽더라도 어려움이 없다. 그리고 이야기들은 하나같이 재미있다.

그중에 몇 가지를 살짝 소개해보자면, 노인이 되면 세상의 이치를 알게 되는 것일까, 왜 그렇게 어른들은 침착할까? 반대로, 이득을 볼 것 같을 때의 반응은 젊은이와 연장자 사이에 차이가 없었다. 다시 말해 연장자는 손해에 대해서 별로 집착하지 않는다. 다만 실제로 손해를 보았을 때의 반응은 젊은이든 연장자든 거의 같다고 한다. 손실 자체에 대한 혐오감은 나이를 먹어도 줄어들지 않으며, 단지 손해를 필요 이상으로 회피하지 않게 된 것이다. (p.159) 침착한 것이 아니라, 손실에 대한 감정적 대응이 낮아진 것일 뿐, 우리와 똑같은 신경의 반응이 일어나고 있다.

술만 마시면 용기가 나는 사람들, 아니 하다 못해 고백조차도 술을 마시고 하는 소심이들, 왜 그렇게 거리엔 ‘취한 파이터fighter’들이 많을까? 그런데 길먼 박사팀의 실험에 따르면, 공포에 떠는 얼굴 사진을 보여 주어도 알코올을 투여한 사람의 뇌에서는 강한 불안 반응이 생기지 않았다. 공포를 공포로 제대로 인식할 수 없게 된 것이다. (p.226) 저자의 설명을 듣고 보니, 한마디로 ‘뵈는 게 없는 사람들’이다. 험악한 인상의 깡패를 만나도 겁이 나지 않는 것은 마음에서 용기가 난 것이 아니라 뇌가 살짝 맛이 건 것이라서?^^;;

시험공부를 할 때 무작정 밤을 새는 것 보다, 적당히 눈을 붙이는 것이 낫다하는 데엔 다 이유가 있다. 대략적으로 설명하면 얕은 잠을 잘 때는 해마가 시터파라는 뇌파를 방출하면서 정보의 뇌 내 재생을 수행한다. 반대로 깊은 잠을 잘 때는 대뇌피질이 델타파를 내어 정보를 기억으로써 보존하는 작업을 한다. 자고 있는 동안 기억의 정리와 정착이 교대로 진행되는 것이다. (p.250) 공부한 것들을 ‘장기기억’으로 넘겨주는 뇌 공장이, 우리가 잠을 잘 때 무상으로 잔업(?)을 해줄 것이니까.

뇌는 우리가 생각한 것보다 잘 속는 녀석이다. 아니, 우리의 생각이 더 잘 속는다고 해야할까? ‘왠지 모르게’의 내면에는 최초의 기억이 뇌에 각인되어 있을 지도 모른다. 아니면 그 선택을 할 때 주변 공간의 색깔이나 분위기 혹은 상대방의 인상에 속은 것일지도.

 

뇌가 왜 ‘내 편이 아닌가’에 대해서는 끈질기도록 열심히 이야기들을 모았다. 하지만 아쉬운 부분도 없진 않다. 책의 기본이 되는 원고가 인터넷에 썼던 칼럼이 원본이다 보니 가볍다. 무슨 말인고 하니, 깊이가 부족하다는 말이다. 저자의 말투가 녹아 있어서 좋기도 하지만 애매하게 넘어가는 부분도 있다.

가령 이런 식이다, 베일록 박사팀은 고등학교 학생 16명을 대상으로 진급과 낙제가 갈리는 기말시험에서 이를 확인했다. 시험 직전에 10분의 시간을 주고 다음 시험 과목의 어느 부분이 어떻게 불안한지 구체적으로 쓰도록 했다. 그러자 긴장감이 풀렸는지 점수가 10퍼센트 정도 향상되었다. 시험에 관계없는 문장은 효과가 없었으니 기분을 솔직하게 내보이는 것이 중요함을 알 수 있었다. 한편 주눅 들거나 긴장하지 않는 타입의 학생들은 불안한 내용을 쓴다고 성적이 달라지지 않았다. 누구에게나 효과가 있는 것은 아닌 모양이다. (p.63) ‘누구에게나 효과가 있는 것은 아닌 모양이다’로 아쉬움을 길게 남긴다는 것. 하지만 챕터나 주제가 지나치게 무겁지 않아서 교양서적으로 손색이 없다. 중고등학생에게 추천하여도 재미있어 할 것 같다. 뇌의 특정 부위에 대한 설명이 반복되어서 좀 헷갈린다 싶을 땐 저자 서문 다음에 위치하는 뇌 그림(일러스트 작가가 그린 것 같은데 굉장히 아기자기하다)을 참고로 하면 좋겠다.

 

편안하고 즐겁게 읽을 수 있는 교양 서적으로 좋다. 하지만 ‘뇌과학’을 심층적으로 파고들고 근간으로 흐르고 있는 심리학적 기재에 대해선 다른 책을 더 참고하자. 경쾌하게 들어찬 예화들만으로 우리는 많은 ‘상식’을 얻을 수 있으니까 아쉬워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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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상처, 영화로 힐링하기
이병욱 지음 / 소울메이트 / 201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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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힐링'이라는 단어를 보고 선택해본 책.

아무래도 치유의 과정에 관심이 가서 고른 책이었다,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가 지으신 책이니

어쩌면 마음 속의 상처를 힐링할 수 있게 도와주려니 하고.


그.러.나.

'영화로 힐링하기'의 '영화'가 문제였다.

영화를 통해 보여주려다 보니까 

전문의로서의 소견이나 도움말 보다는

영화속의 캐릭터 분석과 그에 해당하는 문제(=증세)의 안내가 간략하게 나와 있다.



힐링과 치유, 나를 도와주는 책...으로 골랐다가 낭패를 본 경우.

아마 

1. 어떤 영화를 봤는데 주인공의 상태가 비정상적으로 보여서 궁금한 경우,

2. 정신이 건강하지 못한 경우들을 구분해보고 싶은데 감이 잘 안잡히는 경우,

3. 편집증이나 히스테리 혹은 그외의 여러가지 정신적인 문제들이 어떤 스펙트럼(?)을 가지고 영화속에서 다루어지는지 다양한 케이스를 알고 싶은 경우

이 책을 선택한다면 10점 만점에 10점짜리 선택일 듯.


치유에 관심을 두었던 내게  

'어떤 영화는 ***의 증세를 이러이러하게 보여주었고

치유의 과정을 &&&하게 풀어갔는데 그건 실제와 차이가 있다

(, 혹은 바람직하다)'.....정도의 코멘트만 해주고 있는 저자가 

괜히 야속해 보이기까지 했다. ㅎㅎㅎ



하지만 구성도 탄탄하고 영화 이야기도 많이 실려 있는 좋은 책.

제목이 애매모호해서 판단 미스를 일으키기 좋은 책이기도.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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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 감각 기르기 - 유쾌한 지식여행자의 거침없는 대화 지식여행자 15
요네하라 마리 지음, 김옥희 옮김 / 마음산책 / 201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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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어 통역가, 낯설다.

새로 산 셔츠가 피부에 닿으며 바짝 선 깃과 결로 나를 긴장시킬 때의 느낌과 비슷하다 할까.

러시아에 눈꼽만큼의 관심도 없었고 일본작가의 정신세계는 요시모토 바나나 언니님 이후로 버겁다며 고이 접어두었던 내게 요네하라 마리는 날이 선 셔츠같았다. 뭐부터 어떻게 다가가야 내 것인양 익숙해지지?

 

『언어 감각 기르기』는 마리가 일본의 저명인사들과 인터뷰한 내용을 글로 펴낸 책이다.

모국어와 외국어를 통역하는(혹은 번역하는) 작업이 어떠한 것인지 인터뷰 사이사이에 엿보인다.

어설픈 솜씨로 지어진 연설문을 들으며 세련된 언어로 바꾸어 말해야 할지 원문 그대로 조악한 문장으로 내보내야 할지,

이어폰을 꼽고 발을 진땀을 빼고 있는 가상의 여인을 떠올려 볼 수 있다.

물론 그 자리엔 이탈리아어 통역가도 있어줘야 한다, 망사 스타킹을 신은 고운 차림의.

(이탈리아어의 통역사가 저런 차림만 있는 건 아니다, 다양한 방식의 사람들을 떠올릴 수 있다.

실제로 이탈리아어 통역가로 활동중인 '다마루‘와의 대화가 여러 번 실려 있는데 정말 재미있다.)

p.208

그러고 보니 이탈리아인이 쓴 이런 내용의 러브레터가 생각나네요. "사랑스럽고 사랑스러운 내 보석 마리아 씨. 당신의 눈동자가 저를 응시하게 하기 위해서라면, 알프스를 맨발로 넘는 것도 불사하겠습니다. 당신의 부드러운 팔에 안기기 위해서라면 어떤 깊은 바다도 헤엄쳐 갈 수 있을 것 같습니다. (...) 당신을 위해서라면 뭐든지 하겠습니다. 사랑스러운 마리아에게. 피에로"라고 쓴 다음에, "P.S. 다음 토요일, 만약 비가 안 오면 만나러 가겠습니다." 이게 바로 이탈리아 사람이죠.(웃음) 정말로 절반도 믿어서는 안 된다니까요. 그까짓 비가 뭐라고.

 

일본에서만 자란 일본인이 아니라

체코에서 어린 시절을 살았다가 일본에서 자리를 잡은 일본인으로서 마리씨는,

일본인의 문화나 언어 곳곳에 묻어나는 ‘익숙함’에 대해 객관적으로 다시 접근해볼 수 있었을 것이다.

덕분에 일본 혹은 러시아 문화권에 대해 다면적인 접근이 가능하다.

p.44

그때까지 나는 열등감이라는 말을 들어본 적도 없었기 때문에 그런 감정을 가진 적도 없어. 그러고 보면 소비에트 학교의 친구들에게 열등감이라는 감정, 그리고 사람의 재능이나 능력에 대한 질투나 시기 같은 감정이 없었잖아. 뛰어난 재능을 친구에게서 발견하면, 자기 일인 양 기뻐했지.

 

가까운 일본이어서 그리고 그 언젠가 같은 문화권에 놓일 수 밖에 없었던 운명이어서 일본과 우리는 비슷한 흐름이 많다.

가령 ○×식이나 선택형의 시험.

아무렇지 않게 당연하게 접해온 시험방식인데 다른 나라에서의 평가와 비교하면 삭막하기도 하다.

왜 한번도 ‘왜 꼭 이런 형식만 있어야 할까?’에 대한 근원적인 물음을 던지지 못했을까 생각했다.

아니 중학생때에 마리씨와 비슷한 의문을 가져본 적은 있었던 것 같다, 다만 ‘선생님께 따’지지 않은 것만 차이가 있다할까.

(마리씨, 화끈하게 선생님께 따져보기도 했단다. 참 근사하다.)

p.44~45

나는 참을 수가 없어 선생님에게 따졌어.(웃음) 예를 들어 역사의 경우 소비에트 학교에서라면 “인더스 강이 인도의 농업에서 어떤 역할을 했는가?” 혹은 “인도의 자연과 종교의 관계에 대해서”같은 문제가 나와, 책을 읽거나 어른에게 묻거나 스스로 어떻게든 조사해서 친구들 앞에서 발표해서 평가를 받잖아. 암기하더라도 전체적인 문맥 속에서 의미를 갖는 것이지 토막 내고 잘라내버리면 무의미하다고 하면서, 이런 식의 공부 방법도 평가 방법도 잘못된 거라고 항의했지. 그랬더니 선생님이 “마리야, 한 반에 50명이나 있기 때문에 도저히 그런 식으로는 할 수가 없단다. 게다가 그런 방식으로는 객관적인 평가가 불가능해”라고 하셨지. 하지만 객관적인 평가는 어차피 불가능한 법이니까, 그건 단순히 평가하는 사람의 책임 회피로밖에 여겨지지 않았어. 그래서 나는 일본 사회에 영원히 적응할 수 없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어.

 

 

요네하라 마리가 세상을 떠난 해에, 우리나라에 처음으로 마리씨의 책이 출간되었다고 한다.

아직 번역되지 않은 책도 많을 것이고 접하지 못한 마리씨의 에세이도 많을 것이다.

어쩌면 ‘언어 감각 기르기’는

통역을 준비하면서 꼼꼼하게 많은 것들을 연구하던 그녀가

그만큼 폭넓은 열린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봤기 때문에 가능했던 건 아닐까.

세상을 넓고 다양한 시선으로 바라봐야 한다는 내 생각과 같았지만

그녀는 ‘러시아어’를 통한 시선으로 세상을 본다. 나는 나만의 시선으로 세상을 본다.

그녀처럼 본질을 바로 보면서 즐거운 대화를 많은 사람들과 이어가기 위해선

내 시선이 더 깊고 넓어져야 하지 않을까.

이미 세상을 떠나 없는 마리씨가 안타깝다.

더 좋은 시선으로 ‘정형화되지 않은’ 많은 것들에 대해 한마디 더 하셨어야 했는데.

 

언제부터 이렇게 친근했다고, 벌써 마리씨를 좋아하게 되어 버렸다.

하긴, 빳빳하고 차가운 셔츠도 조금 지나면 내 체온으로 따스하게 와닿잖아.

 

 

 

나 같은 경우, 태어나서 사춘기가 오기까지 어린 시절에 습득한(?) 것은 서울의 언어요 문화였다.

그런데 지금은 부산에 산다.

사투리나 영남 지역에 독특하게 존재하는 풍습(?)같은 것들이 새롭게 와닿을 때가 많다.

덕분에 새로운 것을 알아간다는 사실에 신나기도 하지만 문제는 너무 신나하다가 이상한 핀잔을 듣기도 한다는 점.

또 전라도 사투리, 충청도 사투리 등 너무 많은 언어에 노출되어 있어서 내 촉수(!)가 피곤할 때가 많다는 점.

감각기의 성능과 용량을 높여야겠다.

마리씨는 낯설었던 일본에서 어떻게 잘 적응했던 걸까. 더 많은 책으로 만나봐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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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근담, 돈이 아닌 사람을 번다 - 동양 최고의 인생고전 채근담에서 배우는 삶과 관계의 지혜 Wisdom Classic 8
신동준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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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근담, 돈이 아닌 사람을 번다』는 고전 연구가 신동준이 《채근담》에 나오는 내용 중에 ‘나눔’의 관점에서 필요한 것을 발췌·채집한 책이다, ‘다섯 가지 유형으로 분류한 뒤 일상적인 삶에 도움이 될 만한 사례를 덧붙(p.7)‘였다고 책 머리에 밝히고 있다.

 

이름만큼은 자주 들어본 《채근담》,이 제목은 무얼 뜻하는 걸까. 송나라의 왕신민이 소학(小學)에서 밝히기를 ‘사람이 항상 채근(菜根)을 씹을 수 있다면 백사(百)事를 이룰 수 있다’라고 한 것에서 《채근담》의 이름이 유래했다. 원래 《채근담》은 전집 222조, 후집 135조, 총 357조로 이루어졌다. 전집은 대인 관계에 해당하는 내용이 주가 되므로 이 책에 실린 내용들도 '전집'에서 유래한 글귀들이다.

고절·효제·신의·침려·역행 등의 5강은 《채근담》이 역설한 3분 미학과 취지를 같이 한다. 3분 미학 역시 그 내용에 따라 크게 다섯 가지 유형으로 나눌 수 있다.

첫째, 높은 명성과 뛰어난 절개의 3할을 남에게 넘겨주는 ‘여3분與三分’이다. 둘째, 세인의 손가락질을 받는 욕된 행실과 오명의 3할을 자신이 뒤집어쓰는 ‘귀3분歸三分’이다. 셋째, 큰 공을 세웠을 때 3할의 공덕을 주변 사람에게 돌리는 ‘양3분讓三分’이다. 넷째, 사람을 사귈 때 3할의 의협심을 지니고 친교를 맺는 ‘대3분帶三分’이다. 다섯째, 큰 이익이나 이윤을 남겼을 때 3할을 덜어내 다른 사람에게 나누어주는 ‘감3분減三分’이다. 여3분은 〈장강〉의 고절, 귀3분은 효제, 양3분은 역행, 대3분은 신의, 감3분은 침려와 취지를 같이한다.(p.15)

 

이렇게 《채근담》의 내용을 ‘3가지씩 나눌 것’에 따라 ‘타인에게 줄 명성과 절개 세 가지(與三分), 내게 돌릴 오명과 지탄 세 가지(歸三分), 사양할 대공을 세운 후의 공덕 세 가지(讓三分), 유대감을 위한 강한 의협심 세 가지(帶三分), 덜어내야 할 이익과 이윤 세 가지(減三分)’ 즉, 다섯 개의 장으로 나누어 두었다.

 

책속의 글귀는 훌륭하고 저자의 학식은 깊다. 사람들을 다루면서 어떤 점에 주의해야 할지도 잘 보인다.

그러나, 책은 이 둘의 조화가 조금은 아쉽다. 발췌된 글귀와 그 뒤로 실린 일화가 맞지 않는 구석도 간혹 보인다.

가령 ‘담박하고 떳떳한 삶’에 실린 ‘전집 157’의 交市人 不如友山翁, 謁朱門 不如親白屋. 聽街談巷語 不如聞樵歌牧詠. 談今人失德過擧 不如述古人嘉言懿行은 그 다음에 나오는 양홍과 그의 아내 맹광의 일화와 조화가 잘 이루어져 있어서 글귀에서 말하는 삶이 어떠한 것인지 쉽고 깊게 잘 읽힌다. 하지만 160페이지에 실린 ‘뜻이 정갈하면 마음은 맑아진다’의 일화는 명태조 주원장의 책략가 주승의 일화를 짧게 실어놓았지만 ‘전집 171’과 상통하는지는 잘 모르겠다. 242 페이지의 ‘고상한 인품이 사람을 부른다’에는 ‘전집 40’이 실렸다. 欲路上事 毋樂其便而姑爲染指 一染指 便深入萬仞. 理路上事 毋憚其難而稍爲退步 一退步 便遠隔千山이라고 하여 하고 싶어하는 일에 대해 편함을 너무 즐기지도 말고 사람의 도리와 관련된 일은 어려운 것 앞에 물러서지 말라고 해놓았다. 뒤이어 혜강이란 사람의 이야기를 실었는데 강직한 성품이 죽음을 불러왔다는 이야기와 고매한 인품 덕분에 훌륭한 명사들이 그를 찾아 모여들기도 했다며 이야기를 맺는다. 혜강이란 사람의 인품을 더 부각시킬 수 있는 일화를 많이 실었다면 글귀와 이야기가 자연스럽게 흐르지 않을까 의문을 가져본 부분이기도 하다.

 

뜻이 작으면 그릇이 작고, 그릇이 작으면 담는 것도 작아진다. 나라와 사람이 작은 게 문제가 아니라 뜻과 꿈이 작은 게 문제라는 이야기다. 크게 주고 크게 얻는 이른바 대여대취大予大取에 해답이 있다. 이를 ‘리세스 오블리주Richesse Oblige'라고 한다. (p.12)

글귀와 일화가 편하게 읽히지 않는다는 핑계로 이 책의 작은 부분만 보고 ‘책이 별로다’라고 생각하면 그릇이 작은 사람인 것은 아닐까, 크고 넓게 보자면 이 책은 충분히 가치가 있는데. 크게 주고 크게 얻는다는 말에 나도 모르게 많은 생각을 했다.

 

 

푸성귀는 쓰다, 그러나 오래 씹을수록 씁쓸함 대신에 담백함이 느껴진다. 이 책도 그러한가 보다.

투박하게 실려 있는 글귀와 일화의 조화가 쓰기도 하지만, 두고두고 좋은 글귀를 마음에 새기다보면 책을 꿰뚫고 있는 깊은 맛을 제대로 알아볼 수 있겠지. 저자의 깊은 지식에 탄복하면서 침대 머리맡 도서로 채근담을 놓아본다.

위편삼절韋編三絶까지는 아니어도 풀뿌리菜根의 담백한 그 맛을 제대로 알아볼 수는 있어야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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