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 감각 기르기 - 유쾌한 지식여행자의 거침없는 대화 지식여행자 15
요네하라 마리 지음, 김옥희 옮김 / 마음산책 / 2013년 3월
평점 :
품절


러시아어 통역가, 낯설다.

새로 산 셔츠가 피부에 닿으며 바짝 선 깃과 결로 나를 긴장시킬 때의 느낌과 비슷하다 할까.

러시아에 눈꼽만큼의 관심도 없었고 일본작가의 정신세계는 요시모토 바나나 언니님 이후로 버겁다며 고이 접어두었던 내게 요네하라 마리는 날이 선 셔츠같았다. 뭐부터 어떻게 다가가야 내 것인양 익숙해지지?

 

『언어 감각 기르기』는 마리가 일본의 저명인사들과 인터뷰한 내용을 글로 펴낸 책이다.

모국어와 외국어를 통역하는(혹은 번역하는) 작업이 어떠한 것인지 인터뷰 사이사이에 엿보인다.

어설픈 솜씨로 지어진 연설문을 들으며 세련된 언어로 바꾸어 말해야 할지 원문 그대로 조악한 문장으로 내보내야 할지,

이어폰을 꼽고 발을 진땀을 빼고 있는 가상의 여인을 떠올려 볼 수 있다.

물론 그 자리엔 이탈리아어 통역가도 있어줘야 한다, 망사 스타킹을 신은 고운 차림의.

(이탈리아어의 통역사가 저런 차림만 있는 건 아니다, 다양한 방식의 사람들을 떠올릴 수 있다.

실제로 이탈리아어 통역가로 활동중인 '다마루‘와의 대화가 여러 번 실려 있는데 정말 재미있다.)

p.208

그러고 보니 이탈리아인이 쓴 이런 내용의 러브레터가 생각나네요. "사랑스럽고 사랑스러운 내 보석 마리아 씨. 당신의 눈동자가 저를 응시하게 하기 위해서라면, 알프스를 맨발로 넘는 것도 불사하겠습니다. 당신의 부드러운 팔에 안기기 위해서라면 어떤 깊은 바다도 헤엄쳐 갈 수 있을 것 같습니다. (...) 당신을 위해서라면 뭐든지 하겠습니다. 사랑스러운 마리아에게. 피에로"라고 쓴 다음에, "P.S. 다음 토요일, 만약 비가 안 오면 만나러 가겠습니다." 이게 바로 이탈리아 사람이죠.(웃음) 정말로 절반도 믿어서는 안 된다니까요. 그까짓 비가 뭐라고.

 

일본에서만 자란 일본인이 아니라

체코에서 어린 시절을 살았다가 일본에서 자리를 잡은 일본인으로서 마리씨는,

일본인의 문화나 언어 곳곳에 묻어나는 ‘익숙함’에 대해 객관적으로 다시 접근해볼 수 있었을 것이다.

덕분에 일본 혹은 러시아 문화권에 대해 다면적인 접근이 가능하다.

p.44

그때까지 나는 열등감이라는 말을 들어본 적도 없었기 때문에 그런 감정을 가진 적도 없어. 그러고 보면 소비에트 학교의 친구들에게 열등감이라는 감정, 그리고 사람의 재능이나 능력에 대한 질투나 시기 같은 감정이 없었잖아. 뛰어난 재능을 친구에게서 발견하면, 자기 일인 양 기뻐했지.

 

가까운 일본이어서 그리고 그 언젠가 같은 문화권에 놓일 수 밖에 없었던 운명이어서 일본과 우리는 비슷한 흐름이 많다.

가령 ○×식이나 선택형의 시험.

아무렇지 않게 당연하게 접해온 시험방식인데 다른 나라에서의 평가와 비교하면 삭막하기도 하다.

왜 한번도 ‘왜 꼭 이런 형식만 있어야 할까?’에 대한 근원적인 물음을 던지지 못했을까 생각했다.

아니 중학생때에 마리씨와 비슷한 의문을 가져본 적은 있었던 것 같다, 다만 ‘선생님께 따’지지 않은 것만 차이가 있다할까.

(마리씨, 화끈하게 선생님께 따져보기도 했단다. 참 근사하다.)

p.44~45

나는 참을 수가 없어 선생님에게 따졌어.(웃음) 예를 들어 역사의 경우 소비에트 학교에서라면 “인더스 강이 인도의 농업에서 어떤 역할을 했는가?” 혹은 “인도의 자연과 종교의 관계에 대해서”같은 문제가 나와, 책을 읽거나 어른에게 묻거나 스스로 어떻게든 조사해서 친구들 앞에서 발표해서 평가를 받잖아. 암기하더라도 전체적인 문맥 속에서 의미를 갖는 것이지 토막 내고 잘라내버리면 무의미하다고 하면서, 이런 식의 공부 방법도 평가 방법도 잘못된 거라고 항의했지. 그랬더니 선생님이 “마리야, 한 반에 50명이나 있기 때문에 도저히 그런 식으로는 할 수가 없단다. 게다가 그런 방식으로는 객관적인 평가가 불가능해”라고 하셨지. 하지만 객관적인 평가는 어차피 불가능한 법이니까, 그건 단순히 평가하는 사람의 책임 회피로밖에 여겨지지 않았어. 그래서 나는 일본 사회에 영원히 적응할 수 없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어.

 

 

요네하라 마리가 세상을 떠난 해에, 우리나라에 처음으로 마리씨의 책이 출간되었다고 한다.

아직 번역되지 않은 책도 많을 것이고 접하지 못한 마리씨의 에세이도 많을 것이다.

어쩌면 ‘언어 감각 기르기’는

통역을 준비하면서 꼼꼼하게 많은 것들을 연구하던 그녀가

그만큼 폭넓은 열린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봤기 때문에 가능했던 건 아닐까.

세상을 넓고 다양한 시선으로 바라봐야 한다는 내 생각과 같았지만

그녀는 ‘러시아어’를 통한 시선으로 세상을 본다. 나는 나만의 시선으로 세상을 본다.

그녀처럼 본질을 바로 보면서 즐거운 대화를 많은 사람들과 이어가기 위해선

내 시선이 더 깊고 넓어져야 하지 않을까.

이미 세상을 떠나 없는 마리씨가 안타깝다.

더 좋은 시선으로 ‘정형화되지 않은’ 많은 것들에 대해 한마디 더 하셨어야 했는데.

 

언제부터 이렇게 친근했다고, 벌써 마리씨를 좋아하게 되어 버렸다.

하긴, 빳빳하고 차가운 셔츠도 조금 지나면 내 체온으로 따스하게 와닿잖아.

 

 

 

나 같은 경우, 태어나서 사춘기가 오기까지 어린 시절에 습득한(?) 것은 서울의 언어요 문화였다.

그런데 지금은 부산에 산다.

사투리나 영남 지역에 독특하게 존재하는 풍습(?)같은 것들이 새롭게 와닿을 때가 많다.

덕분에 새로운 것을 알아간다는 사실에 신나기도 하지만 문제는 너무 신나하다가 이상한 핀잔을 듣기도 한다는 점.

또 전라도 사투리, 충청도 사투리 등 너무 많은 언어에 노출되어 있어서 내 촉수(!)가 피곤할 때가 많다는 점.

감각기의 성능과 용량을 높여야겠다.

마리씨는 낯설었던 일본에서 어떻게 잘 적응했던 걸까. 더 많은 책으로 만나봐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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