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뇌는 왜 내 편이 아닌가 - 우리의 습관을 좌우하는 뇌 길들이기
이케가야 유지 지음, 최려진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13년 8월
평점 :
절판
학습 심리학을 파고들다가 늘 멈칫하는 부분이 있다. 인지주의 학습이론, 이 녀석이다. 우리는 ‘학습’을 어떻게 이해하는가에 대한 경쾌하고 가벼운 질문으로 사람을 홀리다가 끝도 없이 수렁으로 이끌곤 한다. 어려운 부분이지만 인간의 작동 원리(?)와 맞닿아 있기 때문에 또 재미있는 부분이기도 하다. 간혹 공부를 하다가 끌리듯 ‘뇌과학’ 분야의 책까지 찾아 보다가 저자, 이케가야 유지의 책들을 만난 적이 있다. 표지와 소재에 끌려 택한 이 책 『뇌는 왜 내 편이 아닌가』를 손에 쥐고서야 나는 ‘아, 또 얼마나 많은 것들을 공부해야 한단 말이야?’하고 후회를 했다. 해마, 학습세포, 선수학습의 간섭 효과, 단기기억, 장기기억, 에빙하우스 망각곡선... 저자가 늘 풀어놓는 썰을 생각하면서 긴장을 잔뜩 했다.
책에 들어가기에 앞서 ‘시작하며’에서 저자는 편안하고 친절하게 나를 맞이한다. 책의 핵심은 18, 19, 20장에 있다. 이 3개의 장에 뇌에 대한 나의 생각을 담았다. 마음 급한 독자라면 이 부분부터 읽으면 내가 책에 담고자 한 메시지를 파악할 수 있을 것이다.(p.5~6) 당연히 나는 일러준 세 개의 장부터 읽었다. 생각보다 딱딱한 용어가 덜 나왔고 예를 들어준 실험들은 이해하기 쉬웠다. 더불어 간단한 점과 선으로 그려진 일러스트를 보면서 나는 마음을 놓았다. 그리고 다시 처음부터 차근차근 즐겁게 책을 읽을 수 있었다. 무작정 깊은 수렁으로 빨려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쉬엄쉬엄 징검다리를 건너듯이 한 부분씩 끊어읽기가 가능했다.
본문은 크게 스물 여섯 개의 주제를 1~3부로 구성해 두었다. 하나하나의 이슈들이 제각각의 이야기를 간결하게 담고 있어 어느 부분부터 읽더라도 어려움이 없다. 그리고 이야기들은 하나같이 재미있다.
그중에 몇 가지를 살짝 소개해보자면, 노인이 되면 세상의 이치를 알게 되는 것일까, 왜 그렇게 어른들은 침착할까? 반대로, 이득을 볼 것 같을 때의 반응은 젊은이와 연장자 사이에 차이가 없었다. 다시 말해 연장자는 손해에 대해서 별로 집착하지 않는다. 다만 실제로 손해를 보았을 때의 반응은 젊은이든 연장자든 거의 같다고 한다. 손실 자체에 대한 혐오감은 나이를 먹어도 줄어들지 않으며, 단지 손해를 필요 이상으로 회피하지 않게 된 것이다. (p.159) 침착한 것이 아니라, 손실에 대한 감정적 대응이 낮아진 것일 뿐, 우리와 똑같은 신경의 반응이 일어나고 있다.
술만 마시면 용기가 나는 사람들, 아니 하다 못해 고백조차도 술을 마시고 하는 소심이들, 왜 그렇게 거리엔 ‘취한 파이터fighter’들이 많을까? 그런데 길먼 박사팀의 실험에 따르면, 공포에 떠는 얼굴 사진을 보여 주어도 알코올을 투여한 사람의 뇌에서는 강한 불안 반응이 생기지 않았다. 공포를 공포로 제대로 인식할 수 없게 된 것이다. (p.226) 저자의 설명을 듣고 보니, 한마디로 ‘뵈는 게 없는 사람들’이다. 험악한 인상의 깡패를 만나도 겁이 나지 않는 것은 마음에서 용기가 난 것이 아니라 뇌가 살짝 맛이 건 것이라서?^^;;
시험공부를 할 때 무작정 밤을 새는 것 보다, 적당히 눈을 붙이는 것이 낫다하는 데엔 다 이유가 있다. 대략적으로 설명하면 얕은 잠을 잘 때는 해마가 시터파라는 뇌파를 방출하면서 정보의 뇌 내 재생을 수행한다. 반대로 깊은 잠을 잘 때는 대뇌피질이 델타파를 내어 정보를 기억으로써 보존하는 작업을 한다. 자고 있는 동안 기억의 정리와 정착이 교대로 진행되는 것이다. (p.250) 공부한 것들을 ‘장기기억’으로 넘겨주는 뇌 공장이, 우리가 잠을 잘 때 무상으로 잔업(?)을 해줄 것이니까.
뇌는 우리가 생각한 것보다 잘 속는 녀석이다. 아니, 우리의 생각이 더 잘 속는다고 해야할까? ‘왠지 모르게’의 내면에는 최초의 기억이 뇌에 각인되어 있을 지도 모른다. 아니면 그 선택을 할 때 주변 공간의 색깔이나 분위기 혹은 상대방의 인상에 속은 것일지도.
뇌가 왜 ‘내 편이 아닌가’에 대해서는 끈질기도록 열심히 이야기들을 모았다. 하지만 아쉬운 부분도 없진 않다. 책의 기본이 되는 원고가 인터넷에 썼던 칼럼이 원본이다 보니 가볍다. 무슨 말인고 하니, 깊이가 부족하다는 말이다. 저자의 말투가 녹아 있어서 좋기도 하지만 애매하게 넘어가는 부분도 있다.
가령 이런 식이다, 베일록 박사팀은 고등학교 학생 16명을 대상으로 진급과 낙제가 갈리는 기말시험에서 이를 확인했다. 시험 직전에 10분의 시간을 주고 다음 시험 과목의 어느 부분이 어떻게 불안한지 구체적으로 쓰도록 했다. 그러자 긴장감이 풀렸는지 점수가 10퍼센트 정도 향상되었다. 시험에 관계없는 문장은 효과가 없었으니 기분을 솔직하게 내보이는 것이 중요함을 알 수 있었다. 한편 주눅 들거나 긴장하지 않는 타입의 학생들은 불안한 내용을 쓴다고 성적이 달라지지 않았다. 누구에게나 효과가 있는 것은 아닌 모양이다. (p.63) ‘누구에게나 효과가 있는 것은 아닌 모양이다’로 아쉬움을 길게 남긴다는 것. 하지만 챕터나 주제가 지나치게 무겁지 않아서 교양서적으로 손색이 없다. 중고등학생에게 추천하여도 재미있어 할 것 같다. 뇌의 특정 부위에 대한 설명이 반복되어서 좀 헷갈린다 싶을 땐 저자 서문 다음에 위치하는 뇌 그림(일러스트 작가가 그린 것 같은데 굉장히 아기자기하다)을 참고로 하면 좋겠다.
편안하고 즐겁게 읽을 수 있는 교양 서적으로 좋다. 하지만 ‘뇌과학’을 심층적으로 파고들고 근간으로 흐르고 있는 심리학적 기재에 대해선 다른 책을 더 참고하자. 경쾌하게 들어찬 예화들만으로 우리는 많은 ‘상식’을 얻을 수 있으니까 아쉬워 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