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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인만 Feynman
짐 오타비아니 지음, 이상국 옮김, 릴런드 마이릭 그림 / 서해문집 / 2011년 8월
평점 :
절판
# 드디어 올 것이 왔다고 생각했다. 그래, 내가 속한 분야가 '인문/사회/.... 그리고 무엇보다 과학!' 분야인 걸 잊고 있었지. '과학'책이 왔다. 그런데 의외로 신은 역시 조금은 자비로우신 건지, '과학'책이지만, '만화'책을 주셨다. 얇고, 표지가 예쁜! 파인만이 누구인지도 모르면서, 나는 갑자기 회가 동했고, 두려움 없이 읽어내려갔다. 읽은 결과가 어땠는지는 나중에 말하겠다. 우선, 책 뒷표지에 쓰여 있는 '그래픽 노블'이란 명칭에 대해서 말하겠다. 무식하게도 이 책을 만화책이라고 생각했던 내게, 이 책이 '그래픽 노블'에 속한다는 사실은 새로웠다. 그런 말을 들어본 적이 없어서 바로 검색을 했더니 그 정의는 이랬다. "그래픽 노블(graphic novel)은 만화책의 한 형태로, 보통 소설만큼 길고 복잡한 스토리라인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단순히 단편 만화의 앤솔로지를 그래픽 노블이라고 하기도 한다. 그래픽 노블은 대체로 보통의 만화 잡지보다 튼튼하게 제본되어 있으며, 인쇄 도서와 같은 재료와 방법으로 만들고, 가판대보다는 서점이나 만화 가게 등지에서 찾을 수 있다."(위키백과) 그러니까 만화책보다는 소설로 쓸 법한 길고 복잡한 이야기를 만화로 그리면 '그래픽 노블'이 된단 말이지. 당연히, 성에 차지 않는다. 이 정의는 이 만화책을 칭하는 명칭에 왜 '노블'이 동원되는지는 말하고 있지만, 왜 '그래픽'이란 말이 들어가는지는 말해주고 있지 않다. 아직도 풀리지 않는 의문이다. '그래픽'에 일가견 있고 동시에 '자비롭기까지 한' 제현의 가르침을 구한다. 아무튼, 그런데 어떤가 하면, 한 인간의 일대기란 원래 뭐로 쓰든 '길고 복잡한 이야기'이기 마련이지 않은가. 바꿔 말하면, 이 책이 그래픽 노블로 쓰여진 건, 이상한 일이 아니라는 이야기. 그러니까 '그래픽 노블'의 개성은, 도대체, 어디서 찾아져야 옳단 말인가, 하는 이야기.
# 컨텐츠에 대해 말해볼까. 이런 책이 아니라면, '파인만'에 대해서는 전혀 알 리가 없었던 한 중생을 무지와 미몽에서 구출했다는 것. 그것은 역시 '만화'의 위력이다. 그런데 그 이상이라면 이야기할 것이 별로 없다. 파인만이 누구인지 아직도 잘 모르겠다. 특히 역시 파인만과 같이 다재다능하고, 준천재에 가까울 것이 틀림 없는 과학자이자 저자인 '짐 오타비아니'의 '입장'이 무엇인지는 여전히 잘 모르겠다. (약간 호감인) 정재승 교수는 파인만을 두고 '괴팍하거나 기괴한 천재'가 아닌 '매력적인 천재'라고 극찬했는데, 그에게 이런 기준이 무슨 의미인지도 잘 알 수 없다. 파인만이 노벨상을 탔고, 원자폭탄 개발에 참여했으며, 대중적인 과학책을 써냈고, 음악과 미술에도 조예가 깊었으며, 금고를 여는 것과 같은 '잡기'에까지 능했던, 팔방미인이었다는 건 알겠다. 그런데 이런 사실들이 뭘 말해주는 걸까. 그는 자유롭고 창발적인 사고를 가졌고, 여자들이 매력을 느낄 만한 퍼스널리티를 가졌으며, 동시에 '순정'이 있었다는 것, 그리고 무엇보다 유창한 미국식 유머를 적재적소에 구사하는, 멋진 인간. 아, 써놓고 보니 이렇게만 해도, 이 책은 많은 걸 말했다. 그렇지만, 어떨까. 세계적인 물리학자의 삶에서 독자들은 뭘 보길 원할까. 상기한 모든 것들이 포함될 것이다. 하지만 예를 들어, 원자폭탄 개발에 참여한 그의 반성을 그리는 대목을 보자. 반성은 아주 쉽고, 빠르게 그려진다. 실존적으로 어땠는지는 모르지만. 그러니까 반성이 쉽고 빨랐던 것은 아마도 파인만이 아니라, 오타비아니 아닐까. 히틀러가 원자폭탄을 가질 것을 대비해 미리 미국의 원자폭탄을 만드는 데 참여한 그의 고민 같은 건 좀 더 섬세하게 그려져야 될 것이 아닐까. 매력적인 물리학자는 당연히 스스로가 '집행'만을 행하는 '테크노크라트'가 아님을 자각하는 이여야하기에. 그런데 어떨까. 그는 너무 똑똑해서 그 개발사업에 빨려들어갔고, 뒤늦게 그 의미를 깨달았노라고 발랄한 필치의 만화는 말하고 있을 뿐이다.
역시, 한 인간의 일대기를 서술한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그가 흔히 보는 '외곬수'형의 학자가 아니라는 사실만으로 그는 '매력적인' 인간이다. 하지만 그런 방식으로 우리는 요즘 너무 쉽게 롤모델을 만들고 있지는 않은지. 미디어는 언제나 새로운 '롤모델'을 개발해서 독자에게 제공해야 한다는 강박에 사로잡힌 것 같다. '롤모델'이라는 상을 폐기처분할 수 없는 한, 아니 그러한 상을 설정하는 것이 우리가 '잘' 사는 데에 있어 약간의 긍정적인 효과를 자아낸다고 믿는 한, 우리는 한 인간을 이해하는 작업에 언제나, 충분히, 공을 들여야 한다. 그리고 바로 그 '이해'의 내용을 더 잘 말할 수 있기 위한 '양식'에 대해서도 고민해야 하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