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년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한 스티글리츠는 현재 컬럼비아 대학 교수로 재직 중이다. 세계은행 부총재 겸 수석 이코노미스트를 역임했으며 클린턴 대통령의 경제자문역을 맡기도 했다. 그런 주류 경제학자가 세계화에 대해 꺼내는 이야기는 무엇일까.
이 책은 IMF에 대한 통렬한 비판을 담고 있다.
케인즈는 시장이 완벽하지 않기 때문에 자본주의에는 언제든 불황이 발생할 수 있다는 점을 지적하면서, 유효수효를 인위적으로 창출하는 방식으로 이를 해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대공황과 2차대전을 경험한 미국과 유럽은 그의 지적을 받아들였고, 재정적으로 유효수효 창출에 어려움을 겪는 국가를 구제하기 위하여 IMF를 탄생시킨다. IMF의 빠른 조치를 통해 불황이 세계적으로 확산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조치였다.
IMF는 시장이 불완전하다는 전제 하에 탄생하였다.
하지만 반 세기가 지난 지금, IMF는 언제나 시장주의만을 외친다. 우리 나라 역시 고금리와 정리해고, 민영화를 강요받았고, 우리 사회는 급격한 변화를 겪을 수밖에 없었다. 그것은 과연 피할 수 없는 조치였을까.
저자는 IMF의 조치들은 시장이 스스로 효율적으로 움직이는 것이라는 -말하자면 IMF 설립의 전제와 모순되는- 케케묵은 가설 하에 이루어진 것들이었다고 비판한다. IMF의 구조조정 정책은 많은 국가들에서 상황을 악화시킬 위험이 있는 것이었고, 그 위험은 수없이 현실화되었다. 러시아에서, 아프리카에서, 아시아에서, 그 실례는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상황을 개선시키는데) 약간의 고통이 필수적이라는 사실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하지만 내가 판단하기로, IMF와 국제경제기구들에 의해 인도되는 가운데 세계화와 개발의 과정에서 개발도상국들 국민들이 겪은 고통의 정도는 필요 이상으로 엄청나게 컸다.'
저자는 여러 가지 근거를 들고 있다.
일단 IMF는 현지의 사정을 도외시한다. 급격한 고금리는 오히려 기업의 연쇄부도를 불러와 경제사정을 더욱 악화시킬 수 있고, 그 가운데 유효수효를 창출할 기회가 소멸된다.
사회보장제도가 갖춰지지 않은 곳에서 급격히 이루어진 구조조정은 사람들의 생존권을 위협하는 것은 물론이고 사라진 일자리들은 곧바로 유효수효 소멸로 이어져 장기적 불황을 불러올 수도 있다. IMF는 언제나 긴축재정과 고금리(좋게 말하면 균형예산)을 강조하지만, 불황속으로 진입중인 경제가 균형예산을 유지해야 한다고 가르치는 경제학책은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민영화의 성공에는 여러 가지 전제가 따르지만, IMF는 이를 무시한다. 경쟁이 없는 분야에서의 민영화는 곧바로 독점으로 이어질 뿐이며 더구나 민영화와 부패는 뗄래야 뗄 수 없는 관계다. IMF는 일단 사유화가 확립되면 다른 모든 것들은 저절로 해결되어 상황이 개선되기 마련이라고 믿지만, 그게 사실이라면 소유권이 가장 확실히 보호되는 미국에서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반독점법을 시행하고 있을 이유가 없을 것이다.
IMF의 주요 관심사는 월 스트리트의 채권회수일 뿐, 채무국가의 재건이 아니라는 저자의 비판은 신랄하다. 일단 경제를 성장시키면 성장의 이득이 자연스럽게 가난한 사람들에게 흘러간다는 통화침투 경제학은 환상에 불과하다는 비판은 IMF를 성공적으로 졸업했다고 자부하는 우리 나라가 어째서 양극화에 허덕이며 사람들이 점점 경제가 어렵다고 이야기하는지 그 이유를 가르쳐준다.
책을 읽다보면 우리의 현실이 가슴 아프게 다가온다. 신자유주의의 폐해는 도외시한 채, 무조건 민영화와 자유화만을 외쳐대는 주류언론의 행태도, 그 나라에서조차 의문시되는 정책들을 아무런 설득과정 없이 그저 따라해야한다고만 주장하는 고외관료들의 모습도, 아무 것도 모른 채 그저 언론에서 이야기하는 일방적 주장만을 앵무새처럼 반복해대는 우리의 중산층들의 소시민성도, 그저 안타까울 따름이다.
이 책의 내용이 전부 옳다고 주장하고 싶은 것은 아니다.
그저 우리가 그렇게 신성시하는 세계은행과 IMF가 무조건 진리가 아니라는 것과 그 조직 내부에서조차 의문이 제기되는 정책들을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은 문제라는 점을 지적하고 싶을 뿐이다.
언제나 그렇지만,
어디서나 진리인 명제는 없다는 것.
가치판단은 언제나 깊은 고민 후에 내려져야 한다는 것.
그렇지만 우리는 언제나 생존의 위기만을 강조하는 사회 속에서 무뇌아로 살도록 사육되어 간다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