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더그라운드 레일로드
콜슨 화이트헤드 지음, 황근하 옮김 / 은행나무 / 2017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각종 수상 기록과 화려한 타이틀을 내걸고 나오는 소설에는 다 그만한 이유가 있겠지만, 그 이유 때문에 읽어보기도 전에 독자의 기대치가 너무 높아져서 역효과를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나 역시 이 책의 출간 소식을 듣자마자 기대감을 숨길 수 없었다. 그래서 책을 읽고 난 소감은…….


그전에 이 책이 다루고 있는 흑인 노예제에 대한 미비한 배경지식부터 반성해야겠다. 미국사 책을 완독한 경험없이 조금씩 주워섬기기만 하는 내가 이 책을 제대로 읽어낼 수 있을까. 게다가 흑인 노예제에 관련해서 읽은 문학책도 [허클베리 핀의 모험]과 [빌러비드] 밖에 없다. [노예 12년]은 영화로 나왔기에 보았고. 오래도록 집에 모셔둔 알렉스 헤일리의 [뿌리]는 손도 대지 않은채 책장에서 박제가 되었다. 이에 대해 변명 아닌 변명을 해보자면, 뭐랄까, 흑인 노예제를 배경으로 하는 소설은 마음이 힘들어서 유난히도 손이 안 간다. 특별한 동기가 없다면 우선순위에서 항상 밀려났다. [언더그라운드 레일로드]도 삐까번쩍한 후광이 없었다면 언제 읽을지 기약할 수 없는 소설이 되었을 것이다. 


그래서 결론부터 말하자면 명불허전이다. 일단 배경지식 다 필요없고 그냥 읽기만 하면 된다. 이 소설의 가장 바람직한 미덕은, 차마 눈뜨고, 아니 눈감고 상상하기도 어려운 흑인 노예들과 그들을 돕는 자들의 비극적인 참상으로 인해 읽기 힘든 이야기임에도 불구하고 꽉 짜여진 플롯을 좇아가느라 책장을 덮을 수가 없다는 점이다. 정말 순식간에 읽었다. 문학상 수상작 중에 이만큼 잘 읽히는 소설은 손에 꼽을 정도로. 아니나다를까 영화 제작한단다. 이런 이야기라면, 너무나 당연한 수순이지 싶다.


문학이라는 범주 안에서 문체나 주제를 다루는 방식이 부담스러울 정도로 현학적이거나 묵직하거나 장엄하지 않고도, 이 소설은 충분히 커다란 울림과 여운을 준다. 내러티브의 명료함과 문장의 영리함으로. 이 책을 읽고 나서 얻은 가장 큰 소득은 내가 노예제에, 미국사에 관심을 가지고 관련된 책들을 당장 찾아보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허클베리 핀의 모험]과 [빌러비드]도 나에게서 올리지 못한 개가이다.


영화 [노예 12년]에서도 상영이 끝나고 자막이 올라갈 때 노예 탈출 비밀 조직 ‘지하철도(언더그라운드 레일로드)’에 대해 짧게 언급했다. 노예 해방 조직의 이동경로와 조직원들을 지하철도에 은유하고 구성한 명칭을 작가는 실제 지하철도로 상상해서 이야기를 자아냈다. 다른 사람들은 지하철도 픽션을 호평했지만 나는 그 부분에 대해서는 글쎄, 노예제라는 지극히 사실적인 배경 안에서 미국 대륙을 가로지르는 지하철도가 존재한다는 설정은 핍진성이 떨어진다고 생각이 들긴 했다. 굳이 지하철도를 통한 탈출이 아니었다해도 이 책의 평가가 달라질 것 같진 않다. 그렇다면 지하철도가 존재한다는 설정이 필요한 이유와 의미는 뭘까. 책 속 문장에서 그 이유와 의미를 찾아본다. “때로는 쓸모 있는 착각이 쓸모 없는 진실보다 낫습니다.(p319)”라고 랜더가 연설한 말에서. 그 당시에 비밀 지하철도가 땅속에 존재한다는 설정은 받아들이기 힘들었지만, 분명 영화에서는 새로운 볼거리를 제공해줄 것이고, 독자들의 마음을 이어주는 강력한 역할을 할 것이다. 내 마음에도 이미 비밀스러운 역 하나가 생겼고 그 역에는 흑인 노예의 역사를 이해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공부하고 노력하는 내가 역장으로 서 있다.

진실은 당신이 보지 않을 때 누군가에 의해 뒤바뀌는 상점 쇼윈도의 진열과 같았다. 그럴싸하고 결코 손에 닿지 않는. (p136)

"백인이 목화를 따는 건 본 적이 없는데요." 코라가 말했다.
"나도 노스캐롤라이나에 돌아오기 전까지는 군중이 사람의 사지를 찢는 것은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마틴이 말했다. "그런 걸 보면, 사람들이 뭘 해야 하고 하지 말아야 하는지 같은 것에는 입을 다물게 돼." (p186)

"주인님이 총을 든 검둥이보다 더 위험한 게 딱 하나 있다고 말씀하셨지." 그가 말했다. "책을 든 검둥이. 그러다가 분명 커다란 검은 화약고가 된다고 했어!" (p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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