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모두 짐승이다 - 동물, 인간, 질병
E. 풀러 토리 & 로버트 H. 욜켄 지음, 박종윤 옮김 / 이음 / 201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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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11월 29일 경북 안동에서 최초 발생한 구제역이 4개월 동안 거의 전국을 휩쓸고 지나갔다. 인간에게는 아무런 해를 끼치지 않는다고는 하나 전국적으로 400만 마리 이상의 소와 돼지가 생매장 되었다. 현재는 다소 진정되었다고는 하지만 아직까지 가축이동제한은 풀리지 않고 있고, 또한 살처분 지역의 지하수 오염과 같은 추가 피해가 예상되고 있어 구제역 파동의 여진이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얼마 전 우리를 두렵게 했던 사스(SARS)나 신종 플루, 조류 독감에 이어 얼마 지나지 않아 또 다른 전염병이 생명체를 위협하는 현상을 목도하고 있는 것이다.

최근에 에든버러 대학 연구진은 인체에서 질병을 유발하는 것으로 알려진 1,415개 미생물의 목록을 작성했다. 그중 868개, 즉 61%가 동물에서 사람으로 전파되는 것이라고 한다. […] 현재에 이르기까지 동물이 사람에게 전파한 미생물을 모두 목록에 포함시킨다면 인체 감염의 3/4 이상이 동물원성 미생물에 의한 것이 된다. 나머지 1/4 역시 대부분 상속 감염으로서 호모 사피엔스가 진화하기 전에 동물이 초기 인류에게 전파했던 것들이다.(35)

최근 번역되어 큰 주목을 받고 있는 책 <1만 년의 폭발>(헨리 하펜딩/그레고리 코크란 지음, 김명주 옮김, 글항아리, 2010)은 1만 년 전 인류가 농경과 목축을 시작하게 되면서 급속한 환경의 변화가 이루어졌고, 이로 인해 인류의 진화가 폭발적으로 가속화되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우리는 모두 짐승이다>는 이러한 급격한 폭발이 단지 인간에게만 국한된 사건이 아니었음을 보여준다. 목축을 통해 인간과 동물의 접촉 빈도가 증가하면서 각종 동물을 숙주로 삼아 기생하던 미생물들이 다양한 변이를 일으켜 마침내 인간까지 자신의 숙주로 삼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 책은 동물원성 미생물이 인간에게 침투하는 다양한 경로를 자세하게 추적하고 있다. 부모를 통해 자연스럽게 전달되거나(2장), 사냥이나 목축을 통해 동물과의 접촉 빈도가 높아짐으로써 감염이 증가하게 된다(3, 4장). 또한 인간이 도시와 같이 집단을 이루어 살면서 병원균의 감염 경로를 단축시키기도 하고(5장), 무역을 통해 먼 지역에까지 전파하기도 한다(6장). 현대에는 애완동물을 기르거나(7장) 거대화된 육류 산업을 통해(8장) 동물원성 미생물에 감염되기도 하고, 현대적인 먹이사슬의 변화로 인해 새로운 미생물이 출현하기도 하며(9장), 인간의 성생활이나 기술 변화, 생태 변화 등으로 인해 새롭게 확산되는 전염병도 있다(10장).

이처럼 미생물이 동물에서 인간으로 전파됨으로써 벌어진 피해의 목록도 다양하다. 매년 200만 명의 목숨을 앗아가는 말라리아, 미국을 테러의 공포 몰아넣은 탄저병, 역시 전 세계에서 해마다 200만 명 이상의 목숨을 앗아가며 지난 100년 동안 1억 명 이상을 사망케 한 결핵, 아메리카 대륙의 원주민을 거의 몰살시킨 것으로 추정되는 천연두와 홍역, 유럽 인구의 1/3~1/4 정도를 죽음으로 몰아넣었던 흑사병, 식중독을 유발하는 살모넬라, 그리고 최근에 등장한 사스(SARS), 조류 독감, 에이즈 등 그 목록은 끝이 없다. 더구나 정확한 기록이 없어 확신할 수는 없지만, 인류 역사에 존재했던 다양한 문명들의 몰락에 이와 같은 동물원성 미생물에 의해 야기된 역병이 크게 혹은 조금이라도 관여했던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박테리아와 바이러스는 몇 분 안에, 원생동물은 며칠 이내에 새로운 세대를 만들어낼 수 있다. 하지만 인간이 새로운 세대를 구성하려면 20년이 필요하다. 인간과 미생물의 전쟁에서 진화와 적응의 속도가 결정적 요인이라고 한다면 인류의 미래는 결코 밝지 않다.(38)

그렇다면 우리 인간은 이와 같은 미생물들의 침입으로부터 우리를 지켜낼 수 있을까? 저자들의 대답은 다소 비관적이다. “현재 박테리아는 30만~100만종 정도가 존재하는 것으로 추정”되며 2억 5,000만 년 동안 암염 속에 잠들어 있다가 부활할 정도로 견고하다(19). 바이러스 또한 지금까지 알려진 종류만 5000종이 넘으며 “이 모두가, 특히 RNA 타입은 매우 불안정하기 때문에 끊임없이 돌연변이를 일으키면서 자신의 유전자 물질을 다른 세포 속으로 집어넣는다.”(21) 다시 말해 바이러스나 박테리아와 같은 미생물들은 그 구성이 매우 단순하고 번식 주기가 대단히 짧기 때문에 다양한 돌연변이가 가능하다. 원래의 숙주뿐만 아니라 새로운 숙주에도 적응할 수 있는 변종, 또는 항체에 대한 저항력을 가지는 변종 등이 얼마든지 쉽게 생겨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이 모든 것을 통제할 수 있다는 생각은 거의 환상에 가깝다.

문제는 전염병이 ‘나타나느냐, 마느냐’가 아니라, ‘언제’ 그리고 ‘얼마나 자주’ 나타나느냐 이다.(269)

그렇다고 해서 아무런 노력도 필요 없다는 것은 아니다. 물론 인간이 통제하기 어려울 정도로 수많은 미생물의 종류뿐만 아니라 제약회사의 이권과 같은 정치적 이해관계, 동물 질병과 인간 질병에 대한 업무 분리 등 여러 가지 현실적인 난관 또한 산재해 있다. 그러나 20세기 후반 천연두를 완전히 박멸할 수 있었듯이, 인류가 동물원성 전염병에 대한 경각심을 가지고 부단한 연구와 노력을 지속한다면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을 것이다. 이를 위해 가장 먼저 전염성 질환을 관리하고 감시할 수 있는 전세계적 네트워크의 수립, 동물 전문가와 의료 전문가의 협력, 감염 예방을 위한 철저한 교육 등이 필요하다고 이 책은 역설한다.

익히 알려진 바와 같이 건강한 상태의 인간의 몸에도 엄청난 수의 미생물이 존재한다. 모든 미생물이 인간에게 해를 끼치는 것도 아니며, 어떤 미생물들은 오히려 유익한 역할을 하기도 한다. 그러나 단 하나의 변종 혹은 신종 바이러스가 인간을 비롯한 다른 여러 동물들에게 엄청난 피해를 일으킬 수 있다는 사실을 명심하고 이에 대한 철저한 대비를 해야 한다는 것, 이것이 바로 이 책이 우리에게 주는, 그리고 구제역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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