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집 차에 아이를 태워보내고 집으로 오는 길에 윗층 엄마를 만났다. 집에서 차 한잔 하자며 앉아 이런저런 얘기를 했다. 윗층 엄마는 여전히 아이 돌보는게 어렵다고 했다. 다른 엄마들은 아이를 어떻게 보는지 다들 잘하고 있는지 궁금해했다. 아이를 너무 일찍 어린이집에 보낸 건 아닌지, 아이 편식이 심해서 어떻게 해야할지 걱정을 했다. 나는 윗층 엄마가 잘하고 있고 좀 더 확신을 갖고 아이를 대하면 좋겠다고 얘기해줬다. 아이는 엄마 뿐 아니라 자기 기질을 바탕으로 다른 사람과 관계에서 성장하는거니까 너무 걱정하지 말라고 했다.

 

 윗층 엄마한테 한 얘기지만 실은 나에게도 해당하는 이야기다. 아빠들은 어떨지 모르겠지만 엄마는 아이에게 양가감정과 죄책감을 느낀다. 육아로 감정과 정신, 육체가 닳을대로 소모되지만 ‘좀 더 잘해야하는데, 좀 더 잘할걸’ 같은 내면의 다그침을 듣는다.

 

 ‘부모로 산다는 것’에 보면 아이와 놀 때 아이의 세계에 빠져서 함께해야만 진정으로 놀았다고 생각하는 엄마가 나온다. 그녀는 탈진할 정도로 아기에게 맘을 쏟지만 이내 다 마치지 못한 집안일과 아기를 낳기 전 누릴 수 있었던 작은 일상을 미치도록 그리워하는 맘 때문에 죄책감을 느낀다. 아이 입장에서 야속하게 들릴 수 있겠지만 나는 육아의 전형에 빠지지 않으려고 의식적으로 노력했다. 내 시간을 갖으려고 a와 싸웠고 사회가 압박하는 ‘좋은 엄마’상을 거부했다. 육아의 굴레에 틀어박혀 나를 소진하며 유일한 희망으로 ‘자식의 성공이나 행복’ 같은걸 바라는 부모가 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나도 고비가 있었다. ‘그 어린애를 어린이집에 맡겨? 엄마가 노는데 좀 더 보면 되잖아.’ ‘ 요즘 엄마들은 애들을 어린이집에 보내고 거저 본다니까.’ 란 공격적 말에 웃으며 대응할 수 있을 정도로 정신 근력을 키웠지만 마음만은 어쩔 수가 없었다. 이른 아침 잠에서 깬 아기가 침대로 올라와 부스럭거리며 내가 전날 밤 읽던 책을 뒤적였다. 언제 이렇게 커서 침대 위까지 올라오니, 너무 작아서 안는 것만으로 아스라했는데 언제 이렇게 컸니.

 

 아이는 금세 자랐다. 하루는 길고 길었는데 아이의 성장은 눈깜짝할새 이뤄졌다. 더 많이 안아주고 더 많이 놀아줬어야했는데 그러질 못했다. 손목이 아프고 어깨가 빠질 것 같아도 더 안아줄걸. 나는 좋은 엄마였을까, 좋은 엄마가 될 수 있을까. 평온한 아이의 얼굴을 들여다보니 맘이 미어졌다. 아침 댓바람부터 엉엉 우니까 a는 놀라는 표정을 지으며 장난을 쳤다. 아이 보고 엄마 왜 그러냐는 표정으로 물으니 아이는 내 얼굴을 쓱 만지며 배시시 웃는다.

 

 어린이집에 다녀온 아이는 차에서 내려 나를 덥석 안는다. 조금 더 안아주고 싶은데 야옹이를 보겠다며 나를 밀어낸다. 지금부터라도 두려움 없이 장난처럼 아이를 많이 안아줘야지. 그리고 계속 나는 잘하고 있고 괜찮다고 얘기해줘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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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꾸는섬 2017-06-23 16:1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치님 잘 하고 계시는 것 맞아요. 엄마가 행복해야 아이도 행복해요.^^
아이는 정말 쑥쑥 잘 커가요.^^ 걱정 안 하셔도 되고 정말 괜찮아요. 많이 안아주는 것 정말 필요하죠.^^

Arch 2017-06-24 00:05   좋아요 0 | URL
아기를 돌보며 자아가 분열되는 느낌이... ㅋㅋ 페이퍼가 혼란해도 이해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