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의 마지막 선물 높은 학년 동화 16
휘스 카위어 지음, 김연정 옮김, 만서 포스트 그림 / 한겨레아이들 / 2008년 10월
평점 :
절판


 아침은 아이들을 깨우고 식사를 준비하고 씻어라, 준비물 챙겨라 잔소리를 하며 후딱 지나간다. 하지만 오늘은 아이들 엄마가 쉬는 날. 밥과 반찬을 들고 내 방으로 들어와 모처럼 느긋하게 밥을 먹었다. 문 밖에서 신경질내거나 채근하는 소리가 들렸다. 나가서 말을 거들까 하다가 내가 하는 일들, 특히 잔소리가 그동안 쓸모없는 짓이었다는 생각에 꾹 참고 가만히 있었다. 밥을 다 먹고 휘스 카위어의 책을 펼쳤다.


 책의 첫 부분을 읽은 다음 자전거를 타고 출근 했다. 아침부터 덥다. 자전거를 타고 오면서 문득 어렸을 때 할머니가 돌아가셨던 일이 생각났다. '할머니의 선물'에서도 할머니가 돌아가셨다. 마더리프는 할머니가 돌아가셨는데 왜 엄마에게 안 우냐고 묻는다. 예전에 할머니가 돌아가셨을 때 나도 울지 않았다. 울지 않는게 너무 이상해 동생들을 불러다 할머니가 얼마나 좋은 분이셨는지를 얘기했다. 이제는 할머니를 볼 수 없다는 얘기도 덧붙였다. 동생들도 나처럼 밍숭맹숭한 얼굴이었다. 나는 연극하는 것처럼 좀 더 감정을 실어 할머니의 죽음을 얘기했다. 나도 울고 동생도 울었다. 요즘도 상황과 맞지 않은 감정이 들 때면 가끔씩 그때 일이 생각난다.

 '할머니의 마지막 선물'은 할머니가 돌아가신 후 마더리프의 시선으로 할머니를 추억하는 이야기다.  마더리프는 외로워서 울었다는 할아버지에게 불을 켠 다음 엄마를 불러보라고 위로해주지만 '나이가 들면 엄마를 부를 수 없단다.'란 할아버지 말에 아무말도 할 수 없었다. 어른이 되면 한밤 중에 깨어 아무리 무서워도 엄마를 부를 수가 없다.  할머니의 책을 보며 '무슨 소리인지 알 수 없는 완전 어른용 책이었어요.'라고 말하는 귀여운 마더리프는 숲 속 작은 집에서 책 읽는 것을 좋아했던 할머니가 왜 집안일만 하는 작은 기계로 변했는지 궁금하다. 마더리프는 '책상의 할퀸 자국들은 격자 울타리예요. 그리고 울타리 속에 갇혀 있는 얼굴은 바로 할머니 자신이라구요.' 라며 할머니의 맘을 헤아려본다.

 할머니는 정말 어떤 사람일까.

"(브뤼셀로 신혼여행을 갔을 때) 할머니는 아주 예뻤단다. 그리고 네 할머니는 많은 것을 보고 싶어 했어. 도시 구석구석을 말이지. 나는 그것이 참 좋았어. 할머니는 하루 종일 환하게 웃었어. 할머니가 기뻐하면 나 역시 즐거웠고. 누군가를 사랑하게 되면 그렇게 된단다."

 마더리프의 엄마는 할머니를 이렇게 기억한다.

" 모험을 하고 싶어 했고 할아버지 옆에도 있고 싶어 했어. 그리고 자식도 갖고 싶어했고. 그 모든 것을 함께 할 수는 없는 노릇이잖니. 인생은 늘 선택을 해야 하니까."

 나는 동생이랑 조카들과 사는 것을 선택했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동생이 좀 더 조카들을 챙겼다면, 엄마가 한번씩 전화를 해서 아빠와 동생이 얼마나 안 맞는지 얘기하지 않았다면, 내가 혼자 있는 것을 견딜줄 아는 어른이었다면 이런 선택을 하지 않았을 것 같기도 하다. 물론 지금 상황을 감당못할 정도는 아니다. 조카들과 지내면서 즐겁고 행복한 순간도 많다. 하지만 처음부터 끝까지 내가 조카들을 챙겨야하고 동생과 내가 맞지 않는다는 사실을 일방적으로 받아들이는 것까지는 생각하지 못했다. 게다가 나와 같이 지내는 사람들은 행복하지도 않다. 

 현재에 만족하지 않고 다른 것, 흥미롭고 가슴 떨리게 만드는 것, 새로운 만남과 색다른 일이 벌어질걸 기대하는건 아직 철이 덜 들었단 얘기다. 할머니는 어른이 되지 못해서 가보지 못한 길을 그토록 갈망했을까. 책에는 이런 부분들을 개인의 성향 문제보다 여자들의 삶에 대한 은유로 빗대지만. 모든게 정해지고나면 정해진 역할에 충실하면서 살아야 할 것이다. 그런데 정말 그렇게 살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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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6-20 12:0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06-20 13:18   URL
비밀 댓글입니다.

숲노래 2012-06-21 07: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무쪼록 언제나 좋은 삶 될 수 있기를 빌어요.
서로 다른 생각으로 살아가는 어른과 아이라 하지만,
서로 좋은 사랑을 꿈꿀 수 있으리라 느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