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는 비가 추적추적 내리더니 오늘은 해가 좀 든다. 날씨가 따뜻해지면서 자전거를 타고 다닌다. 나는 두발로 땅을 디디며 걷는 것보다 페달을 밟으며 앞으로 쭉쭉 나가는 자전거가 더 좋다. 몹쓸 혈액순환 때문에 조금만 걸어도 다리가 쉬이 피곤해지는 것이다.


 자전거를 탄다. 헤드폰으로 음악을 듣는다. 음악들은 경쾌하게 귀에 꽂히고 나는 더 열심히 페달을 밟는다. 이런 단순함. 나는 이런 단순한 반응과 느낌이 좋다.



  아직 해가 비추지 않은 아침에는 '언니네 이발관'의 노래를 듣는다. 중간 템포의 노래는 상쾌한 아침 공기와 어울린다. 이 앨범에서 제일 좋아하는 곡은 '아름다운 것'. 알 듯 모를 듯 선선한 가사와 가사만큼 일정하게 거리를 두는 멜로디가 좋다. 작년에 자전거를 한창 탈 때 브로콜리 너마저의 노래와 '아름다운 것'을 자주 들었다. 가만히 앉아서 음악을 듣는 일이 거의 없고 뭔가를 하면서 듣는 음악은 쉬이 귀를 피로하게 한다. 발에 힘을 줘가며 페달을 꾹꾹 굴리며 음악을 들으면 가사 하나에 가수의 숨소리 하나에 집중하게 된다. 아침이어야 하고 언니네 이발관이어야 한다. 






  꽃잎은 다 떨어지고 푸릇한 잎이 살랑거리지만 여전히 이 앨범의 몇몇 곡들은 낯선 낮의 열기를 잠재우고 취한듯 흐드러지는 봄공기를 북돋는데 유효하다. 점심 시간에 가끔 집으로 가서 밥을 먹을 때 후다닥 버스커버스커의 노래를 플레이 한다. 잘 부르지 않는다. 지난번에 썼던 것처럼 라이브가 아니고 몇번 녹음했을 노래인데도 행여 음이탈이 날까 불안하기도 하다. 하지만 꽃송이를 보고 기특하다고 하는 마음, 봄이 아니라 완연한 여름이 된 지금은 연두빛 고운 잎들을 응원하고 싶은 마음이 차곡차곡 포개진 노래들을 미워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차와 건물들 사이에서 간신히 자리잡은 가로수, 작은 대학교의 오래된 나무 이파리들이 바람에 살랑인다. 내 마음도 덩달아 살랑거린다.




  이 앨범은 꼭 금요일날 들어야 한다. 한창 때 금요일 트라우마가 있었다. 모두들 싫든 좋든 술자리 테이블 의자에 엉덩이를 걸치는 흥겨운 프라이데이에 혼자 집에서 땡기지도 않는 맥주를 마신다. 찾아주는 친구도 어떻게든 약속을 잡아서 나가려는 의지도 없다. 세상 모두가 흥겨움으로 과음을 하는데 나는 취하지도 못한채 밍숭맹숭한 기분으로 집에 처박혀 있었다. 아 이건 찌질한 프라이데이 고백 페이퍼가 아니지.


 흥겨울 것 같은 금요일, 전처럼 엉덩이가 들썩이진 않지만 그냥 넘어가기엔 뭔가 좀 아쉬운 금요일, 나는 자전거를 타고 나가 클래지 음악을 듣는다. 이바돔 감자탕집 앞에선 섹시돌이 되었다가 신호가 바뀔 때쯤엔 '속삭이는 목소리로 우리의 꿈에 대해 얘기'하는 장면을 떠올린다. 일렉트로닉을 베이스로 해서 이승열, 칵스, 김완선, 써니힐의 목소리가 입혀졌다. 이 노래들을 들으면 들썩이는 금요일쯤 문제없다. 



 소박하게 살고 싶은 마음 한 가운데 구멍이 뚫렸다. 그 속엔 막 살고 싶은, 소박하게 살고 싶은게 아니라 그럴 수 밖에 없으니까 원래 원했다고 사기치는거 아니냐는 치기를 부리고 싶은, 여러 남자를 만나고 여러 밤을 지새우고 소리지르고 막돼먹게 굴고 싶은 바람이 들어있다. 그럴 때 도시 풍경과 어울리는 클래지의 노래를 들으면 맘이 좀 가라앉는다. 나는 섹시돌이 될 정도로 부지런하지 않으며 그쪽으로 노력할 생각도 없다는걸, 관계의 유효기간을 받아들이고 상대방과 헤어질 정도로 꿋꿋하지 않다는걸 잘 안다. 그렇지만 가끔씩 혹시 어쩌면에서 멈칫거릴 때 자전거와 헤드폰이 있다는건 참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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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12-05-08 11: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헤드폰 꽂고 자전가 페달을 밟는 팔랑팔랑한 아치가 막 그려져요. 아치가 섹시돌이 되는 이바돔 감자탕집 앞, 나는 아마 감자탕을 먹는 여자가 되어 있을 거에요.

Arch 2012-05-08 16:57   좋아요 0 | URL
아, 시간이 너무 지나서 막 급조한 페이퍼라 많이 후져요. 안 쓰면 되는데 즈질 페이퍼 중독걸렸나봐요. 이바돔보다 맛있는 감자탕집을 아는데^^ 다락방은 맛있는 감자탕을 먹을줄 아는 사람이고 먹어야 하는 사람이에요.

2012-05-08 17:2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05-09 10:10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