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엔 뼈마디가 노곤노곤하고 늘어져  활력을 찾을 수가 없다. 쉬는 날이면 이불에서 뒹굴뒹굴 굴러다니다 배고프면 기어나와 밥을 먹고 화장실을 드나들고 느즈막히 일어나 자전거를 타고 휘휘 돌아다닌다. 자전거를 타고 나오니 이렇게 좋다라고 말하지만 변변한 산 하나 없는 동네에서 '이렇게 좋을'만한게 있을리는 없다. 물론 이건 혼자였을때나 가능한 이야기. 8시가 넘어가자마자 배고프다는 옥찌들의 집단적인 항의에 꼼짝없이 밥순이의 소임을 했어야 했지만 좀 더 좀 더를 유예하다 간신히 몸을 일으켜 아침을 챙겨줬다. 아 어쩜 주말의 점심은 이다지 빠르게 다가오는걸까. 다시 점심을 후다닥 먹어치우고 잠깐 쉬는데 배가 고프다. 아이들도 배가 고프다.

 

 도저히 다시 뭔가를 해서 챙겨줄 엄두가 안 나 콩나물국밥을 먹으러 나가자 했다. 날씨가 추웠다. 꽁꽁 싸매고 손을 꼭 잡고선 밖으로 나왔다.


 우리는 양파와 달달한 쌈장이 반찬으로 나오는 뜨겁고 진한 콩나물국밥이 나오는 곳으로 갔다. 문 앞은 추울 것 같아 안쪽으로 들어갔더니 좌 조기축구회, 우 산악회가 자리하고 있다. 아저씨들은 왁자지껄하게 떠든다. 밥을 먹으며 본의 아니게 스테레오로 그들의 말을 들을 수 있었다. 이제 나도 나이가 찼으니 나이 든 사내를 아저씨라고 하긴 뭐하지만 그들 면면은 꼭 '아저씨' 같았다. 아저씨의 긍정적인 면이 아니라 아리송하면서 호불호를 모르겠고 혐오감까지는 아니지만 와닿지도 않는 그런저런 성향같은거 말이다.


 산악회쪽에선 '자신들을 홀리는 여자 대처법' 같은 얘기를 한다. 걔중에는 애들이 있으니 말을 가려서 하자는 사람도 있었지만 버젓이 여자에게 사기 당하고 떼인 얘기 끝에 성적인 수근거림을 이어나갔다. 바탕에는 고지식한 합리화가 깔려있고 개그콘서트적인 여성관이 보인다. 남자인 자신은 사랑받을 자격이 없으니 돈이라도 써야한다는 식? 축구팀은 이번 경기를 분석하고 이권이 개입되었는지를 따져묻다가 수육이 참 괜찮다며 자기가 또 말을 잘 해서 이렇게 좋은 고기가 나온거라고 거드름을 피운다. 하나같이 못생긴 남자들이다. 테스토스테론이 왕왕 풍겨나오는데 하나도 흥미롭지 않았다. 그 자리에서 나 역시 아이들 밥 챙겨주기 싫어 늦은 오후에 국밥집에 나타난 못난 여편네였을 것이다.

 

 얼마 전 맥거핀님 서재에서 정성일씨 트위터에서 옮긴 구절을 봤다.

 

교훈-임권택 감독님이 내게 해주신 말씀. 완전히 망친 장면 때문에 영화를 망치진 않아요. 그 장면을 버리면 되니까요. 하지만 매일매일 조금씩 양보하면 그게 쌓여서 결국 영화를 망치는 거지요. 우리의 삶도 그렇지 않던가.

 


 주말을 핑계로, 먹고 살아야 한다며 나는 어떤 것들을 양보하고 있을까. 무엇을 해야할지, 어떻게 살아야할지 혹은 하고 싶은게 보이지 않는다. 집중을 다해 발끝을 세우지 않는한 이렇다할 즐거움도 없다. 무기력하다며 자꾸 질질 짜고 있다. 이렇게 살다가 나도 어쩔 수 없는 중년이 되어서 콩나물국밥집 한 귀퉁이에서 나를 홀리는 남자들 대처법이나 떠벌이고 다니는건 아닐까. 지금도 어린건 아니니 개연성 없는 일도 아니다. 누군가를 홀리는 나만의 비법이라면 주체적이니 마이너스를 반절만 할 수 있을까.

 

 오늘 본 변영주 감독의 인터뷰가 자꾸 맴돈다.

 

 현장에서 나는 뭘 놓쳤을까를 끊임없이 복기해서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아야 한다. 그리고 또 다시 실패할 수 있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를 통해 스스로 해냈다고 믿는 것들에 대한 자존감을 잃지 않기, 나에게 또 기회가 오지 않을지라도 내가 왜 이 일을 하는가를 잊지 않는 것이 필요하다. 마흔 여섯이 됐는데도 여전히 삶이 불안한 것에 대해 부끄러워하지 않고 여전히 트렁크 하나에 내 인생이 다 들어갈 수 있다는 것을 기뻐해야 한다. 그런게 다 나에게 의미 있다고 생각하면 그 다음 길이 있는 것 같다.

 

 http://10.asiae.co.kr/Articles/new_view.htm?sec=people11&a_id=2012030707564950653

 

 

 정신 바짝 차리지 않으면 그저 그런 중년이 아니라 미안한 중년이 될 것이다. 정신 차리기는 셀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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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큐리 2012-03-18 12: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 벌써 미안한 중년으로 진입 신고요~~~

Arch 2012-03-19 08:58   좋아요 0 | URL
머큐리님 멋진데, 괜히 그러신다.

nada 2012-03-19 11: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개그콘서트적인 여성관, 하나같이 못생긴 남자들이다...하하하하
아치님 글은 잘 읽어야 돼요.
감자밭에 꼬맹이 감자처럼, 유머가 막 숨어 있어요.

매일매일 조금씩 양보한 게 쌓여서 결국 망친다..
꼭 기억하고 싶은 말이네요.


Arch 2012-03-19 14:55   좋아요 0 | URL
하~ 꼬맹이 감자라니^^ 고마워요. 꽃양배추님.. 진짜 눈 크게 떠야 보이는건데 알아보시다니!

네. 저도 그 말에 많이 찔렸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