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새 젊은 것들 - 발칙한 반란을 꿈꾸는
단편선.전아름.박연 지음 / 자리(내일을 여는 책) / 2010년 1월
평점 :
절판


 인터뷰는 재미있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하고 느끼는지 알 수 있으니까. 인터뷰는 거짓이다. 누군가 읽는걸 전제로 하는 인터뷰이의 말하기가 갖는 한계일 수 있고, 같은 필드에서 뛰는 동종업계 사람을 비판할 수 없는 인터뷰어의 숙명적 한계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터뷰는 내가 꼭 해보고 싶은 일 중의 하나다. 그 사람에 대한 배경 지식을 바탕으로 관찰하고, 육성을 직접 들으며 말의 온도까지 죄다 기록할 수 있는 특권은 꼭 인터뷰에서만 가능할 것 같다는 착각을 불러일으키기 때문이다.

 알음알음 모인 세 명이 인터뷰집을 냈다. 그들은 작년 4/4분기에 의미있는 기획의 팔릴만한 물건을 만들자는 합의 하에 20대를 인터뷰하기로 결심했단다. ‘보편적인 20대’에 대한 집착을 포기하고, 삶에 대한 앞가림 잘하고 있는 친구들을 찾아보자는거다. 여기 그들의 숨가프고 열정 넘치는 인터뷰라기보다는 뭐랄까, 약간 엉뚱하고 재미있고 맛깔스런 인터뷰집이 있다. 건성으로 만들었다기보다는 죽을둥 살둥 애써놓고선 사실 우린 그렇게 열심히 한건 아니라고 능청을 떤다고 할까. 저자 서문에서 느낀 발랄한 기운이 인터뷰집을 읽는 내내 묻어나왔다. 물론 가볍고 재치있지만은 않다. 때론 심각하고 깊이 있으며 가끔씩 어, 어떻게 이런 솔직한 질문을 할까 싶은 경우도 종종 눈에 띈다.


 키보드 워리어에서 이제는 20대를 대표하는 논객으로 자리매김한 한윤형, 수공업으로 음반을 만들고 지속 가능한 딴따라질이자 빡센 취미생활을 한다는 붕가붕가레코드 곰사장, 당당한 좌파 고대녀 김지윤, 헤비블로거 박가분과 소설가 김사과, 길거리 패션을 잡지에 담은 크래커의 장석종, 변화의 발원지가 바로 중신이라며 자기가 서있는 곳에서 작은 혁명을 일으키고 있는 박용준, 거리에서 노래하는 좋아서 하는 밴드, 여성적인 방식으로 영화를 만들고 세련된 것보다 부담스러운 방식으로 이야기를 전하는 여성영상집단 반이다.

 한 사람 한 사람 인터뷰를 할 때마다 어디선가 이름은 들어봤지만 잘 모르고, 굳이 알아보려는 수고도 들이지 않은 20대의 속내가 보였다. 그 중에서 제일 좋았던 인물들은 ‘좋아서 하는 밴드’와 ‘반이다’이다. 다른 분들에 대해 너무 궁금하고 알고 싶은 서재인들에겐 방법이 있다. 바로 세 명의 인터뷰이가 잘 놀 수 있게 책을 사는 것이다. 이렇게 자신있게 말할 정도로 이 책, 알차고 재미있다.


 이름도 없이 활동하다가 관객이 ‘좋아서 하는 밴드’라는 이름을 지어준 후로 다큐멘터리 영화까지 찍은 <좋아서 만든 영화>의 주인공들. 짐을 풀면 바로 무대가 된다. 연습하고 공연하고 걱정하는 것도 회사 다니는 것과 비슷한 노력과 시간이 든다며 일하는 공간이 다르다고 자유롭고 편한 것은 절대 아니라는 밴드. 좋아하는 맘이 없어지는 날이 밴드 해체 날이고, 좋아하는 맘을 유지하기 위해서 생계유지를 위해 컨셉을 세운다는 밴드. 

 

 ‘좋아서 하는 밴드’를 보면서 좋아서 하는 일에 일종의 낭만을 갖고 접근했다가 현실과 이상 운운하며 쉽게 포기해버리고 마는 나 같은 사람들은 괜히 겸연쩍어졌다. 자기가 좋아서 하는 일도 그만큼 노력과 시간이 뒤따른다는걸 사람들은 흔히들 간과한다. 좋아하는 맘 하나로 모든게 다 된다는 식이다. 하지만 이 밴드가 노력하고, 좋아하는 맘을 위해서 각 멤버간에 균형을 맞춰가는걸 보면 장롱 속에 처박힌 꿈을 끄집어내서 볕 좋은 날에 널어놓고 싶을 정도로 간절해지고만다. 혹은 한꺼번에 죄다 이루겠다고 설레발 치는 대신 묵묵히 좋아하는걸 찾아보고 싶은 맘이 들기도 한다.

 반이다는 또 어떤가. 깅, 나비, 지민으로 구성된 여성영상진단 반이다는 '시작은 반이다'에서 따온 이름이라고 한다. (작명조차 센스있다) 영화 <개청춘>을 통해 세 명의 청춘을 다큐로 그린 그들은 각자의 방식을 고민하며 누군가 세워준 체계가 아니라 날것 그대로 자신들의 이야기를 가지고 영화를 만들었다. 신자유주의등 큰 얘기를 하려다 좀 더 가슴을 움직일 수 있는 이야기를 생각해냈고, 매력적인 사람들도 힘들다면 정말 사회가 이상한건 아닐까란 의문을 품었단다. 그들이 풀어나간 이야기는 '일자리를 주세요'가 아니라 '이렇게 노력하는데도 왜 안 되게 만들어놨어요, 이 사회를'에 더 가까운 질문이다. 그 사이 사이에 들어선 의문과 날카로움은 예사롭지 않다. 

 

 세련되게 말하는 것보다 솔직한 화법에 더 끌렸다는 이들의 작업방식은 기존의 다큐멘터리의 관습적 방법과 다르다. 카메라를 의식하는 주인공이랄지, 포커싱이 나가고 전체적으로 허술한 만듦새는 아마추어 느낌마저 난다고 한다. 하지만 반이다는 태연하게 그게 바로 우리 매력이라면서 너스레를 떠는 대신 매끄러운 것보다 하고 싶은 얘기를 제대로 하는게 더 중요했다고 얘기한다. 자신들은 잘 만들어진 세련된 다큐보다는 영화를 본 후 기분이 잡쳤다는 반응이 더 와닿는다며. 인터뷰이의 자질 중 가장 중요한건 유머라고 맘대로 단정짓는 내 취향대로라면 지민은 그중 단연 압권이었다. 서로간의 관계에 대한 질문으로 요즘은 서로에 만족하냐는 단편선에게 무슨 만족, 성적 만족 말하는거냐는 답변이라니.

 지금의 청춘은 분명 뭔가 다르다. 그런데 우석훈이 말한 것처럼 선동되야 한다거나 깨이지 않은 다름은 아니다. 그들의 다름은 여러 가지 각도에서 해석될 수 있지만 우선 그들의 말을 들어봐야하지 않을까. 설익고 풋풋하기엔 속이 꽉 찬 이야기를 말이다. 물론 자기 앞가림 하는 요즘 애들의 이야기만으로 젊음에 대해 모든걸 다 안다는식으로 속단하는건 무리다. 나를 비롯해(은근히 젊은 축에 끼워넣는다. ㅋ) 대부분의 사람들은 공무원 시험을 준비해야하나, 이대로 알바만 하면서 살면 어쩌나, 정말 열심히만 하면 되나란 고민을 하고 살아가니까. 그들은 자신이 정말 하고 싶은게 뭔지 어떻게 살아야할지 모른다. 그래서 당당한 '요새 젊은 것들'이 멋져보이면서도 부럽고 이질감을 느끼게 되는지도 모르겠다.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도서관에선 다들 인강을 시청하고 있다. 다들 정말 열심히 공부한다. 다른 길을 찾기 위해선 지금보다 더 열심히 해야하니까 고치처럼 웅크리고 있는건가. 그렇다면 기지개를 켜고 뭐든 하면서 사는게 별거 없다는걸 알아갔음 좋겠다. 그리고 자기계발서 대신 이 책을 읽고 몸 어딘가에서 불끈거리는 의지나 열정을 감지해봤음 좋겠다. 난 그랬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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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2012-01-20 11: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런데 이 책이 뭔가 문제 있나요?
2010년 발행이라 하면서 품절이라 뜨는군요.
다 팔렸는데 아직 안 찍은 품절인지
절판된 품절인지... @.@

Arch 2012-01-20 16:36   좋아요 0 | URL
잘 모르겠어요.
이 리뷰는 페이퍼 속에 있었는데 저작권에 걸릴만한게 뭔가 찾아보다가 리뷰로 옮긴거거든요.
아주 인기가 많아 다 팔린거라고 생각하려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