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오래 전에 개밥이란 친구랑 예의 혹은 ‘관계맺음’에 대한 얘기를 한 적이 있다. 내가 너무 제멋대로다란 얘기 끝에 나온건데 그때 나는 능청맞게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편하게 생각하는 b란 규율대신 나만의 것이 있다는 얘기를 했다. ‘나만의 것’은 a와 c로 변형이 가능하지만 일반적인 것으로 퉁치는 두루뭉술한게 아니었다. 그때 나는 내가 '나만의 것‘으로 사람들과 사귀는 이유로 의례적인 말, 하나마나한 말 대신 나만 할 수 있는 말을 한다는, 해서 진심으로 누군가를 알 수 있고 만날 수 있다는 얘기를 했다.

 

 관계를 매끄럽게 하는 말 대신 그저 내가 편한대로 말하는걸 내 멋대로가 아닌 내 방식으로 굳게 믿은 그때의 어리석음은 자라서도 계속되었다.

 

 얼마 전까지 나는 누군가가 굉장히 얄미워서 공공연하게 그 사람이 밉다는 식의 행동과 말을 하고 다녔다. 사리분별을 하고 조직내 힘의 균형이 흔들리고나서 보니 내가 그 사람을 미워한건 내가 그 관계를 좌지우지할 수 있다는 오만에서 비롯되었다는걸 깨달았다. 존재감 없이 병풍처럼 있는 지금, 별다른 셈속없이 따뜻하게 말을 건네는 그 사람을 보니 진즉 사라졌던 미운 맘이 이제는 호감으로 바뀐다는걸 알아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때때로 예전의 감정들이 불쑥불쑥 튀어나오긴 하지만.

 나보다 더 ‘지 멋대로’ 하는 에이미를 보고나서야, 에이미는 왜 자신이 나와의 관계를 틀어지게 했는지 짐작도 못한다는걸 알고나서야  깊은 관계란 바람이 얼마나 허약한 토대 위에 있었는지 더 확실하게 알게 되었다. 그렇다고 뭔가 단박에 확 변할 수 없다는 것도 잘 안다.

 

 며칠 전 도배를 하면서 오래된 물건들을 정리했다. 그 중엔 예전 일기도 있었는데-뭔가를 쟁여놓고 모으고 보관하길 좋아한다- 12살이었던 나는 아빠와의 일을 적어놨다. 아빠가 한밤중에 자고 있는 나를 깨워 예의없이 말하는걸 고치란 말을 했노라고. 5학년인 나는 뭔지는 모르겠지만 잘못한 것 같고, 그런데 왜 아빠는 그 늦은 밤 나를 깨웠는지는 잘 모르겠어 어벙벙했노라고, 앞으로는 아빠 말씀대로 착한 사람이 되겠다고 적었다. 아빠 말대로 착한 사람이 되었다면 지금 좀 괜찮았을까. 그렇다면 아치스러움은 어디로 가는걸까.

 

 아치스러움에 대해선 JJ도 할말이 있었다. 사람은 쉽게 바뀔 수 없고 바뀐다고 자신다움이 어디로 가는건 아니라고. 그런데 나는 아직 어디부터 바뀌어야하는지 감을 못잡고 있다. 요컨대 내가 보기에 불합리하다고 느끼는 것에 순응하는걸 배워야하는지, 그저 뭐든 좋게좋게 넘겨야할지, 좀 더 침묵해야할지. 김영민은 생각대신 공부라고 했는데 나는 공부보다 생각이라 여전히 자다 깬 5학년짜리 애처럼 어리버리한가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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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12-18 23:1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12-19 13:00   URL
비밀 댓글입니다.

치니 2011-12-19 17: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치스러움, 완전 궁금해요! 알라딘 밖의 아치. ㅎㅎ
생각이 아니라 공부, 아유, 이 말만 `생각`하면 머리 아포요.

Arch 2011-12-19 18:15   좋아요 0 | URL
아우, 궁금해할게 못돼요. 오늘도 `왜 나는 생각없이 말할까`로 한참동안 고민했는걸요.
ㅋㅋ 나두 나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