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원 주민일기
나난 외 지음 / 북노마드 / 2011년 3월
절판


이태원 주민들이 모여 일을 냈다. 일이 아니라 책을 낸게 맞지만 동네 사람들이 모여서 책을 내는 일은 드물테니 '일'을 냈다란 말이 더 적확할지도.

길가에 있는 식물에게 화분을 만들어주는 나난의 나난 가드닝, 출장요리사인 장진우의 움직이는 식당, 홍민철의 사랑의 현장검증, 할머니의 경쟁자이자 길종상가 박길종의 버려지는 물건들을 쓸모있게 만드는 법, 1px라는 친환경 홈페이지를 분양하는 목정량의 이야기(http://2tw.1px.kr/), 집이 부숴지기 전에 스튜디오로 바꾼 사이이다의 사진, 이태원에 서서 자신이 만든 옷을 입은 사람들을 찍은 곽호빈의 이태원 쇼 룸, 황애리의 판소리 에듀케이션, 퇴근길에 이태원 사람들을 만난 이해린. 지금부터 그들의 목소리를 들어보자.

제목만 봐도 기분이 좋다. 나도 주민하고 싶어요, 손을 번쩍 들고 싶다.

이 사진은 나난의 16번 가드닝, 사슴의 얼굴

18번 가드닝, 잔디 벅스

누군가 숨어있지만 다리만 봐도 누군지 알 수 있을 것 같다.

'내 눈에 다람쥐가 보이니까 다람쥐를 그리는 것이다.' 24번 가드닝

가드닝을 하는 나난의 인터뷰에는 이런 내용이 있다.

-6시쯤 일어나 준비하고, 가드닝을 시작해요. 작업에 정해진 시간은 없고, 다만 배가 고프고 사람이 많아지면 돌아와요.... 시간에 따라 자연스럽게 변하는 것이 적절하다고 생각해서 (도구는) 아크릴 물감을 사용해요.

- (이태원에 살면서 가장 좋은 점은?) 영향을 주는 친구들과 가깝게 산다는 게 제일 좋아요. 같은 동네에 살지 않았다면 일주일에 한 번, 한 달에 한 번도 보기 힘들었을 텐데. 아프면 샤브샤브도 해주고, 문서를 출력해주기도 하고, 서로가 서로에게 영향을 주는 유기적인 환경이 되어주는 거죠.

공기 나쁜건 우리나라 어디든 마찬가지겠지만 집 구하기가 하늘에서 별따기인 곳이지만 그래도 서울에 살고 싶은건 나난의 말처럼 유기적인 환경이 주는 힘 때문이 아닐까.

할머니의 경쟁자, 박길종은 이태원에 버려진 것들을 가지고 쓸모있는 물건을 만든다. 좌식 의자를 주은 박길종은 의자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햇살이 뜨거웠던 여름날 만났었는데 서늘한 가을이 돼서야 친해졌다.
특징: 인체공학적인 디자인과 짙은 갈색. 철제 다리가 뭍어 있기도 하고 다리가 없을 땐 좌식용으로도 쓰임. 추석에 부모님 집에서도 발견됨. 왠지 일식 집에 가고 싶기도 함.


아이디어는 둘째치고 곳곳에 박길종만의 (푸흡)유머가 숨겨져 있다. 선풍기보다 따뜻한 조명은 선풍기 받침을 가지고 가로등을 만든건데 그 속엔 이런 얘기가 담겨있다.

손목시계를 풀어서 시계 전용 받침대에 올려 놓는 걸 상상하면서 만들게 되었다. 왠지 양조위가 그 역할을 하면 어울릴 것 같다.
내일 할 일: 괜히 양복을 입고 머리를 넘기고 양조위 흉내를 내보자.

왠 양조위? 그런데 나도 목공까지는 아니고 뚝딱거리며 뭔가를 만들었을 때 꼭 저랬다. 내가 만든 것에 이따만한 의미나 재치있는 한마디를 보태고 싶었다.

할머니의 경쟁자, 박길종은 킷토스트의 일요일 사장이다.

'킷-토스트라는 토스트 가게의 원래 이름과 공간은 그대로 두고, 용도만 변경한 프로젝트 숍이에요. 가구, 독립 출판물, 가방, 음반, 문구 등 학교와 사회에서 배웠던 모든 것들을 이용해 만들어 팔고 있어요. ..네명이서 하루씩 사장을 해요. (이건 내가 막연하게 꿈꾸던 다수 사장체제)'

직접 홈 스튜디오를 만들어 친구들을 기록해주고 싶어서 진행한 사이이다 홈 스튜디오. 면으로 된 천을 벽과 천장이 만나는 부분에 나사로 고정하고 아래 부분은 책을 쌓아 고정시킨다.

용산구 한남동 주민 이베르,

강남구 청담동 주민 김지나의 사진

사이이다는 외할머니가 계신 요양원, 유기견 보호소, 남북 이산가족 상봉, 시골 스튜디오라는 이름과 내용으로 계속하여 어디든지 가고 싶다고 한다.

입체적인 슈트를 만들어서 입체적인 사람에게 입히다. 시간이 오래 걸리지만 이 방식을 좋아한다는 곽호빈. 자신의 옷을 좋아하는 시간의 멋을 아는 그들을 이태원에 세워봄.

그때 공간이 주는 힘과 포용력과 함께 그 입체는 완성된다.

자신에게 어울리는 슈트를 입기란 참 어려운데 사진 속 남자들은 참 멋지다. 이태원이란 공간이 주는 힘일까.

건축가 백지원은 이태원이 왜 인기있는가를 이렇게 설명했다.

'사람들이 지루한 거죠. ...모든 동네가 천편일률적이잖아요. 처음에야 그게 좋은 것처럼 느껴지지만, 스토리가 다 비슷비슷하니까 조금만 지나면 금방 재미없어져 버리고 식상해진다고요. 근데 이태원은 아주 많은 다양한 콘텐츠가 공존하고 있어요. 아프리카에서부터 인도, 이슬람, 미국까지. 이건희 회장에서부터 달동네 주민까지. 제 생각에 이 동네는 네버엔딩이에요.'

'이태원 주민일기'는 알차다. 하지만 '이태원 주민일기'란 책은 기대에 미치지 못한다. 그렇다고 핫하고 (뭐가 뜨겁다는건지) 시크한(정말?) 장소를 집중적으로 소개한 협찬 잡지 같은 컨셉이 좋다는건 아니다. 사진으로 소개한 몇몇 컨셉은 재미있었지만 책을 쓴 사람이 아니면 알 수 없는 내용들과 예쁘지도 예술적이지도 않은 책 편집은 마이너스였다. 서로 알만한 사람들끼리만 보면 좋을 것 같은 부분(사랑의 현장검증은 정말 별로였다)도 적지 않고 책으로 읽을만큼 의미없는 지점도 있다. 이 책은 아주 좋은 시도를 끝까지 살리지 못한 것 같다. 좀 안일했달까.

하지만 빈집에서 커피 로스팅을 하고 밴드 주자였다가 이제는 적자를 면치 못하는 마트의 사장이 있는 이태원, 이태원 사람들 이야기는 앞으로도 더 듣고 싶다. 입체적인 슈트와 입체적인 공간 이태원이 만나서 벌어지는 일들도 궁금하고 길종상가가 앞으로 어떤 일을 벌일지도 궁금하다.
http://1px.kr/ (길종상가는 여러가지 일을 한다.)

시시콜콜함과 혹여 떠오를 '나는 이렇게 재미있어요'와 대비되는 나의 권태로움에도 불구하고 누군가 사는 이야기를 자꾸 듣고 싶은건 힌트를 얻고 싶기 때문일 것이다. toilet의 레이가 '인생은 지루한 일상을 견디는 것의 연속'이라고 했다면 어떻게 하면 좀 더 느긋하게 견딜 수 있는지를 알고 싶은지도. 그런 방법 따위는 없다고 생각 안 하는건 아니지만 그래도 혹시나하는 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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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ch 2011-08-29 09: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포토 리뷰쓰기는 참 어렵구나.

Forgettable. 2011-08-29 14: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랜만에 컴터로 아치 서재에 오니 분위기가 바뀌었네요 :)

Arch 2011-08-29 15:13   좋아요 0 | URL
뽀~ 레이아웃이 왼쪽으로 갔고 서재이미지만 바꿨는데. 아, 광고도 하는구나. 많이 바뀌었네. 요새 별일이 없어서 이러고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