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에 h시 얘기를 하면서 가게와 비교해 편의점은 별로란 얘기를 했었다. 그런데 오늘 당면을 먹으러 편의점에 갔다가 좀 다른 느낌을 받았다. 그곳엔 CCTV가 4개나 설치되어 있고 주인은 코빼기도 안 보이는데다 일회용품과 편의용품이란 이름의 요란한 물건들이 넘쳐난다. 평일날 편의점엔 음침한 분위기를 띄는 알바생이 곤란하거나 뻘쭘하거나 반갑거나 신나도 항상 비슷한 표정으로 카운터를 지킨다. 수십개의 업무 메뉴얼이 있지만 싹 다 무시하고 인사조차 안 하는 알바생을 보는건 좀 즐겁다. 뭐랄까, 적은 임금과 단순노동을 하는 입장에서 굳이 친절하고 싶지 않다는 소극적인 저항을 한달까. 그냥 이건 말 좋아하는 내 생각일뿐 알바생의 생각은 아무도 모를 것이다.
오늘 갔을 때는 알바생들이 교대를 하고 있었다. 전에 한번 본적 있는 고등학생으로 보이는 아이가 네시부터 일을 한다. 그 아이는 전에 친구들을 불러놓고 전자담배를 자랑했었다. 나는 그 옆에서 편의점 스파게티를 먹는다고 낑낑대며 저걸 사려면 대체 몇날 며칠 알바를 해야하나란 생각을 했었다. 그 아이는 보기 드문 사명감으로 괜찮다는데도 굳이 스파게티를 전자렌지에 넣어주겠다고 했다. 렌즈에서 플라스틱 용기를 꺼내다 손을 데놓고 얼굴을 찡그렸는데 그 표정이 좀 귀여웠다. 그 아이가 카운터에 있는 사이 당면이 뜨거운 물에서 먹기 좋게 불고 있는 사이 사람들은 편의점을 들락날락했다.
하늘색 잠옷 바지 엉덩이에 PINK라고 씌인 옷을 입고도 거침없이 아이스크림을 사가는 사람, 팩으로 든 아이스커피를 몇개씩 사가는 사람, 1+1행사 한다고 아이스크림을 잔뜩 챙기는 사람. 그 아인 잔돈을 정리하는 사이 사이 물건을 계산했고 나는 부지런히 젓가락을 놀렸다.(메롱) 아이는 계산을 하고 나는 뜨거운 국물을 쭉 들이켰다. 아이는 예전엔 좀 서툴렀지만 이젠 덤벙대지 않고 곧잘 계산을 잘 하고 있었다. 그 아이의 보드라운 낯이 예뻐서 식혜를 하나 사주고 싶었다. 부흥 슈퍼 아저씨에겐 선뜻 건네줄 수 있었던 음료수를 아이에게 주지 못한건 (굉장히) 나이 많은 누나가 갑자기 식혜를 주더라고 친구들한테 소문낼까봐선 아니었다.
어렸던 내가 기특하다며 달걀과 음료수나 밥을 사주곤 했던 아저씨 아줌마들에게 난 그다지 기특한 애가 아니었다. 잘 모르면서 나이든 사람들의 삶을 지레 짐작했다. 그들이 적적해서 집에 들어가지 못하고 서성일 때 씩씩하게 집에 잘 들어가는 모습을 보여주며 난 절대로 그런 어른 따위는 되지 않겠다고 자신있게 말했었다. 하지만 어떻게 그럴 수 있었을까. 지금 내가 그때 그 사람들의 나이가 되어서야 이름 붙일 수 없는 감정을 조금쯤 알 것 같아, 그래서 가끔은 사무치게 뭔가를 되돌리고 싶어 끙끙대는데 그게 대체 뭔지, 뭐가 있기는 한건지 알 수 없는 상황도 있다는걸 막연하게 느끼는걸.
선의를 의심할까봐 두려운게 아니었다. 명랑한 나이의 아이는 그렇게 명랑한채 놔둬야 할 것 같았다. 어느 것 하나 이룬 것도 없고 이룬다기보다는 소거해가는 중이면서 누군가의 꿈을 묻고, 어떻게 해야하는지를 설명하거나 열심히 하라는게 다인 하나마나한 소리를 지껄이며 꼰대의 경계를 위태롭게 넘나드는 요즘 나에게 젊은 사람은 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