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긴장하지 말자, 와리스.

-듣기 좋네요.

-고마워요.

-이름이 뭐예요?

-데이나에요.

 남자는 그렇게 말하고 수줍은 듯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러더니 "잠깐"하고는 돌아서 갔다. 이런! 그러나 나는 데이나를 그렇게 쉽게 놓아줄 생각이 아니었다. 그래서 나는 데이나의 뒤를 따라갔다. 데이나는 밴드 멤버들과 함께 앉았다. 그래서 나도 의자를 갖다 놓고 데이나 옆에 앉았다. 데이나는 고개를 돌려 나를 보더니 깜짝 놀랐다. 내가 나무랐다.

-제가 말하고 있던 중이었을 텐데요. 아까는 무례했어요. 날 내버려 두고 갔잖아요.

 데이나는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나를 보더니 곧 큰 소리로 웃으면서 탁자 위에 쓰러졌다.

-이름이 뭐예요?

 웃음이 멎자 데이나가 물었다.

-그런 건 이제 상관없잖아요.

 나는 콧대를 높이고 가능한 도도한 태도로 대답했다. 우리는 곧 이런저런 얘기를 시작했는데, 어느새 데이나가 연주할 시간이 돌아왔다.

...(그의 연주가 끝나고 잠시 밖으로 나가서 얘기를 하려고 계단을 오르고나서)

-부탁 하나 들어줄래요? 나 좀 안아줄래요?

나는 그것이 세상에서 가장 자연스러운 부탁이라는 듯 데이나를 쳐다보았다. 늘 알고 지내던 사람 같았다. 그래서 나는 데이나를 꼭 안아 주었다. 그 순간, 나는 알았다. 런던에 갈 때 알았던 것처럼, 모델 일을 시작할 때 알았던 것처럼, 나는 멋진 아프로 머리의 수줍은 드럼 주자가 내 인연이라는 걸.

(그에게 연락처를 건네주고 다음 날 통화를 한 후)

 우리는 그리니치 빌리지에 있는 작은 커피숍에서 만나 이야기하고 또 이야기했다. 데이나의 성격을 잘 알게 된 지금 생각해 보면 참으로 데이나답지 않은 행동이었음을 깨닫는다. 데이나는 잘 모르는 사람 앞에서는 거의 말을 않기 때문이다. 나는 갑자기 웃기 시작했다. 데이나는 놀란 것 같아 보였다.

-뭐가 그리 우스워?

-내 생각을 들으면 아마 내가 미쳤다고 할 걸

-말 해 봐. 벌써 그렇게 생각하고 있으니까.

-난 데이나의 아이를 가질 거야.

 데이나는 자신이 미래의 내 아이의 아버지가 될 거라는 말을 썩 유쾌하게 여기지 않는 것 같았다. 그 대신 내가 아주 미칠 대로 미쳤다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이상한 소리라는 건 알지만 말하고 싶었어. 어쨌든 그 얘기는 그만해. 잊어버려.

 데이나는 말없이 나를 쳐다보았다. 충격을 받은 것 같았다. 당연했다. 나는 데이나의 성도 모르는 상태였다. 나중에 데이나에게 들은 얘기에 따르면 데이나는 그 때 이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다시는 보지 말아야겠군. 절대로 만나주지 말아야겠어. <위험한 정사>에 나오는 그 정신 나간 스토커 같아.

 저녁 식사가 끝난 뒤 데이나는 나를 집으로 데려다 주었지만 거의 말이 없었다. 다음날, 나는 내 자신이 미워 견딜 수가 없었다. 그렇게 촌스럽기 그지없는 말을 한 내 자신이 믿기지 않았다. 그러나 당시에는 "비가 올 것 같아요"라는 말처럼 자연스럽게 느껴졌다. 물론, 데이나는 일주일이 지나도 전화를 하지 않았다. 마침내 내가 먼저 전화를 했다. 데이나가 물었다.

-어디 있니?

-친구네 집에. 우리 만날까?

-그럼. 만나자. 같이 점심 먹자

-사랑해

-나도.

('사막의 꽃'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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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11-01-14 12: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내가 만약 이 책을 읽었다면 아치말대로 이 부분으로 페이퍼를 썼을것 같아요! 나도 말해보고 싶거든요. 나 닮은 딸을 낳고 싶고 당신 닮은 아들을 낳고 싶다고. 그 아이들을 당신이 사랑하는 걸 보고 싶다고. 헤헷. 언젠가는 말할 날이 오겠죠. 안와도 할 수 없고.:)

그런데요 아치, 아치가 옮겨준 이 부분에서 내가 정말 좋아하는 부분은 바로 이 부분이에요.

우리는 그리니치 빌리지에 있는 작은 커피숍에서 만나 이야기하고 또 이야기했다.

나, 이 부분이 너무 좋아요. 이야기하고 또 이야기했다. 정말 좋지 않아요? 아이 좋아 ♡



Arch 2011-01-14 12:38   좋아요 0 | URL
그러니까. 무슨 할말이 그리 많다고 이야기를 하고 또 한단 말이에요. 그런데 우리도 먼 곳에 있는 빵꾸똥꾸들 보면 그러지 않을까요. 이야기하고 또 이야기하고.

이 페이퍼는 다락방꺼니까 다락방 가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