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이맘때쯤이었던가. 친구가 메신저로 쌈싸페에서 믿을 수 없는 그룹이 나왔다는 말을 전했다. 친구가 말하길 그들의 랩은 웅얼거림과 본격 랩을 넘어선 미치도록 열광할만한거였고, 퍼포먼스는 이전의 인디씬에선 볼 수 없었던 파격 자체였다고 했다. 파격, 비일상, 좀 다른 것, 엇나가고 뒤틀린거라면 환장하는 나로선 친구의 뽐뿌질에 흔쾌히 동참, 그들의 음악을 찾아들었다. 아주 진기한 노래, '싸구려 커피'는 이렇게 내게 다가왔다. 물론 노래만큼이나 홀쭉해진 장기하의 시큰둥한 표정이 더 맘에 들었다. 

 이 책은 장기하뿐 아니라 '지속가능한 딴따라질'을 추구하는 붕가붕가 레코드의 이야기를 담았다.  책은 군데군데 설익은 냄새를 풍기다 중반을 넘어서 속도를 내기 시작하더니 결국 이 얘기를 하고 싶었구나란, 기승전결 뚜렷하기보다는 인내하여 끝까지 읽는자에게 복이 있으리란 구성을 보이고 있다. 오해할까 말하는데 마지막에 좀 더 분명히 자신들이 하고 싶은 말을 한다는거지 초반에 책이 재미없었다는 얘기는 아니다.  

 돈을 벌기 위한 일이 아니라 정말 하고 싶은 일을 한다면 어떨까. 지금 나로선 하고 싶은 일이 도대체 뭔지, 그게 그렇게 중요한 것 같지 않고, 현상유지로도 좀 어려운 처지지만 그렇게 하고 있는 사람들은 어떨까. 

 지속 가능한 딴따라질의 함정이었다. 지속하는 데 너무 집중하다 보니 자꾸만 모든 궁리가 돈을 벌어 살아남는 것으로 향하게 됐다. 결국 이런 식이라면 일반적인 음악 사업과 다를 게 없다. 그것도 나쁘진 않겠지만, 우리가 애초에 하고자 했던 건 그게 아니었잖아. 

 나 역시 마찬가지다. 전통술 만드는걸 배우러 다니고, 글을 계속 쓰고 싶다. 옥찌들이랑도 잘 지내고 싶고, 옥찌들이랑 동생이랑 아빠집을 나와서 살고 싶다. 이 모든 것을 지속하려니 나도 돈 벌 궁리만 하고 있다. 이럴 바엔 차라리 선 돈 벌 궁리, 후 하고 싶은 일이란 프로세스라도 되어있으면 좋으련만. 내가 하고 싶은걸 열심히 하지도 않으면서 엄살만 피우고 있다는 생각에 잠도 안 온다. 엄살 아니라고 백번 말해도 내가 엄살이라고 느낀다. 하기 싫은 일 하면서 좀 다져질 수 있는데, 지금도 이렇게 열심히 사는게 아니면서 자꾸 하고 싶은 일로 당면한 과제를 회피하고 있다고 느낀다.   

 이루는 것보다는 나아지는 게 우리가 재미를 느끼는 종류의 일임을 깨닫게 되었다.
 
 
나는 이제 조금씩 나를 알 것 같으니까 다른 내가 되기보다는 지금껏 있는 나를 좀 더 추스려서 살아봐야겠다. 이건 뭐, 고민하느라 지속가능한 즐거운 짓할 시간도 없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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웽스북스 2010-05-06 11: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그러게. 지속 가능한, 이라는 말에 저런 함정도 숨어 있었군요. 그건 또 생각 못했네.

가끔 (저는 종교가 있으니까) 왜 하나님께서는 세상을 이모냥으로 만들었을까, 라는 생각을 할 때가 있어요. 그러니까, 하고 싶은 일을, 혹은 의미 있는 일을 한다는 건 대부분 돈과 연결되지 않는. 그리하여,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신과의 삶을 하고 싶은 것, 과는 무관하게 살아가야 하는. (의사, 변호사, 이런 것들이 진짜 '하고 싶었던' 사람들에게는 해당되지 않는 말이겠지만요) 그리고, 그건, 어쩌면, 그렇게 그 선택을 어렵게 만듦으로 인해, 정말로 하고 싶은 사람들이 할 수 있도록, 그리하여 그들이 선택한 삶이 더 빛날 수 있도록 하게 하기 위한 건 아닐까, 뭐 이런 생각. 뭐 좀 두서 없고 정리 안됐긴 한데, 뭐 암튼 아치님 글 읽으니 그렇게 생각했던 게 생각났어요. 아치님은 반짝반짝 빛날 준비를 하고 있는 거니까, 그것만으로도 내겐 대단하고 훌륭하게 느껴져요.

오랜만에 와서는 이런 쓸데없는 소리만 하다 가요. 잘 지내시죠? 지민이도 잘 있죠? ㅎㅎ

Arch 2010-05-06 16:20   좋아요 0 | URL
두서없고 정리 안 되는건 내가 최고니까 그런 말 마셔요. ^^ 무슨 말인지 어렴풋이 느껴져요. 웬디양님, 오랜만의 댓글뿐 아니라 '이런 댓글' 달아줘서 고마워요.

네, 민이는 병원도 잘 다니고, 가끔 이모랑 싸우긴 하지만 잘 지내요.

머큐리 2010-05-07 19: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엇나가고 뒤틀린 것이라면 환장하는 아치님이니까...ㅎㅎ 무언가 새로운 돌파구를 발견하지 않을까 기대되요
혹 알게되면 저랑 공유하기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