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무신을 신고 다니는 꼬마가 있었다. 친구들이 운동화를 자랑할 때 침을 꿀꺽 삼키며 고무신이 얼마나 좋은지 자랑하던 꼬마 말이다. 다 자란 꼬마가 그때의 자신에게 사실은 거짓말이지 않냐고 묻는다. 운동화 없는 게 부끄럽냐고 꼬마를 다그친다. 너 자꾸 그러면 어른 돼서도 거짓말만 한다고 협박 아닌 협박을 한다. <대한민국 원주민 중>
어렸을 때 열등감이 많았다. 친구들과 잘 지내는 아이들을 보면 부러웠고, 아무렇지 않게 뭔가를 이루는 애들을 보면 배알이 꼬였다. 예쁜 애는 예쁜 애라서 싫었고, 나보다 공부 잘하는 애들은 다른 많은 좋은 점에도 불구하고 미웠다. 평범하다는 것 자체가 열등감이었던 것 같다.
지금이야 누군가 부럽고 약이 올라 죽겠으면 악에 바치도록 부러워하고 질투하다 제풀에 꺾이는 것도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야 자기 못난 것도 알고, 못난 자기지만 좀 더 사랑할 수 있는 방법도 배울 수 있을테니까. 하지만 그때는 그럴 수 있었나. 누군가를 부러워하고 내가 남보다 못하다는 사실 자체가 나를 부정하는 것 같았는걸. 그래서 딴에 생각해낸 게 내가 부러워하는 것에서 어떻게든 단점을 찾아내는 거였다.
쟤는 공부를 잘하지만 뚱뚱해. 쟤는 친구랑 잘 지내지만 위선적이야. 나를 홀리게 하지만 가식이 몸에 배었어. 솔직하지만 남에게 상처를 줘. 멋지지만 자기가 보여주고 싶은 면만 보여줘 등등. 생각은 주위 사람에 그치지 않고 여러 갈래로 퍼져나갔다. 연예인을 봐도 예쁜점보다 미운점을 찾고, 숨이 턱 막힐 정도로 좋고 예쁜 것들을 봐도 흠을 찾아냈다. 우물 안 개구리 되는줄 몰랐다.
그렇다고 부럽지 않은 것에 관대한건 아니었다. 약하고 초라한 것엔 부끄러울 정도로 기세등등했다. 수그러들기보다는 되바라졌다. 되바라져서 크게 한번 깨져봐야는데 그 정도까지 세게 나가지 못했다. 상대가 꿈틀한 후에는 눈치를 봤기 때문이다.
요즘도 그런다. 뭔가가 부럽고 샘이나 죽겠어도 아닌척, 관심 없는척을 한다. 때로는 운이 좋았다거나 환경이 좋았기 때문이라고 애둘러서 딴청을 피운다. 그게 아니란걸 잘 아는데, 그런데도 잘 안 고쳐진다.
그의 말처럼,
그런 어른이 돼버렸지만, 딱히 다른 방법이 있었을 것 같진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