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에 출장 갔을 때였다. 뭣도 모르고 사람들을 따라나섰다 안마를 받게 되었다. 1시간 넘게 안마를 받는데 참 불편했다. 스트레칭 하고 평소 건강 관리를 잘 하면 될 것을 돈 내고 호사를 누린다는 생각 때문은 아니었다. 색다른 경험치고는 상대방의 수고가 몸에 진득하게 남아서 떨어지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시원하기보다는 불편한 안마였다. 이 사람이 하루종일 고생하며 일을 하면 몇만원을 벌 수 있다는게, 한국에 가는걸 소원으로 여기는게, 한국에 있는 조선족과 다른 나라의 사람들이 어떻게 사는지를 모른다는게 불편했다. 돈으로 누군가의 수고를 살 수 있고, 사는게 관광이라는 방식이 불편했다. 호텔에서 서빙을 하느라 눈코 뜰새 없이 바쁜 서버를 보면서 우리 나라 사람들은 중국 사람들이 서비스 정신이 없네, 너무 게을러터졌네, 우리 같았음 난리났네라며 찧고 까불었다. 서빙하는 사람들은 높은 굽의 구두를 신고 하루종일 서있는 듯 했다.
 
 중국에서의 불편한 경험은 내가 여행을 바라보는 방식을 바꾸게 했다. 여행을 많이 다니진 않았지만 적어도 어딘가로 떠난다면 내가 쓰는 돈이 정당한 방식으로 그 지역 사람들에게 쓰여지고, 자연이나 동식물을 해치지 않는 여행. 관광보다는 여행을 하리라 맘 먹었다. 

 그리고 고대했던 이 책을 만났다.

 책임 여행이란 단어를 이 책에서 처음 알았다. 인권, 경제, 환경, 정치, 문화, 배움의 주제별로 나눠진 이 책은 내게 많은 것을 알려주고, 깨닫게 했다. 착한 여행이 아니라 당연히 내가 해야할 여행에 대해, 점심시간 10분을 빼놓고 계속 다림질을 하는 꿈의 리조트 세탁부 직원에 대해, 자신이 살던 곳에서 쫓겨나 전통 춤을 보여주는 것으로 수입을 대신하는 부시맨에 대해, 여성을 위한 트래킹여행사 쓰리시스터즈의 멋진 희망에 대해, 지역 농산물로 운영하는 호텔에 대해, 파잔 의식(다섯 살 무렵의 코끼리를 엄마에게서 떼어놓아 작은 나무 우리에 밀어넣고 쇠고리같은 따거로 머리와 귀를 찍고 긁어내며 거부할 수 없는 공포를 학습시킴)으로 이젠 코끼리의 나라 태국에서조차 자취를 감춘 코끼리를 살리려는 운동에 대해 알게 되었다. 그리고 아직 더 해야할 말이 많은 희망과 이제는 그만둬야할 탐욕에 대해 이 책이 아니었다면 알지 못했을 것이다.

 식객12의 '진수 성찬 옥자' 편에 보면 네팔 트레킹이 나온다. 

- 포터들은 이렇게 자동차 지붕 위에 타고 여러 시간을 견디며 달립니다. 포터를 위해서 따로 차량을 마련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한국 트레킹족의 입맛을 위해 식자재며 조리도구를 이고 지며 산을 오르는 포터를 보며 진수가) 저렇게 머리에 무게를 주면 목 디스크가 생길 텐데! 
라고 말하자, 여행사 사장은 
- 괜찮습니다. 어려서부터 저런 식으로 짐을 드니까 단련이 됐다고 합니다.

 '희망을 여행하라'를 읽기 전에는 정말 포터들 몫의 자동차까지 마련할 수 없다고, 정말 단련이 되어서 무거운 것도 잘 드는거라고 믿었다.  이 책의 인권 부분에서 네팔 트레킹의 포터에 대한 얘기가 나온다. 동상이 걸리고, 죽을 고비를 넘기지만 아무런 보호도 받지 못하는 포터들. 이것저것 떼고 나면 몇 루피 밖에 손에 못쥐는 포터들. 통계만 없을 뿐이지 트레킹 중 사망한 포터들은 부지기수일거란 얘기도 나왔다. 다음은 영국의 관광감시 NGO투어리즘 컨선의 활동가의 말이다.

"사람들은 이상한 믿음을 가지고 있는 것 같아요. 포터들은 보통 사람과 달리 무거운 짐을 가볍게 나를 수 있고, 높은 고도에서도 고산증 따윈 상관 없고, 영하의 날씨 속에서 슬리퍼에 면바지만 입어도 감기에 걸리지도 동상에 걸리지도 않는 슈퍼맨 같은 존재라는 이상한 믿음을. 하지만 히말리아를 오르는 많은 포터들은 낮은 구릉지대에서 농사를 짓다가 가난에 못 이겨 산에 오르는 평범한 사람들일 뿐이죠."

 그들을 가난하게 만든건 어처구니없는 다국적 기업과 관광 개발을 위해 그들을 살던 지역에서 쫓아낸 자기 나라의 정부다. 하지만 그들을 외롭고 쓸쓸하게 하는건 멋진 여행을 하겠다고 다른 것들은 눈감아버리는 관광객들이 아닐까란 생각을 해본다. 굳이 다른 나라까지 가서 고추장을 찾고 우리나라 음식 아니면 안 되겠다고 고집을 피우는 한국 사람들. 무서운 여행욕의 이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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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10-03-23 09: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 참 좋았어요. 별 다섯이 아깝지 않은 책.
너무 극성스러운 것 아닌가, 하며 집어들었으나 그 `극성'이 나의 무식임을 알게 되었습지요. 읽은지 1년이 다 되어가는데, 코끼리 길들이기는 아직도 생각나요. 생후 몇개월짜리 아기 코끼리를 거의 죽음에 몰아 훈련시키는 것. 이 책으로, 생명과 윤리에 대한 개념을 좀 얻게 되어 그나마 다행입니다.(제가 그렇단 이야기)

Arch 2010-03-23 10:22   좋아요 0 | URL
저도요. 막 읽고 싶긴 했는데 이거 너무 오바하는거 아닌가 싶었거든요. 결국 쥬드님 말처럼 저도 그냥 제가 무식하고 모자란 탓에 그런 생각을 했다는걸 알았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