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은 어디에 머리만 갖다대도 잠이 온다. 낮에 자고, 밤에 자고, 일 없으면 잔다. 아직 겨울잠에서 덜 깬 봄날의 곰처럼 졸립다. 봄날의 곰만큼 네가 좋아란 고백은 달콤하기라도 하지. 아주 커다랗고, 졸기만 하는 곰은 무섭기만 하다. 나, 왜 이렇게 졸리지.
연극 연습은 잘 진행되고 있다. 지난주만 해도 이름은 있으나 캐릭터며 목적과 전략이 뚜렷하지 않던 여자가 이번주에는 좀 더 살아나기 시작했다. 지루하고, 피곤하고 짜증나는 것들은 안으로 모아놓고, 내가 해야할 것과 하지 말아야할 것을 나눈다. 동선은 단조롭고 인상적이게, 감정은 과잉되지 않게, 낮고 고저없는 목소리를 통통 튀게 해본다. 나는 모든 주문과 상대방의 목표와 나의 전략을 조율하려고 애쓴다. 맘대로 되는건 하나도 없지만 점점 내가 뭘 해야할지를 알아간다.
여자의 이름은 미진이다. 누군가에게는 우스개 소리로 '술집 여자인데 죽으려고 나오는 것 같아, 낙법은 정말 웃겨'라고 했지만, 여자의 성격이며 감정은 다 내가 만들었다. 꿈과 욕망 사이에서 갈팡질팡 하다가 즐거울 때면 아무 것도 문제될게 없단 식으로 정리해버리고, 다시 씩씩하게 웃고 떠드는 여자. 자신이 매력적이란걸 알지만 가끔은 칭찬이 귀찮아 딴청을 부리는 여자, 그녀가 있는 장소는 그녀로 인해 빛난다. 내가 제일 어려운건 바로 그 부분이다. 그녀의 모든 말과 행동을 따라할 수 있을지언정 정녕 그녀가 될 수 없는건 바로 그 존재감 때문이다. 나로 인해 다른 누군가의 기분이 좋아지는 것. 난 '미진'을 연기하지만 결코 미진이 될 수 없는건 그 때문이다.
내가 될 수 없는건 미진 뿐만이 아니다. 연기가 끝난 후, 난 연기자가 될 수 없다. 나이 많은 배우, 습관이 몸과 말 속에 고스란히 배어있는 배우, 열심히 하기보다는 요령을 피우고, 연출가랑 싸우려고만 드는 배우는 자리 좁은 연극 무대에서는 효율적인 선택지가 아니다. 나 역시 정말 이게 내가 하고 싶은 일인지 아직도 모르고 있다.
'소라닌'이란 만화책이 있다. 손끝에 푸른물이 들 정도로 젊은 사람들이 음악을 하는 얘기다. 나는 그 책에서 여자 아이가 책의 제목이면서 죽은 남자친구가 작곡한 노래이기도한 '소라닌'을 부른 후 그들의 삶이 이전과는 다르게 펼쳐질거라고 생각했다. 난 아주 작은 목소리로 그들을 응원했다. 이렇게 아픈데 너희는 잘 해냈잖아, 그러니까 당신들이 좀 더 행복했으면 좋겠단 바람을 갖았다.
공연이 끝난 후, 그들은 달라지지 않았다. '소라닌'을 부르는건 누군가를 만나면, 열심히 노력하면, 아주 근사한 기회를 잡으면 아주 쉽게 삶이 요동치는 드라마나 영화에서와 같은 마법 주문이 아니었다. 연극을 시작하기 전에는 몰랐지만 문득 나 역시 연기 한다는걸 마법 주문을 외우는 것쯤으로 생각한게 아닐까란 느낌이 들었다. 나의 마법 주문, 솰라솰라, 우샬룸바라~
공연이 끝나지 않았지만 마법 같은건 결코 없다는걸, 대단한 나도, 나를 대단하게 생각해주는 사람들의 주목도 없을거란걸 나는 잘 알고 있다. 그래서 자꾸 잠이 오는 것 같다.
연습을 하고 돌아왔다. 나는 조금씩 '미진'이가 되고 있다. 아마 난 내일도 졸고 낙법을 엉터리로 해낼 것이다. 공연이 끝나도 큰 줄기의 내 삶은 바뀔 게 없을 것이다. 하지만 왠지 그래도 될 것 같다. 인생역전이 주는 입이 쩍 벌어지게 화끈한 것도 좋지만 있는 듯 없는 듯, 누군가 살뜰하게 살피지 않아도 자기 혼자 쑥쑥 자라는 길가의 들풀처럼 잘 자라는 내가 있으니까. 물론 옆에서 과도한 자기 위안 내지는 일부러 긍정적으로 끝맺는거 아니냐고, '못할거 같으니까 미리 선수쳐서 자기도 별 기대 안 했다는 식으로 퉁치려는거 아니냐'고 궁시렁대는 또 다른 나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