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숙이 내게 던진 화두

  알약을 안 먹었다면......

 알라딘을 몰랐고, 사회문제에 대해서 논리적으로 설명해주는 친구가 없었다면, 내게 알량한 공명심이나 평균적인 도덕심이 없었다면. 여러가지 가정을 해본다. 차라리 몰랐다면 더 좋았을 것들에 대해서 생각한다. 알고난 후가 엄청나게 불행해진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더 행복하다고도 말할 수 없다. 하지만 자꾸 스물스물 기어들어오는 정체모를 즐거움과 개인적인 일과 작은 실천 사이의 자족감, 아무에게도 털어놓지 않은 일이 주는 충족감은 그 전의 삶에선 느낄 수 없었다. 그 전엔 볼 양쪽에 욕심을 한 바가지씩 채워가지고 다녔으니까.

 물론 나는 여전히 모든 문제에 오지랖 수준으로만 접근할 뿐이다. 불편한 느낌을 손쉬운 방법으로 해결하는데 그치는 것 역시 부인할 수 없다. 게다가 다른 누군가의 일에선 그토록 열을 내고 고민을 하면서 바로 내 옆에 있는 사람에게선 포기 내지는 독단적으로 재단하는 것도 문제다.

 문제는 그뿐 만이 아니다. 
 나는 당위에 대해서 공감하고, 내가 힘 닿는 한에선 도와줄 여력이 있다. 하지만 어떤 방식으로 해야할지 모르고 있다. 후원을 해야한다면 어떻게 해야하는지, 같이 시위를 한다면, 공론화시켜서 문제제기를 한다면 어떻게 해야할까. 나에겐 내 행동과 생각을 차분하게 설명해줄만한 논리가 없다. 쉽게 흥분하고 분노하지만 결국은 지는 과정을 반복하면서 학습된 무기력감이 쌓일까 미리 겁을 내기도 한다.
 
 나는 노동자인데 왜 내겐 노동자성이 없을까. 삶이 주는 유무형의 안락함 때문일까. 내가 나도 모르는 사이 길들여진걸까. 아니면, 아니면...... 나는 현장에 없어서 그런걸까. 나는 왜 그럴까. 나는 내게 없는 정체성을 강요하고 있는걸까. 노동자란 정체성이 내게 씌워지면 안 되는 이유라도 있는걸까. 난 거부하는걸까, 그럼 내가 말하는 연대는 허위란 말인가. 허위가 아니라면 직접 행동을 하지 않는 이유는 뭘까. 왜 내겐 절박함이 없을까.
 
 든든한 배경이 되어준다고 했다. 현장에서 같이 고통을 나눌 수는 없지만 그 사람들에게 든든한 울타리가 되어준다고 했다. 울타리 사용법조차 숙지하지 못하고 있는데 그렇게 자신있어한건 왜일까. 무관심한건 아니잖아, 란 말은 아무 힘이 되지 못한다.
 무슨 포인트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쓰던 삼성카드를 다시는 안 쓰려고 탈해까지 했고, 대형 프랜차이즈 커피숍이나 가게를 가지 않는다. 모든 물건이 낡고 헤질 때까지 쓴다. 방 안엔 버리지 못한 쓰레기로 넘쳐나고, 버스 대신 자전거를 타고 다닌다. 한다고 하는데도 늘 부족하고 얄팍하게 느껴진다.
 그건 한끼 굶는 것 가지고도 앓는 소리를 내는 내가 감히 할 수 없는 일을 하는 분의 피로하고 절망적인 기분의 반의 반도 이해할 수 없기 때문이다. 내가 하는건 너무 쉽고 편안해서 죄송할 따름이다.

 당신이 너무 맘 상하지 않고, 다치지 않게 투쟁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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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1-29 01:2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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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1-30 01:27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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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1-29 08:30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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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1-30 01:28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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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1-29 09:58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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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1-30 01:29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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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2-01 00:30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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