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왜 불매였을까.

  많은 불편을 감수하지 않아도 되는 점이 가장 컸다. 만약에 내가 공부하는 학생이라 지속적으로 책을 구매해야하고, 구내 서점이나 지역 서점에 신청을 해서 무거운 책을 가져와야하는거라면, 시립도서관에서 희망도서를 일년에 한두번 정도만 구매한다면 아마도 불매선언을 하기 어려웠을거다. 김종호씨와 연관된 알라딘 불매는 내가 상징적으로 생각하는 작은 연대를 실천하는 방법이었다. 운동으로까지 연장시키지 않은건 다른 사람들의 입장을 모르는데다 이 일의 사실관계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는 점, 근본적으로 해결이 어려운 문제라는걸 잘 알기 때문이었다.


2. 불편한 점.

  만약에 내가 불매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고, 불매 입장을 고수하고 싶지 않은 경우에는 어떨까. 아마도 일상적인 이야기든, 책에 대한 이야기든 여러모로 전과 다른 기류 때문에 신경을 썼을 것 같다. 흡사 월드컵 시즌에 축구를 안 본다거나 추모 기간에 우스운 얘기를 해서 빈축을 사는 것처럼. (분명히 꼭 그래야한다고 강제하는건 아니지만 그런 분위기가 있다.) 혹은 의식없는 사람, 별다른 논리도 없으면서 사람들이 대세라고 생각하는 분위기를 따르지 않는 사람처럼 보일 위험이 있다. 내가 느끼기도 했지만 다른 사람들이 전반적인 이야기 외의 다른 얘길 했을 때 내가 느낀 감정도 비슷했다. 그 사람들을 보면서 난 지금 시국이 어느땐데란 생각을 했던걸 기억한다.

  나는 남들 불매할 때 알라딘을 계속 이용하는게 어때서라고 생각하는 사람을 비난할 생각이 없으며 그들 각자의 입장과 소비 행위를 내가 재단할 수 있는 근거도 없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 일이 있기 전처럼 ‘구매’가 자랑하거나 권장할만한 일은 아니란 암묵적인 분위기가 생긴건 사실이다. 이런 느낌은 누가 발화하지 않았다 뿐이지, 불매가 건드는 여러 지형 중 하나가 아닐까. 앞서 몇몇분들과 불매를 선언했을 때는 다른분들이 별다른 말이 없어 서운했다. 하지만 많은 분들이 불매를 선언하자 힘이 되는 한편 불매를 선언하지 않는 분들은 좀 불편하겠다란 생각이 들었다. 바람구두님 말씀처럼 지극히 개인적인 운동의 형태에 사람들이 많아지면서 의도하지 않은 불편함을 낳은 것 같다. 이건 어떻게 해야할까. 편가르기도 아니고, 강제된 것도 아닌데.


3. 불매 선언만 하면 끝일까.

  자신이 불편한 느낌을 갖지 않기 위해 불매 선언을 했다. 그 뒤에 아무런 고민도 안 하고, 자기 스스로 입장 정리도 안 한 채 어느 정도의 인식있음만 -무엇을 위한 의식인지는 모르겠으니 인식있음 정도가 타당할 것 같다.- 표해주는건? 불매를 계기로 사람들은 알라딘의 성의있는 답변을 기대하거나 비정규직의 단계적 정규직화뿐 아니라(나 역시 비정규직 문제가 알라딘만의 노력으로 되지 않을 더러 인터넷 서점 업계의 관행상 어렵다고 생각한다. 다만 최대한 노동자가 소외되지 않는 안전망은 마련할 수 있도록 해야한다고 본다.) 인터넷 서점을 매개로 하지 않는 유통이나 비정규직, 정규직의 외양을 한 비정규직의 실체, 파견과 도급의 차이, 이런 부분들은 자신과 어떻게 연계를 맺는지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다. 내 경우 바스타님이 페이퍼에 올린 도급과 파견의 차이를 정녕 이해하지 못해 조선인님이 제기한 문제나 애초에 김종호씨가 제기한 불법 파견이 아니냔 의문에 답을 못내고 있는 실정이다. 김종호씨에게 메일을 보내거나, 사실관계를 제대로 알아보려고 지속적으로 알라딘에 문의도 하지 않았다. 좀 더 열정을 갖은 분들이 일이 진행되는 상황을 전해주는걸 간접적으로만 접할 뿐이다. 나는 내가 정한 범위내의 불매로만 만족하려는걸까. 그건 무슨 의미가 있는걸까. 흡사 어두운 골방에서 자족적인 행위를 하는 것과 뭐가 다를까. 이건 연대가 아니잖아, 등등. 동참한다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고 느끼는데 일정량의 에너지를 할애하자니 어디서부터 시작해야할지 모르겠다.

4. 알라딘은 왜?

  사실관계를 설명해줘도, 앞으로 성수기 인력 관리를 어떻게 하겠다는 지침을 얘기해줘도 좋다. 납득의 기대치나 알라딘이란 기업에 갖고 있는 진보적인 이미지가 대단히 큰 것도 아니니 적어도 불편한 느낌에서 시작한 불매를 그만둘 수 있는 대책은 알라딘 내부적으로도 여러 가지가 나올 수 있다고 본다.

  그런데 왜 묵묵부답일까. 혹시 알라디너의 불매는 알라딘이란 기업의 경영 방향이나 매출에 그다지 영향을 미치는건 아니지 않을까. 일전에 고객 서비스 업무를 담당했을 때 고객들이 불만을 제기하는 사항이 있어서 여러번 윗선에 보고를 했지만 개선되지 않았다. 기업 입장에선 고객을 대면하는 분야를 세심하게 관리해야하겠지만 실질적으로는 고객감동이란 허울만 가져다 쓸 뿐 일방적인 서비스일 경우가 많기 때문이었다. 고객과 접촉하는 빈도가 높은 사람들은 윗선의 업무지시와 고객 대응 스킬을 활용할 뿐, 직접적으로 기업의 고객 서비스 마인드 자체를 변화시키기엔 무기력했다. 혹시 알라딘도 그런걸까. 그런데 왜 나는 알라딘으로부터 답을 구하는걸까. 다른 방식은 없는걸까.


댓글(4) 먼댓글(0) 좋아요(2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2009-12-09 11:03   URL
비밀 댓글입니다.

Arch 2009-12-09 13:25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너무 맘 쓰지 않으셨음 해요.

라주미힌 2009-12-09 11: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관련 페이퍼를 다 읽어보질 않았지만..)

지난번 알라딘측에서 쓴 해명글의 어디어디에 문제가 있는지 '공식적'으로 누군가가 '정리' 좀 해서 하면
반응을 보이지 않을까요? 불매 하겠다고 하면서도 어떻게 해달라는 건 '잘' 보이질 않네요. 희끄무레한 반응에 명징한 반응을 기대할 수는 없죠.

Arch 2009-12-09 13:29   좋아요 0 | URL
역시 '어떻게'가 문제예요. 왜에 대해선 생각했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