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이 늦게까지 자지 않았다. 지민인 잠투정한다고 칭얼대고, 지희는 뭐가 서운했는지 훌쩍거렸다. 아이들을 얼른 씻기고 재워야 한시름 놓을 것 같아 정신이 없었다. 엄마가 옆에서 뭐라고 말씀을 하고 있었지만 잘 들리지 않았다. 엄마는 '그러니까'로 시작되는 말을 풀어놓기 시작했다. 마음이 급할 때가 아니어도 같은 말을 반복하고, 별다른 의미도 없는 얘기들을 쏟아내는 엄마에게 평소에도 질린터였다. 난 대꾸도 안 하고, 애들만 신경 썼다.
그러다 문득, 아무도 듣지 않는다는걸 알면서도 말할 수 밖에 없는 엄마는 참 쓸쓸하겠단 생각이 들었다.
차라리 소리를 빽빽 지르며 '그만 하고 잡시다.' 라고 하는게 낫지, 아무에게도 안 보이는 사람처럼 있는 엄마는 어땠을까. 어쩌면 구태의연하다고 생각한 말을 잘 듣다보면 정말 엄마가 무슨 얘기를 하고 싶어하는지 들을지도 모르는데.
옥찌들을 대할 때면 육아지침서류의 책에서 본 것도 생각하고, 내가 어른인데 이러면 안 되지라며 맘을 다잡게 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가족을 대할 땐, 특히 엄마를 대할 때면 옥찌들을 이해하려는 맘의 반절도 안 먹는다. 엄마도 아이처럼 투정 부리고 싶은건데, 그냥 별 얘기 아니지만 도란도란 말하고 싶은건데, 어쩌면, 어쩌면에서 자꾸 말이 막히고 만다. 어쩌면 엄마는 진심으로 자신의 말을 들어줄 단 하나의 마음과 작고 살가운 귀를 아직 갖지 못한걸 수도 있는데.
어린 나는 나보다 몇뼘은 큰 엄마를 올려다보며 내가 생각하고 느끼는 것을 조잘대기 시작한다. 엄마는 어떨땐 건성으로, 어떨땐 킥킥 웃으며, 어떨땐 나른한 눈길을 보내며 내 말을 듣는다. 어쨌든 듣는다. 엄마가 내게 귀기울이는 순간, 나는 진정으로 할말이 많아져서 이대로 계속 조잘됐음 좋겠단 생각을 했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