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이 늦게까지 자지 않았다. 지민인 잠투정한다고 칭얼대고, 지희는 뭐가 서운했는지 훌쩍거렸다. 아이들을 얼른 씻기고 재워야 한시름 놓을 것 같아 정신이 없었다. 엄마가 옆에서 뭐라고 말씀을 하고 있었지만 잘 들리지 않았다. 엄마는 '그러니까'로 시작되는 말을 풀어놓기 시작했다. 마음이 급할 때가 아니어도 같은 말을 반복하고, 별다른 의미도 없는 얘기들을 쏟아내는 엄마에게 평소에도 질린터였다. 난 대꾸도 안 하고, 애들만 신경 썼다. 

 그러다 문득, 아무도 듣지 않는다는걸 알면서도 말할 수 밖에 없는 엄마는 참 쓸쓸하겠단 생각이 들었다.
차라리 소리를 빽빽 지르며 '그만 하고 잡시다.' 라고 하는게 낫지, 아무에게도 안 보이는 사람처럼 있는 엄마는 어땠을까. 어쩌면 구태의연하다고 생각한 말을 잘 듣다보면 정말 엄마가 무슨 얘기를 하고 싶어하는지 들을지도 모르는데.

 옥찌들을 대할 때면 육아지침서류의 책에서 본 것도 생각하고, 내가 어른인데 이러면 안 되지라며 맘을 다잡게 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가족을 대할 땐, 특히 엄마를 대할 때면 옥찌들을 이해하려는 맘의 반절도 안 먹는다. 엄마도 아이처럼 투정 부리고 싶은건데, 그냥 별 얘기 아니지만 도란도란 말하고 싶은건데, 어쩌면, 어쩌면에서 자꾸 말이 막히고 만다. 어쩌면 엄마는 진심으로 자신의 말을 들어줄 단 하나의 마음과 작고 살가운 귀를 아직 갖지 못한걸 수도 있는데.

 어린 나는 나보다 몇뼘은 큰 엄마를 올려다보며 내가 생각하고 느끼는 것을 조잘대기 시작한다. 엄마는 어떨땐 건성으로, 어떨땐 킥킥 웃으며, 어떨땐 나른한 눈길을 보내며 내 말을 듣는다. 어쨌든 듣는다. 엄마가 내게 귀기울이는 순간, 나는 진정으로 할말이 많아져서 이대로 계속 조잘됐음 좋겠단 생각을 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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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rgettable. 2009-10-29 09: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엄마랑 사이가 굉장히 좋은 편이에요. 그래서 [엄마를 부탁해]같은 책은 우리 모녀에게 어울리지 않는 책이라고 서로 얘기하곤 했는데- (고양이 사건때문에 요즘 급격히 소원해졌지만)
오늘 아침에도 누군가에게 '귀티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자랑하시길래 한참 들어주고 왔는데 ㅎㅎ

물론 어제 방좀치우라고 소리지르시길래 '알았어 알았어' 하곤, 눈앞에서 문을 닫아버리긴 했지만^^:
잘합시다, 큰딸이잖아요 우린! ㅎㅎ

Arch 2009-10-29 10:15   좋아요 0 | URL
아, 무플방지위원회에서 오셨군요! ^^ 잘 해야죠.
갑자기 거세게 몰려오는 큰딸 책임감 느낌은? 응?

순오기 2009-10-29 18: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큰딸은 살림밑천이라더 시대에 셋째로 태어난 복이 많은거군요.
엄마가 이야기하면 서론이 길어 본론을 들으려면 한참 기다여야 했는데
나도 점점 그렇게 되어가고 있어요. 내 페이퍼가 증거물이에요.ㅜㅜ

Arch 2009-10-30 11:02   좋아요 0 | URL
ㅋㅋ 설마요. 주위 사람들이 잘 듣지 않기 때문에 조급한 맘에 서론이 길어지는게 아닐까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