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다니는 회사는 다양한 캐릭터들의 향연이라고 불릴만한 곳이다. 밥을 물에 말아서 삼키듯이 먹을 정도로 성격이 급하고 아이를 보기 싫어 일도 없는데 주말에 회사 나오는 J씨, 객쩍은 남성용 유머를 해대지만 볼펜 및 사무용품을 잘 빌려주는 K씨, 빨리빨리 모든걸 해치우는, 단 다른 사람과의 약속만은 철저히 자기 위주로 무한정 늘이는 사장님, 은근히 사무실에서 담배 피우고 은근히 바둑두기를 즐기는 A씨, 오만간데 다 참견하고 다니는 E씨, 약간 시니컬한데 저번에 한번 사진을 본적 있는 내 여동생에게 흑심을 품고 있다고 장난을 치는 눈이 깊은 B씨. 

 이들을 관리 감독은 아니고 관찰하며 혼자 히죽거리는 아치까지. 평소에는 약간 조용하지만 지금은 인도로 출장 다녀온 사장님한테 끌려가 다 큰 어른들이 고개를 숙이고 혼나기도 했고, 지금이 어느 세상인데 여직원에게 커피 심부름을 시키냐 하겠으나 커피 심부름을 하는 아치의 둔탁한 움직임이 있어왔다.  

 점심을 먹고 어떻게하면 안 걸리고 잘 수 있을까, 이걸 빨리 끝내고 뭐하고 놀지 등등으로 큰머리를 굴리고 있는 아치 옆으로 검은 그림자, 참견맨이 다가왔다. 

 일을 빨리 끝내면 안 돼, 또 주니까. 
 다들 적당히 하는거야. 일부러. 일을 못하는게 아니라니까. 더 하잖아~ 그럼 일을 더 시켜. 눈치껏 해! 절대로 열심히 해선 안 돼.
 이 나라의 국가 경제(왠?)는 어떻게 하라고 참견맨은 나에게 느긋하게 일을 하도록 종용했다. 혹시라도 내가 열심히 해서 사장이 자신들의 작업 속도를 눈치채기라도 할까봐 안달이 나는 모양이다. 뜬금없이 느긋한 삶을 예찬하기까지 한다. 회사를 몇주 다니지 않았는데 망할까봐 벌써 걱정이다.
 전에는 군기를 바짝 들게 해서 주눅들어 살았는데 여긴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놔주다 갑자기 미친 듯이 몰아친다. 얼마 전에는 사무실의 ‘각’을 걱정하는 사장님 덕분에 책상 아래 있는 본체를 위로 옮겼다. 모니터는 오른쪽에 있는데 키보드랑 마우스 선은 짧아서 몸은 왼쪽에. 반쯤 몸을 비틀어 일을 하면서 할건 다 하지만 본체 하나 내 맘대로 할 수 없다는 사실이 짜증스러웠다. 몇몇 사람들이 사장이랑 싸우고 회사를 나갔고, 남아 있는 사람들은 가끔 사장이 히스테리를 부릴때면 주눅 든 아이들처럼 군다. 아이들의 속성처럼 얼마 안 가 다시 느슨하게 풀어지지만. 조직 문제점의 모든 요소들을 응축해서 지니고 있는 사장을 거쳐 모든 일을 처리하는 방식이 맘에 안 들긴 하지만 어쩌겠는가, 밥벌이는 해야하고, 나도 뭔가를 오래 다녀봤다 정도 하나는 있어야겠는걸. 

 물론 그것만은 아니란걸 잘 알고 있다. 사장이 지맘대로 하려고 해서 문제지 내 의사가 잘 반영 되고, 유능까지는 아니어도 별다른 무리없이 일을 하고 있다는 피드백을 받으니 나쁘지 않은거다. 그래서 일요일 저녁이 제일 우울하다는 직장인처럼은 절대 되지 않겠다고 다짐했으면서 나 역시 일요일은 한정없이 늘이고 싶은 직장-인이 된게 그렇게 나쁘지만은 않은거다.  

 주말에는 외근 나갔던 직원들을 달달달 볶아서 출근을 시키고 나에게 전화까지 하도록 종용한 우리 사장. 아직 나에게까지는 그의 자장이 미치지 못해 안심이지만 글쎄, 얼마나 갈지. 그땐 이 모든 스트레스와 피곤함을 극복하고 계속 회사에 다닐 수 있을까. 안 다니면 안 되는 이유가 돈 때문만이라면 씁쓸하지만 그게 아니었다면 일을 하지 않았을테니 이유의 이유를 만들어내도 한계는 있을 듯하다.

 그래도 가끔 알라딘을 돌아다니는걸 일하는걸로 착각해서 천천히 하라는 신호를 보내는 참견맨을 보는게, 인쇄 버튼을 누르자마자 프린터기에 손을 대고 종이가 나오기만을 기다리는 성격 급한 팀장을 보는게 나쁘지만은 않다. 아주 좋다가 아닌게 애석하지만 '아주 나빠'보다는 괜찮으니까, 차선의 선택은 어느 순간엔 최선일 수 있으니까. 그렇게 쌓이다보면 나도 한뼘쯤 자랄 수 있을까? 

  퇴근이 얼마 안 남았습니다! 히~ 
약간은 야하고, 약간 흥분되는 노래 들어볼래요? 

 

 

 

전 Nouvelle Vague게 더 좋던데, 뭐랄까. 진짜 한잔 한 것 같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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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rgettable. 2009-07-27 16: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사무실에서 왜케 행복해보여요? 나랑 넘 다른데.. ㅋㅋㅋ
이벤트 콜~!

컴퓨터 틀자마자 꿈얘기 올렸어요 ㅋㅋㅋㅋㅋㅋ 로맨스 꿈은 아니지만 ㅠㅠ 이런 꿈이 내 일상이라는 ㅎㅎ

Arch 2009-07-28 00:15   좋아요 0 | URL
그런가요? 으흠..^^
신기한 꿈이었어요, 무척

머큐리 2009-07-27 20: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치님이 사무실에서 일하는 모습은 웬지 잘 상상이 안간다는...ㅎㅎ 정말 일은 하고 있는거죠?? -,-;

Arch 2009-07-28 00:16   좋아요 0 | URL
왜 그럴까? 일은 잘 안 하고 농땡이 피죠^^

2009-07-28 12:5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07-28 16:1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07-28 18:1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07-28 19:5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07-29 10:41   URL
비밀 댓글입니다.

Arch 2009-07-29 11:31   좋아요 0 | URL
그건 알거든요. 나도 궁금한거 있었는데 마침 잘 됐어요^^

2009-07-29 13:01   URL
비밀 댓글입니다.

Arch 2009-07-29 13:08   좋아요 0 | URL
댓글로 달기는 좀 길어.

2009-07-29 23:36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