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만 많은 이글루스에서 김현진과 허지웅의 블로그를 찾아냈을 때 흡사 유레카를 발견한 듯 기뻤다. 오호,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은 이렇게 살고, 또 이런 고민을 하는구나. 매체에 실리는 정돈되고 정갈한 글도 좋지만 그냥 심심해서 쓴 듯한, 약간의 치기도 엿보이는 글들을 보면 다행이란 생각이 든다. 사람이 말야, 여러 방면으로 너무 뛰어나면 한 분야에서도 빌빌거리는 나 같은 사람 기죽어서 살겠어란 역시 마찬가지의 치기어린 생각이 들었으니까.  

 20대의 젊은, 그것도 여자인 에세이스트가(칼럼니스트였다가 왜 바뀌었는지 모르겠으나) 시사인에 기고를 한다고 했을 때부터 내게 김현진은 요주의 대상이었다. 감시를 한다거나 광적으로 그녀의 글에 집착한다는 얘기가 아니다. 그녀의 글은 여러 글 가운데서도 제일 먼저 눈에 띄고 글을 읽고 난 후에는 생각거리가 아니라 삶, 행동거리를 만들어주는 주의를 요하기 때문이다.   

 김현진은 얼마 전에 한겨레 칼럼을 통해 이명박 정부를 아무리 얘기해도 말귀가 통하지 않는 아버지에 비유했는데 그건 어떤 국정 진단보다 적절했다. 김현진이 주목한건 소통하려는 의지는 있으되 딴나라 세상에서 사는 아버지 얘기였다. 그러니까 그쪽이 상용하는 소통이란 단어는 말귀를 못알아듣는 자식들을 상대로 '왜 내 맘을 몰라주냐'란 앙탈에 불과했던 것이다.

 한예총 문제를 얘기할 때도, 몇십년 동안 살아온 동네가 철거당하는 얘기를 할 때도 그녀는 이것이 한두번으로 끝날만한 일이 아니란 얘기를 했다. 나처럼 며칠동안 고민하고 양껏 스트레스 받으면 한동안은 불편한 마음 없이 지낼 수 있다고 자신하지도 않았고, 터무니없는 낙관이나 비관으로 자조하지도 않았다. 그녀는 행동했으며, 행동하는 자신을 통해 성찰하며 성장했다. 이런 글쟁이를 둔 우리 시대는 얼마나 큰 행운을 갖고 있는건지. 

 가끔 김현진의 블로그를 보면서 나는 앞서 말한 행운이 마찬가지 이유로 얼마나 얄팍한 색을 갖고 있는지 느낀다. 순전히 '개인적인' 블로그에 '개인적인' 글을 올린걸 보고선 난 이 사람이 모순이 많다는 둥, 정치적인 입장과 삶이 일치하지는 않는다는 둥의 생각을 한적이 있기 때문이다.  당연하다. 소가 혀로 핥아놓은 듯이 처음부터 잘 빠진 사람은 없으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전에 그녀 친구가 말했듯이 그러한 자신의 모순을 인정하고 고민하는게 진정으로 김현진이 갖고 있는 힘이란 얘기에 동감한다. 나는 나의 모순을 잘 알고 있다란 말로 모순을 합리화하거나 어쩔 수 없는 인간 실존 운운의 낯뜨거운 수사에 빠지지 않으면서 말이다.  

 바지춤에 담뱃대 꽂고선 뒷짐지며 호령하는 것도 아니고, 괜히 자신도 제대로 이해 못하는 외국 사람의 이름을 들먹이는 것도 아니다. 지극한 감상도, 지극한 냉소도, 지극한 권위도 묻어나지 않는 글. 아직은 부정문을 통해서 그녀를 규명해야할 정도로 정확히 '어떤 사람'으로 규정하기 어려운 사람. 그런 사람의 글과 삶이 앞으로 얼마간은 맘을 아프게 만들지라도 나는 자꾸 김현진의 글을 찾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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뷰리풀말미잘 2009-07-09 19: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김현진의 글은 적당한 비율로 섞은 동동주+사이다 같아요. 걸쭉하고 달달한데 톡 쏘는 맛까지 있죠. 예전부터 봐 왔는데 스무살 남짓 한 무렵부터 굉장히 잘 썼죠. 자기색이 독특한 작가였어요. 요새는 정치 쪽으로 전업했나? 블로그 도메인좀 알려줘요. ㅎㅎ

머큐리 2009-07-09 23: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녕하세요..Arch님 저도 작년부터 김현진을 좋아하기 시작했는데...이글 보니까 더 좋아지는것 같네요...

hanalei 2009-07-10 00: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말만 많은 이글루스에서" 제 블로그도 함 찾아 보세요

Arch 2009-07-10 08: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미잘님, 선금을 주시면 알려드리겠어요. ㅋㅋ 한번 찾아볼게요. 허지웅씨건 괜찮고? 미잘님의 리뷰를 봐서 잘 알고 있죠.

아, 머큐리님 안녕하세요. 히^^

레이시즌님, 원래는 '말 많은'이라고 쓰려고 했는데 말을 위한 말이 너무 많은 것 같아 말만 많은 이라고 쓰게 됐어요. 음.. 힌트 좀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