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서 썼던 글을 다시 봤다. 앞으로 2편, 3편 연달아 나와야할 것 같은데 쓸만한 여력이 생기지 않는다. 바쁘지 않고, 피곤하지 않은데 희안하게 잠이 오지 않는다. 그런데도 써지지가 않는다. 쓰기 싫은 것도 아니고, 귀찮은 것도 아니다. 그런데도 전처럼 살짝 엉덩이를 의자에서 띄워놓고 글을 쓴 듯 글 쓰는 글이 써지지 않는다.  

 혼자 다니는 여행이 좋았다. 사람들과 부대끼지 않고 머리에서 열이 나도록 생각을 계속하고, 몸을 부지런히 움직이는 여행. 미리 영월까지 가서 혼자 1박을 할때는 평소와 다를바가 없었다. 김치찌개가 좀 짰던 것과 비밀 통로라도 있는 듯이 부단히 드나드는 벌레들, 물이 나오지 않아 멍멍개들과 눈싸움을 하며 아랫집에서 물을 길러다 쓴 것, 노상방뇨를 노상하게 되는 것 말고는 집에서 있을 때랑 같아서 싱거울 지경이었다. 산 속이라 좀 춥고, 남들이 방명록에 써놓았듯이 환상적인 별이 안 보인다는 것, 역시 다시 추운 것 말고는 흠잡을데도 없었다.  

 밖에 나가서 일을 치르지 않으려고 좋아하는 물도 거의 안 먹고 바싹 마른채로 잤는데도 두번이나 잠을 깼다. 밖으로 나가니 검은 벽이 눈 앞을 가로막았다. 별은 없었고, 풀벌레들만 아직 잠들지 않았다며 음냐음냐 소리를 냈다. 문득,  나중에 산속에서 혼자 산다고 생각했던 일이 떠올랐다. 막연하게 다짐하고 막연하게 풀어놓았던 것들, 구체적이지 않고 그 사이로 수많은 핑계만 남긴 것들. 그런게 내 발목을 잡을거란 생각을 어쩜 그렇게도 태연하게 모른척 했을까. 지난 시간을 오로지 회피와 변명으로만 갈음하려는 듯이. 바람이 차가웠다. 나는 침대에서 웅크리며 호랑이 무늬가 진하게 그려진 담요로 몸을 돌돌 말았다. 두번의 부침 끝에 방 공기에 수면제라도 풀어놓은 듯이 달게 잤다. 달게 잤으니, 다시 재미있게 써봐야지! 

 분명히 산 속에선, 아침에 부스스 눈을 뜨면 재미있는 일이 있을줄 알았다. 하다못해 아랫집 멍멍이들과 한담이라도 나눌거라고 생각했다. 헌데 웬걸, 멍멍이들은 나만 보면 짖어대고, 치우지 못한 똥은 '강'비위인 나조차 속을 뒤집어 놓아 가까이 갈 수 조차 없었다. 아마 내가 이 말을 하고 있는걸 멍멍이들이 들었다면 '지는'이라고 콧방귀를 꼈을지도 모르겠다. 애들이 좀 쿨해야 말이지. 한번 곁을 안 내주면 계속 그러겠다는식으로 악착같이 왈왈대고, 칫!  

 멍멍이들을 지나쳐 근방의 펜션과 낡은집을 지나 동강 근처로 발걸음을 옮겼다. 가만히, 아주 고요히 풀벌레 소리가 들렸다. 자동차 소리와 누군가의 말소리로 늘 귀가 지쳐있었는데 오랫만에 귀도 입도 눈도 쉴 수 있었다. 하릴없이 서성이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거동이 불편하신 할머니를 뵈었다. 할머니는 솜털이 가시지 않은 나이에 산골로 시집와서 여지껏 산걸 생각하면 지금도 자다가 숨이 턱턱 막힌다고 하셨다. 네란 말이 자꾸 목에 걸려서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나를 보며 고개를 갸우뚱거리다 금세 기분이 좋아졌는지 한살배기 강아지가 꼬리를 흔든다. 이름이 똘이란다. 할머니는 얼굴에 웃음을 띄우고, 어미개와 뒷터의 감자 공장에 대해서 얘기해주셨다. 이건 세월의 법칙. 하루만에 다 읽은 천명관의 '고래'에서 따왔다. 뭐라도 대접하고 싶어 여쭸는데 근방에 벌써 아치의 요리솜씨 소문이 났던지 극구 사양하셨다.  

 집으로 향하는 길에 난 잡풀을 뽑다가 전날 방명록에서 봤던 글이 떠올랐다. 잡초라고 불리는 풀이 정말 쓸모가 없을까, 기실 풀은 풀대로 그저 쑥쑥 자라고 초록잎으로 빛나는건데 괜히 사람들이 나서서 얘는 예쁘고, 얘는 밉고, 얘는 뽑고를 결정하다니. 사람들이 다니기 좋으라고 풀을 뽑는건 그저 어쩌다 그곳에서 자란 풀에게는 참 미안한 일이었다. 제초제를 안 뿌리고 무려 이런 생각까지 했다며 자위하자니 참 낯뜨거워선. 바닥에 있던 낫을 다시 들고 집에 돌아왔다. 과하지 않을만큼 배가 고팠고, 다른 사람들이 보고 싶어졌다. 만 하루만에 그리워지다니.  

 그들이 올 시간이 된 것 같아 아래로 내려가 어슬렁거리다 아랫집 아주머니를 뵈었다. 할머니 말로는 근방에서 제일 부지런하다는 분이었다. 시골에서는 비밀이 없는지라 아주머니의 가족관계와 어제 집을 비운 사연까지 할머니께 소상하게 들은터라 처음 뵙는데도 무척 반갑게 느꼈졌다. 게다가 자꾸 해사하게 웃어주셔서 나를 실없이 웃는 아치꼴로 만드셨다. 아주머니와 두런두런 얘기를 나누는데 마침 일주일에 한번씩 보리빵을 파는 아저씨가 오셨다. 나랑 아주머니는 반신반의한 기색으로 트럭 주위를 맴돌았다. 맛있을까, 노란 술빵하고 비슷한건 아닐까, 맛있어보이는데 등등을 생각하다 솥에서 꺼낸 보리빵에서 모락모락 김이 나는게 보였다. 어쩐담. 아주머니에게 빚을 내서 사기로 했다. 보리 막걸리는 없냐고 물어보려다 '있음 뭐할려고'말하는 점잖은 아치의 목소리가 들려서 멈칫하고 있는데, 

 저만치에서 구름같은 사람들을 태운 택시가 도착하는게 보였다. 사람들은 앞다투어 내리자마자 아치의 놀라운 적응력에 찬사와 갈채를 보냈다, 는 물론 아니고 마을 사람과 구분이 되지 않는다며 농을 쳤다. 왔군요, 당신들! 

 이럴줄 알았어! 몇편까지 쓰려고 아직 쓸 내용의 반의 반도 꺼내지 않는단 말인고. 혼자 편수 늘이고 혼자 좌절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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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하 2009-06-25 02: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후기를 올리고 계셨군요. 앞에 것도 찾아 봤어요. 재밌게 잘 봤어요.^^;

Arch 2009-06-25 02:28   좋아요 0 | URL
안 자고 뭐해요. 푸하!

푸하 2009-06-25 02:31   좋아요 0 | URL
기말페이퍼 쓰고 있어요.라는 대답을 해야하는데...
앉아만 있네요.ㅎ~

Arch 2009-06-25 03:28   좋아요 0 | URL
'누워만 있다'보다는 낫잖아요^^

2009-06-25 02:3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06-25 03:27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