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이 일하는 분 중에 보면 볼수록 예쁜 분이 있다. 물론 남자다. 성실하고 잘생겼으며(앗흥) 참 친절하다. 며칠 동안 바빠서 별다른 얘기를 못했는데 오늘 시간이 나서 이런저런 얘기를 하던 중에 이 분이 자기는 꼭 혼자서 영화관에 가보고 싶다는 얘기를 하는거다. 그래서 내가 

- 어머(주책맞지 않으려고 노력했으나 빈틈 많은 추임새였음.) 아직 한번도 혼자서 영화를 못봤어요? 여자 친구하고만 봤구나. 그런데 왜 혼자서 영화를 보려고 해요?

- 카라멜 팝콘 먹으면서 영화 보고 싶거든요. 

- 네? 

- 여자 친구랑 영화 볼 때 팝콘을 못먹게 해서 한번도 팝콘 먹으면서 영화를 못봤거든요. 

 이잉? 그러면 줄곧 팝콘을 못먹게하는 여자들만 만나왔단 말인가? 슬쩍 눈짓을 주며 '나랑 영화볼 때는 팝콘 먹어도 되는데.'하려다 깜짝 놀래서 경계할까봐 차마 해보진 못했다.  

 물론 나도 영화 보면서 뭔가 먹는 것을 별로 안 좋아한다. 나 역시 이 친구를 만났었다면 영화 볼 때 뭔가 먹지 않기를 바랐을 것이다. 그래도 정, 먹고 싶다면 그래도 안 먹길 바란다며 영화 끝나고 먹자고 강요했을 것이다. 바스럭거리는 소리와 냄새, 번잡한 손놀림도 신경쓰였지만, 영화를 보는게 단지 킬링타임으로 구겨지는게 싫어서이기도 했다. 영화 볼 때 팝콘은 그렇다치고 

 전에 만났던 남자는 내가 패밀리 레스토랑을 안 좋아한다며 그거 하나는 맘에 든다(다른건 볼거 없음이라고 달리 말할 필요도 없을 정도였던거야?)며 전에 사귀었던 여자 친구가 자기는 맛대가리도(정확하게 맛대가리라고 했다.) 없는 곳에서만 밥을 먹으려고 해서 쥐약이었단 말을 한적이 있었다. 그래서 내가 그럼 다른데서 먹자고 하면 되지 않았냐고 묻자, 지루하고 따분했던 표정이 반짝 살아나더니 좋아하니까 대체로 맞추고 싶었다는 대답을 해줬다. 대체로 맞추는 것까지는 좋다만 굳이 그럴 필요가 있을까.  

 연애 기간 동안만 살아나는 '감정 노동'을 훌륭하게 해내려는 의지야 좋다만 굳이 그럴 필요가 있을까. 오히려 서로 잘 얘기해서 원하는 것을 맞춰가는게 더 매력을 끌 수 있을텐데 말이다.  

  단순하지만 않은 남자들을 '토이남'이라 칭하며 그들의 섬세한 취향과 부드러운 말투, 일관되게 예민한 정서를 다룬 기사를 본적이 있다. 기사에는 토이남은 햇살이 잘 드는 까페를 알고 있고, 옷차림은 늘 선선한 가을 바람 같으며, 그가 지니고 다니는 물건은 유독 센스있는 안목을 보여주는 것 밖에 없다라고 적혀 있었다. 여자들은 토이남 문화 취향의 다양함과 다루기 힘든 남자란 인상에 호감을 느낀다고도 했다. 오죽했으면 문화자본이란 말이 나왔으며, 문화자본이 상대적으로 풍부한 사람들은 여자에게 인기가 많다는 소프트웨어적인 문화자본가가 자조적으로 내뱉은 말까지 있을까. 그런데 기사 말미에는 사실 토이남의 세련됨도 끌리지만 그것보다는 투박한 남자의 지고지순한 애정표현에 안정감을 느낀다는 소리가 나온다. 그러니까 말짱 꽝, 다시 그저 총론에 힘쓰는 남자가 되길 바래 정도. 아마 여기서 떠올릴 수 있는게 김어준의 인문학적으로 각성된 마초론일 것 같다.   

 단순, 무식, 과격하지 않고 매너있으며 인문학적 소양이 풍부하고, 연애관계에 있어선 순정을 모조리 바칠 수 있는 남자. 혹은 여자를 lady first입장에서 보살펴주는 남자. 어설프게 변호했다간 마초로 몰려 뼈도 못 추릴까봐 먹물들마저 닥치고만 있더라만, 늠름하면서 인문학적으로 각성한 마초, 그거 가능한 거라고. 인간에 대한 예의 지키며 덤덤하게 세련된 수컷, 불가능한 게 아니라고. 과묵한 열정, 단호한 감성, 있는 거라고. 왜들 그렇게 자잘해졌나. 아, 쪽팔려, 씨바. 땅에 떨어진 돌쇠의 도를 되찾을, 네오 마초가 필요한 시대다. 

 출처: 김어준의 그까이꺼 아나토미 http://www.hani.co.kr/arti/SERIES/153/333394.html

 김어준의 이 말, 그럴듯하다. 게다가 허지웅의 마초론은 또 얼마나 빛나는지.  

1) 부러 먼저 인사하지는 않더라도 누가 아는 척을 할 땐 허리 굽혀 답례할 수 있는 아량.
2) 전쟁이 일어나 핵폭풍이 눈앞에 불어 닥치더라도 내 여자만큼은 솜털 하나 그을리게 하지 않겠다는, 미칠 듯 고색창연한 책임감.
3)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취했을 때 자빠져 자든지 집에 가든지 적확한 선택의 시점을 놓치지 않는 기민함.
4) 천박한 것이란 가장하는 것이고 솔직한 것이란 화장하지 않는 것이라는 걸 확연히 구별할 수 있는 지혜로움.
5) 형 동생을 계급이 아니라 시간을 공유해 마음을 섞을 친구로서 인식하는 공정함.
6) 아무리 큰 실연의 공포와 아픔이라도 꿋꿋하게 버티고, 그렇지 못하더라도 적어도 그 다음 인연에게까지 영향을 드러내 보이지 않을 강인함.
7) 그것이 보수적이든 진보적이든 매상황의 이해득실을 떠나 또렷하게 고수할 수 있는 자기 논리를 갖는 꼿꼿함.
8) 정치적으로 올바른 것에 대해선 아무런 관심이 없고 다만 분노해야 하는 순간에 분노할 줄 아는 화끈함.
9) 남의 가치관과 나의 가치관이 대립하더라도 그 두 가지를 정확히 평등한 시점에서 바라보며 따뜻하게 감싸주고 신랄하게 비판할 수 있는, 체온 실린 객관성.
10) 호돌이 티셔츠와 파란색 반바지, 하얀색 긴 양말에 쓰레빠를 질질 끌고 청담동을 활보하더라도 주위 시선 아랑 곳 없이 의연할 수 있는 여유로움.

출처:나의 마초론 

 그러니까 인문학적으로 각성되고, 본래 의미의 마초라면 상관없다는건데 과연 그럴까. 이들이 말하는 마초는 예전 시대로 말하면 젠틀맨이며 씬시티에서 과도한 남성성과 시크함으로 영화를 장악하는 거친 남자들에 관한 것 같은데 그럼 그 남자들과 관계하는 여자들은 어떨까. 그녀들 역시 이렇게 멋들어진 마초라면 쌍수를 들고 환영할까? 그런데 내게는 그녀들의 목소리가 안 들린다. 이건 새벽에 잠도 안 자고 페이퍼를 써대는 예민함 때문일까? 

 마초가 전제하는 세계는 여성, 즉 타자를 배제하는 방식으로만 존재할 수 있다. 물론 각론상 도와줄 수는 있다. 하지만 대상화된 도와줌의 대상이 자신의 의사를 밝히는 순간, 마초가 세워둔 찬란한 마초피아는 산산조각이 나버린다. 그때쯤에서야 마초피아야말로 제대로 된 시뮬라시옹의 징후란걸 제대로 느낄 것이다. 타자화된 이들은 침묵하고, 순종해야하며 말을 하더라도 마초피아의 구성원답게 덜 멋지거나 마초적인 우월함을 이어주는 정도로만 똑똑해야한다. 혹은 멋진 마초의 사랑을 투박하게나마 받아들이는 역할을 잘 해내기라도 해야한다. 그래서 난 각성이 되든, 굳이 나의 마초론을 내세우든, 마초 역시 반대다.  

 사랑의 환상, 설레임과 중독의 징후들이 보여주는 옅은 감각적 즐거움을 깰 수는 없다. 앞서 말한 힘겨운 감정 노동의 초입에 서 있는 사람이든, 토이남이든, 마초든 다 마찬가지일테니. 하지만 주관없이 휘둘리는 것보다, 주관이라는 것을 다른 남자와의 위계를 통해 확인받는 것보다 상대방과의 관계에서 유동적으로 변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괜찮을 것 같다. 굳이 거대한 '멋진 남자'를 들먹이며 자신의 현 상태를 찌질함으로 처박아버리고 안달복달 하지 않길,  

 남자, 이제부턴 먹고 싶은걸 먹어. 혹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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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rgettable. 2009-05-13 09: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ㅡ 토이남이라고 하는군요!
내친구들이랑 나는 세련둥이라고 하는 남들이네요- ㅋㅋㅋ

저렇게 이론화해서 적어두고 보여주기까지 해야하는 마초론이라니, 난 정말 별로-_-

Arch 2009-05-13 10:45   좋아요 0 | URL
토이의 노래에서 따온 작명이라고 하더라구요. 세련둥이가 더 귀엽네.

뽀님, 그래서 별로였구나. 난 왜 그 생각을 못했지?

L.SHIN 2009-05-13 11: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재밌게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