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원에 오면 특이하고 재미있는 일이 일어날거라고 믿는 사람과 데이트를 하는건 약간 지루하다. 재미는 자기가 찾는거잖아라고 말해도 무슨 말인지 못알아들을 때면 더더욱. 저녁을 단단하게 먹은 내가 얼마 지나지 않아 이 거리를 지날 때면 의무적으로 먹어야하는 닭꼬치와 오뎅국을 핥아대는 것을 볼 때 그의 눈이 잠깐 반짝인 것 말고는 시종일관 그 역시 나만큼이나 무료해하고 있었다.

 사람들 구경에도 심드렁해질 즈음 우리는 펍에 들렀고, 남자는 이때다 싶었는지 주문을 내게 맡긴 후 미친 듯이 다트판으로 돌진했다. 의도했던 생각은 아닌데 남자의 뒷모습은 흡사 개가 목줄을 끊고 도망치는 것과 다르지 않았다.

 들고간 잡지를 다 본 후에도, 소음 때문에 클라이막스만 강하게 들리는 노래가 꽤 많이 흐른 후에도 그는 돌아오지 않았다. 그 사이 진파랑 시스루를 입은 여자가 내 옆에 자리가 있냐고 물어서 당신이 앉으면 자리란 농담을 하고 싶게 만들었고, 나랑 자꾸 눈이 마주치는 나이든 외국인에게 윙크라도 한방 날려줘야는게 상도덕에 걸맞는게 아닐까란 생각도 들었다. 바 안쪽에서 무표정하게 칵테일을 만드는 바텐의 눈가에 기묘한 모양의 다크서클이 보여서 자세히 관찰하다 그가 일을 안 하고 멍하니 있는 순간 동종업계 사람으로서 묘한 동질감도 생겼었다. 그래, 정말 많은 일이 있었다.

 남자는 아예 자리를 깔고 옆의 외국인과 내기 다트를 시작했다. 이곳, 고함을 질러야 옆사람과 얘기가 통할거라고 굳게 믿는 사람들로 넘쳐나는 게코스. 이러다 귀가 머는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정신없고 정신없는 곳에서 난 남자를 기다리며 검고 진한, 금세 식어버리고만 맥주를 들이켰다. 며칠째 술을 '퍼'마신 덕에 뒷골이 당기는데도 꿀꺽꿀꺽 소리를 내며 입맛까지 다시면서 맥주를 마셨다. 깊고 풍성하게 취하기 위해서 맥주는 쭉 들이켜야하는 법이니까.

 남자의 다트 실력은 회가 거듭될수록 퇴보하고 있었고, 같이 하는 외국인은 '이거 바보아냐'란 표정으로 남자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난 방금, 다크서클 바텐이 엉덩이골 사이의 깊숙한 곳으로 손을 넣는걸 봤다. 바텐은 칵테일을 만들고 3000을 따르다 흐른 맥주를 쓱 훔치던, 가끔 음식을 나르던 손으로 엉덩이 사이를 '후비고' 있었다. 다크서클 바텐이 슬쩍 주위를 둘러보다 손을 빼고선 다시 한번 더 시도하려는 순간, 그의 다크서클은 기묘한 문양을 비껴서서 괴기스럽게 얼굴 전체로 퍼져나가고 있었다. 피곤하고 귀찮았던거다. 오픈된 바에서 아랑곳하지 않고 특정 부위를 긁적이는걸 보면.

 핏줄이 도드라진 당신의 손  

절대로 씻지 않는 당신의 손  

 이젠 뭘 만질건가요?

 눈으로 바텐과 대화를 하다가 다시 꿀꺽꿀꺽 맥주를 마시는데 다트를 끝낸 남자가 돌아왔다. 난 남자를 위해 멋있는 목소리로 주문을 했다. 여기요, 손이 가장 많이 닿을 수 있는 칵테일을 주세요. 다트를 하느라 갈증이 났던지 남자는 다크서클 바텐이 가져다준 칵테일을 쭉쭉 들이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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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시장미 2009-05-07 03: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소설의 한 장면을 보는 것 같습니다. ^^
그런데 그 바텐이 없었다면 다트를 끝낸 남자가 돌아오셨을 때, 어떻게 하셨을지.. 궁금하네요.
저라면 어떻게 했을지도 상상해보고 있습니다 ㅋㅋ

Arch 2009-05-07 18:14   좋아요 0 | URL
침묵 고문을 하지 않았을까, 실제로도 그랬구요.
글에는 다 사실만 들어있는건 아니지만.

실은, 남자가 다트에 더 버닝하길 바라기도 했어요.
가시장미님은 순하고 고운 분이라 힘껏 꼬집어주지 않았을까?(농담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