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가운 사케를 야금야금 먹었다. 그와는 두번째 만남이다. 그는 첫번째 만남에서 여자친구가 있다고 밝혔고, 굳이 물어보지도 않은 직장 얘기를 했으며, 술을 핑계로 사는게 퍽퍽하단 푸념을 늘어놨던 사람이었다. 

 가끔씩 올리던 그의 글이 사랑스러워 내가 덥석 만나자고 해서 우린 만났고, 거의 일년만에 두번째 만남을 갖았다. 다시 만나자며 약속을 잡고 약속 장소에 나갈때까지도 조금은 반신반의했다. 처음 보자고 했을때보다 더. 처음에야 이런 글을 쓰는 사람은 어떨까란 호기심과 적어도 내가 죄다 쪽쪽 빨아먹은 글로만 이야기를 해도 몇시간은 떠들 수 있을 것 같다란 자신감이 있었으니까. 게다가 일테면 난 '의문의 여인'이었다. 

 물론 처음 만남에도 고비는 있었다. 바쁘다며 자꾸 튕기는 이 사람의 번호를 간신히 받아내 전화를 걸었을 때 목소리가 너무 좋은게 아닌가. 목소리가 좋으면 얼굴이 별로일텐데, 아니 얼굴은 왜, 여자친구가 있는 양반이라고! 아니 그래도 혹시, 혹시 뭐! 아니 그래도. 이런식이었다가 먼 발치에서 본 그의 모습에 후다닥 도망가고 싶어서 혼이 나기도 했고, 가까이서 보니 전화 목소리가 연상되면서 글의 면면이 떠올라 괜히 피식거리며 웃게 만들던 사람. 그렇게 나쁘지도 그렇게 좋지도 않은 고만고만한 사람이었다.

 첫만남은 쉽다. 

 의욕의 비중에 호기심이 충만하면 의기양양하게 덤빌 힘이 생긴다. 하지만 두번째부터는 어려워진다. 한번 만나서 모든걸 알 수 있는건 아니지만 대체적인 호기심의 영역은 채워졌고, 이제부터는 계속 봐야할, 계속 보고  싶어지는 서로간의 매력을 찾아야하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남자들은 느끼하거나 속내가 빤히 보이는 눈을 깜빡거렸고, 때로는 관계설정의 맥락을 맘대로 타고 넘어서 사람을 곤혹스럽게 만들었다. 곤혹스러움에서 끝나는 경우라면 정리하기 쉽지만 앞서 말한 그처럼 딱히 호불호가 결정되지 않은 상대와의 관계는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겠다. 이렇게 말하는걸 보면 관계의 주도권은 내가 쥐고 있다고 볼 수 있겠지만 결국 관계는 상호작용하는 것이다. 그들의 반응과 생각에 따라서 내 선택의 범위는 바뀔 수 있다. 

 어쩌면 전에 말했던 것처럼 51과 49의 얘기가 다인지도 모르겠다. 맹렬한 것과 소극적인 것, 유보적인 것과 쟁취하게 만드는 사안에 이르기까지. 절대적인건 없고, 계속 뱅글뱅글 도는 사람의 마음만 있을 뿐이다.  

 앞서 말한 그 사람과 다시는 안 볼 것 같다. 우린 서로를 의욕하는게 49밖에 안 되는데다 난 이미 그가 갖고 있는 기표의 깊은 속내를 봐버렸으니까. 어쩌면 49에서 가까스로 50을 채우는 힘은 알듯 모를듯 감질나게하는 기술이 다일지도. 그는 내 눈에 띌 정도로 기술이 부족했고, 난 나대로 그의 기술을 눈감아 줄 정도로 그가 좋지 않았다. 혹은 다른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막막한 느낌의 부재일지도.  

 두번째 만나서 더 좋은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 욕심쟁이 아치같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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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09-05-05 12: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치님께서 이렇듯 누군가 낯선이를 만나고 온 이야기를 들려주시면, 조금쯤 더 매력적인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러나 또 한편으로는, 아치님께서 만난 분을 저는 만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아치님 글 속에서는 반짝반짝 빛나던 사람이 제 앞에서는 그 빛을 모두 잃을까봐. 사람과 사람이 만나면 반드시 한가지 방향만 있는건 아닌데, 제 앞에서 그 빛이 다 사라지면 몹시 서운할 것 같아 아치님께 빛났던 사람은 만나고 싶지 않아져요. 그리고 저는 빛이 나고 싶고요.

써놓고 나니 문득, 이 문장들이 이해 가능한 문장인가 의심스러워지네요.

Arch 2009-05-05 20:06   좋아요 0 | URL
저만큼 미친 문장도 아닌데요, 뭘. ^^

음... 그래서 내가 익명으로 올리잖아. 다락방님이 비교 못하게. 몰랐어요? 히히
제가 다분히 미화시켜서 그런걸 수도 있고, 정말 그 분들이 '빛 맛 좀 볼래'하는 맘으로 저를 대하셔서 그런진 모르겠지만, 다락방님도 다 보고, 느끼고 아시면서!

페이퍼 쓰는 다락방님한테선 빛이 나요. 요새 안 쓰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