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사람이 물었다.


- 너는 너의 글쓰기에 대해 어떻게 생각해?


 다른 공간과 일기말고는 서재에 글을 쓰는게 다인 나로선 서재 글쓰기에 대해 평소에 느낀점을 얘기했다. 일기처럼 쓰고 싶지는 않은데 자꾸 일기화되고 있다고, 그러면 차라리 일기를 쓰는게 낫겠다란 생각도 가끔 한다고, 공감하고 싶다란 바람과는 별개로 그저 '쓰고 싶은 욕구' 때문에 말들을 지어내고 있는건 아닌지, 공적인 영역의 글쓰기로는 한참이나 모잘란다던지, 개인, 나에 대해 집중된걸 다른 누군가가 읽고 싶어진다는건 나란 사람에 대한 관심에서 기인하는건데 그런 사람이 있을까란 의문 등을 털어놓았다.


 그 사람은 '개인적인게 가장 정치적이다.'란 말을 해줬지만 글쎄, 개인적인면들의 비정치적인 것만 얘기하는 나로선 쉽게 공감가지 않았다. 모든 사안에 대한 나의 입장에 충실하다보니 나를 모르면 대체 이 사람은 왜 이런 얘기를 하는지 감이 안 잡히는데다 다른 사람들이 글을 읽는 욕구가 글을 쓰는 사람을 알고자하는 것보다 글 자체로 동의하고 싶은 측면이 크다면 분명히 별로 권할만한 방식은 아니란 생각이 들었다. 
 

 얼마 전에 부랴부랴 쓴 리뷰에서도 성노동에 대해 말하기 위해선 난 이 책을 읽고 어떤 입장에 섰는가, 무엇을 느꼈는가, 내 개인적인 경험은 어땠는가도 중요하겠지만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느끼는바와 내 생각의 차이를 좁히려는 시도와 성노동을 정치화하는 방식에서 좀 더 긴밀해질 필요성이 더 크지 않을까란 생각도 들었다. 객관화와 요약이 부재한 글들에서 느껴지는 어거지와 참담한 결론, 비약을 일삼는 구조를 나 역시 잘 알고 있다. 서재지수를 높이려는 수작도 아닌데 터무니없이 많은 글들을 써왔고, 글의 조악한 면면을 모르는 것도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자꾸 쓴다. 마치 생각하기와 쓰기를 멈추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듯이 계속 쓴다. 여러 지점에서 문제가 많은 글임에도 계속 쓰는건 아무래도 지금 내 상황과 연관이 된지도 모르겠다. 일테면 존재증명.
 

 나는 직업이 없다. 
 

 지금은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지만 얼마 전까지는 직업이 없었으며, 무슨 일을 하냐고 물었을 때 나를 설명해줄 특정한 이미지를 갖고 있지 않았다. 20대의 초반은 정말 하고 싶은 일을 해야하지 않느냐는식으로 공무원 시험 준비를 하는 아이들에게 내가 지닌 입장을 설명했고, 그 다음 시기에 모두들 자리를 잡아갈 때는 시기와 기회를(그게 있었다면) 놓치고 근근히 살아가는 것으로 만족해왔다. 20대 초반에 해명하거나 회피하기만 한게 아니라 좀 더 적극적으로 내 삶을 바꿀 수 있는 노력을 했다면 난 지금보다 나은 상태였을까. 그런데 난 정말 무언가 되고 싶었던게 없었다. 오로지 자족적인 글쓰기와 생각하기, 사람들을 만나면서 그들과 일으키는 균열, 즐거움을 만끽하기, 비온 뒤 짜릿할 정도로 차가운 밤거리를 걷고 싶을 뿐이었다. 그 안에선 평생동안 뭘해서 먹고 살아야할지에 대한 고민은 부재했다. '성'의 말대로 그저 놀고먹겠다는 수작이었다. 
 

부재했거나 외면했거나.

 이젠, 아무도 공격하지 않는다. 도리어 지금에서야 나를 공격하는 누구보다 포악하고 사심 가득한 내가 있을 뿐이다.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직업에 있다가 무직을 선택했다면 내게는 선택을 지지해줄 명분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쫓기듯, 피해서 온게 아니라 적극적으로 이게 아니니까 그저 난 지금 상황을 선택했어, 라면. 그럴 듯한 직업을 바라기도 했고, 누구누구처럼 바빠서 어쩔줄 몰라하면서도 통장에 넉넉한 잔고가 있는 삶을 부러워하기도 했으며 사실 이런 거창한 것보다 그저 꼬박꼬박 들어오는 월급으로 다음달이 불안하지 않은 삶이 있었으면 하고 바라기도 했다. 남들과 다른 패턴의 시간에 움직이길 원했음에도 난 점점 시간과 돈에 쫓기고 있어 도리어 아무것도 못하고 있으며 이 모든게 다 내가 아무것도 노력하지 않았다란 생각으로 귀결되고 있는 상황, 그런 와중의 도피(아무것도 도피가 될 수 없지만. 글을 쓰면서도 난 고민 중이니까)가 아마도 글쓰기였는지 모르겠다.


 나를 포장하거나 희화화시키거나 적나라하게 드러내도 상처받지 않는 수단, 혹은 긴밀하게 모른척할 수 있는 구조. 예전에 가장 두려웠던건 이 상태를 지속시켜 결국 노숙자가 된다거나 자포자기한 삶을 산다는 것이었는데 요즘은 내가 여자여서 비빌 언덕으로 결혼을 무의식적으로 떠올려서인건 아닌가란 소름끼치는 상상도 해보긴 한다. (할 수는 있고? 다른 것보다 더더욱 상상 안 되면서.)그리고 글쓰기도 결국 날 구원해줄 수 없다란 지점에 도착하면 어떡하나란 도망치고 싶은 순간들이 떠오르기도 하고.


 지금 하는 일에서 난 같이 일하는 사람들로부터 가끔씩 ' 저 사람은 왜 여기서 이러고 있지.'란 의심을 받고 있다. 일테면 알바 연식으로는 터무니없이 늙은 여자가 '하필 왜'란 눈초리 말이다. 지금 하는 일 자체가 저평가된건 둘째치고 너무 박봉이라 답답하지만 가끔, 어느 순간엔 재미있고 신날때도 있다. 물론 서비스직을 존중해주는 사람들이 많은 공간적인 특징이 있을 수 있고, 정말 '내 일'이 아니란 생각에 즐기는거란 예상이 없는 것도 아니다. 가끔은 이렇게 힘든 일을 할바엔 제대로 된걸 준비해야하지 않겠냐란 충동들로 맘한켠이 내내 불편해지기도 하고.  


 물질적인 것에 욕심이 없다기보다는 잉여로 인한 자원낭비와 버려지는 것들에 무조건적인 아까운 맘이 드는 나로선 적게 벌고, 적게 쓰는게 무리는 아닌데, 그래서 평생 이렇게 살면서 지내고 싶다란 생각을 했는데 루저란 자의식뿐 아니라 평생 이렇게 드문드문, 살아가기가 이렇게 팍팍해서 어떡하냐고 청승을 떨걸 생각하니 거 참.


혼자서 술을 시켜먹어서 그래, 혼자서 술을 더 먹은데나 가까스로 막,차,를 잡아타서.


그의 질문과 지지의 말들이 남겨준 따사로운 면들이 고마워서 오늘도 난, 일기를 쓰고야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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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5-02 02:02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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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5-02 11:1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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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5-02 02:12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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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5-02 02:1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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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5-02 02:1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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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5-02 02:17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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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5-02 11:38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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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5-03 00:3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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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5-03 00:2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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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5-03 00:33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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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처럼 2009-05-04 02: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이쿠..다 비밀이군요^^ 긴 목은 슬픈 짐승이라던데... 그래서인가... 글이 좀 울적하네요. 그래도 화이팅!?

Arch 2009-05-04 02:52   좋아요 0 | URL
울적하지 말라고 말미에 웃기려고 기를 써보기도 했는데, 별로였나보다.^^

비밀글은 말이죠, 나무처럼님만 아세요.
제가 아주아주 좋아하는 분이 있는데 그 분이 제 사심을 눈치채시고 도배질을 해준거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