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에 걸려온 전화, 아빠였다.
예전엔 집에서 전화가 걸려오면 반사적으로 딸꾹질이 나곤 했다. 혹은 거부감이 생기거나 미련한 기억들이 몽땅 덤벼들기도. 부모님이 어느 정도 나를 포기하면서 자유롭기도 했고, 서운하기도 했으며, 애초의 자유로운 감각이 죄송스럽기도 했다. 그 뒤로 전화는 생사확인과 부담없는 안부를 전하는 통로가 되었고, 나보다 부모님이 나를 더 챙겨주셔서 늙은 딸은 늘 황송할 따름이다.
아무튼 아빠가 저녁에 전화를 주셨다.
- 아빠?
- 뭐하냐.
- 응, 책 보고 있었어.
- 그런데 목소리가 왜 그러냐.
- 응?
- 목소리가 이상하네.
- 아, 말을 안 하고 있어서 그런가봐.
- 그럴땐 책이라도 큰소리로 읽어보지. 바둑아, 놀자 멍멍아 같이 돌자, 동네 한바퀴.
정말 회갑을 바라보는 노인이 바둑이를 찾고 동네 한바퀴 노래를 언급했냐고 묻는다면 정말이라고 답할 수 있다. 정말 아빠는 아주 어렸을적 읽었던 교과서의 첫 문장을 읊으셨던거다. 하이 철수, 하이 영희처럼.
아빠도 안다. 큰소리로 책을 읽을 수 있는 상황이 아니고 그저 잠깐 목이 잠겼을 뿐이란걸. 당신에게 미안한만큼 당신도 내게 이유없이 미안해하고 있다는걸 나도 잘 안다. 친구라도 만나보라고, 너의 친구 '개밥'을 나도 자꾸 개밥이라고 부른다며 진짜 이름으로 부르자고 제안 하시고, 밥을 잘 챙겨먹으라며 말을 맺는 우리 아빠. 당신께서 긴히 하실 얘기가 있어 전화했는데 바둑이 어쩌고만 남기고 전화를 끊은건 아닐까 별일 없는거냐며 재차 확인하는 딸에게 가타부타 말없이 전화를 끊는 우리 아빠.
요전날엔 문자가 뜸하다며 얼마나 됐다고 귀찮아진거냐고 하자, 딸 목소리 듣는게 더 좋지란 낯뜨거운 말씀도 가끔 해주는 우리 아빠.
가끔씩 정말 바둑아 놀자 응응 이러면서 책 읽을게, 그러니까 아빠도 아프지 말고 잘 지내셔야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