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노동 - Sex Worker 여이연이론 14
여성문화이론연구소 성노동연구팀 엮음 / 여성문화이론연구소(여이연) / 2007년 10월
평점 :
절판



 일명 '토킹바'에 다니는 언니가 있다. 토킹바란 외국인을 상대로 대화를 하며 그들이 사주는 술로 돈을 버는 곳을 말한다. 토킹바의 스킨쉽 수위는 개개인마다 다르고, 일명 2차를 나가는 분들도 있다지만 대개의 경우 2차 나가기 싫어서 토킹바에 나간다는게 언니의 평소 지론이었다. 그래서 그런가보다 했다. 정말 2차를 안 나가는지, 언니가 돈없는 동남아시아 사람들보다 더 값어치 없다고 여기는 한국 남자들과 외국인은 얼마나 다른지, 원해서 자는거랑 남자가 비싼술을 샀기 때문에 자는거랑 어떻게 구별이 되는건지, 호텔에서 가끔 얻어먹는다는 점심은 어떤지 궁금했지만 워낙에 새침한 분이라 따로 꼬치꼬치 물어보진 못했다. 언니 말대로 싼티날까봐.

 얼마 전엔 언니랑 치안상태 어쩌고의 얘기를 하다가 HOOKER거리로 화제가 급전환되었는데 말의 내용과 분위기가 상당히 불편했다. 마치 자기 입에 그런 얘기를 올리기라도 하면 품격(그런게 있다면)이 손상될 것 같다란 인상이었다. 옆에 있던 같은 바에 다닌다는 언니가 자신이 어쩌다 HOOKER들을 본적이 있는데 대단히 괴상하게 생긴데다 인간으로서 결격사유가 다분해보인다는 얘기를 거들 즈음에는 웃기려는 수작인지 정말 그렇게 믿어서 말하는건지 판단불가 상태가 되고 말았다. 그제서야 대체 토킹바에서 일하는 것과 매춘을 하는게 뭐가 다르다는건지, 성적인 서비스를 파는건 같은건데 한쪽은 특정화된 성적 기관이란 것과 다른 쪽은 아니란 이유로 구별이 된다는건 어떤 논리인지 구분이 안 됐다. 게다가 왜 성적 서비스를 파는 입장에서 더 집요하게 다른 층위의 사람을 그토록 배척하는지, 그렇다고 달라보이는게 있는건지 궁금해졌다.

 내가 여성주의에 관심을 갖는건 바로 이런 의문에서 출발한다. 뭔가 불편한 느낌, 논리적인 설명까지 바라는건 아니지만 납득 안 가는 상황이 왜 그리 왕왕 출몰하는지에 대한 의문, 나란 사람의 정체성에 관련된 문제, 어쩌면 소위 말하는 여성스럽지 않은 자의식에 대한 몸부림일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너무 몰랐고 여전히 모르고 있으며 앞으로도 치열해지지 않는한 뜬금없이 멍청한 질문만 쏟아낼게 분명하다. 그렇지만 적어도 '왜'에 대한 좀 더 치열한 사람들의 얘기를 듣고 나를 돌이켜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란 생각이 들었다. 혼자 생각하는건 늘 그렇듯이 같은 자리에서 뱅뱅 도는 느낌만 줄 뿐이고, 알려고도 하지 않고서 명백해지기를 바라는건 쉽게 흥분만 일삼아 민폐를 끼치는 것만큼이나 터무니없으니 말이다.

 이 책, 성노동을 읽으면서 평소에 궁금했던 섹슈얼리티의 문제들이 명백하게 해결되진 않았다. 도리어 어느 정도 수준에서 아프지않게 따먹을 수 있는 맛있는 앎이 아니라 직접 생활 가운데서 뒤뚱거리며 생각해야할 문제들이 속속들이 드러나면서 점점 생각의 입지가 좁아져 암담해질 정도였다.

 책을 읽기 전에는 성매매, 성노동에 대해서 그들의 노동자성은 인정해줘야한다는 입장이었다. 하지만 정확하게 기억 안 나는 어느 나라의 합법화로 조직적인 매춘업소의 등장했다는 소식을 접한데다 인신매매의 문제, 낙인은 합법화만으로 해결이 안 된다란데까지 생각이 미치자 옴쭉달싹도 못하고 독 안에 갇힌 기분이 들었다. 노동자성을 인정하는 문제와 가부장적 구조로 인한 성별위계에 대해 고민해야하는 것을 따로 떼어놓고 보지 않았고, 뉴스가 절대적으로 팩트만 전달한다는 믿음에 문제가 있었다란 것을 책을 보고서야 알게 되었다.

 '성노동'은 성노동의 정치화를 통해 그간 성노동을 일컫는 말들의 정치성과 강제와 자발의 이분법을 넘어서는 실천적 쟁점을 도출한다. 또한 섹슈얼리티의 위계와 낙인의 문제- 성별전환인들의 성노동에 대하여 알아보고 비범죄화와 합법화의 진실과 오해에 대해서도 살펴본다. 각국의 성노동 관련법을 비판적으로 검토하며 나아가 성매매특별법에 성노동자들이 저항하는 이유와 앞으로의 쟁점과 방향을 다루고 있다. 책을 통해 그물망처럼 이어지던 생각들의 연결고리는 단단해졌고, 앞으로의 문제시되는 사안에 대한 적절한 해석할 수 있는 힘도 기를 수 있게 되었다.

 우리나라에선 성매매특별법을 계기로 보호라는 미명 아래 매매춘은 불법이라는 여성계의 입장과 성노동 여성의 생존권 충돌로 성노동자 운동이 촉발되었다. 주류 여성계(과연 이런 말이 있다면)가 한무더기로 몰려 공격을 받고, 각계각층의 목소리들이 튀어나와 여성운동이란 것이 어떤 것에 초점을 맞춰야하는지, 성노동자와 일반 여성을 구분지으려는 시도를 하고 있는건 아닌지, 대체 성거래는 무엇인지에 대한 논의까지 정리되지 않았지만 충분히 공감가능한 의견들이 제시되었다. 그런 와중에 성노동자의 권리를 인정하고 논의를 진행하려는 여성문화이론연구소 성노동연구팀에 의해 이 책이 만들어졌고, '상식 밖'이 아니라 실은 몰랐던 일들을 알 수 있는 지점이 마련되었다.

 성노동 운동은 성별위계가 철저한 가부장제 사회에서 편향된 사고에 생생한 균열을 내는 사안이다. 다른 선택이 있었다면 성노동을 했겠냐느니, 쉽게 돈을 벌며 사치를 하려고 성노동을 한다느니, 국가가 집장촌을 관리하지 않으면 성병이 만연된다느니(옮겨다니는 사람들은 누군데?) 성판매의 비범죄화로 성의 상품화와 성산업이 확장된다느니 오해와 편견은 끝이 없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대개의 직장인들이 이곳이 아닌 다른 곳을 꿈꾼다. 대다수의 사람들이 자신의 직업에 그다지 만족하지 않는 것을 볼 때 성노동에 한해서만 선택의 여지가 없다란 의문부호를 떠올려야할 이유는 없다고 생각한다. 게다가 쉽게 돈을 번다는 언설도 이해가 안 되는게 그동안 여성들이 해왔던 노동, 특히나 가사에 대해선 아무런 금전적인 이익이 없었다. 설마 이 부분에 대해서 가족들을 위하는 것에 돈 운운은 너무 가혹하다란 입장이라면 가사 노동의 다른 형태인 세탁소나 음식점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하다. 가사뿐만 아니라 간호사나 서비스직의 여성들이 감당하는 육체적 노동뿐 아니라 감정 노동의 측면은 늘 저평가 받아왔다. 성거래가 어떻게보면 감정노동의 일종이라고 볼 수 있다는 정희진의 말을 놓고 볼 때도 이 일이 쉽지만은 않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꼭 경험해봐야하는 당사자성의 문제뿐 아니라 다른 직업에 대해 쉽다, 어렵다를 나눌 수 있는 기준이 오래 공부를 해서 어렵게 그 일을 시작했느냐의 여부라는 생각은 좀 터무니없다란 입장이다. 쉽게 돈을 벌어서 사치를 하고 싶어하는건 노동의 댓가를 통해 사람들이 추구하는 방향성에 관한 문제이지, 이것이 도덕적으로 지탄받아야하는 문제는 아니라고 본다.

 국가의 관리라 일컬어지는 합법화는 여러 가지면에서 모순을 보이고 있다. 국가에 등록해서 규제를 받는 것은 세금을 내야하고, 지정허가제를 운영하고, 개별 매춘인 등록제의 실시, 건강검진을 필수적인 요건으로 하는 경우가 많다. 국가는 제일 큰 포주라는 말이 아니더라도 국가는 자신에게 이득이 되는 쪽으로 권력을 넓혀갈게 분명하다면 성노동자의 사생활이나 시민권은 보호되지 않을 가능성이 다분하다. 이점은 독일의 합법화 논의를 통해 알 수 있다. 따라서 성판매를 성병의 온상처럼 규제해야한다는 입장은 성노동자의 인권문제뿐만 아니라 잘못된 선입관과 성구매자의 성병 여부에 대해선 아무런 책임을 묻지 않는다는 지점에서 잘못됐다.

 비범죄화를 통해 모든 통제로부터의 자유를 쟁취한 네덜란드의 입장은 괄목할만하지만 시작으로서 의미가 있는 것이지 해결책이나 성노동 운동이 도달해야할 지점으로 보이진 않는다. 내가 앞서 언급했던 대규모 성판매업소의 등장이란 뉴스 등 익숙하지 않은 방법, 사람들의 시야에서 벗어난 일들에서 느끼는 우려는 별반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제대로된 연구없이 관습적이 사고를 토대로 비범죄화를 이룩한 성노동자의 권리를 깎아내려하거나 인신매매를 이유로(자발과 강제의 경계는 분명히 구분해야함에도 불구하고) 다시 합법화나 보호해야한다는 입장이 불거져나오는 것을 보면 말이다. 따라서 비범죄화를 시작으로 성별위계질서의 균열을 일으키고 적극적으로 성노동자의 노동성을 인정하는 운동이 추진되어야 한다.

 앞서 언급했던 언니의 경우, 자신은 HOOKER가 아니므로 깨끗하단 입장이었지만 비로소 난 좀 더 제대로 그녀를 이해할 수 있게 됐다. 성애화된 노동을 파는 입장에서 언니나 성노동자는 별반 다를게 없다. 굳이 다른걸 찾는다면 성기결합을 한다는 '여성으로선 치욕적인(대체 왜?)'낙인과 깨끗한 여성에 대한 판타지만 존재할 뿐이다. 감정노동의 대부분을 여성이 맡고 있고, 좀 더 부드러워질 것을 요구받는 사회에서 사는한 나와 다른 여성들간의 경계, 성노동자와의 경계도 그다지 다를 것 같진 않다. '성노동'은 나와 다른 사람의 경계를 들여다보고, 그 안과 밖에서 사유할 수 있는 힘을 줬다.

 여성주의는 공부하면 할수록 더 갈증이 나고, 더더욱 모르겠는 학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성주의에 대해 알아가고 내 삶과의 접점을 확인하면서 난 좀 더 '나다움'에 다가가고, 좀 더 행복한 선택을 내릴 수 있으리라는 것을 믿는다.


 성노동이나 여남 문제에 관심을 갖는 분들 뿐만 아니라 자신이 너무 도식적으로 사고하는게 아닐까란 생각이 드는 분들에게 이 책을 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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람혼 2009-04-26 15: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글 감사히 잘 읽었습니다. Arch님 글 덕분에 책을 읽어보고 싶어져서 보관함으로 옮겼습니다. "감정노동의 대부분을 여성이 맡고 있고, 좀 더 부드러워질 것을 요구받는 사회에서 사는한 나와 다른 여성들간의 경계, 성노동자와의 경계도 그다지 다를 것 같진 않다. '성노동'은 나와 다른 사람의 경계를 들여다보고, 그 안과 밖에서 사유할 수 있는 힘을 줬다"는 말씀에 더욱 책에 관심이 갑니다.

Arch 2009-10-13 12:56   좋아요 0 | URL
람혼님 반갑습니다. 무척^^
성노동을 인정한다란 입장에서 시작해서 대체 성판매, 성구매가 왜 있는지에 대해 여러가지로 정리를 해야하는데 리뷰라기보다는 페이퍼 성격에 더 가까운 것 같아요. 그래도 저 덕분에 책을 관심있게 봐주셔서(내가 인세 받는 것도 아닌데)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