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매일 엘의 블로그에 들어간다.  

 그녀의 일기는 몇개월째 이 문장으로 시작한다. 

 들어간다의 시제가 일기를 쓰는 시점에 따라 달라지기도 하고, 설레임의 강도가 클 경우에는 각각의 단어나 글자 뒤에 점이 깊게 새겨지기도 한다. 그녀는 까먹지않고 밥을 먹듯이 엘의 글을 탐독했고, 엘을 탐구했으며, 엘을 탐했다. 

 엘은 공공연히 자신은 게으르다고 글에 썼지만 매일 블로깅을 할 정도로 부지런하고, 대개의 언어에서 툴툴거리는 소리가 들리는 듯 하지만 누구보다 자신의 삶을 아끼고 좋아한다. 엘은 자신이 괜찮게 생겼다고 생각하는편은 아니지만 누군가로부터 잘생겼다란 소리를 들으면 부인하지 않는다. 엘은 혼자 고민하길 좋아하며, 고민하는 와중에 종종 번뜩이는 색채의 생각들을 풀어놓기도 한다. 그리고 엘은 무의식적으로 사람들을 웃긴다. 

 그녀는 엘의 유머를 좋아하고, 엘이 짤막하게 다는 댓글을 아낀다. 엘이 어떤 사람인지 몇년간의 글을 읽어보며 알 수 있었고, 엘의 관심사, 엘의 취향, 엘의 옷스타일까지 조금씩 알게 되었다. 사실 스치듯이 몇번 본적이 있기도 하다.  

 늦은 밤, 그녀가 텅빈 방안에 몸을 뉘이면 문득 방안 구석에서 형광광물처럼 반짝이는 엘을 보기도 한다.  

 요즘 엘은 배가 나와서, 일이 너무 늦게 끝나서, 연애감각이 이토록 터무니없이 죽어버려서 속상하다고 해서 그녀의 맘을 싱숭생숭하게 만들었다가 새로 나온 누군가의 신보 때문에, 자신이 좋아하는 작가가 옆동네 살아서, 봄꽃들이 아우성치며 맘을 들뜨게 한다고 해서 그녀의 맘을 두근거리게 했다.  

 그녀는 엘에게 살짝 얘기해줬다. 

- 난 너보다 더 당신을 잘 알 것 같아요. 

 며칠 뒤에 엘은 자신도 그녀를 쭉 지켜봤다며 매화꽃이 지기 전에 보자는 말을 남겼다. 

 약속 당일, 그녀는 세상에저 제일 예쁜 드레스를 입고 향수를 통째로 들이부었다. 행여 엘이 감기라도 걸려 냄새를 못맡을까봐. 그녀는 작은 거울 사이로 어느때보다 빛나는 얼굴을 바라봤다.  

 조금 힘들게 약속 장소에 나가 그를 기다렸다. 그가 저만치 오고 있었다. 벤치에 단정하게 앉아 그를 바라봤다. 그리고 그가 벤치에 앉았는데, 어, 어, 제 위에 앉으면 어, 

 엘은 벤치에서 한참동안 그녀를 기다렸다. 참다못해 그녀에게 전화를 걸었는데 받지 않는다. 해가 지도록 그녀를 기다리다 지친 엘은 자리를 떴다. 벤치에는 먼지처럼 찌부러진 그녀의 잔해가 남았고, 바람이 불었던가, 먼지는 날아가버렸다. 

 난, 

 당신의 관심사, 당신이 즐거워하는 일, 당신이 분개하고 맘 아파하는 일들에 공감하고 당신의 글을 읽는걸 좋아해요. 아주 많이! 그 중에서도 당신의 오늘 하루는 어땠는지, 가끔씩 적는 당신 얘기가 무엇보다 더 좋아요. 

그건 마치, 

사랑스럽달까. 

 그러니까 어디 도망가지 말고, 쭉 글을 써주세요. 전 호기심이 많고, 해보고 후회하는 스타일이지만, 우린 블로그 연애니까 그녀처럼 감히 만나자고 말하진 않을거예요. 게다가 저도 좀 작아요. SM이라고. (정말? 정말. 이렇게 사심을 툭 던지다니! 미련한 아치같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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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해한모리군 2009-04-24 08: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이 글도 봄이군요 ^^